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의 실질적 왕이 되다 -->
3
'이게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인가?'
"국사의 의사결정이 그렇게 늦어서야 무슨 일을 행하겠소?"
"나는 끝까지 의빈을 믿었고, 중신들은 역모 죄로 다스리라고 주장을 굽히지 않는 바람에........"
"전하의 믿음이 결코 배반당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조선의 장래를 위해 간섭은 좀 해야겠습니다."
왕의 자리를 노리지는 않지만, 결코 다른 것은 돌아볼 여지가 없다는 나의 단호한 의지를 전한 것이다.
"의빈! 오늘은 밤이 너무 깊었으니, 내일 다시 논합시다."
"제가 밤새 번을 서지요."
결코 호락호락 물러가지 않겠다는 나의 말에 선조 균의 안색은 더욱 창백해졌다.
"어쩌자는 거요?"
"나를 역적으로 몬 중신들을 전부 처단해야겠소이다."
"그것은 안 될 말이오. 그들 역시 충신이오."
"전하께옵서는 단지 지켜보기만 하세요. 그렇다고 사대부의 씨를 말리지는 않을 테니까요."
내 말이 이렇게 극단적으로 치닫자 오한이 드는지 선조 균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나는 이를 모른 체하고 딴전을 쳤다.
"과인이 보위를 물러나지."
강수에 강수로 응수해오는 선조 균이었다.
"그것은 안 될 말 이옵고, 다만 저는 저를 역신으로 몬 자들만 벌하고자 하올 뿐이오."
"전 조정의 대신들이 다 그러한데, 그들을 전부 벌하겠단 말이오."
"그렇다면 다 물갈이를 해야지요."
태연한 나의 답변에 할 말을 잊은 듯 멍하니 천정을 바라보는 선조 균이었다.
나 또한 말로는 선조 균의 하야를 바라지 않는 다고 했지만, '신(臣)'이니 어쩌고 하는 말을 의도적으로 입 밖에 내지 않아, 선조 균을 더욱 압박하였다.
어느새 사정전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실내에는 나와 나의 호위대장인 임 선달 그리고 선조 균만이 대치해 있었다. 이에 더욱 불안한지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눈을 굴리는 선조 균이었다.
"보료에 앉으시지요, 전하!"
그동안 나도 너무 흥분해 있었음을 깨닫고 내 의도대로 끌고 가기 위해 공손히 말했다. 나의 말에도 이리 저리 서성이던 균이 마침내 무엇을 결심했는지 보료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의빈이 나를 도와주면 조선이 반석위에 앉을 것임을 과인이 속으로는 무수히 생각했으나, 나라의 법도가 그런지라........ 이렇게 된 이상 나라의 법도를 파격적으로 깨고, 그대를 영의정에 기용하고 싶은데, 의빈은 뜻은 어떠하오?"
"이 또한 중신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겠지요. 해서 신의 생각으로는 이참에 대폭적인 물갈이를 해야 할 것 같사옵니다. 나라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참신한 인사들로 조각을 하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그런 인재들이 어디 그렇게 많소?"
"제 주변에는 많이 쌓였습니다."
이 말에 흠칫하는 선조 균이었다. 내 진정한 의도를 간파한 듯했다.
나 또한 이 시점에는 신(臣)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 시점에서 선조를 바로 하야시키고, 내가 집권한다는 것은 조선에 존재하는 사대부의 존재, 1/3이상은 들어내야 한다는 결론이라, 일점 시점 경과기간을 두고자 하는 것이다.
"그럼, 의빈은 애초부터 그런 마음을 품었던 것이오?"
내가 무장과 문관들을 달라고 요청할 때부터 그런 마음을 먹었느냐고 묻고 있는 균이었다.
"신의 의도는 명백했습니다. 근본적으로 위협이 되는 북방을 안정시키고, 그곳을 내 의지대로 발전시키고자 한 것뿐이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신안 위 때부터 이상한 점이 많았지........"
혼자 중얼거리듯 말하는 균의 말은 내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이 나라는 이미 썩을 대로 썩어 대 수술이 필요하옵니다. 이 나라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고자 한다면, 개혁적인 인사들을 제 주변의 포진시킬 수밖에 없사옵니다. 윤허하여주십시오. 전하!"
"의빈의 말은 그르오. 개혁적인 인사만을 등용하고자 하면 단지 그들을 체직시키기만 하면 되지만, 역모로 몰았다고 처벌하면 그 집안이 거덜 나는 차이점이 있소."
"단지 신은 그들을 유배시켜 정사에 관여하지 않게 하고 싶었을 따름이옵니다."
"향리로 보내도 정사에는 관여하지 못할 것 아니오."
"그게 그렇지가 않사옵니다. 그 자들이 평소의 신망을 이용하여 주변을 들쑤시면 상소가 산을 이루어 정무가 마비될 것이옵니다."
"흐흠.......! 그럴 수도 있겠군."
"단지 유배 보내는 것으로 끝내는 것으로 과인에게 약속을 해주오."
선조 균은 벌써 말하는 모양새가 자신은 이제 주도권을 잃은 한갓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아고 있는 것 같았다.
"일단은 그렇게 하겠사옵니다."
"흐흠........! 그들이 경거망동을 하면 더 한 벌을 주겠다는 말이로군."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릴 뿐, 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좋소! 의빈이 그들에게 더 이상 벌을 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약조하면, 과인은 내일 아침 조회석상에서 관례를 깨고 파격적으로 의빈을 영의정으로 임명하겠다고 발표를 하겠소. 또한 아울러 조각권도 의빈에게 일임하겠소. 어떻소?"
선조 균은 그들에게 일말의 희망을 걸고 있는지, 끈질기게 그들을 비호하려들고 있었다. 나 또한 이 시점에서 그들이 어떻게 행동할지는 예단할 수 없었으므로 양보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도록 하겠사옵니다. 전하!"
"좋소! 일단은 여기까지 논의하고, 시각이 야심하니 이만 물러가도록 하오."
"알겠사옵니다. 전하!"
나는 곧 사정전을 물러났다. 그러나 호위병들에 의한 포위는 풀지 않았다. 아니 더욱 엄중한 포위망이 구축되었다. 궐내를 단속하러 같던 호위병들이 임무를 마치고 속속 귀대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날이 밝았다.
밤새 한숨도 못잔 나는 다시 대전으로 들어, 충혈 된 눈으로 미음을 그냥 내보내는 선조 균을 바라보며 말했다.
"전하! 그러 하오시면 옥체가 상하시옵니다."
병 주고 약 주느냐는 듯이 말없이 나를 노려보던 균이 툭 쏘아붙였다.
"그대 같으면 수라가 입에 넘어가겠소?"
밤새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만만치 않게 나오는 균이었다.
"그럴수록 잡수셔야지요."
나는 안색하나 변하지 않고 능글맞은 웃음으로 주워섬겼다. 확실히 내가 전과 많이 달라졌음을 인지한 균의 얼굴이 무참히 일그러졌다.
'나를 떠보기 위함이었던가?'
당금 19세로 어느덧 당당한 청년 티가 나는 선조 균의 은근한 저항에, 나 또한 목숨을 내건 혁명에 착수한 상태라, 이제는 호락호락 물러설 수가 없었다. 한 마디로 호랑이 등에 탄 상태라, 마음대로 뛰어내리고 자시고 할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김 내관을 좀 들여보내 주시오."
상선 김 내관마저 연금되어 보이지 않으니 내게 청을 넣는 선조 균이었다.
"무엇 하시게요?"
"승정원에 일러 아침 조회를 열어야 하지 않겠소?"
"그 보다, 사대궁문이 점거되었으니, 그들을 들여보내라는 신의 명이 먼저 있어야겠지요."
"하긴........"
참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선조 균이었다. 밤새 내게 전해온 바에 따르면 광화문 앞에는 밤새 난 대포소리와 총소리로 인해, 중신들은 물론 일반백성마저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이에 일반 백성들은 해산시키고 달려온 중신과 일반 관료들만 근정전 뜰에 연금을 시켜놓은 상태라 했다. 내가 이를 보고 안했으니, 그들이 궁성 밖에 있는지, 안에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선조 균이었다.
"이럴 때 대비마마라도 계셨으면........"
혼자 중얼거리는 선조 균이 오늘따라 더욱 외로워보였다. 대비 심 씨는 금년 1월 2일 창경궁(昌慶宮) 통명전(通明殿) 에서 돌아가시고 안계셨다. 그래서 나라는 지금 국상 기간이었다. 나 또한 그 모습을 보니 갑자기 3년 전에 세상을 떠난 스승 남명 선생이 그리워졌다.
나는 균의 말을 못 들은 체하며 시립하고 서있는 임 호위대장에게 명했다.
"승정원에 명해 도승지를 들라고 하시오."
"네, 의빈마마!"
눈칫밥을 많이 먹더니 '주군'이라 하지 않고, 의빈이라 칭하여 선조의 사시(斜視)를 피해가는 임 선달이었다. 잠시 후 도승지가 들어왔는데, 뜻밖에도 오 건 사형이었다. 아는지 모르는지 일체 나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고, 선조 균에게 허리를 굽히는 오건이었다.
"불러계시옵니까? 주상 전하!"
"진 시 정에 조회를 열고자 하오."
"알겠사옵니다. 전하!"
곧바로 돌아서는 오건을 내가 불러 세웠다.
"사형!"
그러나 모른 체하고 기어이 밖으로 나가는 오건이었다. 나의 행동을 매우 못마땅해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쓸쓸히 웃은 내가 다시 임 선달에게 명해, 전 대신들을 진 시 정에 근정전으로 집결시키도록 했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정전에서 모든 것을 논의하고 싶은 나의 바람이었다. 대충 시간을 헤아려보니 이각은 아직 시간 여유가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곧 밖에 있는 호위병에게 일러 세면 물을 떠오도록 했다.
일단 밖으로 나온 나는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 오늘 따라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오늘도 무척 더울 모양이었다. 나는 곧 호위병이 떠온 물로 간단하게 세면을 하고 옷을 단정히 여몄다. 그리고 마음을 정갈하게 가다듬었다.
나는 곧 문방사우를 가져오게 하여 차분한 마음으로 내각 명단을 작성하려 할 때였다. 어디서 밤을 새웠는지 연길도에서 나와 함께 고락을 함께 했던 문관들이 몰려들었다. 이항복, 이덕형, 성혼, 김우옹, 이이, 정인홍, 유성룡, 김효원 등이 그들이었다.
나의 하는 양을 보고 무엇을 하려했는지 짐작을 한 율곡이 내게 말했다.
"우리를 벌주자거나 반대하는 무리들을 징치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용서하시고, 누구나 우리의 개혁에 동참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우군으로 삼아야 합니다."
유성룡 또한 충혈 된 눈으로 나에게 말했다.
"제 생각도 동일합니다. 모든 사람을 용서하시고 개혁을 하시되, 너무 몰아붙이지 말고 천천히 하셔야합니다. 급히 먹는 밥에 체한다 하지 않았습니까."
"동감입니다."
정인홍마저 유성룡의 말에 찬동하였다.
"흐흠........!"
나는 이들의 말을 듣고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들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대부분의 사대부들이 우리의 행적을 비난할 텐데, 그들을 벌주기로 한다면 정말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종내는 이들을 벌주는데 정력을 다 소비하고, 인재의 기근에 시달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일단 우리의 개혁에 동참할 인재를 가급적 많이 포섭하기로 하고, 반대론자들도 심하지 않으면 모두 용서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정 심한 자들은 본보기라도 단호하게 처벌을 할 필요성이 있었다.
모든 생각을 굳히자 나는 이항복을 불러 근정전 내에 모여 있을 대신들 중에서 삼정승만 남기고 다른 대신들은 모두 밖에 대기하도록 조치했다. 모든 대신들을 다 불러들여봐야 왈가왈부 말만 많고 조회도 제대로 진행될 것 같지 않아서였다.
이때 선조 균이 생각보다 일찍 나타났다. 그래서 나는 인사에 대한 생각은 추이를 보아가며 결정하기로 하고 이들과 함께 균을 맞았다.
"신들이 주상전하를 뵈옵니다."
"이역만리 변방에서 고생들이 많았다."
선조가 나타나자 일제히 부복하여 문안을 드리는 내가 거느리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나는 이를 보고 내가 왕위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이들부터 먼저 설득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이들이 그동안 나를 따라 수많은 개혁을 실현하고 백성들을 윤탁하게 하고자 동고동락 했지만, 내가 역성혁명을 일으켜 왕위에 오른다는 것은 별개 문제였다. 아무래도 이들 또한 성리학과 봉건체제에 익숙한 사람들이므로, 거의 대대수가 찬성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앞장을 섰다.
"가시지요, 전하!"
그런 내 앞에 어느새 나타났는지 임 선달이 일단의 호위병을 거느리고 앞장을 섰다. 이에 나는 신색을 회복하고 의젓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선조 균을 모시고 나는 근정전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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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고맙고 감사합니다!
^^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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