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22화 (22/307)
  • 제22화

    22화

    ‘Kill Shot’ 생방송 무대를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온 토트윈은 그대로 준비되어 있던 소파에 드러누웠다.

    “으아,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갔었나 봐. 온몸이 쑤신다.”

    “그건 평상시 연습이 부족한 게 아닐까. 실전에서 연습했던 만큼 보여 주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네.”

    “그런 뜻 아니거든!?”

    칭얼대는 태현우에게 민주혁이 한 소리를 하자, 금세 기력을 회복해서는 다투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을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보고 있던 윤치우는 곧 핸드폰을 꺼내 스크롤을 내렸다.

    그들의 이번 생방송 무대의 반응을 보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에르제도 슬쩍 그의 뒤로 이동해서 댓글을 구경했다.

    처음으로 TV에 얼굴을 비쳤기 때문이다.

    ― 토트윈 데뷔 무대 맞냐;; 하나도 안 떨고 엄청 잘하네.

    ― 서은우 라이브 맞음? 웬만한 가수들도 어려워하는 음역대 아니냐?

    ┖ 딱 봐도 라이브 아닌 거 티 나는데; 진짜 추잡하다.

    ┖ X문가 납셨네; 이런 애들이 꼭 제거 버전 뜨면 입 싹 닫고 날더라.

    ― ‘Kill Shot’이 이렇게 좋을 일이냐고 ㅠ ‘HaLLo’파였는데, ‘Kill Shot’에도 제대로 치였음. 하, 심장 아파.

    ― 개잘하네. ㅋㅋㅋ LAK 팬들 똥줄 좀 타겠다?

    ┖ LAK 차트 순위 지금 3위인데, 고작 60등짜리가 비비네.

    ┖ 저번에 보니까 이채선 서은우한테 갑질해서 인성 논란 떴던데, LAK 팬들 양심도 없냐. 벌써부터 견제구 들어오는 거임?

    시비성 댓글도 눈에 띄었지만, 전반적인 댓글은 무대가 훌륭했다는 평이 많았다.

    물론 팬들끼리 싸움이 붙기도 했다.

    에르제는 그 모습을 보고 조금 신경이 쓰였다.

    ‘우리도 그랬었지.’

    뱀파이어 종족은 마음 맞는 이들끼리 모여서 마을을 만들어 사는 습성이 있는데.

    그 때문인지 각 마을 간에 분쟁이 자주 일어났었던 것이다.

    로드로서 그런 싸움을 일일이 중재할 수 없었기에 가끔씩 큰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었다.

    ‘그냥 각자 좋아하는 이들을 좋아하기만 하면 될 것을.’

    에르제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대기실 문이 벌컥 열렸다.

    자리를 비웠던 이윤이 들어오나 싶어서 문 쪽을 봤더니, 전혀 모르는 얼굴 둘이 들어왔다.

    한쪽은 커다란 카메라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남자였고.

    다른 하나는 마이크를 든 여자였다.

    “앗.”

    그리고 에르제 말고는 그들이 누구인지 다 아는 듯, 금세 대기실 중앙으로 모여들었다.

    마이크를 든 여자가 그런 그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백스테이지가 궁금해!’의 진혜영이에요!”

    “안녕하세요!”

    멤버들이 싹싹하게 인사하자, 에르제도 한 손을 내리고 품격 있게 인사했다.

    고고한 자태를 잠시 감상하던 진혜영이 이내 고개를 털고는 배시시 웃었다.

    “뮤직 큐의 ‘백스궁’에 등장한 것은~! 오늘 데뷔 무대에 오른 토트윈이에요!”

    그리고 그제야 에르제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했다.

    이게 이윤이 내내 잔소리를 퍼부었던, 바로 그 상황이 분명해 보였다.

    ‘아마 ‘Kill Shot’ 무대를 하고 나면, 잠깐 인터뷰 같은 거 하러 올 거라고 했지.’

    그리고 웬만하면 입을 꾹 다물고 있으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걸 어기면 또 무슨 잔소리를 들을지 몰랐기에 에르제는 가만히 서 있었다.

    곧 진혜영이 리더인 윤치우에게 먼저 다가섰다.

    카메라를 든 남자가 그들의 전체 앵글이 나오도록 뒤에 섰다.

    “팬들에게 인사 한 번씩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Trick or Treat! 토트윈입니다!”

    이번에는 에르제도 틀리지 않고 해냈다.

    그러자 간단한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데뷔 무대를 마친 소감을 듣고 싶은데요! 아까 객석 반응을 보니 엄청나더라고요?! 토트윈분들은 어떠셨어요?”

    “당연히 저희도 너무 좋았습니다. 데뷔 무대이기도 하고, 저희에겐 첫 무대이자 첫 음악 방송이라…… 긴장을 정말 많이 했거든요. 그래도 준비한 대로 보여 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윤치우가 차분하게 대답을 하자, 진혜영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럼 이번 주 토트윈의 순위는 어떻게 예상하고 계시나요?!”

    “아.”

    윤치우가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워낙 쟁쟁하신 선배님들도 계시고, 또 저희와 비슷하게 데뷔한 그룹도 있어서…… 사실 마음을 비우고 있습니다. 하하.”

    에르제는 윤치우의 대답에 속으로 감탄했다.

    숙소에 있을 때 매일 거울을 보면서 인터뷰 연습을 하더니, 그 효과가 톡톡히 드러나는 것 같았다.

    진혜영은 ‘에이, 재미없어~.’라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더 건질 것이 없다고 여겼는지 빠르게 마무리 대사만 치고 자리를 떴다.

    마지막에 물어본 건 ‘팬들에게 할 말은?’이었는데, 이번에는 민주혁과 태현우 둘의 말만 찍고 가 버린 것이다.

    “후우.”

    무난하게 넘겼다는 생각에 윤치우가 멤버들을 보며 다독였다.

    “다들 대답 잘해 줬어.”

    물론 에르제는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윤치우가 쓴웃음을 지었다.

    “은우도 잘 참았고.”

    괜히 말로 사고를 치는 것보다 그냥 무난한 게 나았다.

    아직 그들은 ‘장난스럽지만 건방지지는 않은 대답’을 할 정도로 급이 높지는 않으니 말이다.

    지금은 차곡차곡 쌓아 가는 단계였다.

    ‘하고 싶은 말이 있기는 했는데.’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라고 해서 기다렸는데, 두 명의 대답만 듣고 그들은 대기실을 나가 버렸다.

    이번에는 기회를 놓쳤지만, 에르제는 다음에 인터뷰나, 이윤이 넌지시 이야기를 꺼냈던 예능이라는 곳에서 말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슬쩍 고개를 들어 시간을 확인하니, 다음 ‘HaLLo’ 무대까지 10분 정도 여유가 있었다.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게.”

    에르제는 그렇게 말하고 대기실을 나섰다.

    그래도 몇 번 왔다 갔다 한 곳이라 길을 잃을 일은 없었다.

    그렇게 화장실로 향하는 도중, 녹화 테이프를 점검하고 있는 두 명의 인영과 마주쳤다.

    진혜영과 카메라를 들고 있던 남자였다.

    “토트윈 쪽 분량이 좀 적은가?”

    “너무 빨리 끝내고 나왔나 봐요. 신인이라 건질 게 너무 없기는 했어.”

    둘은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에르제가 그들을 지나쳐 화장실로 들어가려던 차, 그를 발견한 진혜영이 아는 척을 해 왔다.

    “앗, 은우 씨!”

    “?”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남자는 어느새 카메라를 어깨에 걸쳐 둔 채였다.

    진혜영은 그에게 다가와서 마이크를 내밀었다.

    “생각해 보니까, 은우 씨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잖아요.”

    “그랬죠.”

    “그래서 말인데, 간단하게 장면 하나만 담아 갈게요.”

    진혜영이 마이크를 들이밀며 픽 웃었다.

    “그냥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 주시면 돼요. 토트윈 분량이 좀 적은 것 같아서.”

    “아아.”

    에르제는 잠시 고민했다.

    이런 거라면 멤버들에게 피해가 갈 일도 없고, 잔소리를 들을 일도 없다.

    ‘게다가 하고 싶은 말도 있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그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그 기회가 빨리 찾아온 것이다.

    TV에 나오는 것도 나오는 거지만, 아무래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일족을 찾으러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었다.

    에르제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가 대답하자, 진혜영이 목을 가다듬고는 아까의 쾌활한 목소리로 물었다.

    “은우 씨, 토트윈의 팬들에게 한 마디 해 주세요!”

    * * *

    토트윈의 ‘HaLLo’ 무대는 팬들의 심장을 콩닥콩닥 뛰게 만들었다.

    팬들은 이미 사전 녹화 후기를 숙지한 뒤였기에, 잔뜩 기대감이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토트윈의 무대는 그 기대감을 충족시키고도 남을 정도였다.

    ― 아아악, 이놈의 결정 장애 병이 또 도지고 말았다. 머리띠냐, 화장이냐……!!

    ┖ 귀여움 vs 요염함.

    ┖ 사실상 승자가 없음;

    ― 아니……. 솔직히 나는 아이돌이 이렇게 분장하면 별로일 줄 알았는데;; 왜 잘 어울리냐;;

    ┖ 이왜진 ㅠㅠ

    ― 아니, 서은우, 이 미친 자. ㅋㅋㅋㅋ 사녹 때 했던 키스 날리기 생방에서 또 했네. ㅋㅋㅋㅋ

    ┖ 할로는 사녹 아니었음?

    ┖ 원래 사녹 하는 곡도, 생방 때 한 번 더 부름. 교차해서 영상 나오는 거.

    ┖ ㅇㅎ 감사.

    ― 근데 메이크업 팀, 힘 엄청 주기는 했나 보다. 애들 느낌 개쩌는데?

    팬들의 눈은 정확했다.

    실제로 토트윈이 메이크업에 쏟은 시간만 평소보다 2배는 되었으니 말이다.

    심지어는 그들의 분장 같은 화장에 액세서리로 분위기를 더했으니.

    ― 와; 진짜 판타지 속 다른 종족 보는 느낌 나는 것 같음.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렇게 팬들이 ‘HaLLo’에 관한 이야기를 떠들고 있을 때쯤.

    - 이번에 ‘백스궁’에서 만나 볼 팀은 오늘 데뷔 무대를 가진 토트윈입니다!!

    뮤직 큐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백스테이지가 궁금해’가 화면에 등장했다.

    진혜영은 토트윈의 대기실 앞에서 첫 대사를 치고 있었다.

    - 저는 조금 전에 무대를 마치고 내려온 토트윈의 대기실 앞에 서 있는데요! 데뷔 무대를 훌륭하게 마친 분들을 만나려니 제가 더 긴장이 되는 기분이에요!

    그녀는 “가 볼까요?”라는 말을 던지고 문을 열었다.

    그러자 그들을 발견한 토트윈 멤버들이 자기들끼리 놀던 것을 멈추고 후다닥 달려오는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 아이고, 쪼르르 달려오는 게 귀여워 죽겠다. ㅠㅠ

    ― 은우 혼자 옆에서 멍때리고 있음. ㅋㅋㅋㅋ 오! 그래도 이번에 인사 안 틀렸다. ㅋㅋ

    ┖ 안녕? 나는 트릭트릭!!

    ┖ ㅋㅋㅋㅋ 불멸의 트릭좌.

    토트윈의 팬들은 기꺼이 그들의 풋풋한 신인 시절을 즐기며 댓글을 남겼다.

    나중에 연차가 쌓이면, 이런 어설픈 모습은 더 이상 보지 못할 테니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답을 윤치우와 민주혁이 하고 있자 불만스러운 댓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 아니 근데, 왜 윤치우만 대답함? 진혜영 인터뷰 너무 못하는 거 아니냐? 다른 애들도 대답하게 해!!

    ┖ 치우가 어른스럽게 대답 잘하는구먼. 뭘 더 바라?

    ┖ 옆에서 우리 단테, 말하고 싶어서 손가락 꼬물거리는 것 봐. ㅠ

    아직 악성 개인 팬들이 몰려온 수준은 아니었지만, 토트윈 팬들 사이에서 조금씩 불만이 쌓이던 참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장면이 나왔다.

    갑자기 진혜영이 마무리 멘트도 없이 후다닥 인터뷰를 끝낸 것이다.

    ― ?

    생방송을 보고 있던 팬들이 어리둥절하고 있자, 갑자기 어두워졌던 화면이 밝아졌다.

    그리고 뜬금없이 화장실 앞에서 서은우와의 짧은 인터뷰가 등장했다.

    ‘화장실 앞에서 마주친 토트윈의 서은우’라는 자막과 함께, 박쥐 날개가 조그맣게 붙어 있었다.

    ― 이게 무슨 근본 없는 진행;

    그런 분위기가 팽배해질 때쯤.

    - 팬들에게 한 마디!

    이에 대한 서은우의 대답이 생방송에 그대로 나왔다.

    친절하게 자막까지 달아 줬다.

    [ 조금 전에 무대를 끝내고 여러분들이 달아 주시는 댓글을 보았는데요. 좋은 글만 달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여러분의 손은 소중하니까 좋은 곳에만 써 주셨으면 해요. ]

    [ 당황한 리포터의 흔들리는 동공! ]

    익살스런 자막이 등장하고, 진혜영의 얼굴이 잡혔다.

    그러나 서은우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 갔다.

    [ 아! 그리고 심장 아프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걱정이 많습니다. 꼭 병원 가 보세요. ]

    ― 아니, ㅠㅠ 은우야……. 심장 아픈 게, 그 심장이 아픈 것이 아닌데…….

    ┖ 장금이냐고. 큐 ㅠㅠㅠ

    ― 누나가 병원 갈게……. 내가 미안해…….

    ― 나 이제부터 클린한 댓글만 단다. 은우가 그러라고 했다. 반박 안 받는다.

    처음 대답에는 다들 귀엽다고 여기며 받아 주던 차.

    [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할 말이 있는 듯한 서은우 씨의 모습 ]

    이런 자막과 함께 서은우의 얼굴이 카메라에 더욱 가까이 잡혔다.

    순간 몽환적인 느낌에 빠져들게 하는 모습이었다.

    서은우의 붉은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 이지러진 달빛이 그대의 마음에 깃들기를. ]

    그렇게 서은우의 두 번째 말이 튀어나오자, 채팅창에는 무수한 갈고리의 향연이 펼쳐졌다.

    ― 갑자기?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 아니었냐?

    ― ?????????????

    ― 이제 트릭좌 아니고, 달빛좌.

    ― 뭐임, 시인임?

    ┖ 시인이 아니라 중2병인 듯.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