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의 실질적 왕이 되다 -->
8
"그것은 주상전하의 말이 옳지 않은 것 같사옵니다. 개혁이라는 것은 할 때 확실히 해야지, 또 한 도를 시행한다고 미적거리다가는 그나마 행하던 개혁도 그 세월이 가면 시들해져 추진력을 잃을 것이옵니다. 하니 금번에 확실히 전국으로 확대 실시하는 것이 맞다고 소신은 판단하옵나이다."
"이 사람들이 작당을 했나? 오늘은 과인의 머리가 지끈거리니 이걸로 논의를 파하고 내일 다시 논합시다."
발끈해 용포를 떨치고 일어나는 선조를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이상은 없었다.
내심 결심을 더욱 굳히면서도 내가 추천해 의금부에 입성한 우찬성 황윤길, 좌참찬 정철, 우참찬 심의겸이 오늘따라 미워졌다. 지금까지 내가 선발해 이 자리에 앉혀놓았건만, 꾸어다 놓은 보리자루 마냥 회의석상에서 일언반구 말이 없는 그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들을 나의 편으로 확실히 끌어들이기 위해 점잖게 말을 걸었다.
"세 분은 잠시 나 좀 봅시다."
"무슨 일로........"
황윤길이 다가오며 주저주저 물었다.
"본 영상이 추천은 했지만 너무 격조한 것 같으니, 오늘은 저희 집으로 가서 막걸리나 한 잔씩 하면서 이야기 좀 나눕시다."
"그........ 그러지요."
"좋습니다!"
"........."
나의 말에 반응이 삼인삼색이었다. 황윤길이 주저주저 동의하는데, 정철은 호쾌하게 나왔고, 심의겸은 말이 없었다.
"갑시다!"
나의 말에 자의반 타의반 따라오는 세 사람이었다.
"세 사람을 더 끌어들여 아예 파당(派黨)을 만들 셈인가?"
정대년의 비아냥대는 말이 들려왔지만 나는 못들은 체하고 세 사람을 이끌고 집으로 향했다. 대거리 해봐야 더욱 감정만 상해, 앞으로의 일이 지장만 줄 것이 뻔했기 때문에, 모른 체 한 것이다. 그러자니 속에서 천불이 솟아올라왔지만 나는 내심 내 결심을 더욱 굳건히 하며 참았다.
어찌됐든 나의 청에 세 사람이 집으로 향하는데, 누가 선동을 했는지 내가 청하지 않아도 넉살좋게 내 뒤를 쫓는 나의 측근들이었다. 집으로 돌아오자 나는 오늘도 후원 나무 그늘 아래 주안상을 마련해 놓고 전부 둘러앉았다. 서먹서먹해 하는 세 사람이기에 내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요즘 나를 비롯한 각조의 판서들이 제안하는 개혁안이 세 분은 마음에 안 드시오?"
"개혁안이야 나무랄 데가 없지만 한꺼번에 너무 양반들을 몰아붙이는 것 같사옵니다. 개혁을 추진하되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좋겠다는 소직의 짧은 생각이옵니다."
황윤길의 답변에 나는 가타부타 말없이 다만 빙그레 웃는 얼굴로 이번에는 심의겸에게 의견을 구했다.
"황재(黃齋)는 어떻게 생각하오."
"황 대감과 같은 생각이옵니다."
"송강(松江)은?"
"저야 적극 찬성이옵니다."
"그런데 왜 입을 다물고 있지요?"
"분위기 파악 좀 하느라 관망을 하고 있었습니다만, 앞으로는 적극 나서겠습니다."
"좋습니다. 조금 전 두 분은 개혁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했는데, 그렇지 않으면 황하의 물이 맑아지기를 기다라는 것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고 나는 생각하는 바입니다. 내 여러분들을 초정한 본래 의도는 말을 안 해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하니 제 마음을 헤아리시고, 가급적 저의 사안에 적극 동참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만 하고 오늘은 술이나 즐깁시다."
"네, 영상대감!"
내가 일일이 각자의 잔에 술을 따라주고 건배의 술잔을 드니 모두 일제히 따라 마셨다. 이러면 되는 것이다. 정철 외에 흔쾌히 우리 일에 동조하지 않는 두 사람이지만 정대년이 보았으니, 벌써 이 사람은 내가 추천한 바도 있어, 나의 사람으로 낙인이 찍혔을 것이다.
나는 오늘은 이 정도로 만족하고 더 이상 이들의 태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 대신 나를 따르는 측근들에게 자신이 맡은 소관 업무가 아니더라도 옳다고 생각하면 더욱 발언에 참여하라고 독려하였다.
그날 저녁.
조보를 발행하는 정구 사제와 정여립이 나를 찾아왔다. 나는 사랑채에서 그들을 맞아 오늘 있었던 회의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고 누가 어떤 발언을 했는지까지 세세히 일러주었다. 이 내용이 내일 모레 발행이 될 조보에 상세히 실릴 것이다.
물론 설명 중에 피할 것은 피했지만 어찌됐든 조보의 내용도 서얼허통이라든가 군포론 대동법 등 모두 서얼과 양인들을 위한 내용이 많고 양반들에게는 부담을 많이 지우는 개혁안이니 조선사회의 약자들은 환호할 것이고, 양반들에게는 내가 미운 오리새끼 아니 죽일 놈이 될 것이다.
이런 내용을 좀 더 날카롭게 싣기 위해 나는 정여립을 정구에게 보내 함께 조보를 발행하도록 시켰다. 때가 되면 정여립이 더 큰 역할을 하겠지만 지금 현재로도 충분히 그의 역할은 할 것이기에 나는 그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다음날.
오늘도 의정부 관아에서 선조의 입회하에 회의가 속개되었다. 어제 이이가 제기한 대동법이 자동적으로 제1 안건으로 상정되어 아침부터 또 설전이 벌어졌다. 어제 나의 지시도 있고 해서 오늘은 육조판서가 전부 돌아가며 한마디씩 하는데다 이제 정철마저 가세를 하니 구신과 선조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함경도에서는 아전이 호피를 공물로 받치는 자들에게 미리 호피방석을 만들어 놓고, 이것 하나에 백미 70석 또는 면포 200필을 내라하는 실정이니, 이를 진상할 의무가 있는 포수가 그 아전을 쏘아 죽이는 일도 있었사옵니다. 제가 든 것은 그 일례에 지나지 않고, 이런 일이 전국적으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니, 아예 특산품을 바치는 공납제도를 폐지하고, 이를 전세로 전환해 토지가 많은 자들에게 더 부과를 하는 것은 어떻겠사옵니까? 조세 정의상은 이 방안이 더 합당하나, 이를 시행하면 대부분의 양반지주들의 더한 반발을 살 것이옵니다. 이로 비추어볼 때 대동법은 한걸음 양보한 안이오니, 이를 전국으로 확대 실시케 하여주옵소서! 전하!"
"통촉하여 주옵소서! 전하!"
화룡점정(畵龍點睛)으로 내가 이마를 찧어가며 읍소를 하니, 육조 판서는 물론 정철까지 가세하여 거듭 주청을 했다. 이를 본 선조가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마지못해 승낙해 대동법은 일단락되었다.
이 과정이 한참이 걸려 선조의 진을 빼놓았는지라 오늘도 이만 회의를 파하자고 해서 나는 다른 정무를 보았다.
그날 오후.
내가 퇴근을 하고 집에 가니 만경의 막내 흥부가 와 있었다.
"영상대감을 뵙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형님! 어머니는 무고하시고요?"
"건강은 하시나 연세가 연세이니 만큼 기력이 많이 떨어지셨습니다."
"하긴 벌써 칠순이 넘으셨으니........."
안타까운 마음에 한동안 내 눈이 침침해졌다.
분위기를 타파하고자 함인지 흥부가 내가 물었다.
"무슨 특별히 시키실 일이라도.........?"
"아, 네! 만경당 출신 중에서 학문에 조예가 깊고, 정치적 식견이 있는 자, 350명을 선발해 주세요."
"뭐 하시게요?"
"내가 상감에게 청해 권농관이라는 직제를 만들었는데 종5품의 외관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직제입니다. 현으로 내려가는 사람은 직제가 좀 낮아지겠지만, 아무튼 나는 이들에게 신 농정에 대한 자세한 교육을 시켜 각 고을에 파견할 예정이니, 이들에게 막내 형님께서 특별 교육을 시켜주세요. 신 농사법도 잘 아시지요?"
"그럼요. 매일 눈으로 보는 것이 그것인데요."
"장소가 문제가 됩니까?"
"아직 여름철이니 큰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사옵니다."
"그럼, 빠른 시일 내에 시행해서 내가 원하면 곧 각지로 파견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특히 우리 가문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하는 것을 잊지 마세요."
"저희들이 글에 눈을 뜨고 인간답게 사는 게 다 누구 덕인데 감히,,,,,,, 아니면 시골 농투성이로, 이름 석 자도 쓸 줄 모르고 농사나 짓고 있을 것을........"
"사람이라는 게 간사해놔서........ 그것이 다 제 잘난 줄 착각하는 사람도 있을 줄 모르니, 제 말대로 하세요."
"그야 이를 말입니까. 반드시 행해야죠."
"배로 만경으로 내려갈 것이죠?"
"네, 그렇사옵니다. 다른 무슨 시키실 일이라도."
"내가 지금 충무에 머물고 있는 이순신에게 작성해 놓은 서찰이 있습니다. 이것을 이순신에게 건네주면 그가 알아서 각각 내가 전하는 곳으로 전할 겁니다."
"알겠사옵니다. 영상대감!"
나는 곧 미리 작성해 놓은 서찰 세 통을 꺼내 흥부에게 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모처럼 술 한 잔 할까요?"
"저는 누구를 닮았는지 술을 별로 못하니 몇 잔만 마시도록 하겠사옵니다."
"그럼, 그렇게 하죠."
이렇게 해서 둘은 대작을 시작해 저녁나절 무렵에는 자리를 파했다.
그날 저녁 이경 무렵이었다.
흥부가 돌아가고 이일 저 일을 처리하다가 내가 막 잠자리를 보려는데 권율이 나를 찾아왔다. 궁궐을 점거하던 날 바쁜 와중에도 전령 편에 몇 통의 서신을 써 보낸 것이, 벌써 도착을 한 것이다.
"어서 오시오! 권 장군!"
"영상대감! 아직 나라에 큰 변란은 없는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큰 비바람이 몰려오기 전의 고요와 같은 상태라고 보면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렇군요. 북방은 이제 완전히 체계가 잡혀 안정적입니다. 다만 누르하치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졸지에 모두 변을 당하는 바람에, 누르하치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흐흠.........! 그가 거느리던 병력은 요?"
"원래 그를 따르던 친구들 외에 100명만을 더 데리고 갔습니다."
"뭐라고 하며 갑디까?"
"명나라에 원수를 갚기 위해 힘을 기른다고 했습니다."
"두고 보면 알겠지만 영리한 아이니 큰 세력을 일구어 우리 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이성량과 마찰을 피할 수밖에 없는 우리로서는, 그 혼자 움직여 소리 소문 없이 세력을 일구어 놓는 것도 좋겠지요."
"올지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올지야 우리 사람이 다 되었으니 순종적인데다 믿을 만하지요."
"권 장군과 김여물 사단 전체 또한 올지의 일부 병력이 움직여도 북방에는 큰 변고가 없겠지요?"
"당연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이 전사로 우리에게 징집되어 복무를 하고 있는데다, 우리의 대우에 만족하고 있으니, 등을 떠밀어도 소요는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잘 됐습니다. 여기 내가 앞으로의 계획을 적어 놓은 밀계가 있으니 이대로 행해주세요."
"알겠사옵니다. 영상대감!"
나는 앞으로 북방의 사단장들이 취할 계책은 물론, 정탁의 움직임까지 소상히 미리 적어놓은 종이를, 비단주머니에 넣어 권율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농담 삼아 지나가는 말로 권율에게 물었다.
"내가 영상이 된 것은 어찌 아셨소?"
"조선 팔도에 발을 디디면 삼척동자도 알 일을 제가 모른 데서야 말이 되겠습니까?"
"하하하.........! 그렇소? 모처럼 만인데 술 한 잔 하고 푹 쉬었다가 내일 돌아가는 것으로 합시다."
"네, 영상대감!"
그렇게 시작된 술자리가 삼경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우리는 곧 자리를 파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오늘도 선조가 임어한 가운데 의정부 관아에서 회의가 열렸다. 오늘은 예조판서 김우옹이 우리가 사전에 논의한 대로 전국 현 단위 이상에 구관은 이름도 생소한 3년제 '초등학교(初等學校)'를 신설하여 양인 이상을 신식 학문과 함께 의무적으로 가르치자는 제안을 했다.
이에 구관들 모두가 본능적으로 반대를 했다. 본능적으로 위기의식을 느낀 모양이었다. 반대의 명분은 지방의 향교만 해도 충분하고, 현재의 재정으로는 도저히 이를 감당할 만한 재원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내가 점차 증대되는 세수로 차례로 이를 개설하자고 해도 유지부동이었다. 양인들이 본격적으로 배출되어 나오면, 자신들의 신분이 흔들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 것이다. 지금이야 배운 게 없어 제 이름 석자도 쓸 줄 모르니, 그저 땅이나 열심히 파고 있지만, 이들이 깨쳐 집단화 되는 날에는, 자신들이 향유하고 있던 모든 것들이 하나 둘 날아가, 종당에는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도래하리라는 것을, 이들 또한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되니 이제는 토론이 아니라 연일 상대방을 비난하는 설전만 오가는 해괴한 싸움장이 되었다. 선조 또한 이 사안만큼은 절대 양보하려 들지 않았다. 조선을 떠받치는 근본인 신분제가 흔들리며 왕권마저 위태롭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여기서 막혀 개혁이 지지부진해지는 가운데 결정적으로 내가 선조의 역린(逆鱗)을 건드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
.. /작가의 말/..................................
죄송합니다!
^^
잠이 덜 깼나 실수가 거듭되네요!
^^
그래도 후원해 주심이 진심으로 감사드리고요!
^^
늘 행복한 날 되세요!
^^
이전글: 조선의 실질적 왕이 되다
다음글: 조선의 실질적 왕이 되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