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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2화 (2/307)

제2화

2화

다음 날 오전.

혼자 병실에 남겨진 에르제는 태양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커튼을 친 채 병원 침대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에르제는 침대 옆에 붙어 있는 종이를 만지작거렸다.

거기에는 ‘서은우’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현재 자신이 들어와 있는 몸의 원주인.

술법 사용자의 목숨을 대가로 차원 이동을 감행하였건만, 어째서인지 자신은 죽지 않고 다른 인간의 몸에 들어와 있었다.

그것도 자신이 살던 세계가 아닌, 완전히 다른 곳에.

‘원래 차원 이동은 신체와 정신 둘 다 이동하는 것일 텐데…….’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정신만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게 된 듯했고, 몸의 원주인인 서은우의 영혼은 내내 찾으려 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이래서는 기억을 읽어 낼 수도 없잖아.’

에르제는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워 눈을 감았다.

현재 서은우와 이 세계에 대한 정보를 줄 수 있는 것은 이윤이라는 인간뿐.

좋든 싫든, 당분간은 그와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들의 언어를 듣고 말하는 데에 있어서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는 것.

‘통역 마법이 자동적으로 적용되는 건 아닌데.’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고 말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몸의 원 주인의 영향을 받은 듯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현재 그보다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는 상태.

에르제는 몸을 새우처럼 동그랗게 말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녀석들은 잘 살아 있을까?’

여태 로드로서 일족들의 안위를 책임져 왔기에 그들에 대한 걱정 또한 접을 수가 없었다.

혹시 자신처럼 다른 종족의 몸에 들어간 것은 아닌지……. 아니면, 이곳처럼 인간 종족밖에 없는 세계로 간 것은 아닌지.

여러 가지 가정들이 걱정으로 바뀌어 갔다.

‘설마 내가 살아서 녀석들이 죽은 건 아니겠지.’

아니, 아니다.

아닐 거다.

에르제는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마력이 그들을 집어삼키는 것을 자신의 눈으로 똑똑히 보았으니까.

그러나 지금 당장 그들을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가슴 한구석에 불안감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혹시 이쪽 세계로 온 녀석들은 없으려나.’

그렇게 되면 살아 있는지 직접 만나서 확인할 수 있을 텐데.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게 에르제가 한참을 고민하는 사이, 볼일이 있다고 사라졌던 이윤이 병실로 들어왔다.

“은우야!”

그는 침대로 빠르게 다가와 보호자 전용 의자에 앉았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기억은? 좀 돌아온 것 없어? 사소한 거라도 좋으니까 아무거나 말해 봐.”

에르제는 고개를 저으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애초에 서은우에 대한 것을 모르는데, 돌아올 기억이 있을 리가 없다.

그렇다고 자신이 뱀파이어 종족을 이끌던 로드였고, 다른 차원에서 왔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이미 어제 소란을 일으킨 순간부터 옆의 나이 든 여인이 자신을 마치 미친놈 보듯 했으니까.

더욱이 조용해진 어젯밤.

― 저 녀석, 정신에 문제 있는 거 아녀?

그렇게 말하는 것까지 들었으니, 그들이 자신이 하는 말을 믿어 줄 거라는 확신은 들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에르제는 최대한 ‘서은우라는 인간인 척’ 연기를 했다.

다행히 과거 인간들과 자주 섞여 있었기에 그들의 말투와 행동을 연기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에르제는 심각한 표정의 이윤을 흘끗 보고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일족들의 안위만 확인된다면, 딱히 해야 할 일이 있진 않아.’

모든 종족을 자신의 발 아래로 두려는, 미친 황제가 있는 원래의 세계로 딱히 돌아갈 이유는 없었다.

그렇다고 뱀파이어들만 사는 지상낙원이 나올 때까지 차원 이동을 계속할 능력도 없었고.

쓰게 웃은 에르제는 조그만 직사각형의 마도구를 조작하는 이윤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이곳 차원으로 온 이들은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인간 분포도가 낮은 곳에서 그들만의 마을을 만들고 살 수 있을 터.

‘만약 아무도 이곳에 오지 않았다고 하면…… 인간 몇몇을 권속으로 들이는 수밖에.’

우선순위는 일족을 찾는 것이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권속을 들이는 방법도 있었다.

물론 인간을 뱀파이어로 만드는 일인 데다 성공 확률도 높지는 않기에 지양해야 할 일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혈기(血氣)가 남아 있어서 다행이야.’

뱀파이어 로드로서의 힘이 다른 몸에 들어와서도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은 그나마 희망적인 일이었다.

서은우의 몸도, 자신의 ‘재생’ 능력에 의해서 다친 부위가 전부 회복되었으니까.

“이윤.”

에르제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 이윤은 마도구에서 시선을 떼며 그를 바라보았다.

“어, 은우야.”

“거래를 하고 싶은데요.”

거래라는 말에 이윤의 목젖이 크게 출렁였다.

“……뭔데?”

* * *

남들이 보기에는 기적이라고 할 정도의 놀라운 회복세를 보인 서은우의 몸 상태 덕분에 에르제는 3일 만에 지긋지긋한 병원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말이 끌지 않는, ‘자동차’라는 수레에 탄 에르제는 앞에 앉은 이윤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며칠 전.

에르제는 이윤과 거래를 했다.

거래의 내용은 간단했다.

누군가를 찾을 수 있게 도와 달라는 것.

그리고 그 대신, 이윤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겠다는 것.

처음 눈을 뜬 이후.

그의 기억을 되살리려는 이윤에게서 서은우에 대한 정보를 얻어 냈기에 떠올린 거래 내용이었다.

‘아이돌.’

자신이 있던 세계의 음유시인과 비슷한 직업이었으나, 그와는 다른 점 하나가 에르제의 마음을 끌어당겼다.

병원 벽에 걸려 있던 TV라는 마도구에 자신이 나올 수 있단다.

그렇게 되면,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볼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름과 얼굴을 인간들에게 알릴 수 있어.’

에르제는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당연히 지금 자신의 이름은 서은우이고, 얼굴 또한 다르다.

하지만 이윤이 얘기해 주었던 ‘예명’이라는 것을 활용하면 에르제라는 이름으로 TV에 나올 수 있었다.

누군가는 이름만으로도, ‘혹시?’ 하는 생각에 자신을 찾아올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게다가.

― 찾고 싶은 이가 있어요.

라는 자신의 말에.

― 어……! 어! 그래, 당연하지. 도와줄게!

이윤은 그게 누구인지 묻지도 않고 도와주겠다고 했다.

솔직히 서은우로서 해도 괜찮은 말일까 고민을 했었는데……. 그 우려가 무색해질 정도로 이윤은 왠지 모를 기쁜 낯빛을 띠었으니 말이다.

‘이쪽 인간들도 종잡을 수 없는 건 마찬가지네.’

물론 그 대가로 원래 서은우가 하고 있던 아이돌이란 것을 하게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그것 또한 자신에게 이득이니 성공적인 거래라고 볼 수 있었다.

‘무작정 아무것도 모르는 이쪽 세계를 돌아다니는 것보다 훨씬 낫겠지.’

이성을 빨리 찾지 못했다면, 망망대해에 떠다니는 신세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은 이 세계에 온 일족들이 있는지, 그리고 그들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기 전까지만 이쪽의 장단에 맞춰 주면 되니까.

그렇게 만족스러운 거래였다고 생각하는 사이, ‘모카 엔터테인먼트’라는 장소에 도착을 했는지 차가 멈춰 섰다.

“내리자.”

뒤를 따라 내리니, 눈앞에 커다란 건물이 에르제를 반겼다.

이윤은 심호흡을 하고는,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에르제에게 당부했다.

“기억을 잃었다는 걸 아는 사람도 있지만, 모르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아. 사람들을 만나면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말도 잊지 말고. 너, 곧 데뷔할 때라서 행동 하나하나에 조심해야 해.”

지금 들어와 있는 것이 에르제 본인이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예의를 갖출 이유가 없었다. 나이로나, 직위로나 그들보다 한참 위였으니까.

하지만, 이곳은 다른 세계이면서 또 한참은 서은우로 살아가야 하는 곳이다.

부모도, 돈도…….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20살의 청년으로 말이다.

결국 에르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그런 말은 글로 써 주면 좋겠어요. 너무 길어요.”

“……응. 그런 거 하지 말라고.”

이윤은 걱정스럽다는 듯이 바라보다가 이내 에르제를 데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건물은 병원보다는 작았지만, 그 안에는 볼 것들이 더욱 많았다.

복도를 따라 걸려 있는 그림들은 유명 화가를 초빙한 건지 굉장히 현실적이었고, 음료나 음식을 파는 가게들도 보였다.

“오오.”

게다가 층과 층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이동 수단은 에르제의 흥미를 강하게 끌었다.

다만, 유리로 되어 있는 창밖을 내다보느라 이윤이 버튼을 누르는 것까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 3층입니다.

어떤 여인의 목소리와 함께 이동 수단이 멈추었고, 이윤은 바로 앞에 있는 문에서 걸음을 멈췄다.

“대표님이랑 이야기하고 올 테니까 여기서 얌전하게 기다리고 있어.”

“네.”

건성으로 대답하는 에르제 때문에 이윤의 얼굴에 살짝 불안감이 어렸지만, ‘그사이에 별일 있겠어?’라고 여기며 그는 대표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에르제는 그가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자 아까의 이동 수단으로 몸을 돌렸다.

* * *

이윤이 대표실로 들어서자, 안에 있던 인물이 그를 반겼다.

그가 앉아 있는 책상에는 ‘대표 장태수’라는 명패가 큼지막하게 놓여 있었다.

장태수는 그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하며 물었다.

“퇴원 잘했다면서? 의사도 몸에 이상 없다고 했고.”

“……네. 그런데 정신 쪽은 아직.”

“끄응, 기억이 아직도 안 돌아왔다고?”

이윤이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장태수가 이마를 짚었다.

“큰일이네. 핼러윈까지 한 달밖에 안 남았잖아.”

“솔직히…… 은우는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하아.”

장태수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들기며 말했다.

“안 돼. 은우만큼 비주얼이 되는 애가 없잖아. 다른 애들이 딸리는 건 아닌데, 은우가 워낙 압도적이니까. 지금 우리가 데리고 있는 다른 연습생 애들로도 대체가 안 돼.”

“그건 그렇죠.”

“노래랑 춤은 다른 잘하는 애들로 언제든지 채울 수 있어. 근데 얼굴은 아니잖아. 성형도 없이 그 얼굴이면 이쪽 업계에서는 끝이야, 끝.”

그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마른세수를 했다.

“데뷔 전에 있는 스케줄을 다 미뤄야 하나?”

하지만 그래서는 데뷔 날짜를 맞추지 못할 것이다.

사실상, 티저 같은 것들은 남은 기간에 해치워야 했으니까.

“차라리 데뷔조 애들 빨리 확정하고, 미리 다 해 놓을걸.”

그러나 남자 아이돌만 런칭하면 죄다 망했던 장 대표였기에 멤버들을 확정하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실력은 당연했고, 혹시 멤버별로 과거에 문제가 없는지, 인성은 어떤지 하나하나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데뷔조를 확정하고, 데뷔 준비만 하면 되는 때에 서은우의 사고로 그 그림이 죄다 어그러져 버린 것이다.

“일단, 그…… 애들 선배 곡 커버하려고 했던 거 있지? 무튜브에 올리려고 한 거. 그건 일단 취소시켜라. 바이럴 마케팅은 다른 거 알아보자.”

“예, 대표님.”

한숨이 나오지 않으려야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기에 장 대표는 손을 이마에 짚고 앓는 소리를 냈다.

“그래도 희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그런 장태수에게 이윤이 말했다.

“그래도 은우가 부모님에 대해서는 얼핏 기억을 하는 것 같던데요?”

“부모님?”

“네. 부모님이라고 이야기하지는 않았는데, 사람을 찾고 싶다고 했어요.”

“아!”

장태수는 서은우가 처음 연습생으로 들어왔을 때를 잠깐 떠올렸다.

꼭 성공해서 자기를 버린 부모를 찾고 싶다고 펑펑 울던 녀석의 모습을 말이다.

“근데 그게 꼭 은우 부모님이 아닐 수도 있잖아?”

“피로 맺어진 사이라고 하던데요?”

그리고 이윤은 병실에 있던 할머니와 아들의 모습을 보며 기억이 돌아온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어. 그럼 백 프로네.”

장태수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입꼬리를 올렸다.

어쩌면 기억이 금방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계기만 마련해 주면 되겠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장 대표는 일정을 확인했다.

“일단 애들부터 만나게 하자. 지금 춤 연습 시간인가?”

“네. 1시간 연습하고, 바로 뒤에 윤성후 선생이 수업할 겁니다.”

“오케이, 바로 그쪽으로 데리고 가.”

“알겠습니다.”

장태수에게 인사를 한 이윤은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와 서은우를 찾았다.

그리고 곧 멍하니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환장하겠네.”

문 앞에 얌전히 있어야 할 서은우가 보이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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