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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인생-124화 (124/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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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나는 비서실장 정여립을 앞세워 노수신의 집으로 찾아들었다. 전 우의정으로 우리의 개혁정책에 많은 반대를 했던 그였지만, 사적인 방문을 박대할 수만은 없었던 듯 사랑채로 맞아들였다.

노수신의 지시에 의해 곧 주안상이 나오고 우리는 서로 마주보고 앉았다.

"영상께서 몸소 누가를 찾아올 줄은 몰랐소이다."

노수신의 말에 나는 넉넉한 웃음을 머금고 그를 다시 한 번 세심히 살폈다. 환갑을 갓 지난 나이여서 인지 푸석푸석한 피부에 활기가 많이 사라진 얼굴이었지만, 건강이 그렇게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스치듯 살피던 내가 정여립을 가리키며 물었다.

"여기 있는 인백(仁伯)을 잘 아시죠?"

"내가 추천한 사람인데 왜 모르겠소이까?"

"윤임 대감은요?"

"윤 대감과 뜻이 같아 같이 움직이다보니 윤원형으로부터 미움을 받아 귀양살이도 했죠. 영상이 그분의 조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알고 보면 서로 동질적인 부분도 많은데 우리의 개혁정책에는 왜 그렇게 반대를 많이 하셨습니까?"

"국사에는 개인의 친분을 적용할 수는 없는 것이고, 또 중국 신나라 때의 왕망이나, 근자 조선의 정암 조광조 선생의 예를 보더라도, 급진적인 개혁은 실패하기 쉽고, 너무 사대부들의 권익을 침해하는 일이 많았어요."

"지금 나라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다고 보십니까?"

"아직은 잘 되어가고 있으나, 실패할 수도 있죠. 하고 성상을 괴뢰로 만든 것은 큰 잘못 이예요."

"흐흠........! 그 부분은 저도 인정하나, 빠른 개혁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옳은 일이 아니 예요."

"인정합니다. 하지만 나라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죠."

"그것은 저도 인정합니다."

"우리의 개혁이 실패하기를 바라십니까?"

이 부분에서 나는 노수신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사감으로는 실패하길 바라나, 허허허........! 그럴 수야 없죠."

"이렇게 나라가 발전하는데 일조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십니까?"

"서로 지향하는 바가 다르지 않습니까?"

"나라의 발전을 바라는 마음이 같은데 뭐가 다릅니까?"

"개혁의 속도 말입니다."

"조선조 개국이 100년이 다 되어가니, 국초의 개혁적 의지는 많이 퇴색하고, 곳곳에 썩은 구린내가 진동하고 있소이다. 이러다가는 우리가 무시하는 왜놈들에게도 짓밟힙니다."

"흐흠........!

근본적으로는 동의하고 싶지 않지만 일정 부분은 영상의 말이 옳아요."

"우리의 개혁에 동참해주시죠?"

"내키지 않는군요."

"이것은 어떻습니까? 제가 금번에 조각을 하다 보니, 초록은 동색이라고 모두 비슷비슷한 성향들이라, 이들을 감찰하려 해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그릇됨이 많을 것 같아요. 해서 내 소재(蘇齋) 선생께 이들의 규찰을 맡기려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흐흠........!"

"나라와 백성을 위한 일입니다. 하고 예하 관원의 선발은 소재 선생께 일임하겠습니다."

"내 독단적인 권한을 보장하는 것이오?"

"저 외에는 아무도 간섭할 사람이 없습니다. 저에게 직보하시면 되고, 저 또한 평소 선생의 강직하고 청렴한 태도라면 사감 없이 일을 처리하리라 믿습니다."

"흐흠.........!"

한동안 고뇌하던 노수신이 고개를 들어 말했다.

"영상이 그렇게 까지 저를 평가해주신다니 한 번 대임을 맡아보도록 하죠."

"고맙습니다. 독립된 부서로 장관급이며, 직책은 감사원장입니다."

"알겠소."

"내일부터 출사하시죠?"

"신변 정리 좀 하고 모레부터 출사하는 것으로 합시다."

"감사합니다."

"무에 감사할 일이........ 술이 너무 차갑게 식었군요."

"저는 한 겨울에도 찬 것이 좋습니다."

"허허허........! 젊음이 좋긴 좋습니다. 그러시다면 한 잔 받으시죠."

"고맙소이다."

"저도 한 잔 주세요. 선생님!"

비로소 끼어들 자리를 얻어 술잔을 내미는 정여립이었다.

"이 사람, 얼굴 두꺼운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구만."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잖아요."

"쓸데없는 소리. 그게 젊은 사람의 입에 담을 소린가?"

"하하하.........! 그렇게 되었습니까?"

비로소 수구 골통 하나를 끌어안았지만, 개혁파를 벼르던 사람이니, 감사원장 직이 적격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 * *

점차 날씨가 더워지는 오월 중순의 어느 날이었다.

요동총병 이성량의 친서가 도착했다. 지난번 이월 달에 우리가 동고부족을 친 일에 대해 질책과 함께 엄중한 경고를 받은 일이 있으므로, 또 그 일을 거론하는가 싶어 나는 좋지 않은 기분으로 그의 친서를 읽어 내려갔다.

결론은 조선국왕을 마음대로 유폐시키고 국정을 함부로 농단한다는 질책과 함께 이의 사실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명 만력제가 파견한 사신이 벌써 요하를 넘었다는 전언이었다. 그동안 내정에 전념하느라 외정에 손을 놓고 있었던 사실을 내심 나는 질책하며, 서둘러 명나라 사신을 맞을 준비를 하도록 했다.

원접사로 외무부 장관 황윤길을 급히 의주로 파견하고, 평양, 개성, 황주 등 요로 다섯 곳에 2품 이상의 관원 중 선발한 다섯 명을 선위사로 파견하여, 명나라 사절을 영접하도록 했다. 이 모든 일이 내심 배알이 꼴리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명과 다툴 때가 아니므로, 좋은 점수를 받을 필요성이 있어서 하는 행위였다.

그로부터 한 달 후.

명 조정에서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사신으로서는 거물급에 속하는 사례태감 진정(陳政)을 수반으로 하는 칙사 일행이 한양에 당도하였다. 나는 이품 이상 관리 절반을 데리고 영은문(迎恩門)으로 나아갔다.

말에서도 내리지 않고 거만하게 나의 인사를 받는 진정이었다. 내심 불쾌하기 짝이 없었으나, 훗날을 위해 이를 악물고 참고 말했다.

"모화루(慕華樓)에서 연회가 준비되어 있으니 오르시죠."

"국왕은 어찌 얼굴도 비치지 않는가?"

"미열이 좀 있어서 자리 보전중입니다."

"고얀.........!"

볼을 푸들푸들 떨며 노여워하는 환관 진정이었다. 이때 황윤길이 나서서 말을 했다.

"궁궐 안으로 들어가시면 환후 중이라도 맞을 것이오니, 일단 노여움을 푸시고 일단 루에 오르시죠."

"내 두고 보겠노라!"

넓은 소매를 한 번 떨쳐 보인 진정이 끄덕끄덕 말을 몰아 영은문 안으로 들어갔다. 나 또한 예하 관리들과 함께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안내 겸 해서 내가 먼저 루에 오르니 진정도 말을 맡기고 루에 올랐다.

그를 상석으로 안내해 양측이 자리를 잡은 가운데 진정이 갑자기 노성을 질렀다.

"그대가 조선국왕을 유폐시키고 조선팔도를 쥐락펴락하는 괴수인가?"

"국왕을 유폐시킨 적은 없습니다. 단지 정무에서 손을 떼고 내각의 임명권만 쥐고 있을 뿐입니다."

"그게 그 소리 아닌가?"

"분명히 '아' 다르고, '어' 다르죠."

"고얀.........! 교언영색으로 본 칙사를 희롱할 셈인가?"

노성을 지르는 환관 진정이었다.

순간 울컥하여 이 자리에서 단매에 때려죽이고, 명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싶었으나, 나는 심호흡을 하여 감정을 조절하고 천천히 말했다.

"조선이 명나라를 상국으로 섬기며 예를 다하면 됐지, 내정간섭까지 할 필요까지는 없는 것으로 압니다."

"발칙한.........! 그러니 국왕을 괴뢰로 만드는 것도 모자라, 대국의 황제를 대리하는 이 몸에게도 바락바락 대드는 것이 아닌가!"

".........."

대국(大局)을 위해 참으려 하나 속에서 천불이 솟아올라 나는 죽을 맛이었다. 때를 보아하니 명의 만력제는 이제 15세로 아직 내각수보 장거정에게 한참 훈도를 받을 시기였다. 또한 장거정의 개혁으로 나라 전체가 크게 흥하고 있는 시기였다.

장거정이 죽으려면 6~7년은 더 기다려야 되고, 이때부터 명나라가 쇠퇴하기 시작하는 것을 생각하면, 이 자보다도 어떻게 하든 장거정을 제거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나였다. 내가 내심 말없이 염두를 굴리고 있는데, 정여립이 큰 보함(寶函)을 슬쩍 진정 앞에 갖다놓으며 말했다.

"원로에 노고가 많으실 텐데, 여비로 좀 보태 쓰시지요."

"나를 뇌물로 구워삶자는 것인가?"

"그것이 아니옵고, 이는 단지 노자에 지나지 않사옵니다. 이 외에도 대국의 황제와 황태후님께는 별도의 예물을 단단히 마련할 것이오며, 칙사 대인을 위한 여비 또한 더 많이 준비를 했사옵니다."

말을 하는 도중 정여립이 보함을 열자 금을 비롯한 진귀한 보화들이 눈을 못 뜨게 할 정도로 눈부셨다. 이를 본 진정이 야릇하게 표정이 변하더니, 한결 누그러진 음성으로 말했다.

"일단 그대들의 성의이니 가납하겠다. 어서 풍악을 올리지 않고 무얼 하는고!"

"네, 네! 풍악을 울리랍신다!"

정여립의 외침에 장악원에서 나온 자들이 음악을 연주하며 한껏 흥을 돋우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연회가 시작된 것이다.

지화자 낭창낭창 우는 음률 속에서 무희들의 춤사위가 돌아가고, 미효가주에 웃음소리가 끊임없이 모화루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나는 연 사흘을 칙사 진정이라는 자에게 시달려야 했다. 기차라는 기물이 있다는데 그것을 보여 달라는 말에는 고장이 나서 보여줄 수 없다고 하고, 선조를 맞아서는 무엇을 캐내려 했으나, 선조 또한 나라망신이라고 생각했는지 그의 의도대로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튼 그가 돌아가자 나는 경호실장 임 선달을 불러들여 특명을 내렸다.

'명나라로 가서 기회를 보아 내각수보 장거정을 살해하시오!'

나의 명에 군말 없이 이를 수용하는 임 선달이었다.

외정에 생각에 미친 김에 나는 북해도의 소식을 보다 확실히 알기 위해 쾌선을 띄웠다. 그 결과 그곳에 주둔중인 운봉군은 북해도 전역을 손에 넣고 현재는 사할린 섬을 개척중이라 했다.

그 과정에서 일본 본토에서 건너온 화인들과 한 차례 대접전이 벌어졌으며, 아이누족의 반항세력과도 두 차례의 큰 접전이 벌어졌으나, 운봉은 이를 모두 승리로 이끌고 현재는 북해도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나는 즉시 사할린 섬의 병탄을 중지하고 북해도로 돌아와 1개 군단 병력을 양성하도록 했다. 훗날 왜놈들과의 싸움에 대비한 조치였다. 이에 운봉이 따랐음은 물론이다. 그 외 유구도 소식을 알아본바 아직 왕이 건재하여 통치를 하고 있다는 소식에 관심을 끊었고, 대만은 목하 평야지대는 남부까지 모두 일통하여 나의 명대로 1개 군단을 양성하고 있다는 보고였다.

또 양귀비와 담배의 재배도 순조로워 해적들을 통해 아편과 담배를 점차 명나라 부유층과 관리 층을 파고들고 있다는 보고도 있었다. 나는 이의 생산과 침투에 더욱 박차를 가하도록 독려하는 한편, 반대급부로는 가급적 쌀로 받아와 부족한 식량으로 인하여 명나라 내부의 민란을 유도하도록 했다.

또 여진의 누루하치에 대해서도 알아보니 자신 부족을 통일하여 점차 외연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는 보고에 그들에 대한 관심도 끊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5개월이 지나자, 장거정을 살해하러 갔던 임 선달이 귀국하여 임무를 완수했다는 보고를 했다. 이에 나는 명나라에 대한 관심도 끊고 오직 내정의 개혁과 부국강병에만 진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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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

늘 기쁜 날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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