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9화 (9/307)

제9화

9화

오전에 숙소에서 앨범에 수록될 두 곡을 열심히 듣고 난 이후.

오독, 오도독―.

에르제는 이윤이 준 홍삼 캔디를 씹으면서 푹신푹신한 소파에 앉아 있었다.

금일 오후에 예정되어 있던, 앨범 작업에 필요한 곡 녹음 때문이었다.

물론 서은우의 현재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미리 파악을 해야 했기에 그는 다른 멤버들보다 먼저 녹음실에 와 있었다.

“점심으로 이런 걸 주다니 굉장히 심기가 불편하네요.”

에르제는 자신의 옆에 초조하게 서 있는 이윤을 보며 말했다.

“혼자만 맛있는 거 먹고.”

“그러니까 숙소에서 먹고 나오라고 했잖아.”

“……어차피 거기에서는 풀만 먹잖아요.”

에르제는 이윤이 사 준 생과일주스를 한 모금 마셨다.

“그래도 이건 마음에 드네요.”

“비싼 거야. 아껴 먹어.”

그 말에 에르제가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이윤은 박봉이로군요. 6,000원에 쪼잔해지다니.”

“시끄러.”

대한민국 화폐 단위를 알게 된 에르제의 말에 이윤의 역치가 아슬아슬해질 때였다.

“아! 먼저 와 계셨네요.”

2시에 딱 맞춰서 도착한 남자가 밝은 웃음을 지으며 들어왔다.

“은우, 안녕! 오랜만이네.”

“아……. 안녕하세요.”

어색한 인사에, 그가 잠시 멈칫했다가 다시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 기억이 없다고 했지? 미안해. 나는 너희 앨범 작업을 맡은 최광수야.”

“최광수. 네, 기억해 두도록 할게요.”

“이야~, 고맙다고 하면 되는 거지?”

에르제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자, 최광수가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이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조금 있으면 애들도 올 테니까 간단한 테스트부터 바로 시작할게요.”

“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최광수는 자신이 있었다.

그의 본업은 작곡가로, 모카 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의 곡을 쓰는 것으로 계약되어 있었지만.

그는 학원을 따로 운영할 정도로 보컬 트레이닝에도 일가견이 있었기에 회사에서 트레이너로도 추가 계약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애들 가르치는 거 한두 번 해 본 것도 아니고요.”

최광수는 피식 웃으며 이윤에게 들릴 정도로만 말했다.

“은우가 기억을 잃기 전에 음치였던 거 기억하시죠? 그거 그나마 사람 만든 게 바로 접니다.”

“예, 물론 알죠.”

“그리고 또 여기 회사에 오기 전에 있었던 일인데, 예전에 데뷔한 이채선도 제가…….”

자랑스러운 그의 말투에 이윤이 쓴웃음을 지었다.

사람은 참 좋은데, 가끔씩 저렇게 자기 자랑을 못 하면 죽는 병에 걸린 사람 같다니까.

이윤은 재빨리 화제를 전환했다.

“오전에 은우한테 이번 앨범 곡들 미리 들려줬어요. 그래서 아마 노래 부르는 데에는 크게 지장이 없을 겁니다. 2곡밖에 안 되기도 하고요.”

“알겠습니다.”

최광수는 금세 노래에 대한 생각에 빠져 본래의 페이스로 돌아왔다.

오도독―.

그러고는 홍삼 캔디를 열심히 씹고 있는 에르제에게 말했다.

“은우, 녹음실로 들어가자.”

“……녹음실?”

“아, 맞다.”

최광수는 어리둥절한 표정의 에르제를 이끌고, 녹음실 안으로 같이 들어갔다.

그러고는 안의 장비를 사용하는 방법과 어떻게 노래를 하면 되는지를 차근차근 알려 주었다.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힐 정도로 열심히 설명을 한 최광수는 문을 닫고 나오며 호탕하게 웃었다.

“일반 연습생을 데리고 하는 기분이네요. 흐하하하.”

워낙 가르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열의를 불태우는 느낌이었다.

최광수는 버튼을 누르고, 안에 있는 에르제에게 말했다.

“음정부터 잡을 거야. 시작할게.”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기본기 테스트.

음정, 박자, 그리고 발성 등을 확인하는 단계가 하나씩 진행되었고.

“으음.”

최광수는 찡그려진 미간을 검지로 꾹꾹 누르며 침음을 뱉었다.

그러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이윤에게 말했다.

“제가 가르친 것들을 다 까먹은 것 같은데요.”

그러자 이윤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대답했다.

“어……. 제가 듣기에는 괜찮았는데요?”

“그렇죠. 그래서 문제예요.”

최광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진득하게 묻어 있었다.

“괜찮아서 문제라고요?”

“네……. 이렇게 되면 바꿀 수가 없잖아요. 잘하는 걸 바꾸라고 할 수는 없으니.”

“이 사람이 진짜.”

이윤이 순간 욱하자, 최광수가 양 손바닥을 내밀며 진정시켰다.

“흐하핫, 놀라게 하려고 한 말은 아니에요. 미안합니다.”

최광수는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제가 가르쳐 준 방식은 아닌데, 일단 발성이 안정적이네요. 그러니까 당연히 음정도 정확하고요.”

그러나 그는 조금 이상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런데…… 뭔가, 오랫동안 노래를 해서 정립된 듯한 느낌인데.”

왜 그런 것 있지 않은가.

가수로서의 연륜으로 볼 수도 있는 부분.

아이돌이든, 솔로 가수든 노래를 한다는 것은 동일하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나이를 먹어 가면서 노래 실력이 더 좋아진다.

물론 나이를 먹어 가며 성대의 소모량이 늘고 체력적인 부분은 떨어질지 몰라도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더 편해지고 좋은 울림이 전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최광수는 그 이유를 이렇게 정의를 내리고 있었다.

‘경험의 축적.’

같은 발성으로 부른다고 하더라도, 사람마다 공명을 만드는 위치나 편안하게 소리를 내는 성대의 모양이 다르다.

그렇기에 노래를 많이 부르면 부를수록, 축적된 경험이 개개인에게 딱 맞는 옷을 찾아 입히는 것과 같다.

‘그런데 그걸 고작 20살 짜리가?’

차라리 자신이 가르쳐 주었던 방식으로 부른 것이라면 이해가 될 텐데…….

윤성후에게 들었던, 춤을 잘 추게 되었다는 것도 그렇고 서은우에게 무언가 변화가 일어난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지금 그 변화의 종착지를 확인하기에 가장 좋은 것이 남아 있었다.

최광수가 이윤을 바라보며 말했다.

“바로 노래를 들어 보는 게 좋겠어요.”

* * *

에르제는 바깥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둘을 보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짧은 일탈이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음유시인으로서 짧게 활동했던 것은 아니었다.

120년.

인간들의 수명으로 본다면, 굉장히 긴 시간이었으니까.

게다가 이곳의 아이돌이라는 직업과는 다르게, 음유시인은 노래 실력이 최우선 조건이었다.

영웅을 노래하고, 자연을 노래하고, 사랑을 노래하는 것.

그렇게 쌓였던 경험이 고스란히 서은우의 몸에 적용된 것이다.

물론 몸이 달라진 만큼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돌로 활동하는 동안 극복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있었다.

‘앞으로 실력이 더 늘어나는 게 인간적인 면모를 더 부각시킬 수도 있고.’

이 정도라면, 노래를 부르는 기본기에서 문제가 될 일은 없을 듯싶었다.

에르제가 그렇게 결론을 내리자, 헤드셋을 통해서 최광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우야, 이제는 데뷔 앨범 곡을 불러 볼 건데 매니저님께 들어 보니까 오늘 처음 들어 본 거라며? 음……. 허밍으로 해도 좋으니까 기억나는 부분들만 최대한 불러 줘. 어차피 느낌만 보려고 하는 거니까.”

“괜찮아요.”

에르제는 웃으며 대답했다.

“다 외웠어요.”

“……?!”

멜로디랑 박자랑 전부 다? 가사도? 두 곡 모두 다 외웠다는 얘기인가?

최광수는 그렇게 되묻고 싶었지만, 소파 위에 놓여 있는 홍삼 캔디를 그저 멍하니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혹시 저게 기억력 증진에 도움이 되는 건가 해서 말이다.

“그으……래. 그럼 MR 틀어 줄게.”

일단 다 외웠다고 하니 들어 보고 판단하는 수밖에.

최광수가 떨떠름한 얼굴로 미니 앨범의 두 번째 수록곡인 ‘킬 샷(Kill Shot)’을 재생했다.

제목은 상당히 강렬했지만, 그와 반대로 가사는 귀여운 맛이 있는 노래였다.

마음에 드는 그녀에게 좋아한다고 말하기까지의 심정을 표현한 곡.

강렬한 펑크 사운드가 기반이었지만, 모던 팝을 섞어 소년 특유의 풋풋한 감성을 살린 곡이었다.

― 너의 심장에

Tang!

나만 바라보게 할 거야―.

청량하고 깨끗한 에르제의 목소리가 MR 위에 얹혔다.

듣고 있으면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게 만드는, 늪처럼 빠져드는 음색이었다.

― 내 총구는

항상 너를 향해 있어―!

Woo, ooooh!

프리코러스에서 코러스로 넘어가는 단계.

베이스와 드럼이 둥둥 울리며 곡의 긴장감을 점점 고조시켰지만, 에르제는 악기 볼륨에 맞춰 힘을 주는 대신 오히려 빼 버렸다.

― Shining Moonlight!

밤하늘 아래

너에게 내 맘을 전할래.

Kiiiilll, Shot―!

그리고 동시에 에르제는 춤 연습 시간을 떠올렸다.

‘킬 샷(Kill Shot)’의 안무를 떠올리면서 노래를 춤과 같이 맞추는 것이다.

조그맣게 동작을 따라 하면서 부르자, 감정 잡기가 좀 더 수월해졌다.

‘즐겁다.’

눈을 감고 노래를 부르던 에르제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예전에 음유시인으로 살아가며 느꼈던 감정이 고스란히 되살아나는 기분이었다.

악기와 가사가 그때와 많이 다르지만, 노래를 부른다는 행위는 같았으니까.

‘몰입은 좀 안 되기는 하네.’

가사에 공감이 잘되지 않는 게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그렇게 2절의 벌스로 넘어가고, 다시 프리코러스로 넘어가는 시점.

노래를 부르던 에르제는 슬며시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자신은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있지만, 이것이 과연 최광수와 이윤에게는 어떻게 들릴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아왔던 만큼, 노래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어디.’

계속 노래를 부르며, 그들을 살피던 에르제는.

‘……?’

최광수와 이윤의 상태가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내 그 이유를 깨달았다.

“설마.”

에르제는 황급히 헤드셋을 벗고, 콘덴서 마이크에서 입을 뗐다.

최광수와 이윤의 두 눈이 빨갛게 변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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