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화
20화
인식 장애 술법은 바로 옆에 있다고 해서 풀릴 술법이 아니었다.
인간은 늘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의 근본을 뒤튼 것이 인식 장애 술법이었고, 그렇기에 인간들은 본질에 다다를 수 없었다.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게.’
윤치우는 쉽게 술법을 파훼해 버렸다.
혹시나 술법이 풀린 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지만, 다른 멤버들은 눈치채지 못한 것이 확실했다.
에르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가 핸드폰을 보고 있는 거…… 어떻게 알았지?”
“어떻게 알았냐니…….”
윤치우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아까부터 핸드폰 보고 있길래 혹시나 또 싸울까 싶어서 온 건데.”
‘아까부터…….’
그렇다는 건 멀리서부터 이미 인식 장애 술법이 뚫렸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의미는…….
‘윤치우가 인간이 아니거나 아니면 인간 중에서도 특별하거나.’
그런 뜻이었다.
그리고 둘 다 에르제에게 그다지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특별한 인간’이라면 더더욱.
그들은 미친 황제가 ‘마족’을 굴복시키거나 멸하기 위해 운영하던 ‘사냥꾼’ 집단이었으니까.
‘혹시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물어봐야 하나?’
아니다.
괜히 각성을 부추기는 꼴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혹시.
조금 전까지 자신이 보였던 행동이 이상하지는 않았을까?
혹시 자신이 지금 화제를 돌리면, 그게 더 이상해 보일까?
에르제가 빠르게 머리를 회전시키고 있자, 때마침 지원군의 목소리가 들렸다.
“떴다!!”
태현우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에르제와 윤치우가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태현우가 그들을 보며 오라고 손짓했다.
“우리 음원! 차트!!”
아, 아까 그거 기다리고 있었지.
거실에 모여 있던 이유를 새삼 깨달은 에르제가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그쪽으로 향했다.
이미 윤치우를 제외한 나머지는 그곳에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어떻게 됐어?”
에르제가 일부러 궁금한 목소리로 묻자, 윤치우도 고개를 갸웃하고는 따라왔다.
‘됐다.’
태현우 덕분에 성공적으로 화제를 전환할 수 있었다.
‘나중에 생과일주스라도 사 줘야겠어.’
난감한 상황을 넘길 수 있게 해 줬으니, 맛있는 생과일주스 정도는 양보할 수 있었다.
에르제가 태현우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좋아하는 과일이 뭐야?”
“뭐? 사…… 사과.”
태현우가 어리둥절해서 물었지만, 에르제는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뭔데?”
태현우는 살짝 인상을 썼지만, 이내 핸드폰을 에르제와 윤치우에게 내밀었다.
“아무튼 그게 중요한 거 아니고, 이것 좀 봐 봐.”
“?”
윤치우의 얼굴이 물음표에서 느낌표로 바뀌었다.
“뭐야, 이거. 진짜야?”
황급히 태현우의 손에서 핸드폰을 낚아챈 윤치우는 3초가량 지나자 더없이 환하게 웃었다.
그가 들고 있는 핸드폰 화면에는, 새벽 1시에 집계되어 올라온 토트윈의 음원 순위가 떠 있었다.
[ ‘ToT-win’ - ‘HaLLo’ ― 89위 ]
서브곡인 ‘Kill Shot’은 보이지 않았지만, 일단 타이틀곡으로 차트 100을 뚫었으니 머지않아 ‘Kill Shot’도 차트에 진입할 것이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첫날부터 차트 진입을 할 줄이야.”
민주혁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신인 아이돌, 그것도 신인 남자 아이돌이 첫날부터 차트에 진입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웠다.
실제로 모카 엔터 내부에서도 벌써부터 차트에 진입할 거라고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다.
물론 곡도 좋고, 토트윈의 실력이 뛰어난 점도 있었지만.
그만큼 부정적인 여론이 많았으니 초반에는 꽤 난항을 겪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이다.
“이 정도면, 앨범 예판 걸어 놓은 건 다 팔린 거 아니야?”
기대감이 서린 태현우의 목소리에 다들 그럴지도 모른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초동도 10만 장 이상 나왔으면 좋겠는데여…….”
“그 정돈 충분히 될 것 같은데. 더 나올 수도 있고.”
민주혁이 차트를 보며 피식 웃었다.
웬만한 경우에 현실적인 사고를 하는 민주혁이었기에 다들 눈을 반짝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민주혁이 상체를 뒤로 젖혔다.
“왜, 왜 이래. 부담스럽게.”
“오오, 민주혁 님이 점지해 주셨다!!”
태현우가 양팔을 하늘로 높이 들며 소리쳤다.
“민주혁 님이시여……!!”
안단테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하지 마!! 야! 씨, 태현우! 절 2번 하지 마!!”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에르제는 문득 옛 생각이 떠올랐다.
‘꼭 악마에게 영혼을 팔던 이들이 저랬는데.’
원하는 것을 들어 달라며 자신의 영혼을 바치는 자들 말이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같은 인간에 의해 삶이 망가진 인간들이었다.
‘뭐, 민주혁이 악마는 아니니까 상관은 없겠지.’
그렇게 그들의 모습을 구경하고 있자, 윤치우의 핸드폰이 울렸다.
이윤이었다.
“아, 네! 윤이 형. 저희도 확인했어요. 네, 네. 그렇죠.”
아마 차트에 진입했다고 축하해 주는 모양이었다.
― 고생했다, 얘들아!!
그들에게까지 이윤의 흥분한 목소리가 들렸으니 말이다.
아까의 악마 숭배 연극은 언제 그만뒀는지 남은 3명도 히히 하고 웃고 있었다.
‘다들 기분이 좋아 보이네.’
에르제는 멋쩍게 웃었다.
솔직히 아직 완벽하게 그들의 감정에 공감이 되지는 않는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일족을 찾기 위해서 아이돌을 하고 있는 거니까.
그런데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란 생각과는 달리 아직까지는 입질도 오지 않고 있었다.
찾는 걸 도와주겠다던 이윤도, 그쪽으로는 아직 소식이 없고 말이다.
‘까먹고 있는 건 아니겠지.’
합리적인 의심을 하던 에르제는 아까 M–라이브에서 말했던 음악 방송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이제 드디어 자신의 모습과 이름이.
‘TV에 나올 수 있어.’
드디어 첫 목표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든 에르제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자, 윤치우가 다가와서 말했다.
“너도 음원 성적이 잘 나와서 기분이 좋지?”
“응? 아니.”
“……그럼?”
에르제의 말에 윤치우가 떨떠름한 말투로 되물었다.
“곧 음악 방송에 나온다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좋아졌어.”
“아하.”
윤치우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을 찾고 싶다고 했었지.”
“뭐라고?”
나지막하게 중얼거린 윤치우의 말에 에르제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아냐.”
윤치우는 고개를 휙휙 젓고는, 이내 진중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튼 그 음방과 관련해서 말인데.”
그가 다른 멤버들에게는 들리지 않도록 작게 말했다.
“애들 자러 들어가면, 나랑 잠깐 얘기 좀 하자.”
* * *
새벽 2시가 넘은 뒤에야, 멤버들은 하나둘씩 자러 들어갔다.
내일도 주야장천 연습 일정이 잡혀 있으니, 음원 성적이 잘 나온 것을 마음껏 즐길 시간도 빡빡했다.
“…….”
그렇게 거실에 윤치우와 둘만 남자, 에르제는 마음의 준비를 했다.
‘설마 술법에 대해서 눈치를 챈 건 아니겠지?’
그러다가 곧 고개를 저었다.
분명 윤치우는 음악 방송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고 했으니까.
‘뭐가 됐든,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은데…….’
괜히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으니, 단둘이 이렇게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불안했다.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윤치우를 곁눈질로 보던 에르제가 이내 깨달았다.
“아.”
음악 방송에 대해서 이야기할 거라면, 그것밖에 없지 않나?
‘미리 선수를 쳐야겠어.’
얘기를 빨리 끝내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하려는 말을 가로채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에르제가 윤치우를 보며 말했다.
“윤치우.”
“…….”
“윤치우.”
“……아! 불렀어, 은우야?”
어찌나 깊게 생각에 잠겨 있었는지 어깨를 흔들고 나서야 겨우 대답한다.
에르제는 빠르게 입을 열었다.
“음악 방송에 대해서 이야기할 게 있다고 했지?”
“어? 어어. 맞아.”
“앞으로는 줄임말에 익숙해지도록 할게.”
“?”
윤치우가 뭔 소리를 하느냐는 듯이 쳐다보았다.
“음방 말이야. 아까 팬들 반응을 보니까 필수적으로 알아야 하는 줄임말이 있는 것 같던데.”
“그……걸 그렇다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있다면, 알려 줘. 종이 같은 데 적어서 주면 좋을 것 같아. 다 외울 수 있으니까.”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 낸 에르제는 멍한 얼굴을 하고 있는 윤치우의 어깨를 두드리며 일어났다.
“그럼 이만! 아, 아니지. 그이!”
말을 이상하게 줄이고 자리를 떠나는 에르제의 손목을 윤치우가 덥석 붙잡았다.
“어디 가?”
“……얘기 끝난 거 아니야?”
“나는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안타깝게도, 빠르게 이야기를 끝내려던 에르제의 계획은 1분도 되지 않아 실패하고 말았다.
에르제가 결국 털썩 앉으며 그를 바라보았고, 윤치우는 결심을 마쳤는지 느릿하게 입술을 뗐다.
“은우야, 너는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너와 나는 얘기를 꽤 많이 나눴었어.”
“……?”
“특히 연습생 때, 네가 많이 힘들어했었는데……. 뭐 기억나는 거 없어?”
“내가 힘들어…… 했다고?”
기억하지 못하는 듯한 에르제의 모습에 “역시 그런가.” 하고 윤치우가 중얼거렸다.
그는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윤이 형이 걱정을 많이 해. 네가 기억을 잃은 것 때문에 음방에서 혹시 사고 치는 건 아닐까 하고.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내가? 사고를?”
“응. 지금까지 좀 아슬아슬한 발언들이 있었으니까.”
“……?”
에르제는 진심으로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윤치우가 쓴웃음을 지었다.
“솔직히 네가 기억을 잃고 나서 춤도 그렇고 노래도 그렇고……. 갑자기 잘해져서 좋기는 해. 동시에…… 네가 기억을 찾으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까 걱정도 되고.”
그는 숨을 참았다가 다시 훅 내뱉었다.
“그래도…… 고민을 많이 해 보고 내린 결론이야. 나는 네가 기억을 다시 찾는 게 좋을 것 같아. 솔직히…… 좀 무서운 것도 있고.”
“…….”
에르제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사실.
서은우의 기억이 돌아온다고 해서 춤 실력과 노래 실력이 줄어들 일은 없다.
잃은 기억을 찾는 게 아니라 없는 기억을 알게 되는 것뿐이니까.
지금 서은우라는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그 사실을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에르제는 그의 말을 가만히 기다렸다.
“사실 내가 옛날이야기를 한다고 기억이 돌아올지는 모르겠다. 너한테도 아픈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래도 어쩌면…… 그런 충격이 필요할지도 몰라서. 이해해 줬으면 해.”
씁쓸하게 웃은 윤치우는 천천히 자신과 서은우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연습생 시절부터 서은우가 교통사고를 당하기 전까지의 이야기였다.
그렇게 1시간 동안, 윤치우는 쉬지 않고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에르제는 윤치우가 이야기를 마치자마자 혀를 찼다.
‘연습생 시절에 어지간히도 괴롭힘을 당했네.’
아마 주변에서 서은우를 좋게 보지 않았던 듯싶다.
티 나지 않게 괴롭히거나 아예 말조차 섞지 않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서은우는 윤치우에게 이런 일들을 토로했던 거고.’
태현우가 친한 친구였다고 하던데, 이런 이야기는 윤치우한테 했던 건가.
그래서 대표나 매니저가 아니라 윤치우에게 괴롭힌다던가 하는 이야기를 꺼냈을지도 모른다.
‘이 세계도 참 지저분하군.’
그들이 서은우를 대한 태도는, 민주혁과는 확실히 달랐다.
민주혁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의욕이 떨어진 서은우의 태도를 싫어했던 거고.
그들은 그냥 외모 하나만으로 열등감에 빠져 서은우를 싫어한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리고 이 멍청이 같은 껍데기는 그걸 그대로 당하기만 했단다.
어떻게든 조금만 더 노력하면, 자신의 노래와 춤 실력이 늘어날 거라고 여기면서…….
그러다 결국 완전히 포기해 버렸고 말이다.
정확히는 윤치우의 말을 빌리자면, 포기했다기보다는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람 같았다고 한다.
‘후우.’
괜히 심란해진 에르제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자, 윤치우가 그의 눈치를 살폈다.
얘기하는 내내, 저렇게 자신의 눈치를 살살 살피고 있었는데…… 본인은 그 사실을 알까?
이에 대해 이상함을 느끼던 차에 윤치우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혹시…… 기억나는 거 있어? 내가 얘기했던 것 중에 작은 부분이라도.”
반대로 그의 표정을 살피던 에르제는 곧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윤치우는 마른세수를 하고는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3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미안. 잘 시간도 별로 없겠다. 음방 얘기는…… 내일 해야겠네.”
에르제는 야행성이라서 괜찮다고 말하고는, 태현우가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
윤치우는 그가 사라진 방을 물끄러미 보다가 이내 소파에 몸을 기댔다.
떠보려고 꺼낸 과거의 이야기에 서은우는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그런 기억이 없었던 것처럼.
“하아.”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진짜 성공한 건 아니겠지……. 은우야.”
그렇게 중얼거린 윤치우는 잠이 오지 않아서 그대로 소파에 드러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