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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인생-133화 (133/141)

<-- 왜국 정벌 -->

9

전방의 광경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던 내가 곧 명했다.

"도강하라!"

"도강하라!"

나의 명에 따라 차가운 강물로 하나 둘 뛰어드는 아군들이었다.

첨벙 첨벙!

일부 바짓가랑이를 걷어붙이고 강을 건너는 자들도 있으나, 수고의 보람도 없이 강물은 허리까지 찼다. 그래도 별 불평불만 없이 계속해서 강을 건너는 아군들이었다. 그러나 일부는 이미 파괴되었던 세 개의 목교(木橋)를 복구하는 자들도 있었다.

각 사단에 속한 아군 공병대였다. 나는 이미 전쟁이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 상태라 느긋하게 기다릴 수도 있었지만 고생하는 군사들을 따라 나도 강물로 첨벙 뛰어들었다. 명장(名將)일수록 군사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시선을 떼어서는 안 된다.

어느 명장처럼 병사들이 밥을 다 먹기 전에는 숟가락을 들지 않는 것은 물론 병사가 아파 피고름을 흘리면 이를 빨아주지는 못 할망정, 몸을 사려서야 유능한 지휘관이 되겠는가. 나의 행동에 각 군단장은 물론 지금까지 눈치만 보고 있던 사단장들도 일부는 눈살을 찌푸리며 강물로 뛰어들었다.

이윽고 내가 조카마치(城下町) 앞에 이르자 포승에 엮인 하시바 히데요시가 끌려왔다. 이를 무표정한 눈으로 바라보던 내가 돌연 빙긋 웃고는 갑자기 고함을 질렀다.

"이 자를 끌어내 목 베어라!"

"전하! 충성을 다 바치겠습니다!"

조선말이나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달려드는 나의 직속 수하들의 표정에 즉각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느꼈는지 하시바 히데요시가 즉각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잠깐!"

벌써 히데요시를 잡아 일으킨 병사를 제지하고 내가 히데요시에게 왜어로 심문을 했다. 왜어야 진즉에 익혀놨으니 막힘이 없었다.

"배신자를 어떻게 믿을 수 있나?"

"살려만 주시면 절대 충성을 바치는 것은 물론 하시라도 목숨을 내놓고 선봉에 서겠습니다."

"그런 자가 어찌 배신을 한단 말이냐?"

"이미 승패가 굳어진 전쟁에서 더 이상의 고집은 내 부하들마저 죽음으로 몰아넣을 뿐입니다."

"괴변이다."

"솔직히 더한 공을 세우고 싶었고, 영달하고 싶었습니다."

"흐흠.........! 이제야 본심이 나오는 군. 기회는 한 번 뿐이다. 앞으로 지켜보겠다. 내게 믿음을 보여라!"

"네, 주군!"

갑자기 내 발치에 엎드려 발이라도 핥을 듯 수없이 고개를 조아리며 감사를 표하는 히데요시였다.

'간특한 자로고!'

내심 생각하며 나는 그를 끌고 가도록했다. 그리고 명했다.

"포승은 풀어주도록!"

"네, 각하!"

그동안 조카마치(城下町) 앞 벌판도 전장 정리가 끝나 있었다. 내가 사전에 내린 명대로 오다 노부나가를 비롯한 항복한 장수들의 시신도 잘 수습한 상태였다. 나는 곧 이미 헐린 목책 사이로 아군을 전진시켰다.

아케치 미쯔히데가 달려나와 나를 맞았다.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봄임에도 대머리가 오늘따라 물기로 번질거리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각하!"

"이야기는 들었소. 고생했소."

"약조를 이행한 것뿐입니다."

"좋은 기분은 아니겠지만, 덕분에 많은 생명을 살렸으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으시오."

"감사합니다. 각하"

나에게 사전 지식이 있었던 듯이 나를 깍듯이 존칭하며 어려워하는 미쯔히데였다.

이때 느릿느릿 나에게 다가오는 자가 있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였다. 나보다도 두 살이 많아 올해 39살인 이에야스가 비대한 몸을 이끌고 나타나 나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면목 없습니다만, 언제나 변함없는 우군(友軍)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이에야스의 말에 내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책망했다.

"그 말을 지금 지하에 있는 오다 노부다가가 들었으면 아주 좋아할 걸 그랬소."

나의 말에 얼굴이 벌개지며 더러워진 수건으로 이마를 문지르는 이에야스였다.

계속해서 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차가웠다.

"그대는 왜 변심을 했는가?"

"제가 볼모 일 때부터 함께 고생해온 병사들입니다. 그런 자들을 죽음만이 기다리는 골짜기로 밀어 넣을 수가 없었습니다."

외면은 부하들을 아끼는 마음으로 포장하나, 이미 나는 그의 마음을 꿰뚫고 있었기에 내가 빈정거리듯 말했다.

"그대의 야망(野望)이 그대를 변절하게 했겠지?"

나의 말에 아직 더울 철이 아닌데도 삐질삐질 비지땀을 흘리며, 수건으로 다시 한 번 이마를 훔치는 이에야스였다.

"아무튼 좋다! 품으로 날아든 궁한 새까지 잡아먹을, 궁한 사람은 아니니, 앞으로 지켜볼 것이다! 잘 해라!"

"명심하겠습니다. 각하!"

벌써 어디서 나의 호칭을 주워들었는지 기민하게 구는 이에야스였다.

갑자기 생각이 많아지는 나였다. 히데요시도 그렇고, 이자도 내가 아니었으면 전후 일본의 막강한 실력자가 될 사람이 잇따라 내게 고개를 조아리니, 심정이 묘했던 것이다. 아무튼 나는 스치듯 떠오르는 생각을 접고 세 무장의 안내를 받으며 기후 성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벌써 입성한 조선 무장들이 모든 정리를 끝내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천수각에 올라 자리를 잡자 제 임무를 끝낸 조선 측 무장은 물론 함께 참전했던 아군 측 왜 무장들까지, 차례로 들어와 제반 임무를 끝냈음을 보고하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때 어디서 무엇을 했던지 송익필이 한 중년여인을 끌고 들어왔다. 35세 전후로 보이는 미녀였다.

"오이치 마님!"

이때 히데요시가 깜짝 놀란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나는 히데요시의 반응에는 아랑곳없이 송익필의 행동에 기분이 나빠, 눈살을 찌푸리며 송익필을 책망했다.

"무슨 짓인가?"

"내부를 수습하다보니 눈에 띄는 미인이 있어서요."

나는 끌탕을 하며 여전히 책망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장들만 이곳에 여인을 끌어들이나?"

"전리품으로는 아주 제격인........."

"쓸데없는 소리........!"

일갈한 내가 제 무장들을 둘러보는데 히데요시의 눈은 여전히 그 여인에게서 떠나지를 않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관심이 가 자연스럽게 그 여인에게 눈길을 주니, 아닌게 아니라 미인은 미인이었다. 이런 내 태도에 송익필이 부연 설명을 했다.

"알아보니 자결한 오다 노부나가의 동생으로 미망인이 되어 이곳에 살고 있었답니다."

"흐흠.........! 안됐군."

송익필의 말에 내가 다시 한 번 그 여인을 세밀히 살피니 키가 크고, 풍만한 살집에 갸름한 얼굴이, 정말 미인 소리를 들을 만 했다. 이때 이 여인을 보며 내 머리에 떠오르는 여인이 있으니, 당나라 현종이 총애하던 양귀비였다. 꼭 양귀비가 살아 있으면 저 여인 같았을 것 같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나였다.

"흐흠.........!"

침음하는 내 머리에 얼핏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히데요시가 진즉부터 저 여인을 사모하여 백방으로 손에 넣고자 하나, 저 여인이 히데요시를 아주 싫어했단다. 그래서 훗날 히데요시가 첩으로 삼은 여인이, 저 여인의 첫째 딸인 차차(茶々)라 하지 않았던가.

지금 히데요시의 반응을 보면 정말 거짓은 아닌 듯했다. 내가 기억하기로 원 역사에서 이 여인은 혼노지의 변이 일어나는 올해에 이번 전투에서 얼마 전 자결한 시바타 가쓰이에와 재혼을 하나, 아직은 그 시기에 이르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러자 나는 자연스럽게 오이찌와 히데요시를 번갈아 바라보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이를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하다'는 듯 눈을 빛내며 주시하고 있는 미쯔히데의 눈과 마주쳤다. 내 생각은 또 자연스럽게 미쯔히데의 아내에게 미쳤다.

미쯔히데가 정실인 히로코와 결혼하기 직전에 히로코가 천연두에 걸리는 바람에 곰보 자국이 얼굴에 남게 되었다. 그래서 히로코의 집안에서는 그녀와 꼭 닮은 여동생을 언니 대신 미쯔히데에게 보냈으나, 미쯔히데는 그것을 알아채고 '나는 처라면 히로코님을 빼고는 누구도 생각할 수 없소이다'라고 딱 잘라 말한 뒤 히로코와 혼인했단다.

그런 히로코는 미쯔히데가 낭인 시절 여러 가문을 전전할 때 머리카락을 잘라 팔아가면서 남편을 도왔다고 하며, 미쯔히데도 그런 아내를 매우 아껴 죽을 때까지 단 한 명의 측실도 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생각을 끝낸 내가 말했다.

"나를 신종하는 무리들은 모두 내게 인질을 바쳤다. 그대들도 모두 인질을 내놓도록 해라. 가급적 장자면 좋겠다."

나의 말에 이에야스의 얼굴이 굳어지고, 미쯔히데는 눈살을 찌푸리는데, 유독 히데요시만은 싱글벙글이었다. 나의 눈길에 자신에게 멈춘 것을 깨달은 히데요시가 흠칫하며 말했다.

"제게는 아직 아들이 없습니다."

"내가 알기로 그대는 효자로 알고 있다. 노모를 받쳐라!"

"네에.........?"

"싫은가?"

"아, 아닙니다."

부인은 하나 당황한 빛이 역력한 히데요시였다.

"그 대신.........."

"네."

굳은 표정으로 대답하는 히데요시였다.

"저 여인을 그대의 첩으로 주겠다."

"감, 감사합니다. 주군!"

"단.........!"

"네!"

또 다시 놀라 표정이 굳어지는 히데요시였다.

"내가 알기로 그대는 본처와의 금슬이 좋은 것으로 알고 있다. 부부 사이에 금이 가지 않도록 잘 처신할 것!"

"네, 네! 감, 감사하옵니다! 주군!"

넙죽 엎드려 내게 거푸 절을 올리며 감사를 표하는 히데요시였다.

"주목하라!"

쓸데없는데다가 시간을 많이 낭비했다고 생각한 내가 큰 소리로 말해, 제장들의 시선을 모으고 말했다.

"앞으로 남은 일은 교토(京都)에 입성하는 일과, 남은 무장 중에서는 제일 강한 에치고(越後)의 우에스기 겐신(上杉謙信)을 멸하는 일이다. 해서 나는 북해도의 운봉으로 하여금 남하하게 하고, 우리는 모두 교토로 입성한다. 알겠는가?"

"네! 각하!"

"네! 주군!"

나는 부하들의 이구동성에 흐뭇한 낯빛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때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오이치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저는 히데요시의 처가 될 수 없습니다. 아니 싫습니다. 살펴주시옵소서!"

그간 통역을 통해 나의 명을 전해들은 모양이었다.

"흐흠........!"

잠시 생각에 잠겼던 내가 말했다.

"내가 한 번 입 밖에 낸 말은 곧 법이다. 이를 나라도 어길 수가 없는 것이다. 해서 명하건데, 네 세 딸도 내게 인질로 받쳐라! 네가 히데요시와 잘 살고 있으면, 내 네 딸들을 훗날 좋은 신랑감을 골라 시집을 보내겠지만, 아니면 흥.........! 더 이상 말을 않겠다. 후과를 생각하고 행동하라!"

나는 매몰차게 말하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오이치는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는 바람에, 차차(茶々), 하쓰(初), 고우(江)라는 세 딸만 나에게 인질로 진상한 꼴이 되었다. 훗날 모두 미녀가 되는 세 자매만이 불쌍하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더 잘 된 일인지 몰랐다.

아무튼 이야기가 나온 김에 더 언급하면, 이 외에도 훗날 히데요시는 나의 말대로 자신의 노모를 인질로 받쳤으며, 미쯔히데는 19세 된 아들 아케치 미츠요시(明智光慶)를, 이에야스는 네 살 난 도쿠가와 히데타다(德川秀忠)를 인질로 받쳤다.

참고로 이 당시 미쯔히데는 57세요, 히데요시는 46세, 이에야스는 39세였다.

오이치의 장녀 차차는 당년 14세였다. 아무튼 나는 자리를 벗어나 은빛으로 산란하는 나가라 강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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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감사, 감사드리고요!

^^

늘 행복하시고 건강한 날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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