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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10화 (10/307)

제10화

10화

노래를 멈춘 에르제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그들의 상태를 빠르게 확인했다.

다행히도 매혹 상태가 깊어 보이지는 않았다.

아마 1분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풀릴 정도의 수준.

“하아.”

에르제는 바닥에 주저앉아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너무 강했나.’

떨어지는 몰입도를 채우기 위해 노래에 힘을 약간 섞었는데, 노래를 부르는 데 너무 집중한 나머지 그만 조절에 실패한 것이다.

게다가 노래 가사도 그런 뉘앙스를 담고 있으니 힘이 더욱 강하게 작용했을 터.

뱀파이어라는 종족의 기본적인 특성이 종족을 불문하고 매혹하는 것이었기에 인간들에게도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에르제는 빠르게 반성했다.

‘앞으로 더 조심해야겠어.’

자칫하면 오늘처럼 뜻하지 않게 인간들의 정신 상태를 망가뜨려 버릴 수도 있으니.

그렇게 매혹의 힘에 잠식된 이들은 완전히 주인의 명령만을 따르도록 변하게 될 테니 말이다.

‘그런 짓은 뱀파리스 녀석들이나 하는 짓인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에르제는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일어섰다.

1분이 지났는지, 그들의 눈은 원래의 색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어?”

“……?”

순간 정신이 돌아온 둘은 고개를 빠르게 흔들었다.

그러고는 노래를 멈추고 가만히 서 있는 에르제를 발견한 최광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뭐야, 왜 노래를 하다 말아?”

그들에게는 매혹되기 직전의 기억까지만 남아 있을 테니 에르제가 도중에 노래를 멈췄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시간은 그대로 1분이 흐른 상태.

“아니네……? 끝나 있네?”

MR이 이미 끝났다는 것을 깨달은 최광수의 눈에는 혼란이 가득했다.

“뭐지, 오륜가?”

이것저것 조작하는 최광수에게 에르제가 녹음실 밖으로 나와서 빠르게 대답했다.

“노래가 갑자기 끝나 버렸어요.”

“갑자기 끝났다고?”

“네. 뚝! 하고.”

그 말에 최광수의 동공이 잘게 떨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휙휙 돌렸다.

“왜 그래요?”

이윤이 묻자, 최광수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 모습에 덩달아 이윤도 바짝 긴장했다.

“설마…… 녹음실 귀신이…….”

‘귀신?’

에르제는 최광수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고, 긴장으로 뻣뻣해진 이윤은 그대로 몸이 굳어 버렸다.

그러고는 흠칫, 몸을 부르르 떤 이윤이 최광수에게 물었다.

“귀, 귀신이요?”

“매니저님 모르셨어요……? 3녹음실에 귀신 있는 거?”

“모…… 몰랐, 아니……!! 처음 듣는 이야긴데요.”

이윤이 문 쪽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에르제가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안 느껴지는데.’

에르제는 유령과 같은 존재들과 자주 마주쳤기에 그들의 기운이 어떤지 잘 알고 있었다.

“없어요. 안 보여요.”

그래서 본 대로, 느낀 대로 진실을 얘기한 것인데 그게 오히려 이윤을 더 무섭게 만든 모양이다.

“야……. 너까지 왜 그래……!”

이윤은 당장이라도 도망칠 기세로, 문고리를 꽉 잡았다.

그리고 동시에.

벌컥―!!

“와아아아아!!”

문이 벌컥 열리고, 신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현우였다.

“으아아악!!”

그러나 이윤에게는 그렇게 들리지 않았나 보다.

우당탕, 소리를 내며 이윤은 그대로 소파와 탁자 사이에 넘어졌다.

“응?”

‘킬 샷’ 안무를 추면서 방 안으로 들어오던 태현우는 넘어진 이윤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

민망함에 얼굴이 빨갛게 변한 이윤이 왼팔로 얼굴을 가리고 있자, 윤치우가 빠르게 그에게 다가와 일으켜 세웠다.

“왜 보고만 있어! 형, 괜찮으세요? 현우, 너는 문을 왜 벌컥벌컥 열어!”

“아니이, 그렇게 앞에 계실 줄 몰랐지…….”

윤치우가 태현우에게 뭐라고 하는 사이, 이윤은 여전히 얼굴을 가린 채로 중얼거렸다.

“큼, 크흠. 바닥 문양이 예쁘네. 이, 이태리 장인 작품인가?”

아니다.

아무 문양도 없는 바닥이다.

“푸하하하학!!”

그와 동시에 최광수는 참고 있던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매니저님! 크흡,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어요!”

“아니, 그 얘기를 왜……!”

지금 굉장히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었는데!

이윤이 얼굴에서 손을 내리고 문 쪽으로 걸어가는 제스처를 취했다.

“……대표님한테 당신 자르라고 건의를…….”

“미안해요, 미안해. 근데 이상하기는 했잖아요? 갑자기 정신 차리니까 노래가 끝나 있고.”

이윤은 최광수를 죽일 듯이 노려보다가 소파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대충 상황을 파악한 멤버들은 웃음을 참으며 각자 가지고 온 종이를 펼쳤다.

“어디…… 어디 보자. 내 파트가…….”

“현우야, 여기서 우리가 화음 쌓는 거 맞지?”

모른 척하는 멤버들의 배려가 오히려 이윤의 부끄러움을 배가시켰다.

그렇게 3분 정도, 어수선한 분위기가 정리될 때쯤.

최광수는 멀뚱멀뚱 서 있는 에르제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분위기가 급조용해지다 보니 문득 이상한 현상이 발생하기 전에 에르제의 노래가 떠오른 것이다.

“처음부터 녹음을 딸걸.”

간단하게 현재 상태만 살펴보려고 시켰던 노래를 이렇게까지 잘할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에 벌어진 일이다.

“어쩔 수 없지!”

최광수는 벌떡 일어나 에르제에게 말했다.

“은우야, 아까 노래 진짜 좋았거든. 아까 부른 것처럼 불러 봐. 이번엔 녹음 한 번에 따 보자.”

“문제없어요.”

에르제가 흔쾌히 알았다고 하자, 최광수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가사만 조금 더 신경 쓰자! 노래의 주인공이 본인이라고 생각하면서! 그거 빼고는 다 좋았어!”

그가 녹음실로 들어가자, 태현우가 입을 벌린 채 안단테에게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뭐야, 방금 프로듀서님이 은우 칭찬한 거야? 노래로?”

“그런 것 같은데여. 우리 오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람.”

태현우가 장난스럽게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나도 여태 칭찬은 몇 번 못 들었는데.”

“난 한 번도 못 들어 봤는데?”

팔짱을 끼고 대답하는 민주혁에게 태현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와, 메인 자리 다 가져가려고 욕심 부리는 거?”

그런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이윤이 민망함을 많이 걷어 냈는지 입을 열었다.

“그만 떠들고, 은우 노래 한번 들어 봐. 프로듀서님이 칭찬할 만 하니까.”

그의 말에 멤버들은 잠자코 서은우의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노래가 끝났을 때.

그들은 서은우의 바뀐 춤을 보았을 때보다 더 충격 받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최광수가 의자를 뒤로 빙글 돌려, 그런 그들을 바라보았다.

“너희들이 듣기엔 어때?”

“엄청 좋은데요? 게다가 이 ‘킬 샷’보다 저희 타이틀곡에 목소리가 더 잘 어울릴 것 같아요.”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윤치우의 대답에 최광수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너희 이번 앨범, 진짜 멋있게 뽑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자 멤버들은 질투의 눈빛 대신 오히려 기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긴 연습생 생활을 버텨 내서 데뷔 멤버에 뽑힌 만큼.

같은 팀 멤버의 실력이 좋아졌다는 건 ‘한 팀’인 그들에게도 좋은 소식이라는 걸 아는 것이다.

안단테가 작은 손으로 박수를 치며 말했다.

“대박, 우리 신인상 타는 거 아니에여?”

“모르지. 2022년은 피 터질지도.”

“으악, 현실주의자 민주혁이 또 초를 친다!”

그렇게 웃음을 터뜨린 그들은 녹음실에서 나온 에르제를 둘러싸고 한 마디씩 했다.

“목소리 왜 이렇게 좋아졌어여? 발성 바꿨어여?”

“잘했어. 연습 많이 했나 보네.”

“…….”

민주혁은 말없이 등을 토닥거려 주었고, 태현우는 에르제에게 헤드록을 걸었다.

“야, 그래도 메보 자리는 못 내놓는다. 넌 비주얼 센터만 해. 아니면 단테 자리를 뺏든지.”

세게 건 헤드록은 아니었기에 에르제는 손쉽게 빠져나오며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본인들의 실력이 늘어난 것도 아닌데, 왜 자기들의 일처럼 기뻐하는 걸까.

‘……다른 인간들은 늘 시기하기에 바빴는데.’

에르제는 입을 꾹 다물었다.

질투와 시기는 인간들 틈에 섞여 살았을 때, 그를 굉장히 힘들게 했던 감정이다.

자신이 노래를 잘하면 깎아내리기 일쑤였고.

요리를 하면, 실수인 척 냄비를 엎어 버리기도 했다.

그렇게 여러 직업을 경험해 보았지만, 주변의 인간들은 그가 ‘잘하는 것’을 달갑게 보지 않았다.

자신이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남을 낮추고 깎아서 자신의 밑에 두는 것이 더 편했으니까.

‘그래서 오늘 노래 부를 때도 혹시나 했는데…….’

하지만 그날, 민주혁이 새벽에 했던 이야기는 진심이었던 모양이다.

에르제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그냥.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 * *

다른 멤버들까지 모두 노래를 녹음하고, 세세한 디렉팅까지 마치고 난 뒤.

그날 밤, 윤치우는 숙소 거실에 녹초가 된 모두를 불러 모았다.

그는 다들 모인 것을 확인하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멤버들에게 물었다.

“내일 일요일인 거 다들 알고 있지?”

“헉.”

“벌써?”

그의 말에 안단테와 태현우의 낯빛이 시꺼멓게 죽었다.

“아니……. 휴일이 따로 없으니까 날짜 감각이 사라지네.”

“그러니까여.”

“나 하나도 못 했는데.”

“으악!”

순식간에 시장 바닥이 되어 가는 분위기에 윤치우가 박수를 쳐서 주위를 환기시켰다.

“너네 설마 하나도 안 했어?”

그는 조금 화가 난 듯 보였다.

“너희들, 내가 매번 하는 이야기 기억하지? 조금만 삐끗해도 언제든지 밀려날 수 있다고. 그만큼 대표님은 진심이야.”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에르제 혼자만 어리둥절해서는 주위의 눈치를 살피는 중이었다.

“진짜 사소한 태도 하나로도 데뷔 못 할 수도 있어.”

“잔소리쟁이다! 우우우!”

태현우가 엄지를 아래로 내리며 야유를 했지만, 윤치우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말 안 듣는 동생들을 바라보는 모습이었다.

“네가 제일 위험해, 현우.”

“에이.”

태현우는 당당하게 안단테를 바라보았다.

“내가 볼 때 단테가 위험할 것 같은데. 은우한테 리드 보컬 자리 뺏기면, 우리 단테는 어떻게 하나.”

“와, 놔! 지금 시비 거는 거예여?”

안단테는 그렇지 않아도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를 더욱 가운데로 구겨 넣었다.

“어, 못생겨졌다!”

태현우는 푸하하, 웃었다.

“그만들 해.”

윤치우가 둘을 보며 피식 웃고는, 말을 이어 갔다.

“아무튼 내일은 실장님이 직접 확인하신다고 했어. 그러니까 밀린 거 있으면 어서 다 해 놔.”

“미친.”

“실장님이 왜!? 안 바쁘시대여!?”

웅성거리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퍼져 나갔다.

“그러게 미리미리 해 놨어야지.”

이번엔 민주혁이 인상을 쓰며, 안단테와 태현우에게 쏘아붙였다.

“어째 너희들은 곧 데뷔한다니까 연생 때보다 더 게을러지는 것 같냐.”

“음.”

찔리기는 하는지, 태현우가 머리카락을 빙글빙글 꼬았다.

“주그그, 인정.”

“주그그가 뭐야?”

윤치우가 되묻자, 태현우가 민주혁을 가리켰다.

“주혁이가 그렇다면 그런 거다!”

“아하.”

윤치우가 태현우와 안단테를 방 쪽으로 떠밀었다.

“그럼 게을러졌다고 실토한 거네? 빨리 들어가서 밀린 거 처리해. 나는 내일 실장님의 분노를 정면으로 마주할 자신이 없다.”

“안 돼에…….”

태현우는 윤치우의 압박(물리)에 의해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안단테는 윤치우가 그들 세 명이 자는 방으로 직접 끌고 들어갔다.

“…….”

“…….”

그렇게 거실에 남겨진 민주혁은 에르제와 어색한 침묵을 유지하다가.

“나도 오늘 치 해야겠다.”

그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으로 사라졌다.

“음…….”

폭풍이 한 차례 휘몰아치고 간 듯한 느낌에 에르제는 방문을 열어 젖혔다.

‘숙제는 또 뭐지.’

실장은 또 누구고.

며칠간 적응을 좀 했나 싶었더니, 자꾸만 새로운 것들이 튀어나온다.

오늘 밤도 태현우를 괴롭혀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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