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화
16화
― 와와와와!! 미친!! 정 대표, 문 열어!! 돈쭐 낼 준비 끝났다고!!
― 아이돌에 판타지 세계를 입혔어? 이거 소화가 되긴 하는 거임?
┖ 내가 소화불량 걸릴 것 같아. ㅠㅠㅠ 너무 좋아. 어떡해.
― 이번엔 진짜 망하지 마라……. 제발 부탁이야.
― 대기업 자본 맛에 취한다…….
― 쇼케 티켓팅 언제예요?
풀 뮤직비디오도 아니고, 고작 티저에 달린 댓글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그만큼 ‘화제성’ 하나만큼은 제대로 잡았다는 의미였다.
의도치 않았던 ‘천사 서은우’로 노이즈 마케팅이 되었던 ‘새벽 운동을 했는데, 환자를 주움’과 ‘모카 엔터테인먼트’가 가지고 있는 특수성.
데뷔하기 전에 일어난 흔하지 않은 일과 남자 아이돌을 런칭만 하면 죄다 망했던 장 대표에 관한 이슈가 제대로 사람들의 어그로를 끈 것이다.
그렇기에 부정적인 댓글이 많은 공감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 얘네는 언제 망할까? ㅋ
┖ 그래도 이번엔 반년은 버티지 않겠냐? ㅋㅋㅋ
― 천사는 무슨? ㅋㅋㅋ 주작 아님? 차라리 서은우, 지 콘셉트대로 뱀파이어인 게 맞는 듯. ㅋㅋㅋ
┖ 인성 터진 거 보소;; 사람 생명이 걸려 있는데 주작을 한다고?
┖ 가능성 있지. 내가 장태수였으면 눈 돌아가서 주작이든 뭐든 다 했을 거 같은데?
┖ 장태수 대표는 지금까지 한 거 보면 그럴 사람은 아님.
그래도 지금까지 올라왔던 티저의 반응이 좋아서인지 머리채 잡는 팬들의 대댓글도 상당히 많았다.
대학생은 혼란한 댓글창의 향연을 보고 있다가 이내 핸드폰을 덮었다.
“후우……!!”
곧 있을, 정식 뮤직비디오 공개를 기다리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은우 봐야 하는데, 공식 뮤비 보기도 전에 눈 썩히면 안 되지.”
“뭐 하냐, 병X아.”
중얼거리는 자신에게 지나가던 ‘하필 같은 피를 가지고 먼저 태어난 XY 생명체’가 한 마디를 툭 던졌지만, 그녀는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리는 것으로 화답했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곧 12신데 시끄럽게 하지 말고 잠이나 자라.”라고 말하고는 사라졌다.
‘지는 맨날 새벽까지 게임하는 주제에.’
그렇게 생각하며 짜증을 누르는 사이, 곧 0시가 되었다.
빠르게 무튜브를 새로 고침을 연타하니, 기다리던 영상이 공식 계정에 올라와 있었다.
[ ‘ToT-win’(토트윈) ‘HaLLo’ Official M/V ]
‘왜 내가 떨리냐.’
애들은 잘했을까?
티저에서는 노래와 춤까지 공개되지는 않아서 그들 실력이 살짝 걱정되기는 했다.
그 전까지는 모카 엔터에서 낸 남자 아이돌이니 그쪽으로는 문제없겠지! 하는 생각이었는데, 막상 그것을 확인할 시간이 되자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이다.
한 차례 심호흡을 한 그녀는 이내 뮤직비디오를 재생시켰다.
초반부는 뮤비 티저와 같았다.
그러나 30초가 지나갈 무렵, ‘Another World, HaLLo’라고 말하는 간질간질한 목소리가 내레이션으로 깔리고.
노래가 시작하기 전부터 댄스 브레이크가 깔렸다.
― Wooooooo.
높은 음의 신디사이저 사운드와 2개의 음을 번갈아 왔다 갔다 하는 멜로디가 곡의 분위기를 점점 고조시켰다.
‘청량하다’라는 생각이 문득 들 때쯤.
갑자기 화면이 넘어가면서 초록빛이 넘실거리는 초원이 펼쳐지고.
순간 위로 화면이 향하면서 하늘색 그 자체인 청명한 하늘이 드러났다.
대한민국에 이런 하늘이 있나 싶을 정도로 깨끗한 하늘이었다.
그리고 그대로 줌아웃.
위는 하늘색, 아래는 초록색.
마치 ‘판타지 세계’를 떠올리게 하는 장소에서 5명의 인영이 춤을 추고 있었다.
천천히 그들에게로 화면이 가까이 다가가면서 그들의 모습이 자세히 보이기 시작했다.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천천히 화면이 이동하자, 그녀는 그 순간 양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귀여워……!!’
용이니 뱀파이어니 하는 콘셉트를 들었을 때에는 과하게 분장하는 게 아닌가 싶어 걱정 아닌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춤을 추는 그들의 모습은 그런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앙증맞은 분장을 하고 있었다.
각자 자신의 종족을 상징하는 머리띠를 하고 춤을 추고 있었던 것이다.
곧 용 날개 머리띠를 한 윤치우가 붉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중앙으로 치고 나왔다.
― 기다려 왔어.
이 순간이 오기를.
Under the blue sky―.
높은 음의 신디사이저와 대비되는 묵직한 저음.
몰입감을 확 높이며 대형이 시계 방향으로 돌기 시작했다.
그다음은 요정 날개같이 생긴 머리띠를 단 안단테였다.
잰걸음으로 뛰어나와 한 손을 하늘로 뻗는다.
손끝을 따라간 화면에 햇빛이 부딪혔다가 그대로 터져 나갔다.
― 길을 따라 도착한 곳에는
날 기다리는 네가 있어.
The way you are―!
소년의 이미지와 딱 맞는 청량한 목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안단테는 가벼운 몸놀림으로 날듯이 뒤로 빠졌다.
그리고 그 틈을 파고들며 민주혁이 돌아 나왔다.
그의 머리에는 날개가 아니라 뿔 두 개가 달려 있었다.
― 내 정체는 Secret.
쉿―!
그대로 즐겨.
있는 그대로의 나를―.
The way I am―.
민주혁이 검지를 세워 자신의 입술에 가져다 대는 순간.
위이이잉―.
한 음으로 울리는 신디사이저만 빼고, 다른 악기가 정적으로 치달았다.
…….
…….
단 2초.
턱, 하고 숨이 막히는 구간이 지나고.
휘익―.
화면이 멤버들의 반대편으로 돌아갔다.
자동적으로 뒤를 보고 있는 대형에서 엘프 귀 머리띠를 한 태현우가 가운데로 뛰어나오며 손바닥을 펼쳐 흔들었다.
동시에 멈춰 있던 악기 소리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쏟아졌다.
― We are on
Another World ―!
우릴 마주해―.
그리고 그 위로 쌓이는 서은우의 한 옥타브 높은 가성 화음.
뮤비를 보던 그녀의 팔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프리코러스에서는 정적을, 그리고 코러스에선 한 번에 임팩트를 주며 곡의 텐션을 단숨에 끌어올린 덕분이었다.
태현우의 A파트를 이어, 서은우가 B파트를 이어받았다.
― HaLLo――――!
박쥐 날개 머리띠는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시원하게 내지르는 고음.
3옥타브를 넘나드는 고음역대 구간이었다.
― 지금
나는
네 앞에.
고음을 마친 서은우는 갑자기 확 가라앉은 목소리로 손가락을 가로로 그었다.
― The way we are.
화면을 가로지르는 손가락을 따라 하늘색 하늘이 벗겨진 것처럼 떨어져 내리고.
그 빈자리를 어두컴컴한 배경이 자리했다.
오래된 고성과 붉은 달빛을 받은 세계.
동시에 멤버들의 의상도 바뀌었다.
조금 전까지 가벼운 차림이던 멤버들의 옷이 슈트로 바뀐 것이다.
각자 자신을 상징하는 색의 슈트였다.
곡의 분위기도 살짝 다운되면서 몽환적인 분위기로 바뀌었다.
마치 앞부분은 지구의 모습으로, 뒷부분은 그들의 본모습을 보여 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느낌을 배가하기 위해 그들은 눈 주변에 진한 화장까지 한 상태였다.
2절이 시작되고, 이후에는 각각의 화면이 교차 편집이 되면서 보는 이의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들었다.
― HaLLo.
지금
나는
네 앞에―.
그렇게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내달린 뮤직비디오가 드디어 끝이 났다.
‘귀여운데…… 또 멋있어……!!’
그녀는 머리띠를 한 모습과 슈트를 입고 진하게 화장을 한 두 모습을 떠올리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댓글을 보니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같은 생각인지 이미 한바탕 난리가 나 있었다.
― 너희는 데뷔 앨범 차트에서 내려올 생각 절대 하지 마라. 내가 올겨울 내내 차트에서 괴롭혀 주겠어.
― 당장 알바 뛰러 갑니다. 돈이 또 줄줄 새어 나갈 예정.
― 아니……. 세계관 누가 짰냐고. 진짜 돌았냐고. ㅠㅠ
┖ ㅠㅠ 뮤비도 뮤빈데, 우리 애들 좀 보세요. 머리띠 너무 귀엽지 않나요…….
┖ 나는 슈트에 제대로 취저당함. 뭘 먹고 자랐길래 기럭지가……. 잠깐 고개 들어서 남친 봤는데, 고개 절레절레.
┖ 그래서 남친은 있으시다?
― 아……. 진하게 화장한 거 치인다. 느낌 개쩔어; 서은우 뱀파이어 무조건 찬성합니다…….
― 데뷔 쇼케 암표 구합니다!! 이거 직접 내 두 눈으로 보고 싶어요!! 제발!!
┖ 22222
┖ 333
자신처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많았는지 조회수와 댓글이 어마어마하게 쌓이고 있었다.
‘우리 애들이 이렇게 잘해요!!’
그녀는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며, 스크롤을 쓱쓱 내렸다.
분명 조금이라도 못하면 욕하려고 들어온 사람들이 있었을 텐데, 머리끄덩이를 잡힌 건지 아니면 깔 게 없는 건지 다행히 그런 댓글은 눈에 띄지 않았다.
‘아.’
그러다가 댓글 때문에 데뷔 쇼케이스에 대한 것까지 생각이 미쳤다.
‘이걸 직접 보러 가지 못하다니…….’
그곳에 가기 위해 티켓팅을 시도했지만, 오랜만의 덕질이라 그런지 실력이 녹슨 모양이다.
“콘은 무조건 간다.”
우울한 마음에 댓글을 뒤적거리던 그녀는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0시가 넘어가면서 날짜가 바뀐 10월 31일.
오늘은 ‘ToT-win’의 정식 데뷔일이자 데뷔 쇼케이스가 있는 날이다.
아쉬운 마음에 그녀는 다시 한번 뮤직비디오를 재생시켰다.
그런 그녀가 데뷔 쇼케이스에 가지 못한 것을 땅을 치고 후회한 건 나중의 일이었다.
* * *
차를 타고 쇼케이스 장소로 이동하는 길.
토트윈 멤버들은 가는 내내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도 윤치우는 맏형이라고 그런 그들을 다독였다.
“준비한 대로만 하면 돼. 다들 잘할 수 있어. 그러니까 너무 긴장하지 말고.”
“단테야, 우리 묵찌빠라도 할까?”
“싫어여. 우리 곡 다시 들을 거임. 형도 연습해여.”
태현우는 그 말에 창에 비친 자신과 묵찌빠를 시작했다.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긴장을 풀려는 노력이 가상했다.
“넌 괜찮냐?”
민주혁이 평온한 얼굴의 에르제를 보며 물었다.
“응.”
에르제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게 이미 익숙하거든.”
“……?”
뭔 소리를 하느냐는 듯이 민주혁이 쳐다봤지만, 에르제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그러고는 조금 전까지 보고 있던 뮤직비디오 영상의 댓글이 나온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인간들의 반응이 좋더라고.”
“뭐야, 아직도 댓글 모니터링하고 있었어?”
태현우가 그의 말에 반응했다.
“아직도 반응 좋아?!”
“음…….”
궁금한가 본데.
티저와 공식 뮤비가 올라간 날.
“읽어 줄까?”
토트윈 멤버들은 다 같이 거실에 모여 모니터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실시간으로 달리는 댓글이 또 궁금한 모양이었다.
단 한 사람만 빼고.
“나…… 나는 무서워서 안 들을래여. 그거 들으면 괜히 긴장 더 할 것 같아여.”
안단테가 끼고 있던 이어폰의 볼륨을 더욱 높였다.
뒤에 벌어질 사태를 생각하면, 가장 훌륭한 판단이었다.
태현우가 고개를 쏙 빼며 물었다.
“그래서? 뭐라고 달렸는데?”
저번에 봤던 댓글들이랑 큰 차이가 없기는 하지만, 에르제는 “큼큼!” 하고 목소리를 다듬고는 멤버별 댓글을 읽어 주었다.
댓글에 난무하는 감정 표현은 하나도 없이 고저가 없는 목소리로 말이다.
“윤치우 기럭지 실환가. 뮤비에서 윤치우밖에 안 보임. 내가 다리 길이 패티시가 있는지 처음 알았다.”
“…….”
윤치우가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패티시?’
고개를 갸웃한 에르제는 이내 나머지 멤버들을 언급한 댓글을 읽어 나갔다.
“엘프 귀라니……!! 우리 현우 하고 싶은 거 다 해!!”
“주혁인 춤출 때도 시크한 표정을 유지하는 거 보면 설렌다. 약간 무표정한 알파카 같아. 반박 시 님들 말이 맞음.”
거기까지 읽은 에르제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아직도 팬들의 댓글이 무슨 내용인지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시크는 뭐고, 알파카는 또 뭐지…….’
나중에 검색해 보리라 생각한 에르제가 핸드폰에서 고개를 들자, 민주혁과 윤치우의 고개가 차창 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
수치사하기 직전의 표정이었다.
“저 X끼……. 지 것만 빼고 읽었어……. 나쁜 X끼.”
민주혁이 차창에 머리를 콕, 하고 박으며 중얼거렸다.
유일하게 태현우만 웃음을 터뜨리며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좋아! 승부다!!”
“……승부?”
그렇게 쇼케이스로 향하는 길은 태현우와 에르제의 댓글 읽기로 난장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