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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3화 (3/307)
  • 제3화

    3화

    “건방져.”

    에르제는 눈앞의 이동 수단을 보며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평범한 인간인 이윤의 명령에는 잘만 움직이더니 자신은 철저히 무시한다.

    손으로 문을 꾹꾹 눌러 보았지만, 금속으로 만들어진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에르제는 이윤의 얼굴을 떠올렸다.

    빨리 나와서 이것을 열어 주었으면 했는데, 이야기가 길어지는 모양이다.

    그렇게 에르제가 한참 엘리베이터와 씨름을 하고 있자, 누군가가 그에게 다가왔다.

    “뭐 해?”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그의 얼굴은 물음표로 가득했다.

    “이거 타려고?”

    “……네.”

    에르제는 한 발 뒤로 물러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이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도통 문을 열어 주질 않네요.”

    “…….”

    그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1’이라고 쓰인 숫자가 보였다.

    “1층에 있으니까…… 안 열리겠지?”

    “그렇구나.”

    “……뭐야, 나보고 누르라고?”

    그럼에도 에르제가 멀뚱멀뚱 서 있자, 그는 에르제의 오른쪽으로 돌아 버튼을 눌러 주었다.

    ― 위잉.

    그제야 이동 수단이 작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

    에르제가 손바닥을 모으며 신기해하자, 그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은근슬쩍 다른 사람을 시켜 놓고는 저렇게 신기해하는 표정을 보니,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고양이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던 그는 문득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눈앞의 인물이 아직까지 자신을 보고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너, 나 누군지 몰라?”

    너라고 부르는 호칭, 그리고 반말.

    ‘서은우랑 아는 사이인가?’

    어쩌면 친한 사이일 수도 있었으나, 그것이 자신과 아는 사이라는 것은 아니다.

    에르제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모르는데요.”

    “진짜로 모른다고?”

    “알아야 하나요?”

    그는 눈을 빠르게 깜박였다.

    모른다고? 정말?

    그래서 말도 이렇게 하는 건가? 보자마자 인사도 안 하고?

    하지만,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보아하니 연습생 같은데, 까마득한 선배인 자신을 모른다는 게 말이 되는지.

    아무리 다른 소속사라고 해도!

    솔직히 TV를 틀면, 자신의 얼굴과 이름은 심심찮게 나오는데 말이다.

    모카 엔터 소속 가수와의 협업 때문에 방문한 차에 이런 일을 겪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하지만 표정을 보니, 정말 모르는 얼굴 같기도 해서 혼란스러움만 더욱 가중되는 기분이었다.

    에르제는 실시간으로 표정이 바뀌는 그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아! 아아, 혹시 이 건물을 관리하는…… 집사?”

    “뭐?”

    그는 황당하다는 듯이 팔짱을 꼈다.

    “야! 집사가 아니라 네 선배거든?”

    “……선배? 아이돌?”

    “그래! ‘LAK’ 이채선, 이름 못 들어 봤어? 하……. 아니, 내가 이걸 왜 설명을 하고 있지.”

    “아.”

    그 말에 에르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으로 오는 길에 이윤이 했던 말이 떠올라서였다.

    ― 들어가면, 다른 아이돌 그룹이랑 배우분들도 있을 거야. 혹시라도 마주치면 무조건 인사하고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도 말해. 너네 데뷔하고 밀어 주는 거야 당연히 우리 쪽에서 하는 일이지만, 다른 동료들한테 밉보여서 좋을 거 하나 없으니까.

    신신당부하던 이윤의 얼굴이 떠오르자, 에르제가 이채선에게 손을 내밀었다.

    “반가워요, 이채선. 서은우라고 해요.”

    에르제가 아니라 서은우로 자기소개를 한 것에 뿌듯함을 느끼던 중.

    “이채…… 뭐? 야!”

    ― 문이 열립니다.

    이채선이 입을 열자 동시에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에르제는 그 안으로 쏙 들어갔다.

    그러고는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 문이 닫힙니다.

    진짜로 문이 닫히고, 이채선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

    “……어이가 없어서 화도 안 나네.”

    여태 3년 넘게 아이돌 활동을 해 오면서 만난 연습생들 중 가장 건방진 녀석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부를 줄이야.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얼굴이 아깝기는 한데…….”

    안에서는 버튼을 잘 눌렀는지 위로 올라가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저래서는 뜨기 글렀다.”

    선배도 알아보지 못하는 모습과 자신에게 집사라고 하는 말이 번갈아 떠올랐다. 아마 데뷔하고 나면 인성 논란 문제가 터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같은 소속사 식구도 아니고.’

    여기서 알아서 잘 포장하고 케어 하겠지.

    아니면 또 얼굴 볼 일 없을 테고.

    ‘설마 엮일 일이 있겠어?’

    이채선은 5층에 멈추는 엘리베이터를 보며 몸을 돌렸다.

    원래 목적이었던 화장실로 향하기 위해서였다.

    “어, 어어!”

    그러자 저 멀리서 익숙한 얼굴이 뛰어왔다.

    “채선 씨!”

    “……이윤 매니저님?”

    둘은 이윤이 걸그룹 매니저를 했을 때, 방송사에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평상시 차분하던 이윤의 모습과는 달리 지금은 굉장히 다급해 보였다.

    “혹시 은우 못 보셨어요?!”

    “은우?”

    은우가 누구야.

    이곳에 와서 본 사람이라곤 조금 전의 건방진 연습생밖에 없지 않나?

    ― 서은우라고 해요.

    그러다가 엘리베이터에 탄 그 녀석이 자기소개를 하고 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사실을 떠올린 이채선은 혹시 몰라 그의 생김새를 말해 주었다.

    “흑발에다가 키가 180 정도 되어 보이는 애는 만났는데.”

    “어, 어어! 네! 잘생기고 흑발! 맞아요! 보셨어요!?”

    “잘생겼다고는 말 안 했는데……. 아무튼, 방금 엘베 타고 5층 가던데요?”

    이윤은 이채선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는 계단을 향해 뛰었다.

    ‘이 미친놈이!’

    5층은 걸그룹 멤버들이 사용하는 곳이다.

    연습실과 휴게실이 있는 곳.

    소속사 내에서 연애 같은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금남의 구역으로 지정한 층이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볼일이 있겠지, 하고 큰 걱정을 하지 않았을 텐데.

    지금 5층으로 간 놈이 기억을 잃은 서은우라는 게 문제였다.

    이윤은 계단을 2칸씩 뛰어 올라갔다.

    * * *

    다행히도.

    최악의 불상사는 면했다.

    “앞으로 잘 부탁해요.”

    만나는 사람마다 서은우는 손을 흔들며 그러고 있었지만 말이다.

    “제발 다시는 혼자 돌아다니지 마라.”

    “……네.”

    한참 꾸중을 듣고 난 뒤라 에르제의 표정은 시무룩했다.

    그렇게 2층 연습실로 걸어가던 중에 이윤이 물었다.

    “그런데, 아까 이채선 만났다면서?”

    “그게 누구예요?”

    “그…… 뭐냐,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났던 사람.”

    “아! 그 선배. 어떻게 알았어요?”

    “너 사라지고 만났다. 근데 뭔 짓을 했길래 이채선 표정이 그래? 네 얘기를 했더니 표정이 엄청 썩은 채로 말하던데.”

    “아무 짓도 안 했어요.”

    “음.”

    이윤이 신음에 가까운 소리를 내뱉자, 에르제가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아! 여기 집사냐고 물어보기는 했어요.”

    “……이채선한테? 집사?”

    “음, 저택이나 건물을 관리해 주는…….”

    “집사가 뭔지는 나도 알아…….”

    에르제의 설명에 이윤은 자신의 이마에 손을 짚었다.

    ‘은우 데려다주고, 바로 찾아가서 사과해야겠네.’

    “웬만하면 다른 사람들한테는 최대한 말조심하자. 말하기 전에 한 100번은 생각하고.”

    “노력해 볼게요.”

    충고를 한 이윤은 문 앞에 멈춰 섰다.

    “들어가면, 너와 같은 팀 멤버 아이들이 춤 연습을 하고 있을 거야.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은 미리 말해 뒀으니까 그건 큰 문제가 없을 거고.”

    이윤은 문고리를 잡으며, 한 마디 덧붙였다.

    “아무튼 뭔가 기억이 날 것 같으면 바로 이야기해. 그리고 들어가자마자 애들이랑 싸우고 그러지 마라.”

    이채선한테 그런 소리를 했다니까 괜히 더 걱정이 된다.

    “…….”

    대충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이윤이 문고리를 잡고 문을 열었다.

    그는 에르제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뒤, 곧장 이채선이 있을 곳으로 향했다.

    * * *

    이윤과 그렇게 헤어진 뒤.

    ― 빠밤, 빰! 빠바바밤.

    에르제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방음벽에 막혀 들리지 않았던 요란한 음악 소리가 우당탕탕 흘러나왔다.

    ‘귀 아파.’

    눈썹을 찡그리며 천천히 안으로 들어서자 괴상하게 생긴 검은색 물체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4명의 음유시인들이 그 음악에 맞추어 거울 앞에서 열심히 춤을 추고 있었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것이 아이돌이라고 들었기에, 에르제는 그들의 춤을 유심히 관찰했다.

    자신이 곧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에르제는 곧 우두커니 서서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이건 춤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었다.

    ‘이게 대체!’

    손으로 옷을 살짝 들어 올린다거나, 손등으로 얼굴을 쓸어내린다든가.

    로드로서 늘 고상하게 품위를 지켜야 했던 그의 입장에서 그들의 춤은 마치 서큐버스들의 그것 같아 보였다.

    몸을 배배 꼬고, 손짓하고.

    인간들을 유혹하기 위한 춤 말이다.

    민망해진 기분에 가만히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자.

    뚝.

    곧 거울에 비친 에르제를 발견한 멤버들이 음악을 끄고 그에게 다가왔다.

    “뭐야, 살아 있다더니 진짜네?”

    “괜찮아여? 기억 잃었다면서여?”

    “왔어?”

    “뭐야! 멀쩡하네!?”

    냉랭한 목소리, 발랄한 목소리, 무뚝뚝한 목소리, 귀를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

    눈을 가리고 있는 에르제의 근처에서 4명의 멤버들이 만들어 내는 소음이 그의 주변을 가득 채웠다.

    그가 아무런 대답도 없이 눈을 가리고 있자, 그중 한 명이 에르제의 팔을 아래로 잡아당기며 물었다.

    “반갑다고 우는 건 아니지?”

    “설마여. 현우 형 말고는 별로 친하지도 않았는데여.”

    툭툭거리는 말에 에르제는 그를 바라보았다.

    조그만 키에 녹빛 머리, 그에 어울리게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까지.

    ‘다른 종족은 없다고 하지 않았나?’

    순간 비슷한 것을 떠올린 에르제가 그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고블린?”

    “?”

    “풉.”

    은발을 한 이가 볼을 부풀리며 손으로 입을 가리더니, 이내 못 참겠다는 듯 크게 웃어 댔다.

    “푸하하하핰!! 고블린, 고블린이래. 단테야, 너는 앞으로 고블린이다. 예명도 고블린으로 하는 거 어떠냐? 겁나 잘 어울리는데?!”

    “아! 현우 형!!”

    “큽. 알았어, 알았어.”

    현우라고 불린 이는 킥킥대며 에르제를 바라보았다.

    “이야, 서은우. 못 본 사이에 드립이 늘었네.”

    “드립?”

    “드립 몰라? 개그? 유우우머?”

    태현우가 은발을 찰랑거리며 얼굴을 들이밀자, 에르제가 손바닥으로 그 얼굴을 잡아 밀었다.

    “땀 냄새 나.”

    에르제의 손바닥에 얼굴이 찌그러진 태현우가 입맛을 다셨다.

    “진짜 기억상실인가. 혹시 우리 이름은 기억하냐?”

    “아니.”

    에르제가 고개를 가로젓자, 태현우의 뒤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중에서 가장 큰 키를 가진, 전반적으로 진하게 생긴 남자였다.

    그는 손가락으로 안단테를 가리키며 말했다.

    “네가 고블린이라고 한 애는 안단테, 일단은 리드 보컬 희망.”

    “메보거든여!?”

    안단테가 발끈했지만, 그는 계속해서 에르제에게 설명을 이어 갔다.

    “저기 노란 머리는 민주혁이고, 메인 댄서. 그리고 네 손에 붙잡혀 있는 애는 태현우고, 메인 보컬이기는 한데 뭐 두루두루 잘한다고 보면 돼. 그리고 너랑 제일 친했어.”

    그의 말에 에르제의 손바닥에서 벗어난 태현우가 씩 웃었다.

    말투에서부터 느꼈지만, 전형적인 장난꾸러기 분위기를 팍팍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 내 이름은 윤치우, ‘토트윈(ToT-win)’의 리더야. 아, ‘ToT-win’은 우리 그룹 이름.”

    윤치우는 말을 덧붙였다.

    “그나저나 어때?”

    이윤에게서 미리 언질을 들었는지, 윤치우가 자신의 머리를 툭툭 쳤다.

    “우리 이름이야 그렇다고 치고, 춤은 좀 기억이 나? 아까 보고 있는 것 같던데…… 출 수 있겠어?”

    “아, 춤.”

    그 말에 시선을 돌리자, 자신만 빤히 바라보고 있는 이들이 보였다.

    기억이 날 리가 없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

    “상스러워.”

    에르제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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