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17화 (17/307)

제17화

17화

태현우와 에르제는 그 뒤에도 15분 정도 댓글 읽기 경쟁을 펼쳤다.

“서은우, 미친 존잘!!”

“그 사람은 눈이 낮은가. 이 얼굴이?”

“제엔장!”

물론 태현우가 에르제의 페이스에 말리기는 했지만, 둘이 다른 멤버들의 긴장을 풀어 주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들은 긴장감을 강제로 등가교환 당한 뒤에야 평상시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내리자마자 바로 준비해야 하니까 빨리빨리 움직이자.”

“네!”

쇼케이스 현장에 도착한 그들은 최종 점검 단계에 들어갔다.

메이크업을 재정비하고, 순서를 다시 한번 숙지하는 것들 말이다.

“좌석 다 찼습니다! 스탠바이 할게요!”

팬들과 기자들의 자리가 다 찬 뒤, 토트윈 멤버들은 무대 뒤편으로 모였다.

“우리 후배님들, 긴장 하나도 안 한 얼굴이네요?”

그들에게 다가와 말을 건 것은 모카 엔터테인먼트의 걸그룹 블링블링의 리더 한서연이었다.

그녀는 오늘 장 대표의 요청으로, 토트윈 데뷔 쇼케이스의 일일 MC를 맡기로 되어 있었다.

“아닙니다, 선배님. 긴장한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에요. 오늘 선배님만 믿고, 열심히 할게요.”

윤치우가 눈웃음을 지으며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말을 참 예쁘게 하네. 먼저 올라갈게요. 다들, 파이팅!”

한서연은 오른손으로 주먹을 불끈 쥐고는, 그들보다 먼저 무대로 올라갔다.

“언니이이이―!!”

그녀를 알아본 팬들이 손을 흔들며 반갑게 맞아 주었다.

“반가워요, 여러분~! 앗, 물론 저를 보러 와 주신 건 아니지만, 조금만 더 반가운 표정을 지어 주시면 좋겠는데요……!”

한서연은 잠깐의 재치 있는 멘트를 통해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확실히 연차가 쌓인 아이돌 리더답게 팬들과 나누는 대화에서도 여유가 느껴졌다.

‘저런 건 보고 배워야지!’라며 윤치우가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자! 이제 여러분들이 기다리시는 토트윈을 만나 보도록 할게요!!”

이제는 핸드폰 속이 아니라 실제 팬들과 처음으로 마주하는 순간.

무대에 오른 토트윈 멤버들의 얼굴은 다들 설렘을 가득 안은 표정이었다.

“멋있다!! 귀엽다!!”

“HaLLo 곡 너무 좋아요!!”

“숨스 하는 중이야아!!”

곧 그런 설렘에 호응하는 팬들의 함성이 무대 위로 쏟아졌다.

“숨스 감사합니다~!!”

태현우가 그쪽을 향해 손을 흔들며 육성으로 소리쳤다. 그러자 “아악!”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기해.’

에르제는 정해진 자리에 서서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과거 음유시인이던 시절.

그때는 대부분의 관객이 귀족들이었기에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노래에 귀를 기울여 주는 것이 올바른 관객의 자세였는데…….

이 세계의 분위기는 확실히 달랐다.

다들 자신의 마음을 마음껏 표현하고 아낌없이 소리를 질러 준다.

‘공연할 때는 어떨까.’

그때는 과연 어떠한 풍경을 보게 될지 왠지 기대가 되었다.

그렇게 에르제를 위시한 토트윈 멤버들은 팬들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한 분씩 마이크 받아 주세요~.”

한서연의 말에 각자 마이크를 받아 들었다.

마이크에는 멤버들의 이름이 크게 달려 있었는데, 그들의 본명은 아니었다.

윤치우는 ‘델라(DELLA)’, 민주혁은 ‘디아(DIA)’, 태현우는 ‘레브(LEV)’, 안단테는 ‘스피릿(SPIRIT)’ 마지막으로 서은우는 ‘에르제(ERZE).’

문득 들었을 때, 판타지 세계관의 이름 같았다.

‘아! 설마!’

객석에 앉아 있던 팬들은 곧바로 ‘HaLLo’의 뮤직 비디오를 떠올렸다.

그들은 금세 토트윈 멤버들의 이세계 모습과 마이크에 부착되어 있는 이름을 연결지었다.

“다들 조금 눈치채신 것 같은데요?”

한서연은 객석의 반응을 살피며, 아직 눈치채지 못한 팬들을 위해 설명을 요구했다.

“다들 마이크의 이름이 독특한데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녀의 질문에 윤치우가 이름이 잘 보이도록 마이크를 들었다.

“다들 뮤직비디오를 보시고 눈치채셨을 것 같은데, 저희의 다른 세계의 이름이에요.”

“다른 세계요?”

“네. 맞습니다.”

윤치우는 짧게 답하고 미소를 지었다.

이 이상 자세하게 이야기하는 건 불필요한 일이었다.

지금은 팬들이 한창 토트윈의 세계관에 대해 정보를 나누고 예측할 시기였으니까.

한서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렇군요. 그 예명으로 활동도 하는 건가요?”

“아마 대부분은 아니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다음 정규 앨범에서 확인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윤치우의 말에 한서연이 익살스럽게 대꾸했다.

“오늘이 데뷔하는 날인데, 벌써 정규 앨범 영업까지 들어가는 건가요? 우리 토트윈 팬분들 큰일 나신 것 같아요!”

그녀의 말에 객석에서 조그맣게 웃음이 터졌다.

이어지는 가벼운 분위기 속에서 한서연이 질문을 던졌다.

“‘ToT-win’이라는 그룹명은 어떻게 지어지게 되었나요?”

“멤버들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사람이 누구죠?”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요?”

대부분의 대답은 에르제를 제외한 다른 멤버들이 나누어서 대답했다.

기억을 잃은 에르제가 대답을 하지 못할 수도 있었기에 다른 멤버들이 재빠르게 답을 대신한 것이다.

“ToT-win의 ToT는, 이모티콘 같기도 한데요. 사실은 Trick or Treat의 약자입니다. 저희 데뷔 날짜가 핼러윈이기도 하고, 세계관이랑 연관도 있어서 그렇게 그룹명을 지었어요.”

예상과 다르게 태현우는 촐싹거리는 대신 제법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대답했다.

옆에서 걱정스럽게 지켜보던 에르제가 속으로 감탄할 정도로 차분한 목소리였다.

물론 ‘누가 누굴 걱정하고 있냐.’며 민주혁이 눈으로 말하기는 했지만.

그는 다른 질문에 대답한다고, 이내 고개를 관객석 쪽으로 돌렸다.

“재미있는 사람? 글쎄요.”

가장 짧게 대답한 민주혁은 멤버들을 쓱 둘러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정신 사나운 멤버들은 있는데, 재미있는 멤버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은, 멤버들이 번갈아 가면서 대답했다.

“형들이 잘 이끌어 줘서 특별히 힘든 일은 없었어여.”

“힘든 점은 딱히 없었고, 그냥 여러분들을 만날 생각에 즐겁기만 했어요!”

“있었는데, 지금은…… 해결이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아직 리더로서 부족한 점이 많은데, 다들 잘 따라와 준 것 같아요.”

그리고 마지막은 에르제의 차례였다.

사람들의 기대감 어린 시선이 마구 꽂히는 기분이라 뭐라도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앨범을 준비하면서 어려웠던 점이라…….’

솔직히 노래를 부르는 건 즐거웠고, 춤을 추는 건 새로운 문물을 접하는 기분이었다.

최근에 찍었던 뮤직비디오 촬영도 그리 힘들지 않았고.

‘딱히 없는…… 듯한데.’

에르제는 없다고 대답하려다가 문득 떠오른 기억에 곧바로 말을 멈췄다.

서은우의 몸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꽤나 힘들었던 경험이 있지 않았나.

대답할 것이 생긴 에르제가 힘차게 대답했다.

“회사에서 고기를 안 줘요.”

“……?”

“야……!”

멤버들이 기겁한 채 에르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 * *

제이의 홈마는 에르제의 대답에 그만 큽,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다른 멤버들이 당황하는 모습도 풋풋하니 귀여웠고, 고기를 안 준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서은우도 재미있었다.

일반적으로 아이돌이 식단으로 고통을 받는 것은 공공연한 일이었기에 그 정도는 가벼운 이슈에 속했다.

그녀는 작은 카메라를 품 안에서 만지며 생각했다.

‘오늘은 제대로 찍어 가야지.’

저번 LAK 콘서트에서 초대석에 있던 그들의 사진을 찍어 비계에 올렸던 것은 바로 그녀였다.

그리고 오늘, 그때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그들의 실물을 확인한 그녀는 확신했다.

‘보정무새들 입 싹 닫겠네.’

티저 이미지와 뮤비에 나왔던 그들의 모습은 그냥 원판이 뛰어났던 것뿐이었다.

그녀는 피식 웃으며, 서은우를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진짜 이상하단 말이야.’

분명히 제이와 얼굴이 완전히 다른데, 어째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이렇게나 비슷한 건지.

그녀가 LAK의 팬이면서 굳이 토트윈의 데뷔 쇼케이스에 온 것은 그 느낌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자신의 최애 제이와 토트윈의 서은우.

어째서 자신의 덕심이 전혀 다른 둘에게 이토록 끌리는지 말이다.

‘둘 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사람을 홀리게 만드는 것 같은…….’

그러나 그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어느새 무대를 내려간 토트윈이 첫 쇼케이스 공연을 위해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토트윈의 무대, 지금부터 만나 보시죠!”

한서연의 말과 함께, 데뷔 앨범의 서브 곡 ‘Kill Shot’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무대 사진이니까 안 흔들리게…….’

그녀가 조심스럽게 카메라 앵글을 조정하는 사이.

토트윈은 순식간에 대형을 갖추고 무대에 자리를 잡았다.

그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이 커다래졌다.

분명 아까는 평범한 캐주얼 차림이었는데, 언제 옷을 갈아입고 온 건지…….

‘셔츠?’

다들 옅은 색이 가미된 셔츠를 입고 있었고, 소매는 단추를 풀어 살짝 널널하게 접어 둔 상태였다.

‘……이건 찍어야지……!!’

그녀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고, 춤을 추기 시작하는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Shining Moonlight!

밤하늘 아래

너에게 내 맘을 전할래.

Kiiiill, Shot ―!

왼팔 위에 오른팔을 얹고, 손가락으로 총 모양을 만들어서 쏘는 것이 포인트 안무인 듯했다.

풋풋함이 묻어났지만, 셔츠와 슬랙스 바지의 조합이 이와는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뭐랄까.

가사는 소년 같은데…….

― Tang―!

진짜로 총에 맞는 기분?

그리고 그녀는 그 느낌의 정체를 파악해 냈다.

‘느와르구나!’

이 미친 사람들.

‘이 가사에 느와르 복장을 섞어!?’

그녀는 사진을 찍는 것도 까먹은 채 ‘Kill Shot’의 무대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리고 곧,

‘실환가…….’

그녀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Kill Shot’의 무대를 마치고 빠르게 내려가는 토트윈을 바라보았다.

‘아…….’

제대로 건진 사진이라고는 총구를 들이미는 서은우의 사진 한 장뿐이었다.

‘나머지는 조금씩 흔들렸네……. 하!’

홈마의 자존심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은색 체인 팔찌가 서은우의 손목에서 제대로 짤랑거리고 있었다는 정도.

‘다음…… 다음 무대!’

그녀는 카메라를 양손으로 꼭 쥐고 어서 다음 무대가 시작되길 애타게 기다렸다.

이제는 기묘한 느낌을 확인하고 싶어서인지 아니면 그냥 ‘HaLLo’ 무대를 보고 싶어서인지 스스로도 헷갈리기 시작한 단계에 이르렀다.

거의 상체를 앞자리까지 들이미는 수준이 될 때쯤, 토트윈이 다시 무대 위로 등장했다.

“헙……!!”

그리고 그들의 모습에 그녀를 포함한 팬들은 숨을 헉 하고 들이마셨다.

‘오늘도 머리띠를 하고 나오는 거야……?!’

‘HaLLo’ 뮤직비디오에서 그들이 쓰고 나왔던 머리띠를 오늘 데뷔 쇼케이스에도 하고 온 것이다.

아니, 심지어 업그레이드 된 버전인지 일정한 리듬으로 까딱까딱 움직이기까지 했다.

‘마…… 만져 보고 싶어.’

그녀는 멍한 표정을 한 채, 그대로 ‘HaLLo’ 무대 공연에 녹아들어 갔다.

그리고 그들의 라이브는.

‘이게 정말 신인의 무대라고?’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의 무대였다.

능숙하게 무대 위를 누비며 각자의 파트가 아님에도 팬들을 향해 웃어 주는 모습이 적어도 콘서트를 몇 번은 해 본 아이돌 그룹 같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서은우의 고음 파트.

― HaLLo――――!

3옥타브의 음역을 길게 이어 가는 구간에서 팬들은 다시 한번 깨달아야 했다.

비주얼도 비주얼인데, 실력까지 뛰어난 신인 그룹이 등장했다고.

기자들은 그들의 무대를 감상하며 가열차게 헤드라인을 뽑아냈다.

[ ToT-win ! 혜성같이 등장한 괴물 신인 그룹! ]

[ 음원의 지각 변동이 예상된다! ]

[ 외모와 실력을 겸비한 신인 아이돌 ‘ToT-win’, 앞으로 그들의 행보는? ]

“감사합니다아!!”

“와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토트윈 멤버들이 무대를 마치고 인사를 하자, 제이의 홈마는 저도 모르게 열심히 박수를 쳤다.

그렇게 모든 쇼케이스의 일정이 끝나고 난 뒤.

‘……결국 뭔지 하나도 못 알아냈잖아……!’

제이와 서은우의 공통점을 단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저 둘 모두 노래 실력이 좋다는 것 정도?

‘내가 노래 잘하는 돌을 좋아했던가…….’

게다가 오늘 무대를 보니, 다른 토트윈 멤버들도 모두 매력이 있었다.

‘음…….’

새로운 정체성을 깨달아 가며, 그녀는 사람들이 길게 서 있는 줄을 바라보았다.

갈등됐다.

LAK를 좋아하면서 토트윈을 같이 좋아해도 되는 건지. 심지어 자신은 제이의 홈마이지 않은가.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는 이내 결정을 내렸다.

그래! 철새 짓만 안 하면 되지!!

“이거 주세요!!”

그렇게 긴 줄을 견디고 견딘 그녀는 기어코 박쥐 날개가 달린 응원봉을 사서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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