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화
23화
순간 분위기가 당황스럽게 변했으나, 사람들의 관심사는 이내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
‘백스테이지가 궁금해!’의 다음 타깃인 ‘LAK’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물론, 관심이 넘어갔다는 것이 토트윈에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실시간 댓글과 SNS 등지에 올라오는 글은 조금 전 인터뷰 영상과 맞물려서 ‘LAK’와 비교를 하게 했으니 말이다.
― 역시 남돌 3위권에 들어가는 LAK가 다르기는 하네. 인터뷰부터 재밌음. ㅋㅋ
┖ 토트윈은 아직 소속사에서 말 함부로 못 하게 막는 듯? 너무 어설퍼 버리고~.
― 이미 무대부터 클래스 차이 났잖어. 뭘 굳이 망할 돌이랑 비교질.
┖ LAK 찐팬은 토트윈한테 관심도 없음; 괜히 정병들이 설치는 거.
윤치우가 심각한 얼굴로 댓글을 살피고 있자, 곧 토트윈의 대기실 문이 열리면서 이윤이 들어왔다.
“아이고오!” 하는 곡소리를 내면서 말이다.
이윤은 세상이 무너진 사람처럼 에르제를 바라보았다.
“은우야아……. 내가 이상한 말 하지 말라고 잔소리를 얼마나 많이 했는데…….”
“이상한 말?”
에르제는 그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자신은 이상한 말을 한 기억이 없다.
모르는 건 대답하지 말라고 해서, 마이크를 든 인간 여자한테 단호하게 “그건 안 돼요!”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에르제는 떳떳했기에 당당히 어깨를 폈다.
“저는 이상한 말을 한 적이 없어요.”
“……너 댓글 안 봤어?”
에르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고, 두야.”
이윤은 퀭한 눈으로 윤치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팬들 반응은 어때……?”
“그냥……. 지금은 LAK 선배들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아까 은우 인터뷰 나왔을 때는…… 뭐.”
윤치우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끝을 흐렸다.
“중2병 아니냐고…….”
이윤이 에르제의 어깨를 잡고 앞뒤로 흔들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너한테 중2병 걸린 거 아니냐고 하더라! 도대체 그런 오그라드는 대사는 왜 친 거야?!”
“음.”
에르제가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병에 걸렸다고 하는데, 방금 몸 상태를 확인해 본 결과 아주 멀쩡했기 때문이다.
‘혹시, 내 능력으로도 치료가 안 되는 병인 건가?’
댓글에서 사람들이 병에 걸렸다고 이야기를 하니, 순간 심각해진 에르제는 이윤에게 물었다.
“심각한 병인가요? 치료가 불가능할 정도로?”
“……뭐라는 거야. 원래 그건 나이 들면서 자연스럽게 없어지는 병인데……. 애초에 안 걸리는 사람들도 많고.”
사실상 병이라고 표현하기도 뭐하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오른팔에 흑염룡 하나씩 봉인하는 사소한 병.
그러나 에르제는 그 말에 다분히 충격 받은 얼굴이었다.
나, 2,500살인데?
여기서 얼마나 더 나이를 먹어야 한다는 얘기인 건지 도통 감이 오지 않는다.
‘……인간과 뱀파이어의 수명 비율로 계산을 해 봐야 되는 건가.’
사실상 이윤의 말을 들어 보면, 지금의 나이면 중2병이 나았어야 한다는 뜻이다.
‘다른 멤버들은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를 안 하니까 병에 걸려 있는 건 아니겠지.’
팬들이 자신의 병에 대해서 그렇게 걱정을 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래서야 팬들에게 아프지 말고 어서 병원에 가라고 했던 자신의 꼴이 우스워지지 않겠나.
에르제가 심각한 얼굴로 이윤에게 말했다.
“최대한 빨리 고칠 방법을 알아볼게요.”
“……뭐?”
이윤을 포함한 멤버들이 마치 이상한 사람을 바라보듯 하고 있자, 대기실 문이 열리면서 스태프가 들어왔다.
“다른 무대 다 끝나 갑니다! 곧 순위 발표 시간이라서 무대로 나와 주셔야 해요!”
“네! 금방 준비해서 나가겠습니다!!”
이윤이 그쪽에 대고 크게 소리쳤다.
그러고는 에르제에게 경고하듯이 말했다.
“일단 멤버들 없을 때 혼자 인터뷰하는 건 금지야. 화장실도 다른 애 데리고 같이 가고.”
그게 더 이상해 보일 것 같았지만, 에르제는 그냥 입을 꾹 다물었다.
어차피 TV에 나오게 된 거, 흩어져 있는 일족들만 찾으면 이 일은 금방 그만두게 될 테니까.
그 전까지는 그냥 장단을 맞춰 주는 게 속 편할 듯했다.
“얼른 가자.”
그렇게 병에 관해서 이윤과 이야기를 마친 뒤, 토트윈은 순위 발표 시간을 위해 무대 위로 올라갔다.
다른 아이돌이나 가수들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는지, 뮤직 큐 스테이지는 많은 인원으로 인해 북적거렸다.
이제 갓 데뷔한 토트윈은 다른 이들에게 밀려서 어정쩡하게 구석에 서 있게 되었다.
혼자 가운데로 걸어가던 에르제는 손목을 붙잡혀 윤치우에게로 끌려갔다.
“일루 와. 혼자 막 돌아다니지 말고.”
“원래 이렇게 구석에 서는 거야?”
“다른 분들은 다 선배잖아.”
그러고는 작게 속삭였다.
“물론 우리 성적이 지금보다 좋아지면 카메라에 더 가까이 갈 수 있고.”
아아!
그제야 에르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분제가 없다더니 여기도 신분제 비슷한 거는 있네.’
그렇게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LAK와 여자 아이돌 그룹, 이렇게 두 팀이 1위를 다투는 모습이 잠깐 보였다.
화면에 숫자가 타라라락, 올라가는 것이 보였는데.
윤치우의 말에 따르면, 저게 이번 음악 방송 무대의 1위를 결정짓는 다양한 지표의 합이란다.
가만히 그 모습을 보고 있자.
“이번 주 1위는!!”
MC가 크게 소리를 지르고, 카메라가 한쪽 팀을 향해서 돌아갔다.
“LAK입니다!”
내내 1위 문턱에서 좌절하더니, 이번 주는 팬들의 화력이 집중되었던 모양이다.
드디어 LAK가 음악 방송 1위를 차지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단독 샷으로 잡혔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 곡을 사랑해 주신 팬들을 포함해서…….”
조금 지루한 소감이 이어진 뒤.
다 같이 사진을 찍고, 모두 대기실로 흩어져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토트윈도 슬슬 정리를 하려고 대기실로 향하던 차.
복도에서 꽃다발을 들고 있는 LAK와 마주쳤다.
“어!”
이채선이 에르제를 발견하자마자 인상을 팍 썼다가 이내 주위를 살피며 환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가까이 다가와 그의 손을 잡았다.
“아이고, 우리 후배님들. 이번에 데뷔 무대 잘 봤어요. 너무 좋더라.”
저번에 에르제가 이채선에게 사과를 했던 이후, 방송국 내에서 그의 평판이 조금 깎였던 것을 의식하는 모양이다.
알게 모르게 퍼진 갑질 논란 소문에 이채선이 스트레스 때문에 위염을 앓았다는 이야기를 얼핏 듣기도 했다.
물론.
토트윈 멤버들은 당연히 그런 티를 내지 못하고 축하해 줘서 고맙다는 반응을 보였다.
주변에 돌아다니던 스태프들도, 그 장면을 흘긋 보고는 다시 일을 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에르제가 그 말을 하기 전까지는.
에르제가 눈웃음을 지으며 이채선의 손을 맞잡았다.
“아, 저희 데뷔곡이요?”
“?”
이채선은 얘가 뭘 하나 싶어서 쳐다보자, 에르제가 말을 이었다.
“선배님께서 이번에 저희 곡 ‘HaLLa(할라)’를 좋아해 주신다니 굉장히 기쁘네요.”
“아아, 당연한 이야긴데요. 할라! 곡 제목부터 느낌이 딱 왔다고 해야 하나?!”
“고마워요, 이채선 선배님.”
에르제가 손을 놓으며 나름 ‘할라, 하나’ 라임을 맞춘 것을 뿌듯해하는 이채선을 바라보았다.
“다음에 또 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고는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는 LAK를 지나쳐 걸어갔다.
다른 토트윈 멤버들도 그들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지나가기는 했지만, 다들 표정이 굳어 있었다.
“…….”
곧 주변의 스태프들도 복도에서 사라지고 나자, 이채선이 이를 갈았다.
“저 자식, 여전히 싸가지 없네.”
그리고 그런 이채선의 뒤통수를 제이가 세게 후려갈겼다.
따악!!
“악!!”
이채선이 고통을 호소하며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멍청한 놈.”
제이는 그를 역겹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그거 하나 제대로 못 해? 내가 저번에 꽤 알아듣게 설명해 준 것 같은데.”
“왜, 왜…….”
이채선이 혼란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저번에 서은우에게 엿 먹은 ‘갑질 논란’을 이번에는 제대로 만회했다고 생각했는데…….
스태프들도 수군대지 않고 일하러 자리를 떠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어진 제이의 말에 이채선의 표정이 굳었다.
“토트윈 데뷔곡 이름은 ‘HaLLo(할로)’다. 할라가 아니고.”
쯧, 하고 제이가 혀를 찼다.
그 모습에 다른 멤버들도 제이의 눈치를 보며 이채선을 일으켜 세웠다.
“미, 미안.”
매섭게 그를 보던 제이가 휙 하고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복도 한복판에서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흘렸다.
“……하.”
그의 한쪽 눈이 보랏빛으로 변했다.
“장난질이 심하네.”
제이의 입술이 비틀렸다.
* * *
음악 방송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숙소에는 장 대표와 실장까지 와 있었다.
그들은 숙소로 돌아오는 토트윈을 반갑게 맞이해 주며, 어디서 준비해 왔는지 폭죽까지 터뜨렸다.
“욕봤다!”
장 대표가 큰 소리로 이야기하며 토트윈 멤버들 한 명씩 등을 토닥여 주었다.
덕담도 잊지 않고 해 주던 장 대표는 에르제의 앞에 서자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노래 잘했고, 춤도 잘 따라와 줬고……. 아주 잘했어, 은우! 인터뷰만 빼고! 으하하하하!!”
“억지웃음인 거 티 나요.”
병에 걸린 사람을 위로해 주려고 웃는 것 같은데, 그렇게 하지 않아도 자신은 괜찮다.
뱀파이어는 고작 그런 병에 무너질 종족이 아니니까.
“뭐, 인마?”
장 대표가 눈을 흘기다가 이내 에르제를 꽉 안아 주고는 다시 놓아 줬다.
“다들 들어와.”
그는 선물을 숨겨 놓은 아이처럼 토트윈에게 숙소 거실로 들어오도록 손짓했다.
그러고 보니 이 짓을 신발장 앞에서 하고 있었군.
그렇게 생각하며 안으로 들어서는 에르제의 눈이 그만 휘둥그레졌다.
“이건…….”
거실에 놓인 자그마한 탁자 위에 난생처음 보는 것들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의 냄새는 정말이지 아주 기가 막혔다.
“너희 데뷔곡 평도 좋고, 그동안 고생도 많이 해서 나랑 실장님이랑 준비를 좀 해 봤다.”
장 대표는 그렇게 말하고 에르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저 녀석이 데뷔 쇼케이스에서 고기 안 준다고 하는 바람에 팬들 항의 전화도 좀 들어와서.”
그는 피식 웃으며 손으로 탁자를 가리켰다.
“오늘은 아주 특별히, 내가 너희들한테 삼겹살을 대접하려고.”
“오오오오!”
태현우가 단숨에 장 대표에게 양손 엄지를 치켜세웠다.
“대표님! 제가 지금까지 본 대표님의 모습 중 제일 최고입니다!! 잘생겼다!! 멋지다!”
“너, 날 평소에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냐?”
장 대표는 헛웃음을 내뱉고는, 자신이 직접 집게와 가위를 잡았다.
“너희들 곧 도착한다고 해서 먼저 구워 놓고 있었지. 얼른 앉아서 밥 먹어.”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탁자에 앉은 토트윈 멤버들은 빠르게 젓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
흡사 걸신들린 사람 같았다.
그리고 당연히 에르제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조심스럽게 젓가락을 놀려 잘 구워진 삼겹살을 입 안에 넣은 에르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맛있다……!!’
품격 있고 고상한 음식은 아니었지만, 이곳에 와서 처음 먹는 고기였다.
에르제의 혀와 이빨이 엄청난 속도로 움직였다.
“야! 그거 아직 다 안 익은……!”
민주혁은 에르제의 입으로 들어가는 삼겹살을 황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