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박인생-125화 (125/141)

<-- 왜국 정벌 -->

1

그렇게 5년의 세월이 흘러 서기 1581년 늦가을이 되었다. 내 나이 어언 36세가 되었으며 나라는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내가 계획한 모든 철도가 완공되어 물류와 사람의 왕래에 일대 변혁을 일으켰으며, 개량된 품종의 벼에 의해 근 두 배의 쌀 소출을 자랑하여, 이제 조선팔도에는 배곯는 이가 없어졌다. 아니 남아서 처치곤란이었다.

뿐만 아니라 군 단위까지 초등학교가 세워져 점차 백성들의 의식을 깨우고 있었다. 여기에 자전거의 보급 또한 물류 혁명을 가져와 부상(負商)들 대부분이 짐자전거에 물건을 싣고 파는 형태로 변해, 더 빠른 재화의 유통에 한몫을 단단히 했다. 종이돈 유통이 정착되자 시장경제가 더욱 활성화 되는 계기가 되었다.

농업 분야도 일대 개혁을 맞기는 마찬가지였다. 곳곳에 축조된 저수지로 인해 조선팔도 대부분이 이앙법을 채택했으며, 밭작물도 잡곡 위주에서 고구마, 감자, 옥수수 외에도 고추, 담배, 목화 등 다양한 상품 작물이 재배되었다.

또 논농사는 벼 품종 개량으로 수확이 두 배 는 데다, 탈곡기, 손수레, 농우와 철제농기구의 대대적 보급으로 더욱 광작화 되었다. 이로 인해 생산성이 배증되었지만 이탈농민 또한 많아졌다. 이탈 농민은 주로 광업과 공업 상업으로 자연스럽게 직업을 옮겨 이 또한 활성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재봉틀의 출현으로 아낙들의 일손이 한결 경감된 외에도 대규모 의류공장 출현으로 처녀들까지도 생산인구에 가담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싸게 제작된 이 의류를 여진은 물론 명나라 왜에까지 수출해 돈을 벌어들였다. 이에 따라 목화의 수요가 많아져 조선은 물론 대만까지도 목화재배지가 많이 늘었다.

국방 분야도 내 계획대로 뜻을 이루었다. 한양 경기권역은 2개 군단 편제가 되었으며, 각도도 지방군을 제외하고도 1개둔단 편제가 되었다. 수군 또한 3개 사단으로 증편되어 1개 군단 편제가 되었다.

무기 또한 수요에 맞게 생산을 거듭해 정규군은 물론 지방군까지 무장이 완료되었다. 아니 해외 군단까지 무장이 완료되었다. 함대 또한 배증되어 2개 사단을 동시에 움직일 수 있는 규모가 되었다. 이 모든 준비가 끝나자 나는 전쟁 준비를 더욱 서둘렀다. 이 시점이 1581년 가을인 9월 달이었다.

이에 나는 전쟁을 하기로 하고 정보를 총괄하고 있는 정부부장 송익필을 나의 집무실로 불러들였다. 이 자리에는 비서실장 정여립도 배석하였다. 원탁에 차를 가운데 두고 셋이 마주앉은 것이다. 차를 한 모금 마신 내가 송익필에게 물었다.

"누루하치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지?"

"지금까지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건주여진 4부족을 통합시키고 해서여진과 대치중이나, 이성량이 해서여진을 편드는 바람에 어려운 상황이랍니다."

"지원을 요청해온 적은 없나?"

"1개 사단병력을 증원해주었으면 하나, 국가 간의 싸움으로 번질까봐 신중을 기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정 밀리면 그의 원대로 북방의 1개 사단만 지원해 주도록 해."

"알겠습니다. 각하!"

"북해도는 어떻게 되었지?"

"1개 군단 편제를 완벽하게 무장시켜 대기 중이라는 보고입니다."

"잘 됐군. 대만은?"

"대만 역시 1개 군단을 완편하고 지금은 산악지대를 공략중이라는 보고입니다."

"거기도 일단은 계획대로 되었군. 시마즈 번에 파견된 운곡은?"

"오토모(大友) 국을 제외한 전 규슈를 통일했다는 보고입니다."

아군의 가세로 인해서 그런지 원 역사보다는 훨씬 빠른 성취였다. 원 역사대로라면 지금쯤 시마즈 군은 히젠, 히고, 지쿠젠 국과 쟁투를 벌이고 있을 시점이었기 때문이었다.

"히라도에 있는 고경명은?"

"해적들이 주로 명나라와 무역에 주력하는 바람에 히라도 및 고토열도의 방어 및 치안유지에 힘쓰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흐흠.........! 그들만이 내가 제시한 과업에서 미달이군. 어쩔 수 없지."

중얼거리듯 말한 내가 다시 송익필에게 물었다.

"일본 전역의 정세는 어떻지?"

"일본 정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오다 노부나가의 동향인데, 히데요시를 동원하여 모리 가의 싸움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태입니다."

"두 가문의 전력은?"

"아무래도 모리 가가 밀리고 있습니다."

"그렇군."

잠시 생각에 잠겼던 내가 말했다.

"곧 일본 정벌에 착수할 테니 더욱 정보를 많이 모아 대비하고, 비서실장도 이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하도록."

"네! 각하!"

말을 끝낸 나는 남은 차를 마시곤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결심이 서자 송익필에게 물었다.

"운곡에게 지원 병력을 보내 규슈의 통일을 빨리 앞당기고 싶은데, 얼마만한 병력을, 누구를 대장으로 보냈으면 좋겠는가?"

잠시 생각에 잠겼던 송익필이 대답했다.

"아무래도 수도에 2개 군단으로, 병력이 제일 많으니 여유가 많습니다. 수도 군단의 병력을 빼는 것이 제일 낫겠습니다."

"흐흠........! 좋아! 운검을 호출하도록 해!"

나의 명에 정여립이 곧 바로 달려 나갔다.

2각 후.

운검이 나의 집무실로 헐레벌떡 달려왔다.

"부르셨습니까? 각하!"

"거기 앉아요."

우선 숨을 돌리게 할 요량으로 나는 운검을 자리에 앉게 했다. 대기하고 있던 하녀에 의해 차가 나오자 나는 운검에게 차를 마실 것을 권하며 잠시 여유를 주었다. 이윽고 운검이 차 한 잔을 급히 비워내자 내가 물었다.

"시마즈 번을 지원하고 있는 운곡을 알지?"

"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를 도와 조기에 규슈를 통일하고 싶은데 몇 사단을 보냈으면 좋겠소?"

"제가 직접 출전하고 싶습니다. 요새 너무 무료하고 답답합니다."

"하하하........! 육군참모총장이 직접 출전한다니 격에 맞지 않는 걸?"

"그래도 제가 가겠습니다. 수도군단 중 제1사단을 빼내 함께 하고 싶습니다."

"좋소! 정 원이라면 그렇게 하도록 하시오. 단.........!"

"말씀하십시오, 각하!"

"조기에 오토모 국을 정벌해야 할 것이오."

"1개 사단을 동원하는데 그 정도도 못하겠습니까?"

"전쟁에서 하시라도 방심은 금물이오."

"명심하고 있습니다. 각하!"

"내 해군참모총장에게 명하여 이송할 함대를 동원하도록 할 테니, 출정준비를 하시오."

"네, 각하! 충성!"

기분 좋은 미소로 부동자세로 경례를 하고 빠르게 집무실을 벗어나는 운검이었다.

나는 곧 정여립을 통하여 해군참모총장에게 사단 병력을 이송할 채비를 갖추도록 했다. 이렇게 하여 운검이 해군 함대에 실려 조선을 떠난 것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0월 초순 이었다.

* * *

10월 중순.

규슈 동쪽 미야자키현(宮崎県) 노베오카(延岡) 항으로 상륙한 운검이 거느린 제 1사단은 곧, 현지에 연락하여 운곡은 물론 요시히사와 의논하여 오토모 가문을 정벌하기 위한 결의를 이끌어 냈다.

그 결과 요시히사는 자신 휘하 병력 4만7천 명을 동원하였고, 운검 또한 운곡의 부대 포함하여 약 1만5천 병력을 이끌고 북정 길에 올랐다.

양군이 처음 적과 대치한 것은 사도와라(佐土原) 다카조가와(高城川) 천변이었다. 우리의 북정에 오토모 소린은 방어를 하지 않고 맞불 공세로 나와, 오리려 아군 진영으로 진격해왔다. 그 결과 이곳에서 양군이 대치하게 된 것이다.

적은 소린 자신이 총대장이 되어, 다와라 지카카타(田原親), 다키타 시게카네(田北鎮周), 사이키 고레노리(佐伯惟教) 등의 부대장과 함께 4만3천의 병력을 천변에 배치하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이에 반해 아군은 머지않은 다카 성(高城)에 요시히사가 2만 병력 함께 포진하고, 나머지 2만7천의 시마즈 군과 1만5천의 조선군을 거느린 운검이 반대편 강변에 포진한 것으로 서로의 탐색전이 시작되었다.

그 결과 2일이 지난 새벽.

적이 일제히 도강하여 아군 진지로 몰려들었다. 이에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던 운검의 조선군은 일제히 맹렬한 화력을 퍼부었다. 수십 문의 대포와 신기전, 수십 대의 화차가 일제히 적진을 향해 화력을 집중하니, 적들은 태반이 시체로 둔갑하고 도강하는 자들은 그 절반도 채 되지 못하였다.

이것을 또 다시 천보총과 비격진친뢰로 맹공을 가하니 적은 거의 떼죽음을 당하다시피 했다. 놀란 오토모 소린이 즉각 퇴각명령을 내렸다. 이에 대기하고 있던 2만7천의 시마즈 군이 즉각적으로 추격에 나섰다.

그 결과는 허무하도록 간단하게 귀결되어졌다.

기독교 신자로 더 이상 부하들의 희생을 원치 않던 오토모 소린의 항복으로 전투는 허무하게 일방적으로 끝났다. 이로써 전공을 헤아리니, 1만3천에 달하는 적이 사살되거나 중상을 입어 전투 불능이 되었고, 나머지 3만이 포로가 되었다.

그렇지만 미리 내린 전쟁 지침에 따라 오토모 소린은 봉지가 비록 절반으로 축소되었지만, 영주로써의 직위는 잃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면에서 시마즈 군 즉 아군의 통제를 받아야 했다.

이로써 규슈 섬 전체를 일통한 시마즈 군은 나의 명에 따라 착실하게 북벌 준비를 끝내고 나의 명을 기다려야 했다.

* * *

규슈 섬을 일통한 나는 곧 일본 본토인 혼슈(本州)를 남쪽부터 차례로 점령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그렇게 되니 자연스럽게 다음은 모리 가문(毛利 家門)의 차례가 되었다.

이 당시 모리 가문으로 말하면 북부로는 돗도리(取島) 성으로부터 남부 끝자락 시모노세키(下關)까지 일본 본주의 1/5을 장악하고 있는 일본 내 절대 강자 중의 하나였다. 당주는 모리데루모토(毛利輝元)로 당년 28세의 한창 나이였다.

나는 정보부장 송익필과 함께 그간 모아온 모리 가문의 정보를 토대로 이들을 제압하기 위한 작전에 돌입했다. 그 결과로 나는 여건상 2개 사단만을 수송할 수 있는 함대 형편 상, 1개 사단은 수군을, 1개 사단은 육군을 동원하기로 하고, 수군은 해군참모총장 이순신이 직접 출전하기로 했으며, 병력 운송용 함대로는 제2군단장인 중장 이억기 함대를 출동시키기로 했다.

이에 승선해 출전할 육군으로는 제1군단장인 중장 권율이 직접 참여하기로 했다. 이 결정 에 이들이 조선을 떠난 것은 11월 초순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각각 시모노세키(下關)와 야마구치(山口)로 향하였다.

권율 부대가 상륙한 시모노세키는 규슈의 아군이 북상하기 위한 관문으로 이를 먼저 제압하여 교두보를 만들 필요성이 있었으며, 야마구치는 모리 가의 수군이 밀집해 있는 곳이었기에 이를 먼저 격파해 적의 해로를 통한 운송과 제해권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였다.

아무튼 이 조치로 먼저 포문을 연 것은 이 순신이 거느린 제1군단 제1사단이었다. 대형함 6척 중형함 24척 소형함 96척으로 이루어진 대 선단이 야마구치로 향하자, 적들도 우리의 공격을 눈치 채고, 크고 작은 전선 400여 척을 밀집해 대항해 왔다.

원래 모리 수군은 이 보다 전함이 훨씬 많은 800여 척에 달했다. 그러나 2년 전 오다 노부나가와의 해상전에서 패하는 바람에, 격감된 전력이 이 정도였던 것이다. 아무튼 새까맣게 몰려오는 세키부네(関船)와 아타케부네(安宅船)를 맞아 반원진인 학익진을 펼친 이 순신이 먼저 발포 명령을 내렸다.

"방포!"

"방포!"

지휘선인 대전함에서 대형 붉은 깃발이 수없이 크게 흔들리자, 크고 작은 아군 전함에서 적선들을 향해 일제히 함포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

.. /작가의 말/..................................

지금까지 후원해주신 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

이전글: 발전

다음글: 왜국 정벌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