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의 실질적 왕이 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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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같이 의정부 주관회의가 열리면 당연직으로 참석하는 의정부 예하 관원이 있는데, 정4품 사인(舍人) 2명과 정5품 검상(檢詳) 1명, 그리고 정8품 사록(司錄)1명이 그들이었다. 그런데 나와 시선이 마주친 자는 그 중에서도 가장 품계가 낮은 정팔품 사록(司祿)이었다.
나와 비슷한 연배로 체격이 늠름하고 두 눈에 총기가 가득한 것이 예산 인물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내심 이 자가 누구인가 알아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선조 균에게 회의를 일찍 파할 것을 건의하였다.
다들 또 어느 무거운 주제가 나올까 근심하던 차였으므로 선조 균부터 흔쾌히 허락하여 그 길로 오늘 회의는 파장을 맞이하였다. 모두 누가 잡기라도 할까봐 그러는지 재빨리 사정전을 벗어나는 구신들을 바라보며 나는 천천히 그 사록 곁으로 가 물었다.
"그대는 누구 인가?"
"전라도 진안 출신 정여립(鄭汝立)이라 하옵니다."
"뭐?"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는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영상대감!"
나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정여립이 조금은 위축된 음성으로 물었다.
"아, 아니오. 나와 고향이 가까운 출신의 인재를 여기서 만날 줄은 몰라서 너무 기뻐 그런 것이오."
나의 대충 둘러대는 말이 딴에는 답이 되었던지 정여립이 공손하게 물었다.
"제가 알기로 영상대감마님의 고향이 만경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맞는지요?"
"그렇소. 그래서 내가 반가워했던 것이오. 모처럼 고향의 마음에 드는 인재를 만난 듯하니,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내 집으로 가 탁배기라도 한 잔 합시다."
"소직은 아직 업무가 끝나지 않은 관계로........"
나는 정여립의 말에 주변을 둘러보니, 정여립을 기다리느라 아직 가지 못하고 대전 입구에 서있는, 정사품 사인 중 하나를 손짓과 동시에 말로 불렀다.
"잠시 이리와 보시오."
"네, 영상대감!"
"알고 보니 이 사람이 나랑 동향 사람이오. 해서 내 반가운 마음에 우리 집에 가서 술 한 잔 하려하니 오늘의 업무는 이것으로 끝나게 해주는 것이 어떻겠소?"
"여부가 있사옵니까? 어느 분의 말씀이라고 소직이 거역 하오리까. 편하신 대로 하옵소서."
그의 말마따나 감히 누구의 말이라고 거역을 할 것인가. 당금의 임금보다도 더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무소불위의 막강한 실력을 행사하는 나의 말을, 일개 사인이 거절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교만하게 비치지 않기 위해 그에게 깍듯이 인사를 건네고 정여립을 사정전에서 이끌고 나왔다.
"고맙소. 갑시다!"
"네, 영상대감마님!"
가면서 내가 물었다.
"나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데 올해 나이가 몇 이오?"
"올해 갓 서른이 되었습니다."
"그럼 나보다 한 살 어리군."
"하니 말씀 낮추시옵소서. 제가 오히려 더 불편하옵니다."
"그럼, 그럴까?"
"네!"
"좋소! 지금부터 말을 낮추기로 하지. 언제 등과를 했지?"
"5년 전 식년시 을과에 두 번째 성적으로 급제하였사옵니다."
"그런데도 아직 정8품인가?"
"조정에 아는 사람이 없다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긴 역사적으로 보면 정여립은 이이와 성혼과의 교제를 트고 나서, 이들의 지지와 후원으로 일정 시점까지 출세가도를 달린다. 그러나 원 역사와는 달리 이이와 성혼을 내가 데리고 있었으니, 그가 미관말직에서 헤매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할 것이다.
아무튼 나는 그와 함께 퇴청하여 후원에서 주안상을 마주하고 앉았다. 후원에는 내 경호 병력을 전부 배치하여 일체의 잡인을 엄금한 상태였다.
나의 권유로 빠르게 둘은 술을 마셔나갔다. 술이 대여섯 순배 돌자 정여립이 조금은 취하는지 혈색 좋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영상대감의 하시는 양을 보면 기존 양반층에게는 날카로운 칼을 들이대고, 조선의 하층민이라 할 수 있는 서얼과 양인 거기에 천인마저 윤택하게 하고자 애쓰시는 것 같사옵니다."
"그러니까 매일 고성이 오가고 격론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겠나?"
"소직이 헤아려 봤을 때 너무 양반들을 옥죄는 것 같사옵니다. 이러다가는 전 양반계층이 폭발하여 분연히 일어서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
"하하하.........!"
느닷없이 대소를 터트리는 정여립이었다.
"무엄하다!"
나의 호통에도 정여립은 가가대소를 멈추지 않고 아니 더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더니 정색한 얼굴로 말했다.
"하하하.........! 소직의 행동이 무엄합니까? 소직이 볼 때는 영상대감이야말로 조정에서 보았을 때는 무엄하다 못해, 왕촉(王蠾)과 유하혜(柳下惠)의 글귀를 떠올리게 하니, 더 위험한 분이 아닌가 하옵니다."
"무슨 말이지?"
일시 그가 말하는 바를 몰라 되물었다.
"왕촉(王蠾)이 남긴 글 중에 천하공물설(天下公物說)이라는 것이 있사옵니다. 즉
'천하는 공물인데 어찌 일정한 주인이 있으랴!'
하는 말과, 맹자가 성지화자(聖之和者)라고 칭찬한 유하혜(柳下惠)의 글 중에,
'누구를 섬기던 임금이 아니겠는가?'
라는 하사비군론(何事非君論)을, 영상의 하는 말과 행동에서 떠올리게 하니, 과연 누가 더 위험하옵니까?"
"방자하다! 네가 그 말을 입에 담고 살아남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냐?"
나의 내심을 숨기기라도 하듯 나는 즉각 그에게 호통을 내질렀지만, 내심은 뜨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인이 잘못 생각하였습니다. 영상대감마님!"
급히 내 앞에 부복하는 정여립을 보니, 정말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소인은 이제 죽은 목숨이옵나이다. 하니 영상대감의 뜻대로 써주십시오. 집을 지키는 개라도 좋고, 때로 영상대감의 앞길을 헤쳐 나가는 날카로운 붓끝이 되어도 좋습니다."
"말 한 번 잘했다. 내일 당장 사직하고 내 측근에 머물러라! 아니면 죽여 입을 봉해야 할 것이야!"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명을 거역 하오리까! 대감마님의 분부 받잡겠사옵나이다."
"됐다. 그만 일어나 거라!"
"네, 대감마님!"
"자, 내 잔 한 잔 받거라!"
"감사하옵나이다. 대감마님!"
정여립에게 내가 술을 한 잔 따르며 물었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행동하면 좋겠느냐?"
"지금과 같이 역대 어느 누구도 행하지 못한 개혁을 줄기차게 밀고 나가야 될 것으로 사료되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백성들의 지지는 탄탄할 것이오나, 양반들은 폭동에 버금갈 소요를 일으킬 것입니다. 그때는 과감히 한 줌밖에 안 되는 무리들을 반짝 들어 들어내야 할 것입니다. 이는 말은 쉬우나 조선의 신분질서를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것이므로, 종국에는 주상과도 척을 지는 행동인 바, 양단간에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오지 않을까 사료되어집니다. 그러자면 이를 뒷받침할 군사력이 있어야 되는데, 소인이 가정 걱정하는 바가 이 부분이옵나이다."
"군사력에 대해서는 걱정할 것 없다. 지금 한양 성중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의 다섯 배가 있음이야."
"헤헤헤........! 그 정도라면 소인도 오늘부터 두 발 쭉 뻗고 잠을 자도 되겠사옵니다. 하옵고, 미리 어린아이의 선양에 대비한 국왕 취임사라도 준비해 놓을 깝쇼?"
"그 방자한 주둥이를......... 말이 너무 앞서나간다."
"헤헤헤.........! 이놈의 주둥이가........!"
자신의 입술을 찰싹찰싹 때리는 정여립을 보고 나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묘한 표정으로 그를 주시하다가, 이놈을 그냥 놓아두면 큰일이 날 것 같다는 생각에 내가 말했다.
"앞으로 네 신변 보호를 위해 네 명의 호위군사가 따를 것이니 그런 줄 알아라."
"제 신분이 많이 격상되었나보군요."
너스레를 떨지만 15세 때 익산 군수인 제 아비를 대신하여 일을 처리할 때는, 아전들이 군수보다도 더 어려워했다는 일화가 있고, 두뇌 또한 누구보다 명석하여 경서는 물론 제자백가에 두루 능통했다는 그이고 보면, 내 의도를 너무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제 내 앞에서만은 돌려 말하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그 이튿날.
나는 정여립이 직접 작성한 사직서를 품에 넣고 의정부 관아로 출근했다. 의정부 관아는 광화문 동쪽 첫 번째에 자리 잡고 있었다.
왕궁을 중심으로 좌우로 육조가 있었는데, 광화문의 동쪽 첫째 관아가 의정부(議政府)였고, 다음으로 이조, 한성부, 호조, 기로소가 위치하고 있었다. 그 서쪽에는 예조, 중추부, 사헌부, 병조, 형조, 공조 및 의영고와 사역원 순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오늘은 의정부에서 선조 균의 입시 하에 회의가 열리게 되어 있어 나는 미리 출근해 있는 사인에게 정여립의 사직서를 처리하라고 주는데 많이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낯이 익은데 아직 통성명을 못한 관계로........."
"영상대감, 소직 이산해(李山海)라 하옵니다."
"아, 어려서부터 명필로 소문나 경복궁 대액(大額)까지 썼다는 분 아니오?"
"과찬의 말씀이옵니다."
"올해 몇 이지요?"
"서른일곱이옵니다."
"그렇군요. 출세가 비교적 빠른 편이군요."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정여립이 나와 대화를 나누다보니 뜻한바가 있어 사직을 원하니 처리해주시오."
나는 말과 함께 품에서 사직원을 내밀었다.
"영상대감께서 허락하오시면 되지........"
"기술적으로 처리해달란 말이오."
"알겠사옵니다."
"언젠가 술이나 한 잔 합시다."
"감사하옵니다. 영상대감!"
이때였다. 김 내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상전하 납시오!"
선조 균을 따라 도승지 오건이 뒤를 따라 들어왔다. 첫날 나를 외면한 후로 내가 사적으로 술자리에 청해도 응하지 않는 그였다. 비록 사적으로는 사형이지만 내심 괘씸한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뒷배를 봐주어 지금까지 커왔는데, 지금에 와서 선조 균과 밀착하여 나를 배척하는 느낌에 매우 서운했던 것이다.
나 또한 뒤끝이라면 만만치 않은 놈이다. 그렇게 나온다면 내 선조 균에게 말해 저를 자를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말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내 자리로 가서 착석했다.
"오늘은 어느 부서의 보고요?"
거두절미하고 묻는 말에 호조판서 이이가 발언을 시작했다.
"소신이 살피건데 벌써 십여 성상이 넘게 흘렀는데도 대동수납법이 아직도 경기도 일원에만 실시되고 있다는 것은 너무 백성들의 질고를 외면한 탓 아니올 런지요. 소신은 이를 당장 내일부터라도 전국적으로 확대 실시할 것을 건의하는 바입니다."
"왜 그 제안이 안 나오는가 했소."
좌찬성 정대년이 비릿한 조소와 함께 말을 했다. 내가 열이 받쳐 소리를 질렀다.
"무슨 말이 그러하오!"
"지난번 군포론도 그렇잖습니까. 영상대감! 그것이 원래는 양반을 제외한 양인들에게 군역을 지우는 대신 이를 군역으로 때우는 자 외에, 봉족(奉足)에게 베 2필을 납부하여 군역을 지는 자들의 뒷바라지를 하자는 의도에서 출발했던 것을, 이제 와서 그것이 무너졌고 오군영까지 창설한다고 하여, 양반까지 2필을 납부하는 것으로 양보했으면 됐지, 이마저도 전국적으로 확대실시하자는 것은, 양반 계층이나 이에 관여하는 관리들을 아예 전부 적으로 돌리자는 발상 아니냔 말이오. 이렇게 되면 양반들의 전국적인 저항에 부딪쳐 지금까지 우리가 하기로 의결한 개혁마저도 물거품이 될 소지가 다분하단 말이오. 제 의견을 영상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좌찬성의 말씀도 일리가 있으나, 조선 사회의 제일 수혜 계층이 누구냐를 생각한다면 그 말이야말로 어불성설이 아닌가 하오. 양민들은 이 말고도 수많은 역과 세금을 지고 하루 두 끼도 못 먹어 허덕이는데, 그 고장에 나지 않는 특산물을 쌀이나 베 아니면 돈으로 내라는 제도마저 못 들어준단 말이오. 이를 반대한다는 것은 이를 통해 수혜를 받고 있는 일부 양반과 관리 또한 이를 취급하는 방납업자들에게 뇌물을 받고 있는 고위관료들을 비호하자는 말과 무엇이 다릅니까? 하실 말씀이 있으면 해보시오!"
"끙..........! 어쨌거나 양반들을 옥죄는 제도를 한꺼번에 너무 쏟아내는 것은, 양반 계층의 저항을 불러 하나도 좋을 것이 없어 드리는 말씀이었소."
"지금까지의 개혁이 실패하거나 지지부진한 것은 너무 양반 계층의 이익과 눈치를 보았기 때문에, 오늘날 이런 문제가 야기된 것 아니오. 그러니 이번 기회에 좀 더 조선의 모든 권리를 향유하는 양반 계층이, 좀 더 자신의 가진 것을 내놓아야만 사회가 안정되고, 탄탄한 기반 위에서 국부도 증가할 것임을 명심하시고, 법을 뜯어고치는데 함께 머리를 맞대봅시다."
"과인이 보건데 영상의 취지는 좋으나 갑자기 사대부들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안겨주는 제도가 하루가 멀다고 쏟아져 나오는 것 같소. 해서 과인은 우선 경상이나 전라 양도 중에서 한 도만 더 실시하는 타협안을 제시하는 바이오. 경들의 의견은 어떠하오?"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전하!"
"부당합니다. 전하!"
모두 찬성을 하는데 나만 반대자를 하자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그럼, 영상은 도대체 어쩌자는 게요?"
"또 한 도를 실시하고 십년을 끈다면 그 안에 지친 백성들이 폭도로 변할지도 모를 너무 느린 개혁이옵니다. 전하!"
"말이라면 다 말인 줄 아오. 폭동은 무슨........? 이런 태평성대에 폭동은 무슨 폭동을 일으킨단 말이오. 아무리 영상이라지만 말이 너무 지나친 것 같소."
선조까지 심히 화를 내며 말하자 금방 대처가 막막해진 내가 뜨악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 이이가 머리를 찧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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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죄, 죄송합니다!
^^
고맙고 감사합니다!
^^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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