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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인생-119화 (119/141)

<-- 조선의 실질적 왕이 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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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 도승지의 교체를 요구한 것이다. 오 건에서 이 산해로 승정원 도승지의 교체를 요구하자 선조는 즉각 이를 거부했다. 나 역시 이를 끈질기게 요구하자 선조는 아예 정무에 임하는 것 자체를 거부했다.

이렇게 되자 그렇잖아도 지지부진하던 개혁은 논의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것은 물론 모든 업무가 마비되어 나라의 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나와 나의 측근들을 비판하는 상소가 연일 빗발쳤다. 나 역시 이를 보고 있지만은 과격한 자들은 의금부와 포청을 동원하여 모두 감옥에 가두니 그야말로 감옥이 만원이 되었다.

이런 가운데 세월은 흘러 내가 영의정에 등극한지 어언 오개월여가 흐른 섣달의 일이었다. 영남 지방의 유생을 중심으로 한 만 명 이상이 상소에 동조한 만인소(萬人疏)의 등장은 지금껏 참아왔던 나의 인내심을 결정적으로 무너뜨리는 계기가 되었다.

10,057명의 유생이 참여한 이 상소는 길이만도 자그마치 100여 미터에 이르러, 이것 전체를 펼쳐놓고 읽어보려면 요새의 체육관 하나 정도는 지어야만 읽어볼 정도로 그 길이와 참가인원순 결기가 대단했다.

만인의 뜻은 곧 천하 만민 모두의 뜻이라고 하며 양반에게 부과되는 모든 세금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물론, 서얼허통이나 대동법 군제개혁 등을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장문의 상소였던 것이다.

이에 나는 즉각 남과 북에 쾌선과 쾌마를 띄워 내가 지니고 있던 비장의 패를 쓰기 시작했다. 이순신과 권율에게 미리 준비시켰던 최후의 패였다. 즉 히라도와 오군 열도에 주둔하고 있던 해적 2천 여 명을 경상도와 전라도로 나누어 진격시키는 한편 북방에서도 권율 사단이 동고부(董?

部)족을 압박하여 얼어붙은 압록강을 넘도록 기도했던 것이다.

이에 조선은 남왜북로의 화(禍)에 전전긍긍하게 되었고, 나는 즉각 이를 권율 사단과 김천일 사단을 각각 평안도와 함경도로 진군시켜 동고부족을 토벌시키는 한편 전라도와 경상도의 왜구(?)는 이순신의 수군함대를 동원하여 토벌하도록 명했다.

이 과정에서 아무 것도 모르는 동고부족은 사냥 몰이에 쫓기고 쫓겨 충청도 내륙 깊숙이까지 쫓겨 일망타진되었고, 왜구로 가장한 해적들은 곧장 내륙으로 들어와 주로 토호나 양반가를 습격하여 재물을 약탈하다가 바닷가로 퇴각하였다.

이에 나는 내가 거느리고 있던 4개 사단을 아예 외적의 침입에 대비한다는 구실 하에 합법적으로 그 지방에 상주하게 했다. 전라도와 경상도는 이순신의 수군, 충청도에는 김천일 사단, 평안도와 항해도는 권율 사단, 함경도와 강원도는 올지 사단을 함흥에 머무르게 하는 동시에, 한양과 경기도는 운검 1사단이 책임지게 하여 전국을 내 군 휘하에 두었다.

그리고 나는 만인소에 참여하였던 유생들 전부를 체포케 하여 내가 신안위 때 주요 거점이었던 비금도 도초도 등의 섬으로 보내 천일염과 배를 만드는데 동원하도록 했다. 이에 성균관 유생들이 집단으로 반발하여 퇴거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일체 동요하지 않고 나의 뜻을 밀고 나갔다. 이런 강경책이 양반층에게서는 거센 반발을 불러왔지만 서얼들과 일반 백성들에게는 크게 환영을 받았다. 글을 모르는 일반 백성들이야 그렇다 쳐도 서얼들도 집단 상소를 통해 자신들의 뜻을 표출했다.

경기도, 호서, 호남, 영남, 해서, 관동 지방의 유생 9,996명이 연명하여 지금의 정책을 지지하며, 서얼(庶孼)을 차별 없이 관리로 임용해 줄 것을 집단 상소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나는 이들에게도 상소를 자제할 것을 언명하고 계속해서 양반 계층을 압박해나갔다.

때로 고위관료나 지방 수령들도 만인소를 올린 유생들과 동조하는 자가 발생하면 나는 즉각 이들을 체직시키고 이 개월의 교육 후 판관으로 파견되어 있던 만경당 출신으로 이를 대체하니, 한동안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구었던 개혁의 후 폭풍도 차츰 진정되어 나갔다.

여기에는 조보가 큰 역할을 했는데 양반층의 무능과 권력과 부의 독점을 비난하는 글이 매 회 실려 이들을 비판했다는 점이다. 이제 경향각지에 퍼져 이를 전문으로 읽어주는 기별서리나 보상들 또한 대개가 서얼이나 양인으로 사회의 약자라 더욱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이미 선조에 이어 어지로 발표된 개혁 정책은 꾸준히 밀고나가 제반 정책이 집행되는 가운에 훈련도감에서는 한양과 경기도 일원에 거주하는 정남 이상 25세 까지의 남자들 2개 사단이 징집되어 훈련을 받고 있었다.

지방은 훈련시설 부족으로 정규군은 징집되지 않고 우선 속오군만 조직되어 편제가 완료도니 전국적으로 30만의 지방군이 조직되었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선조가 끝내 고집을 꺾지 않자 조보에서는 매번 이상한 기사가 실리기 시작했다.

천하는 공물인데 어찌 일정한 주인이 있으랴 라는 천하공물설(天下公物說)과 누구를 섬기던 임금이 아니겠는가라는 하사비군론(何事非君論)은 물론, 선조가 여인들의 차마 폭에 둘러싸여 정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비난의 글이 매 회 실리고 있었다. 실제 이때 선조는 자신의 힘없음을 한탄하고 궁녀들과 연일 주지육림에 빠져 소일을 하고 있었다.

아무튼 이로 인하여 또 다시 온 나라가 시끌벅적한 가운데 위기의식을 느낀 선조가 끝내 자신의 뜻을 꺾고 이산해를 도승지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 경향각지로 배포되는 조보의 영향으로 일반 백성과 천민 서얼 층에서는 왕위를 교체해야 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는 점이었다.

무능한 왕을 폐위시키고 영의정 윤 흥이 왕위에 올라 조선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여론이었다. 이에 반해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왕의 폐위를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자들이 있으니 주로 식자층인 사대부들이었다.

이에 나는 한 가지 꾀를 내어 두 사람을 은밀히 나의 사랑채로 불러들였다. 곧 송익필과 정여립이었다. 송익필은 고경명과 함께 히라도에 머물고 있었는데, 나의 명에 의해 불러들여져 요즈음은 정구, 정여립과 함께 조보의 발행을 실질적으로 책임지고 운영하고 있었다.

아무튼 나는 그들에게 변형된 입헌군주제를 일러주고, 내가 곧 측근회의를 소집할 테니 이때 제기하라고 했다. 그러자 완전히 나의 측근 중에 측근이 된 송익필과 정여립은 두 말 않고 이를 승낙했다.

사전에 이런 조치를 취한 나는 다음날 저녁 나를 따르는 측근들은 물론, 정구와 송익필 정여립까지 불러들여 그들의 생각을 물었다. 여기에는 신임 도승지로 임명된 이산해는 물론 정육품 성균관 전적(典籍)이었다가 나의 의해 파격적으로 승진해, 실질적으로 성균관의 운영 책임을 맡고 있는 이원익(李元翼)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원익을 내가 발탁한 배경에는 이런 일화가 있었다. 유생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성균관을 떠나는 권당(捲堂)을 실시할 때, 권당에는 유생들만이 아니라 성균관 운영의 최고 책임자인 지사(知事) 이하 전 관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때 전적(典籍) 이원익만이 유일하게 남아 자신의 임무인 반출되었던 서적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에 상황을 살피러 갔던 나의 눈에 뜨여 파격으로 등용된 사람이었다. 아무튼 나는 이들을 비좁은 내가 거주하는 사랑채에 불러놓고 그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모인 면면들을 둘러보고 입을 열었다.

"주상이 다시 정무에 복귀한 것은 좋으나 또 사사건건 우리의 개혁정책과 충돌할 테니, 이를 어떻게 타개했으면 좋은지 좋은 의견이 있는 분은 말씀해 주시오."

나의 발언에도 모두 대안이 마땅치 않은지 말이 없는데, 불쑥 발언을 하는 자가 있으니, 사전에 나와 교감을 가진바 있던 송익필이었다. 다시 서얼로 강등되어 과거시험마저 볼 자격마저 없는 송익필은 맺힌 것이 많은 사람답게 대담한 발언을 쏟아냈다.

"영의정 대감께서는 별 것을 다 걱정하십니다 그려. 요즘 양반 이하 계층의 여론대로 스스로 왕위로 나아가시면 이런 저런 걱정을 하실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이에 대해 즉각 반대하는 자가 있으니 심의겸이었다.

"어찌 참람된 말을 함부로 입에 올린단 말이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시오."

한마디로 일축하고 굳게 입을 다무는 심의겸이었다. 이어 황윤길은 물론 심지어 이이, 유성룡, 정인홍 모두가 한마디 씩 나서서 질타를 하는데 송익필이 굴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꿋꿋이 피력했다.

"그럼, 이대로 또 허송세월이나 하던 지 아니면 예전의 체제로 복귀라도 하겠단 말이오?"

이의 물음에 그것은 싫은지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대부분의 내 측근들이었다.

"그렀다면 이것은 어떻겠소?"

모두 새로운 발언자의 목소리를 쫓으니 정여립이었다.

"입헌군주제로 군주의 권력이 법에 의해 제한을 받는 정치 체제요. 즉 군주는 국가의 상징적인 지배자일 뿐, 실질적 통치는 내각에 의해 이루어지는 통치 체지이지요."

"하하하.........! 거 절묘한 절충안이로다!"

송익필이 박장대소를 하며 이를 지지하는데 대부분의 측근들이 이에는 반대를 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었다.

"물론 형식적이나마 내각의 수반은 왕이 임명하는 것이고, 그 내각의 구성원에 대해서는 내각 수반이 조각을 하자는 말이지요."

"끙........! 그 방법도 일리가 있으나, 사대부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을 텐데요?"

김우옹의 발언에 송익필이 분노한 얼굴로 말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도대체 뭘 하자는 게요? 잘못하여 우리가 실권을 빼앗기기라도 한다면, 정권을 잡은 자들에 의해 여기에 참여한 사람들의 3족이 멸족당하는 것은 아마 순식간의 일일 것이요."

현실적 위협 앞에 내 측근들도 더 이상은 발언을 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으나, 그렇다고 이 방법을 좋아서가 아닌 것은 누가 보아도 확실해 보였다. 이쯤에서 정리할 필요성이 있어서 내가 발언에 나섰다.

"구봉의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정권을 내놓게 되면 역신으로 몰려 사돈의 팔촌까지 멸문지화를 면치 못할 것은 삼척동자도 알 일이요. 그렇다고 국정의 난맥상을 두고 볼 수도 없는 일이니, 정 주필(主筆)의 안대로 하는 방안이 현실에 가장 부합할 것 같소. 내일 회의석상에서는 일치단결하여 이를 주청하여 꼭 윤허를 얻어내고 맙시다. 누가 이에 대한 모두 발언을 하겠소."

"소직이 앞장서도록 하지요."

누구보다도 권력욕이 강한 정철이 총대를 메고 나서겠다고 자임했다.

"좋소! 그 문제는 송강이 책임지고 발언을 하도록 하오. 자, 오늘은 밤도 깊었으니 이쯤에서 파하고, 간단하게 술이나 한 잔씩 하고 헤어집시다."

"네, 영상대감!"

이렇게 되어 다음날 열린 어전회의에서는 이 문제가 논의 되었으나, 선조 균은 물론 구신들의 결사적인 반대로 소득이 없었다. 이에 나는 이 문제 또한 여론전으로 밀고 나가기로 하고 조보에 이런 사실들을 게재하기 시작했다.

즉 나는 변형된 입헌군주제를 조보에 서서히 흘리기 시작했다. 군주의 권력이 법에 의해 제한을 받는 정치 체제로 군주는 국가의 상징적인 지배자일 뿐, 실질적 통치는 내각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변형 안을 싣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는 전 백성들의 투표로 의원을 선출하고 다수당이 내각의 조각권을 가져야 하나, 신분제의 벽이 엄존하고 민도가 낮은 이 시점에서는 부적절하다고 보고, 왕위 찬탈의 한 단계 전 단계인 절충안을 게재하도록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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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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