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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7화 (7/307)

제7화

7화

‘악!!’

이윤이 소리 없이 비명을 질렀고, 스튜디오 안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무겁게 가라앉았다.

“야! 잠깐만! 아파! 아프다고!”

오직 민주혁의 외마디 비명만이 울려 퍼질 뿐.

이윤이 조심스럽게 커다란 사진기 앞에 서 있던 정무진을 힐끔 쳐다보았으나, 그의 표정은 좀처럼 읽기가 힘들었다.

이걸 어찌 수습해야 하나, 이윤이 발을 동동 구르던 그때.

정무진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찰칵, 찰칵, 찰칵!!

“오케이! 그대로! 주혁 씨! 조금만 참아 봐요!!”

잠시 얼어붙어 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스튜디오 안의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민주혁과 에르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민주혁 씨, 표정 일그러뜨리지 마세요!”

정무진은 다양한 각도에서 열 장이 넘는 사진을 찍어 낸 뒤에도 사진에 대한 열정을 멈추지 않았다.

“느낌 좋은데요? 은우 씨, 다른 자세도 부탁드릴게요!!”

“다른 자세?”

에르제는 그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민주혁을 일으켜 세운 후 촬영을 위해 세워 둔 벽으로 밀쳤다.

그러고는 민주혁의 어깨를 손으로 누른 뒤 그의 턱 밑에다 권총을 가져다 댔다.

예전에 그를 잡기 위해 파견되었던 뱀파이어 사냥꾼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물론 그땐 박쥐로 변해서 튀었지만.’

당시를 회상하던 에르제의 한쪽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덕분에 뱀파이어에게 가족이라도 잃어서 복수의 광기에 휩싸인 사람처럼 보였다.

“은우 씨 표정 연기 아주 좋아요!!”

그렇게 촬영은 계속되었다.

다양한 자세로 찍고, 반대로 민주혁이 에르제에게 위해를 가하는 모습도 찍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마지막으로 따로따로 찍는 시간.

곧 티저 촬영을 위해 관에 들어가야 하는 민주혁이 얼굴을 찡그린 채 팔을 주무르고 있었다.

‘너무 세게 했나.’

하지만 칭찬은 드래곤도 춤추게 한다고 했다.

정무진이 칭찬을 쏟아붓자, 에르제는 저도 모르게 열심히 했고 그 대가를 민주혁이 고스란히 치른 꼴이 되었다.

‘노하우라도 전수해 줘야겠네.’

괜히 미안한 마음에 에르제는 헛기침을 하며 민주혁에게로 다가갔다.

“관에 들어갈 때는 마치 침대에 눕는다고 생각하고 들어가야 해.”

“?”

뭔 소리를 하느냐는 듯이 민주혁이 쳐다보았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 갔다.

“손은 가슴 위로 얌전히 놔두고 몸은 곧게. 그 자세가 정석이야. 가끔 손을 양옆에 내리고 자는 녀석들도 있기는 한데, 그렇게 되면 관에 끼일 가능성이 높아지거든.”

다른 인간이 관에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아야 한다는 사실에 속이 쓰렸지만, 그래도 나름 2,500년의 정수가 담긴 노하우였다.

그러나 그 사실을 모르는 민주혁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대꾸했다.

“놀리러 왔냐?”

“조롱이 아니라 조언인데.”

“……닥쳐.”

민주혁은 그 말을 남기고 자리를 휙 떠났다.

에르제는 멀어지는 민주혁의 등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도 아이돌로 같이 활동해야 하는 사이이기에 오늘 좀 친해져 볼 생각이었는데.

전부터 느낀 거지만, 민주혁이 어째서 자신에게 이렇듯 적대감을 보이는 건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민주혁의 촬영이 30분에 걸쳐 끝이 난 뒤, 이제는 에르제의 차례가 돌아왔다.

“다음! 은우 씨 스탠바이 하세요.”

그 말과 함께 정무진이 다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냈다.

“우선 촬영은 가운데서 진행할 거고, 원래는 기도하는 모습을 찍을까 싶었는데…….”

그는 에르제를 보며 씩 웃었다.

“오늘 은우 씨 보니 생각이 바뀌었어요. 처음에는 평범하게 믿음이 신실한 사람으로 갈까 했는데 뭐랄까, 좀 더 광기에 찬? 복수심에 물든? 그런 쪽이 더 잘 어울릴 것 같더라고요.”

정무진은 직접 시범을 보이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그는 중앙에 서서 무릎을 꿇고 고개와 양손을 하늘을 향해 뻗었다.

“이런 식으로, 하늘에서 계시나 축복을 받는 느낌이면 좋을 것 같아요. 꼭 이 자세일 필요는 없고, 느낌만 캐치하시면 됩니다.”

“이건 좀…….”

뱀파이어 사냥꾼 역할이야 그렇다고 쳐도, 하늘의 축복과 계시라니……!!

에르제가 난색을 표하자, 정무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왜요? 마음에 안 들어요?”

그 말에 슬쩍 이윤을 쳐다보자, 그도 표정으로 말하는 재주가 뛰어난지 ‘안 돼도 된다고 해!’라는 의사 표현을 온몸으로 하고 있었다.

‘후우. 그래, 진짜 축복을 받거나 하는 것도 아니니…….’

껍데기도 평범한 인간이니 괜찮겠지.

결국 에르제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오케이, 그럼 바로 시작할게요!”

정무진은 에르제의 대답을 듣자마자 촬영을 위해 빠르게 자리를 잡았고, 중앙에는 에르제 혼자만 남았다.

에르제는 무릎을 꿇고, 천장을 향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진짜로 하늘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천장으로 꽉 막혀 있었지만, 에르제는 청명한 하늘을 상상하며 양손을 펼쳐 천천히 들어 올렸다.

마치 내리쬐는 햇빛을 감싸 안듯이.

들어 올렸던 팔을 천천히 교차시켜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 툭, 고개를 떨구었다.

“…….”

“…….”

왠지 신성해 보이는 분위기에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사진기 플래시가 펑펑 터지는 소리를 제외하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런 정적 속에서 10초가량 가만히 무릎을 꿇고 있을 때.

― 축복을 내리겠다.

에르제의 머릿속에 소리가 왕왕 울려 퍼졌다.

* * *

민주혁과 에르제는 무사히 화보 촬영을 마친 뒤, 이윤과 함께 숙소로 향했다.

스튜디오에서 찍었던 수많은 사진들 중 고작 2~3장만 사용한다는 사실에 허탈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촬영이었다.

그래서인지 이윤의 입은 돌아가는 길 내내 웃고 있었다.

“하아아.”

하지만 에르제는 혼자 깊은 한숨을 내쉬며 무릎 사이에 얼굴을 깊게 파묻었다.

‘미치겠군.’

“너는 촬영도 잘해 놓고 왜 이렇게 한숨을 쉬어? 한숨 쉬지 마. 복 나간다. 대표님, 그거 되게 예민해.”

“하아―.”

운전대를 잡고 있던 이윤이 가볍게 타박했지만, 에르제는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거 한숨 쉬지 말라니까. 무슨 일인데? 왜, 마음에 안 드는 거라도 있었어?”

“따지고 보면 좋은 일인 것 같기는 한데…….”

“좋은 일?”

그 말에 민주혁이 허리를 곧추세우고 물었지만, 에르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서은우에게는 좋은 일이나, 본체에는 좋은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렇다고 이들에게 말할 내용도 아니라서 혼자 끙끙 앓는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축복이라니…….’

진짜로 축복을 받아 버렸다. 심지어 무슨 축복인지 알려 주지도 않았다.

‘하긴 그쪽에서 하는 일들이 늘 그렇지.’

계시는 알쏭달쏭하게 내리고, 축복은 알아서 뭔지 찾아내야 한다.

그저 가슴 한구석에 따스한 무언가가 자리를 잡았으니 축복을 받기는 받았구나, 하고 여길 뿐.

‘뱀파이어는 신을 등진 종족인데…….’

어째서 뜬금없이 축복을 내렸는지 그 저의가 심히 의심스러웠다.

‘게다가 지금 나는 다른 세계에 와 있기까지 한데.’

혹시 두 세계의 신이 같은 존재인 건가? 그렇다면 갑자기 인간의 몸에 들어온 자신에게 동정이라도 한 건가?

‘대답해.’

에르제가 속으로 무슨 의미냐고 계속해서 신에게 물었지만, 역시나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진짜 성직자가 된 것 같아서 영 찝찝하네.’

솔직히 말해서 두렵기까지 했다. 앞으로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건 절대 하지 말아야지.

에르제는 그렇게 생각하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렇게 냉랭한 상태로 차 온도를 3도 정도 낮춘 에르제는 축복만큼이나 아니, 축복을 받은 것보다 더 큰 시련을 맞이해야 했다.

차에서 내리고 숙소에 도착한 그의 앞에 마련된 점심 식사 때문이었다.

에르제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윤치우를 바라보았다.

“그쪽이 이 진수성찬의 원흉이야?”

“잔말 말고 먹어. 여기 오고 한 끼도 못 먹었다면서.”

“그래, 내 말이! 한 끼도 못 먹은 사람한테 어떻게 이런 대접을 할 수가 있어?”

다른 세상이니까……. 난생처음 보는 음식이 나와도 괜찮을 거라고 여기고 있었다.

사실 퇴원하고 이윤이 데리고 갔던 식당의 음식은 꽤 먹을 만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오늘 촬영 때문에 한 끼도 먹지 못한 사람한테 이따위 풀만 주다니?

에르제는 식탁 위에 놓인 초록 빛깔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옆에 서 있던 이윤이 말했다.

“너, 입원하고 병원 음식 먹었지? 그리고 그동안 쉬었고. 지금 네 상태면 최소 3킬로는 빼야 해.”

살을 빼야 한다는 말에 에르제가 자신의 배를 통통 두들겼다.

텅 빈 통나무 소리가 들렸다.

“이러면 굶어 죽는 게 먼저일 것 같은데요…….”

“너만 하는 거 아니야. 다른 애들도 다 해야 해.”

그 말에 주위를 둘러보자, 다들 무념무상으로 풀을 씹어 먹고 있었다.

“……다들 소야?”

에르제는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아……!! 소고기 먹고 싶다!”

그 말에 태현우가 반응했고.

“고기 얘기 하지 마. 애들 배고파해.”

윤치우가 빠르게 수습했다.

이윤이 그런 그들을 지켜보다가 말했다.

“나는 대표님께 갔다 올게. 치우야, 스케줄표대로 애들 움직이게 시켜.”

“네.”

이윤이 그 말만 남기고 자리를 뜨자, 에르제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이미 반쯤 죽어 가는 얼굴이었다.

‘풀 지옥을 해결하려면…… 하나밖에 없다.’

에르제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위에 뿌릴 것도 없어?”

그러자 옆에 있던 태현우가 무심한 말투로 대답해 주었다.

“어. 워터 드레싱 해. 그건 허락해 줄걸.”

워터 드레싱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아무 맛도 안 나는 풀을 씹어 먹는 것보다는 낫겠지.

육류야 나중에 따로 몰래 먹으면 될 테고.

지금 당장은 맛이라도 배를 채우고 싶었다.

“워터 드레싱이 뭔데?”

에르제가 두리번거리며 묻자, 조용히 옆에 앉아 있던 민주혁이 그에게 무언가를 슬쩍 밀어 주었다.

“그거 뿌려서 먹으면 돼.”

컵에 담겨 있었는데, 집어 들어 자세히 보니 투명한 액체였다.

에르제가 잠시 고민하다가 샐러드에 부으려고 하는 순간, 윤치우가 그의 팔을 잡아 멈췄다.

그러고는 다른 멤버들을 보며 말했다.

“그만 놀려.”

“에이, 한창 흥미진진했는데.”

“밥에도 물 말아 먹는데여. 샐러드라고 안 될 거 있나?”

태현우와 안단테가 킥킥대며 말했다.

물을 건네주었던 민주혁도 고개를 돌린 상태로 웃고 있었다.

윤치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에르제의 손에서 물 컵을 빼앗아 식탁 위에 놓았다.

“이거 그냥 물이야. 물맛 풀보다는 그냥 풀 맛이 나을걸.”

그 말에 에르제가 태현우를 보며 으르렁거렸다.

“혹시 미라 되어 볼 생각은 없어?”

“큽! 미안, 미안.”

태현우의 재빠른 사과와 함께 시끌벅적한 식사가 끝이 났고.

그날 밤.

고된 연습으로 인해 모두가 깊이 곯아떨어진 시간, 에르제는 고픈 배를 움켜쥐며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풀을 먹어도 고기 맛이 나는 축복이나 내려 주지.’

다른 세계로 와도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는 것은 비슷한가 보다.

이곳에 오기 전에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 기댄 것이 신이었으니까.

자신의 일족을 구해 달라고.

인간들과의 싸움을 멈추게 해 달라고.

미치광이 황제 한 명만 죽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게 아니냐고…….

하지만 결국 수십 곳의 마을이 불타 없어졌고, 기껏해야 서른 남짓 되는 일족만 살렸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을 다시 볼 수 있을지 어떨지도 미지수였고.

‘으으, 못 참겠네.’

그렇게 생각에 빠져 배고픔을 이겨 내려던 에르제는 결국 금단의 문을 열기로 마음먹었다.

에르제는 조용히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어두컴컴해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법했지만, 뱀파이어는 밤의 종족이었다.

‘밤눈이 어두울 수가 없지…….’

“윽!”

당당히 걸어가다가 의자 다리에 새끼발가락을 찧은 에르제는 아파서 찔끔 흐른 눈물을 닦아 내고는 조심스럽게 금단의 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끼이익―.

차가운 바람이 문을 통해 새어 나왔다.

빨갛게 변한 눈동자로 안을 살펴보고 있자.

“서은우?”

볼일을 보려고 나온 민주혁이 그런 그를 발견하고 싸늘하게 물었다.

“냉장고 앞에서 뭐 하냐?”

몸 전신을 뒤덮고 있는 한기보다 그의 목소리가 더 차가웠다.

“엣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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