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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25화 (25/307)

제25화

25화

“벌써 그렇게……!!”

다들 시간이 빨리 간다며 앓는 소리를 냈다.

이제 막 데뷔 쇼케이스를 하고, 앨범 판매를 시작하고, 음방도 나가고…….

그렇지 않아도 정신없이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데, 중요도 최상급인 팬 사인회가 바로 코앞이라고 하니 막막한 모양이었다.

‘팬 사인회라…….’

에르제는 그들의 스케줄 표에 적혀 있던 것을 떠올리며 심각한 얼굴을 했다.

핸드폰으로 팬 사인회에 대해서 찾아본 결과, 팬들을 만나고 사인을 해 주는 이벤트라고 했다.

물론 팬들이 선물을 주기도 하고, 그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고 하기는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에르제는 이것과 비슷한 것을 많이 해 보았었다.

‘마을 촌장들을 상대를 꽤 했었지.’

말이 촌장이라도 사실 에르제보다 훨씬 어린 1,000살 근처의 어린 친구들이었다.

‘젊은 감각을 유지해야 한다!’와 ‘경험과 연륜은 무시할 수 없다!’라는 두 의견이 충돌하는 바람에 그 애매한 나이대가 촌장으로 결정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주기적으로 로드인 에르제가 거주하고 있는 중심 도시에 와서 그를 차례대로 만나고 갔는데.

‘그때 덕담을 해 주거나 고민을 들어 주거나…… 했으니까 아마 그거랑 비슷하겠지.’

심지어 그들이 자신에게 주겠다며 선물을 가져오기도 했는데, 그것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유일하게 좀 다른 부분이라면, 앨범이나 그들이 내미는 물건 같은 것에 사인을 해 줘야 한다는 것 정도?

그래도 사인이 ‘이름을 쓰면 되는 것’이라는 것도 인터넷에서 찾아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진 않았다.

생각을 마치고 멤버들을 바라보자, 그들은 걱정과 설렘이 공존하고 있는 애매모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윤이 팬 사인회와 관련해 여러 이야기를 하고, 다시 볼일을 보러 밖으로 나간 뒤.

“아으아! 멘트! 멘트를 미리 준비해야겠어!”

태현우는 그렇게 말하며 휭 하니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럼 나, 나도!”

안단테도 같은 반응을 보이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고.

민주혁은 벗어 두었던 안경을 다시 쓰며 읽던 책을 집어 들었다.

“책 읽을 거니까 소란스럽게만 하지 마.”

물론 방 안으로 들어간 안단테에게 그렇게 경고를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윤치우는 기억을 잃은 에르제가 걱정이 되었는지 가까이 다가와서 물었다.

“은우야, 뭐 궁금한 건 없어?”

“아.”

그의 말에 에르제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이 하나 있었으니까.

“혹시 오늘 저녁밥은 고기 나와?”

“……아니.”

* * *

팬 사인회가 있기 하루 전인 화요일 오후 10시.

SNS에 글 하나가 올라왔다.

토트윈 멤버들의 공식 계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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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 ToT-win입니다.

내일이면 여러분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아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어요.

평일에 팬 사인회가 잡혀서 많이 아쉽기는 한데, 그래도 저희가 이런 기회에 팬분들과 직접 뵐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기쁩니다!!

행복한 마음으로, 내일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게요!

―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지도 모르는 ToT-win이.

p. s. 은우 사인은…… 너무 큰 기대 하지 말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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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개인 티저 이미지가 나왔을 때부터 서은우를 최애로 정해 놓았던 대학생은 양손으로 자신의 볼을 짝! 하고 쳤다.

‘콩닥콩닥 뛴대!!’

그 말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팬들이 팬 사인회를 기다리는 것처럼, 토트윈도 팬들을 그렇게 기다리고 있다는 소리 같았다.

“헤헤헤…….”

그녀는 자신의 전리품을 보며 웃었다.

앨범에서 나온 포토 카드들이었다.

전에 데뷔 쇼케이스 티켓팅을 실패하고 얼마나 통한의 눈물을 흘렸던가.

그녀는 이번 팬 사인회만큼은 무조건 가겠다는 마음으로 모아 두었던 알바비와 용돈을 털어서 앨범을 구매했다.

그렇게 구매한 것이 총 58장.

이번 팬싸컷이 무려 60장이라고 했으니 아슬아슬하게 응모에 성공한 기분이었다.

그녀는 책상 위에 펼쳐 놓았던 포토 카드 뭉치를 하나만 남기고 정리했다.

눈 밑에 검은 줄을 여러 개 그어 놓은 뱀파이어 분장을 한 서은우의 포토 카드였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포토 카드를 가린 채,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친구에게 보냈다.

[ 내일 최애 만나러 간다!! ]

[ 서은우? ]

[ ㅇㅇ ]

[ 하 씨……. 부러워. 나도 현우 오빠 보고 싶다……. ]

[ 오빠는 무슨. ㅋㅋㅋ ]

[ 잘생기면 다 오빠임. 아무튼 그래. 야……. 내 몫까지 잘 다녀와라. ]

그러면서 친구가 보낸 것은 침대 위에서 좌절한 모습의 사진이었다.

“풉.”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뜨린 대학생은 기지개를 켜고는 침대에 누웠다.

‘사인을 기대하지 말라는 건 무슨 뜻일까?’

아무래도 최애인 서은우와 관련된 일이라 궁금해졌다.

‘좀…… 구리려나?’

아무렴, 어때.

서은우가 마침표만 딱 찍어서 사인이라고 줘도 자신은 행복할 것이다.

내일 실물을 볼 수 있고 일대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아……!’

그녀는 얼굴을 베개에 폭 하고 박았다.

빨리 잠들어야 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내일이 빨리 올 테니까.

* * *

‘많네.’

에르제는 팬 사인회에 마련된 자리에 앉으며, 연신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들 토트윈을 보러 온 건지 저 멀리서부터 줄을 서고 있는 것이 보였다.

현재 자신이 앉아 있는 곳은 커다란 무대 위.

그곳에 마련되어 있는 것은 기다란 흰색의 책상이었다.

책상 가장 끝에 앉아 있던 그의 뒤로 이윤이 다가와 작게 속삭였다.

“얘기할 시간이야 짧겠지만, 아무튼 절대로 이상한 얘기 하지 마.”

예의 그 잔소리였다.

에르제는 시큰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뱀파이어 로드로서 이런 일은 아주 익숙한데, 그렇다고 그것을 이윤에게 밝힐 수도 없는 노릇이라 조금 짜증이 난 것이다.

“나는 애가 아니에요.”

“퍽이나.”

이윤은 불만스럽게 입술을 비죽이고는, 이내 저 멀리 떨어져서 팔짱을 꼈다.

여전히 이쪽을 주시하는 것이 느껴졌다.

‘거참.’

에르제가 양팔을 책상 위에 툭 얹자, 줄이 하나씩 줄어드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팬 사인회가 시작되었다.

팬들은 각자 품에 뭘 하나씩 들고 있는 상태였는데, 개중에는 앨범도 있었다.

그들은 팬들과 처음 만나는 자리에 앉아 있는 민주혁을 거쳐서 자신이 앉아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는데.

팬들은 각자 들고 있던 앨범을 내밀어서 그 위에 사인을 받고 있었다.

물론, 그들이 품에 안고 있던 것을 좋아하는 멤버들에게 내미는 것도 보였다.

“그…… 그, 현우 님 팬이에요!”

“어쩐지! 그럴 것 같았어요!”

또한 멤버들과 1분가량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우기도 했다.

‘생각했던 것과 조금 다르기는 하네.’

에르제는 예전 촌장들을 상대하던 기억을 떠올리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덕담을 한다거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큼은 비슷했으니 조금 다르다고 문제가 생길 여지는 없을 듯했다.

“와…….”

그리고 드디어 맨 앞줄에 서 있던 팬이 자신의 자리로 오게 되었다.

그녀는 에르제를 보며 그 자리에서 멈춰 서서 멍하니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슥, 스윽―.

에르제가 손을 들어 눈앞에 흔들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는 모습.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안단테가 ‘팬한테 뭔 짓을 하는 거야!?’라는 눈빛을 보내며 그의 팔을 툭툭 건드렸지만.

에르제는 그쪽에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가만히 앨범을 내미는 팬에게서 앨범을 받아 들었다.

“사, 사인해 주세요!!”

“잠시.”

그녀는 에르제가 풍기는 묘한 분위기에 자기도 모르게 양손을 공손하게 모았다.

그러나 에르제가 마카를 죽죽 그어 가며 앨범 위에 사인을 하자, 광대를 올리며 난감한 웃음을 지었다.

‘기대하지 말라더니.’

이런 뜻이었나.

그녀는 앨범 위에 개발새발 적혀 있는 사인을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외국인도 한글을 이렇게 못 쓰지는 않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녀는 조심스럽게 앨범을 챙겼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유심히 보고 있던 에르제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턱을 톡톡 두들기며 입을 열었다.

“걱정거리는 없습니까?”

“……네?”

“?”

왜 되묻는 거지?

에르제가 그렇게 생각하며 기다리고 있자, 그녀가 당황해서 대답했다.

“딱히 없는데요……?”

“그렇군요.”

잠깐 고민하느라 답이 늦었나. 그래도 없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에르제는 질문을 이어 갔다.

“마을의 치안은 어떤가요?”

“조, 좋죠? 경찰서도 가깝고.”

“음.”

에르제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합격이에요. 잘 돌아가고 있군요.”

“네…… 네? 합격?”

“아, 더 고할 것이 있으면 해도 된답니다.”

에르제의 말에 그녀의 머릿속은 물음표로 가득 찼다.

뭐지? 분명 서은우를 만나서 이것저것 묻고, 이야기도 하려고 했는데……. 지금의 기분은 마치 회사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팀장한테 제안서의 합격, 불합격 여부를 판정 받고, 또 건의할 게 있으면 해 보라고 하는…… 느낌?

그러다 퍼뜩, 자신에게 서은우와 대화할 시간이 10초도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의 귀가 빨개졌다.

‘내, 내가 물어보려던 게 뭐였지?’

MBTI였나? 좋아하는 음식이었나?

그러다가 결국 그냥 아무거나 물어보았다.

“좋아하는 색깔이 뭐예요?”

에르제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황혼이 막 도시 위로 내려앉기 시작하는 색이요.”

그게 대체 무슨 색이야.

그러다가 그녀는 저번 음악 방송의 ‘백스테이지가 궁금해!’에서 나왔던 서은우의 대답을 떠올렸다.

“중2병…….”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다가 이내 황급히 표정을 관리하고는 앨범을 챙겼다.

그러고는 박쥐 인형을 에르제에게 내밀었다.

“선물이에요!”

“고마워요.”

에르제가 박쥐 인형을 받으며 눈웃음을 짓자, 그녀는 다시 멍한 얼굴로 뒷사람을 위해 자리를 비켜 주었다.

중2병이든 뭐든 알게 뭐냐. 잘생기면 다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에르제가 몇 사람에게 더 이상한 질문을 역으로 하고 있자, 옆에 있던 안단테가 에르제 쪽으로 상체를 숙였다.

“은우 형.”

“응? 너도 고할 게 있어?”

“뭐라는……. 그게 아니고, 형이 그렇게 질문하고 있으면 어떻게 해여.”

“이렇게 하는 거 아니야?”

“네.”

단호한 안단테의 말에 에르제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 모습을 보던 안단테가 팬에게 빠르게 사인을 해 주고는, 그것보다 더 빠르게 속삭였다.

“호구조사 그만하고, 팬들이 묻는 질문에 대답해 주고 소소한 일상 얘기만 해여! 이상한 질문 역으로 하지 말고.”

“음.”

촌장들은 자신이 질문을 하고 그들의 대답을 들어 주면 감격해서 돌아갔었는데.

이곳의 분위기는 조금 다른 모양이다.

‘하긴……. 그러고 보니, 꼭 다들 이상한 질문 하나씩 하고 갔었지.’

자신의 대답에 꼬박꼬박 대답하다가 이내 고개를 털더니 반대로 질문을 하고 대답을 듣고 가지 않았던가.

“알았어.”

원래 다른 나라에 가면, 그 나라의 법을 따르라고 했으니. 에르제는 안단테에게 알겠다고 대답하고, 다음 팬을 맞이했다.

“너는…….”

그러나 이번에는 에르제가 그녀를 보고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애달픈 눈으로 에르제를 보고 있었다.

에르제는 눈을 감고 턱을 들어 올렸다가 이내 헛웃음을 터뜨렸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에르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한 탓이었다.

에르제는 아직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렇게 보니 반갑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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