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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4화 (4/307)

제4화

4화

윤치우를 포함한 멤버들이 에르제를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뒤편에서 누군가의 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열심히 짠 안문데 상스럽다니. 섭섭하다, 은우야?”

대답을 한 것은 지금 막 문을 열고 들어온 새로운 인간이었다.

그는 길쭉길쭉한 팔다리에 서글서글한 인상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뿔테 안경을 끼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여!”

“그래. 다들 연습 잘하고 있었어?”

그는 아이들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멀뚱멀뚱 서 있는 에르제를 툭툭 치며 윤치우가 조용히 속삭였다.

“뭐 해? 인사 안 하고.”

“……누구야?”

“아!”

에르제가 기억이 없다는 사실을 순간 잊었던 건지, 그가 허리를 굽힌 채 말을 이었다.

“윤성후 선생님. 예전에 ‘Victory’라는 아이돌로 활동하셨던, 우리 회사 춤 선생님이야.”

“춤 선생님?”

“선생님이 뭔지 모르는 거 아니지?”

“그 정도는 알아.”

그가 살던 곳에서도 선생님 혹은 교수라는 직업이 있었다.

물론 검술이나 마법 혹은 역사를 가르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곳에서는 춤도 선생을 두는 모양이네.’

하긴, 예전에 귀족 자제들을 상대로 하는 예법 선생이 춤도 가르쳤다고 듣긴 했다.

형식적으로 에르제가 고개를 살짝 숙이자, 윤성후가 미소를 지었다.

“기억을 잃었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었고……. 일단 견학한다고 생각하고 애들 춤추는 거 한 번 더 보는 게 낫겠다. 보다 보면 기억이 날 수도 있고 말이야.”

“……네.”

윤성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이들에게 손짓을 했다.

“은우는 뒤에 서 있고, 나머지는 앞으로 나와. 연습한 거 점검해 보자.”

“네!!”

점검이라고 말했지만, 에르제가 깜짝 놀랄 만큼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마치 무대에 오른 것처럼 고도의 집중력을 보이면서 말이다.

아까 들었던 음악이 흘러나오고.

“오?”

이번에는 아까와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여전히 상스러운 춤인 것은 변함이 없었지만, 4명 모두의 동작이 딱딱 맞아떨어지면서 느껴지는 쾌감 같은 게 있었다.

덕분에 이런 춤을 추어야 한다는 거부감이 살짝 줄어든 기분이었다.

에르제는 그들의 춤 동작을 눈에 담으며 자신이 살던 세계와 명백히 다른 이곳의 춤을 면밀히 관찰했다.

왼팔을 앞으로 뻗으면서 오른손은 가슴에. 그리고 그대로 힘 있게 잡아당기면서 반대편으로 뻗고, 한 바퀴 돈다.

그러고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머리칼을 휘날리면서 들어 올린다.

그렇게 딱딱 맞아떨어지는 군무 속에서 유난히 빛나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노란 머리에 비율 좋은 몸, 예쁘장한 얼굴.

큰 키는 아니었지만, 몸을 잘 써서 그런지 길쭉길쭉한 느낌이 물씬 들었다.

‘민주혁이라고 했지.’

그는 확실히 다른 음유시인들의 춤과는 결이 달랐다.

조금 더 부드럽고, 힘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표현력이 좋아.’

어쩌면 아까 윤치우가 말했던 ‘메인 댄서’라는 게 저런 걸 의미한 거 아닐까?

다른 이들보다 춤을 잘 추는 사람 말이다.

에르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4분가량의 춤이 드디어 끝이 났다.

4분 동안 쉬지 않고 격렬한 춤을 춰서인지 다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무릎을 잡았다.

“이 정도로 지치기는. 무대 끝나고…… 팬들한테 웃어 줘야 하는 거 몰라?”

민주혁만이 그대로 서서 눈을 흘겼지만, 본인의 숨소리도 이미 흐트러진 상태.

“재수 없는 놈.”

태현우가 퍼질러 앉으며 장난스럽게 혀를 내밀고는 말했다.

“조금 전까지 춤을 몇 번을 췄는데.”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윤성후가 에르제에게 다가와 어깨동무를 했다.

“어때?”

“남사스러워요.”

“아니…… 그거 말고. 보니까 기억이 좀 나는 것 같아?”

아무래도 데뷔까지 얼마 남지 않아서 마음이 조급한 모양이다.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기억은 했어요.”

“응?”

무심한 에르제의 말에 윤성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의 어깨에 올린 팔을 풀었다.

“다 외웠다고?”

* * *

거울 앞에 서 있는 에르제를 보며, 윤성후는 손가락으로 허벅지를 툭툭 두들겼다.

‘은우가 춤을 한 번 보고 외우는 타입은 아니었는데.’

아니, 엄밀히 말하면 잘 못 외우는 축에 속했다.

노래도, 춤도, 이를 뒷받침할 표현력도 모두 중간 이하. 그렇다고 이해력이 빠른 편도 아니었다.

그러니 다 외웠다는 은우의 말이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그냥 몸이라도 기억을 했으면 했다.

‘머리 다친 것 때문에 그런가 걱정이네.’

윤성후는 저 자신감이 되레 독이 될까 걱정이었다.

그리고 같은 시각.

에르제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색기라고는 하나도 없어.’

무려 뱀파이어 로드였다.

눈빛 한 번, 손짓 하나로 어떤 종족이든 가리지 않고 매혹시킬 수 있는 존재.

서큐버스처럼 이런 춤 따윈 추지 않아도 인간을 홀리는 데에 아무 문제도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뱀파이어의 힘 덕도 있었지만, 사실 용모가 주된 이유였다.

살짝 처진 눈꼬리에 붉은 입술, 화룡점정으로 눈 밑에 위치한 점까지.

‘뭐……. 이 녀석도 비슷하기는 한데.’

서은우란 녀석의 외모도 비슷하다면 비슷한 느낌이기는 했다.

처진 눈꼬리나 붉은 기가 도는 입술 그리고 하얀 피부까지 말이다. 다만.

‘음.’

에르제는 서은우의 외모를 간결하게 평했다.

선량하면서도 매혹적인……. 나쁜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고 해야 할까.

‘사기꾼에게 사기 당하기 딱 좋은 얼굴이네.’

결국 부족한 건 자신의 능력으로 채우는 수밖에 없었다.

뭐가 되었든 데뷔라는 걸 하고 아이돌이 되어 TV에 나와야 하니까.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감상에 빠져 있는 것도 잠시.

곧 예의 그 음악이 흘러나오고, 에르제의 머릿속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조금 전 그들이 추었던 춤을 그대로 기억해 재현하기 위해서였다.

뱀파이어로서 1,000년 이상을 살게 되면 필연적으로 얻게 되는 ‘완전 기억 능력.’

1,000년쯤 살게 되면 권속의 숫자가 어마어마해지기 때문에, 그들을 관리하기 위해 종족 특성으로 얻게 된 능력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복사하는 기능은 없었기에 기억을 토대로 춤을 추는 것은 에르제 본인의 역량이었다.

그는 민주혁이 추었던 모습을 떠올리며 자신만의 느낌으로 춤을 춰 나갔다.

“어?”

“뭐야……?”

그리고 에르제의 춤을 본 이들이 이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윤성후도 마찬가지였다.

춤도, 노래도 그저 그런 수준이었던 서은우가.

“왜 이렇게 잘 춰……?”

춤을 잘 춘다.

메인 댄서로 확정되어 있던 민주혁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민주혁은 정해진 틀을 완벽하게 수행하는 정오각형이라면, 서은우는 별이었다.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삐죽삐죽한 형태의 별.

기본기는 다른 아이들보다 떨어지지만, 반대로 매력은 압도적이었다.

표정, 시선, 손끝 처리…….

엉성한 춤인데도, 보는 이로 하여금 눈을 떼지 못하게끔 만드니 말이다.

그리고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것은 아이돌로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었다.

진짜 실력보다 훨씬 더 잘하는 것처럼 보일뿐더러, 팬 층을 확보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었으니까.

흔히 말하는 끼의 영역이다.

이미 데뷔한, 다른 웬만한 아이돌보다 뛰어난 비주얼에 춤으로 이런 모습까지 보여 준다면…….

윤성후는 데뷔 후를 상상하며 웃었다.

“이건 배운다고 되는 게 아니고 타고나야 하는 건데.”

그는 춤이 끝나자마자 민주혁을 바라보았다.

“주혁아, 너 긴장해야겠다.”

“……저런 기본도 안 된 애한테요?”

민주혁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으나, 윤성후는 흐뭇하게 웃었다.

“글쎄.”

사고 이후 후천적으로 얻게 된 능력이든, 아니면 이제야 개화하게 된 것이든 재능은 재능이다.

기억이 돌아오든 말든 알게 뭐냐. 현재의 상태가 중요하지.

윤성후는 벌써부터 대표에게 이 사실을 전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렸다.

“으흐흐.”

윤성후는 숨을 고르는 에르제를 보며 씩 웃었다.

“군무도 볼만하겠네.”

* * *

윤성후의 지도 아래 멤버들은 2시간가량 연습을 지속했고, 에르제는 그에게서 기본적인 것들을 배웠다.

아무래도 자신의 원래 세계에 있던 춤과는 많이 달랐기에 발 움직임이나 근육의 쓰임 등이 어색했던 것이다.

그래도 뛰어난 기억 능력 덕분에 에르제의 배우는 속도는 상당히 빨랐고, 덕분에 윤성후는 비교적 만족스럽게 수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군무는 동선이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아서 데뷔 전까지 연습량을 늘려야 할 듯싶었다.

“고생 많았다, 얘들아!”

그렇게 하루 일과를 보내고 난 뒤, 이윤과 전 멤버는 숙소에 도착했다.

이윤은 멀뚱멀뚱 서 있는 에르제를 그의 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여기가 네가 쓰던 방이야. 은우, 네가 쓰던 물건들 그대로 뒀으니까…… 보면 기억이 돌아올 가능성도 있겠지. 아! 그리고 현우랑 방 같이 쓰니까 잘 지내고.”

“미치광이 황제만 아니면, 잘 못 지낼 일은 없어요.”

“응? 뭐라고?”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에르제가 무심히 고개를 가로젓자, 이윤은 숙소에 관한 설명을 간단하게 하고는 태현우에게 방을 안내해 주라고 부탁하고 자리를 떠났다.

“하이~.”

하이는 또 무슨 말이야.

태현우의 낯선 인사에 에르제는 한숨을 푹 내쉬며, 서은우가 쓰던 책상 의자에 걸터앉았다.

탁―.

그러자 태현우는 그의 옆에 다가와 책상에 한 팔을 얹고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나도 머리 다쳐 볼까?”

“독특한 취향이네. 음……. 말리지는 않을게.”

“말려야지!!”

태현우는 발끈했다가 이내 한숨을 쉬며 다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거 말고 그냥, 네가 갑자기 춤을 잘 추니까 왠지 소외감이 든단 말이야.”

“내 춤과 네 소외감이 무슨 연관이 있는 건지…….”

“원래 너랑 나랑 춤으로는 꼴찌였으니까 그렇지. 이제 나만 남겨졌잖아. 물론 노래는 내가 더 잘하지만…….”

그렇게 말하던 태현우가 눈을 가늘게 뜨며 ‘이 자식, 노래도 잘하게 된 거 아니겠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에르제가 조그맣게 박수를 쳤다.

“표정으로 말하는 재주가 좋네.”

흠칫 놀란 태현우가 볼을 긁적이더니, 이내 이상한 것을 발견한 듯 얼굴을 가까이 붙여 왔다.

“잠깐만. 뭐야, 너 화장했어?”

“화장??”

그러더니 책상에 걸터앉아 엄지로 에르제의 볼을 쓱쓱 긁어내렸다.

뭐 하는 짓인가 싶어 가만히 있었더니, 10초가량 그러고 있던 태현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 아닌가?”

미간을 살짝 찌푸린 태현우는 어깨를 으쓱하곤 이내 책상에서 내려오려고 시도했다.

덜컹―.

그러나 자신의 무게를 생각하지 않고 부주의하게 내려온 탓에 책상이 덜커덩거렸다.

“우왓!”

덕분에 발바닥의 한쪽 면으로 착지한 태현우는 간신히 책상 끝을 붙잡으며 중심을 잡았다.

툭―.

그리고 의자에 앉아 있던 에르제와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태현우 사이에 조그만 인형 하나가 떨어졌다.

“어?”

태현우가 그것을 집어 들자, 에르제에게도 그 생김새가 자세히 보였다.

평범한 천으로 만들어진 인형이었는데, 그 모습이 좀 이상했다.

쭉 찢어진 입에 툭 튀어나온 송곳니, 그리고 피보다 붉은 눈동자까지.

닮지는 않았지만, 꽤나 익숙한 모습에 에르제가 작게 중얼거렸다.

“뱀…… 파이어?”

에르제는 태현우의 손에 있던 것을 낚아채며 그 인형을 바라보았다.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이게 왜 서은우의 방에……?”

그는 태현우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에르제의 목젖이 크게 출렁이다가 조심스럽게 열렸다.

“설마 이곳에…… 뱀파이어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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