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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19화 (19/307)

제19화

19화

전혀 모르는 언어였다.

의미는 고사하고, 어떻게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L은 니은으로 읽으면 되나?’

그렇게 채팅 몇 개를 더 읽어 본 에르제는 속으로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일족과 관련된 채팅은 딱히 보이지 않는 듯한데.’

이후 꽤 오랜 시간을 에르제가 채팅창과 씨름하는 사이, 태현우가 입으로 “두구두구.” 하는 소리를 내며 잡지를 펼쳤다.

“정답은……!!”

페이지를 펼친 태현우는 검은색과 하얀색 옷을 입은 두 명의 모습을 발견했다.

에르제가 민주혁을 바닥에 눕힌 채 총으로 그의 관자놀이를 짓누르고 있는 사진이었다.

스튜디오에서 찍었을 때는 분명 아무런 효과도 없는 사진이었는데.

이것저것 추가를 했는지, 꽤 분위기 있게 나왔다.

반쯤 체념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려는 뱀파이어.

뱀파이어를 죽인다고 죽은 가족이 살아 돌아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복수심과 용서 사이에서 고뇌하는 뱀파이어 사냥꾼.

대조되는 감정이 교차하는 듯한 느낌을 풍기는 화보 사진이었다.

‘음…….’

물론 실제로는 아픈 것을 억지로 참고 있는 민주혁과 이렇게 하는 게 맞나? 하고 고민하는 자신의 모습이었지만 말이다.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지, 라고 생각하던 중.

태현우가 채팅에 올라온 질문 하나를 에르제에게 물었다.

“어, 이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냐고……?”

에르제는 콧대를 손가락으로 쓱쓱 문질렀다.

그러고는 조금 고민하다가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다.

“분명 방아쇠를 당겼는데, 총알이 왜 나가지 않지? 역시 총기 소지가 금지된 나라답구나…… 라는 생각?”

“…….”

“…….”

순간 거실의 분위기가 얼어붙었지만, 태현우가 빠르게 수습했다.

“아아~! 어쩐지, 분위기가 엄청 살벌하다고 생각했어요. 여기 은우 눈빛 좀 봐 봐요. 심상치가 않아!”

“오, 그런데 주혁이도 거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표정인데?”

윤치우가 재빠르게 말을 받았다.

민주혁은 뭔가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지만, 이내 다시 입을 꾹 닫았다.

아파서 죽을 뻔했다는 건, 그냥 가슴속에 묻어 두기로 결정했다.

“내가 은우랑 갔어야 했는데~!”

태현우가 재빠르게 주제를 전환해 준 덕분에, 분위기가 싸해지는 일은 겪지 않았다.

― 와……. 둘의 분위기 미쳤다. 주혁이가 뱀파이어로 그대로 나왔어도 엄청 잘 어울렸을 듯.

― 그럼 은우는 천사? ㄷㄷㄷ

― 죽일 생각으로 가득한 타락천사……. 오히려 좋아.

그리고 팬들도 에르제의 대답을 그리 깊이 파고들지 않았다.

오히려 농담으로 치부하며 멤버들끼리 사이가 좋은가 보다 하고 그냥 넘어간 것이다.

에르제의 대답에 식은땀을 흘리던 윤치우가 태현우에게 고맙다는 눈치를 보내며 대화를 이어 갔다.

“정답은 주혁이와 은우였는데, 다들 맞추셨나요?”

그의 말에 채팅창이 다시 한번 난리가 났다.

그러다 좀 진정이 되자, 윤치우가 하하 하고 웃었다.

“정답을 맞혀 주신 분들이 많은 것 같은데……. 저희가 회사분들께 너무 큰 짐을 떠넘긴 건 아닌지 걱정이 되네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잡지를 접어 고이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의미심장한 말투로 말했다.

“저희가 사실 M–라이브를 켠 건 쇼케이스 후기와 이벤트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여러분께 알려 드릴 중요한 공지 사항이 있어서기도 합니다.”

팬들은 각자 자신들의 추측을 채팅창에 마구 쏟아 냈다.

그것들을 읽던 윤치우가 “네, 그거 맞아요!”라고 쾌활하게 이야기했다.

“저희, 다음 주 목요일에 첫 음방이 있을 예정입니다!”

“며칠 안 남았어여! 여러분들을 금방 또 볼 수 있어서 좋아여!”

“여러분들이 응원해 주시는 만큼 멋진 무대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날이 추우니까 따뜻하게 입고 오세요. 감기 걸려요.”

다들 한 마디씩 하며, 첫 음악 방송 출연을 고지했다.

“음방이 뭐야?”

“음악 방송.”

“아아.”

윤치우가 재빨리 에르제의 질문에 답해 주었다.

‘인간들은 왜 자꾸 가운데 글자를 빼먹는 건지.’

에르제가 고개를 가로젓는 사이, 채팅창에 갈고리가 무수히 올라왔다.

윤치우가 하하, 하고 웃으며 카메라를 보고 이야기했다.

“은우가 줄여 말하는 거에 익숙하지가 않아서요.”

여전히 ‘아무리 그래도 음방이 뭔지 모른다고?’라는 분위기가 남아 있었지만, 여기서 말을 더하는 것도 이상했다.

“어디에 출연하는지는 공카에 올릴 예정이에요.”

에르제가 또 ‘공카가 뭐냐’고 물을까 싶어서, 윤치우는 재빨리 멘트를 마무리 지었다.

“그럼, 여러분. 다음에 또 봐요!”

“안녀엉!!”

― 자주 켜 줘요!! 매일 대기할 거야!

― 토트윈 안녕~~!!

― I’m in California!! Lord!!

― 다들 친하게 지내는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인다. ㅠㅠ

― 사녹 갈게요!!

토트윈에게 같이 인사를 해 주는 팬들의 반응으로 채팅창이 순식간에 후루룩 넘어갔다.

제대로 다 읽지도 못한 멤버들은 그냥 손을 흔들어 주며 라이브 방송을 종료했다.

다들 앉아 있던 자세 그대로 뒤로 쓰러졌다.

“흐아!”

“생각보다 이거 신경이 엄청 쓰이네. 10년은 늙은 기분이야.”

성공적인 라이브 방송이었지만, 다들 처음 하는 것이라 그런지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혼자 앉아 있던 민주혁이 멀쩡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내가 얘기했지. 이런 정도로 지치면 팬들 앞에서 좋은 모습 못 보여 준…….”

“허얼, 뒤에서 내내 할아버지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말도 별로 안 한 주제에!?”

태현우가 날카롭게 받아쳤다.

“하…… 할아버지.”

꽤 타격을 받은 듯, 민주혁이 비틀거리며 소파에 올라가 드러누웠다.

몸은 멤버들의 반대편으로 돌린 채였다.

“……내가 저거 사진 찍을 때 얼마나 힘들었는데……!”

“뭐라는 거야. 잘만 나왔구먼.”

둘이 그렇게 티격태격하는 사이.

멀찍이 떨어져서 라이브를 지켜보고 있던 이윤이 조심스럽게 윤치우를 불렀다.

무슨 이야기를 꺼낼지 눈치챈 윤치우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아니나 다를까, 이윤이 꺼낸 말은 그의 예상대로였다.

“앞으로 라이브 같은 걸 아예 안 할 수도 없고, 너희들이 은우를 커버 쳐 주는 것도 한계가 있을 거야.”

“……그렇죠.”

“그렇다고, 기억이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데 마냥 기다릴 수도 없고.”

윤치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윤이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

“솔직히 말해서, 너희 다음 주에 있을 음방도 불안하기는 해. 은우가 갑자기 돌발행동을 할 수도 있잖아.”

“네…….”

“뭐, 그렇다고 나나 네가 주의 사항만 100개씩 리스트 만들어서 이야기해 줄 수도 없고…….”

“흠.”

윤치우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염려하지 말라는 듯이 말했다.

“그래도 저번에 데뷔 쇼케이스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일단 심각한 발언은 아니라서 괜찮을 것 같기는 해요. 팬들도 귀엽게 봐주는 것 같고.”

“그렇기는 하다만…….”

“그래도 형의 말이 무슨 뜻인지는 이해했어요. 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고요. 제가 나중에 은우랑 따로 이야기를 좀 나눠 볼게요.”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앞으로 주의해야 하는 부분을 짚어 주고…….”

윤치우가 핸드폰에 얼굴을 박고 있는 에르제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냥, 은우 과거 이야기를 좀 할까 해요.”

* * *

라이브가 끝난 이후, 0시 30분 즈음.

따로 개인 활동을 하던 멤버들은, 다시 한번 거실에 모였다.

그들의 첫 음원 성적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아……. 떨린다. 심장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아여.”

안단테가 심장을 부여잡은 채 앓는 소리를 했다.

“그러면 내일 아침에 확인할까? 지금 확인하나 내일 확인하나 성적이 바뀌지는 않을 텐데.”

민주혁의 말에 다른 멤버들이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지금 봐야지 쫄깃한 맛이 있잖아.”

태현우가 실실 웃으며 대꾸했다.

“너무 그렇게 기대들은 하지 마.”

윤치우가 진정시키며 입을 열었다.

“동발은 아니긴 해도, 컴백한 선배님들도 계시고. 또 신인 아이돌 그룹이 차트 100위 안에 들어가는 경우는 많지 않으니까.”

“그래도 이번에 반응 좋았는데……!!”

“그거야 우리를 좋아해 주는 팬분들 반응이니까 그렇지. 실제로 팬분들이 얼마나 있는지도 잘 모르잖아.”

이제 막 데뷔한 그룹에다 ‘마이너스의 손’ 말고 서사라고는 쥐뿔도 없는 상태다.

관심을 받아 봐야 얼마나 받았겠냐는 의미였다.

게다가 공식 카페의 인원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음원을 구매하거나 조회수를 올리는 것들과는 조금 다른 영역이기도 했다.

당연히 비례관계이기는 하겠지만, 일대일 비율은 아니라는 거다.

다들 그렇게 초조해하는 와중에 에르제만 평온한 얼굴이었다.

에르제는 멤버들을 돌아보며 생각했다.

‘음원 성적이 그렇게 중요한 건가.’

기시감이 들었다.

마치…… 데뷔 쇼케이스 장소로 향하던 차 안과 같은 분위기였다.

“음…….”

에르제가 핸드폰을 들어 올리며 멤버들에게 물었다.

“댓글 읽어 줄까?”

“?”

순간적으로 말의 요지를 파악하지 못한 태현우가 그 의미를 깨닫자마자 얼굴을 붉히며 핸드폰을 빼앗으려 했다.

하지만 평범한 인간이 뱀파이어의 힘이 그대로 있는 에르제의 몸놀림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휙, 휙휙휙!!

빠르게 공방이 오갔다.

“야……!”

1분도 되지 않아서 태현우는 그만 포기했다.

“너 복싱했어?”

“복싱?”

“어……. 권투?”

권투? 주먹으로 싸우는 무술인가?

에르제가 고개를 저었다.

“예전에 검은 좀 썼는데.”

“……권투가 아니라 펜싱인가? 에이 씨.”

태현우가 눈을 흘기며 손가락을 세웠다.

“아무튼 댓글 읽지 마!”

그 말에 에르제가 고개를 들었다.

다들 태현우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데, 조금 전까지 느껴지던 초조함은 보이지 않았다.

이러면 굳이 댓글을 읽어 줄 필요는 없지.

“알았어.”

에르제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태현우는 여전히 의심스러운지 그를 흘긋흘긋 바라보았다.

그러자 괜히 궁금증이 생겼다.

팬들이 다는 댓글 중에 태현우가 저렇게 기겁할 만한 이야기가 있나?

호기심은 늘 참기가 어려운 법이다.

‘조금만 힘을 쓸까.’

에르제는 손톱으로 엄지를 꾹 눌러 피를 소량 뽑아냈다.

살을 비집고 새어 나온 피는 공기 중으로 엷게 퍼져 나가 에르제의 주위를 투명하게 감싸 안았다.

공기 중에 퍼진 피는 다른 이들의 시선을 매혹시켜 그들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보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뱀파이어 사냥꾼들을 피하기 위해 그들 뱀파이어 종족이 개발한 ‘인식 장애 술법’이었다.

‘이렇게 하면 내가 뭘 진짜로 하는지 모르겠지.’

고작 댓글을 보려고 이런 힘을 쓰는 게 좀 과한 것 같긴 하지만, 그렇다고 방에 혼자 몰래 들어가기에는 두 발을 움직이는 것이 너무 귀찮았다.

‘어디.’

에르제는 핸드폰으로 ‘HaLLo’ 뮤직비디오를 검색해서 댓글을 읽기 시작했다.

슥, 스윽―.

“……?”

이제는 현대 마도구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에르제가 자연스럽게 스크롤을 내렸지만.

대부분의 댓글은 그가 읽을 수 없는 문자로 쓰여 있었다.

― This is K-pop!

― So cute. Are they new Idol?

에르제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아까 M–라이브란 것을 했을 때, 그때 올라오던 채팅창에도 이런 비슷한 꼬부랑글씨가 있었다.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어서 당시에는 그냥 흘리듯이 넘겼는데.

‘혹시 다른 나라 언어인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살던 세계에도 공용어가 있었지만,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기도 했었고.

종족마다 쓰는 언어가 다른 경우도 많아서 통역 마법을 사용해야 했다.

‘그렇다면.’

에르제는 곧바로 통역 마법을 사용했다.

마법사들처럼 마력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 이번에도 피를 매개체로 한 능력이었다.

그는 눈에 보이는 댓글을 하나 찾았다.

― :) I love fantasy!

“…….”

그러나 여전히 읽을 수가 없었다.

‘여긴 통역 마법이 통하지 않는…… 건가?’

왜지?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기 시작했다.

고작 이 정도의 힘을 썼다고 몸이 버티지 못하는 게 느껴졌다.

‘혈기는 그대론데, 껍데기가 문제인 건가.’

이 몸에 들어오게 된 경위도 모르겠는데, 로드로서 자신의 힘을 제대로 사용하는 것도 버겁다니.

‘……제약 걸린 것 같아서 열 받네.’

그렇게 핸드폰을 든 채로 인상을 쓰고 있자, 언제 다가왔는지 윤치우가 그의 옆에 털썩 앉았다.

그러고는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현우가 댓글 읽어 주지 말라고 하지 않았어?”

“그냥 보기만 하려고 했……!?”

무심코 대답하던 에르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윤치우를 바라보았다.

“……왜?”

되레 윤치우가 그런 에르제의 반응에 당황했다.

그러나 에르제만큼은 아니었다.

‘인간이 인식 장애 술법을 뚫었다고?’

휙.

에르제는 놀란 얼굴로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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