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박인생-95화 (95/141)

<-- 해동성국을 꿈꾸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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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보다도 그대들 집을 먼저 지었소."

나는 그녀들의 추궁이 두려워 선수를 쳤다.

"아녀자의 도리 때문에 먼저 연통을 못했사오나 항상 바람소리, 지는 낙엽소리에도 귀가 쫑긋 했사옵니다."

김 씨 아내의 연심에 말재주는 없지만 동감이라는 듯 공주와 윤 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장부란 때로 무심할 때가 있소. 많은 사람들이 나만 바라보고 있으니, 외면하기 힘들었소."

"알아요. 그러니까 이날 이때까지 참고 살지요."

"엉? 지금 무슨 소리요? 아니면 이혼이라도 하자는 게요?"

"이혼은 가당치도 않은 소리고, 임금이 승하하면 모시던 사람이 절에 들어가듯, 조용히 스며들어야죠."

공주의 공세에 이번에는 김 씨 아내와 윤 연이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단체로 협박하는 아내들에게, 이때부터 나는 겉으로는 한 발 숙이는 체 했지만, 내심은 앙앙불락. 오늘 밤에 보자고 벼르고 있었다.

* * *

오늘밤 나는 순례자가 되었다. 모처럼 만의 해후에 세 사람을 돌아가며 안았다. 비로소 어머니 생각이 났다. 이래서 품안의 자식이요, 다 쓸데가 없다는 말을 듣는 모양이었다. 스치는 바람에 나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거기 유독 빛나는 별이 하나 있었다. 발광(發光)하는 별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어머니의 눈물이 보이는 것 같아 고개를 떨구었다. 나는 괜시리 발치의 솟아난 돌을 걷어찼다. 발만 아팠다.

집도 없는 나는 고개를 떨구고 관청으로 쓰는 곳으로 향했다. 어머니를 생각하니 나는 아내들을 끼고 자기가 송구스러웠다. 호위들이 숨 죽여 나를 따랐다.

* * *

다음날 아침.

공주의 집에 모여 우리는 모두 함께 아침 식사를 했다. 그리고 나는 관청으로 출근을 했다. 때가 되자 관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나는 그들의 인사를 건성으로 받으며 문안 작업을 계속해 나갔다.

[고두하옵고 아뢰옵나이다.

모든 것이 부족한 가운데에서도 하나 하나 이루어 가는 제미가 있사옵니다. 하나 신의 손으로도 어찌 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어, 붓을 들었사옵니다. 겨울이면 바다가 얼어 외부로부터의 지원이 모두 끊긴다는 것입니다.

즉 항구 문제가 그곳이옵니다. 이를 소신이 아직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오나, 이곳에서 오래 산 사람들의 일치된 증언이었사옵니다. 미리 준비하지 않고 이 일을 당하면 지도자의 도리가 아닌 듯하여 청하옵나이다.

예전 태조대왕께서 '영길도(永吉導)'라 하셨으나, 태종 대왕께서 함길도로 개명(改名)한 이래, 소신은 함경도의 연원이 되는 이 말을 그리워했사옵니다. 하여 회복된 고토(古土)를 영길도(永吉導)로 개명하고 싶사옵니다. 그러자면 영길도의 연원이 되는 영흥(永興)과 길주(吉州)가 이 땅에 마땅히 포함되어야 된다고, 소신은 생각하고 있사옵니다.

엎드려 고두 하옵고 다시 한 번 청하옵건데......... ]

여기서 나는 문맥이 막혀 붓을 들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먹물이 뚝뚝 떨어져 지금까지 써놓은 것을 다 버렸다. 그날 오후였다. 나는 오전에 잡은 초안을 기준으로 다시 정서를 하여, 흥정 편에 주상께 받치도록 했다.

한 달 후에 선조 균의 비답(批答)이 돌아왔다.

[......... 그리워하는 것은 좋으나, 정도껏 그리워하라. 길주(吉州) 위의 땅만 그리워하되, 소란스러운 동북 면을 책임져라. 하여 그대의 봉지(封地)로 길주를 포함하되, 작명은 알아서 하라.......... ]

약간 뿔난 듯한 선조 균의 비답이었지만, 나는 즐겁기만 했다.

길주(吉州)가 어디에 있는 도시인가?

지금의 청진(淸津) 밑 김책(金策) 옛 이름 성진(城津) 바로 위의 도시가 길주이다. 당연히 청진항과 지금의 나선(羅先)항이 내 봉작 령에 포함되었다. 그 바람에 나는 부동항 문제를 해결했을 뿐만 아니라, 이 부근에서 날뛰는 여진족들을 징치할 명분을 얻었다.

참고로 영흥(永興)은 지금의 함흥(咸興)과 원산(元山)의 사이에 있는 도시로 길주의 훨씬 남쪽이다.

나는 한 번 더 상소를 올려 확실한 비답(批答)을 받았다. 길주(吉州) 이북의 땅을 나의 봉지(封地)로 할양 받기로 한 것이다. 봉지는 봉작 령과 다르게 조세권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영토 내에서는 내가 모든 것을 경영할 수 있었다.

그 대가로 나는 내가 새로 개척한 땅 전체를 조선 영토에 포함시켜야 했다. 즉 현 조선 팔도에 하나의 도(道)가 추가되어, 조선은 이제 팔도가 아닌 구도(九道)가 되었다. 도명은 연길도(沿吉道)였다. 연해주(沿海州)에서 연(沿)을 취하고 상감이 길주(吉州)를 내려주신 것에 감사하여 길(吉) 자를 더했다.

봉지의 경계는 길주(吉州)에서 북서로 우리나라 지도상에서 보면 두만강 유역의 북 꺼진 부분인 혜산(惠山) 위의 땅 전부가 내 봉지가 되었다. 그 대가로 내가 조선에 두 가지 시혜를 베풀어 주었다.

인천에서 한양까지 증기기관차를 개통시켜 주기로 한 것이 그 하나요, 다른 하나는 우리의 소금 제조가 끊겨 천정부지로 솟구치는 소금제법을 선조 균에게 일러 준 것이다. 이로 인해 백성들이 계속해서 싼 소금을 사먹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경인선에 증기기관차를 개통시켜주면 조선 최초 아니 세계 최초의 화통기차의 출현에 전 조선 백성이 환호할 것이고, 자긍심을 가질 것이다. 그래서 봉지로 할양하는 문제에 대해 지금도 상소를 올리며 지랄을 떠는 자들의 입을 봉할 것이다.

또 하나 저가 소금 제조로 인해 종친부가 타격을 받겠지만 이제는 더 많은 백성들이 저렴한 소금을 공급받아 그만큼 돈을 덜 쓰니, 그 비용을 다른 유용한 곳에 가용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것은 나중의 일이고 나는 새로 받은 봉지의 설계에 여념이 없었다. 연항(블라디보스토크)의 준설이 이제 막 끝났다. 이것은 이것대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어차피 연해주를 경영하려면 가까운 항구는 꼭 필요한 것이고, 얼지 않을 때는 계속해서 이용하면 된다.

항구가 얼면 조선(造船) 즉 배를 짓는데도 곤란을 받는다. 그래서 나는 아예 청진(淸津)에 조선소를 만들기로 하고, 모든 조선공들이 이곳으로 이주시킬 계획이었다. 또 봉지 내의 지하자원도 개발을 해야 했다.

아시아 최대를 자랑하는 무산(茂山) 노천 철광을 개발할 것이고,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나오는 유연탄인 갈탄을 생산할 수 있는 아오지탄광(阿吾地炭坑)도 개발할 것이다. 우리나라 지도의 끝자락에 위치한 지금의 은덕군, 당시로서는 경흥군 아오지 현에 소재한 아오지 탄광을 말이다.

아오지(阿吾地)라는 말은 여진어로 '불타는 돌'이라는 뜻으로, 이곳의 매장량은 1억5천만 톤으로 단일 탄광으로는 조선 제일이었다, 열량 또한 어느 탄전 보다 높았다. 현재 조선에서 채취할 수 있는 탄의 평균 열량이 6,000kcal 인데 비해, 아오지의 갈탄은 7,000kcal나 되어 액화를 하면 석유를 추출할 수도 있었다.

또 길주 명천에 이르는 함북 탄전지대도 개발할 것이다. 일단 이 정도의 계획만 가지고 추진한다 해도 노동력이 절대부족이었다. 그래서 나는 결정했다. 아예 몽고처럼 민족을 신분제로 차등을 시키기로. 그래 내가 세우려는 제국이 내 대로 끝난다 해도 좋다.

빠른 시간 내에 동아시아를 아우르는 제국 건설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이 신분제뿐만 아니라 무리수도 두기로 했다. 조선인만이 유일한 일등국민이요. 이등은 나의 형제국인 여진족이다. 삼등은 명나라 백성 즉 한족이다. 4등은 가장 싸기지 없는 일본 즉 왜놈들이다. 양이, 몽고, 아프리카인도 삼등국민이다. 그러나 몽고만은 정책적으로 추후 다시 한 번 생각할 예정이다.

아, 또 하나 빠진 집단이 있다. 아이누족도 2등 국민이다. 이 연장선상에서 나는 아프리카 노예를 사오는 한편 왜놈들도 납치해오기로 했다. 당연히 절대부족인 노동력을 충원하기 위해서였다.

그 방편으로 나는 김여물이 이끄는 1개 대대 중 2개 중대 350 명을 왜국에 파견하기로 했다. 일단은 소문이 나봐야 좋을 것이 없으므로 일본의 전 해상을 돌며 약탈을 행하고, 그곳의 주민들 모두를 몽땅 잡아오는 것이다.

생각이 나면 실행하는 것이 나의 장기 아닌가. 나는 즉시 김여물을 불러 2개 중대와 함께 1개 전단을 출동시켜 약탈과 납치를 해오도록 했다. 일석삼조다. 약탈로 부족한 세원을 메우고, 납치로 노동력을 해결하고, 나의 복수심을 해소하는 것이다.

김여물이 출동하자 나는 곧 다른 일에 착수했다. 누르하치가 제안한 기병정찰대의 창설이 그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전 지휘관을 불러들여 가장 말을 능숙하게 다루는 자들을 토해내도록 했다.

그래서 나는 여진족 350, 조선인 350을 뽑아 기병정찰대 4개 중대 즉 1개 대대를 창설했다. 나는 이들을 평소 사방(四方)에 배치하여 내 봉지 내 백성들의 안전을 도모코자 했다. 급한 것이 대충 마무리 되자 나는 곽재우를 별도로 불러들여, 교외로 나갔다.

나를 수행한 자들을 멀찌감치 따라오게 한 나는 그에게 물었다.

"스승님을 모실 수는 없을까?"

"원체 명리에 담백한 분이라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겠지?"

그의 대답을 듣자고 물은 것이 아니었다. 중얼거리듯 힘없이 물은 내가 다른 질문을 했다.

"이곳에 보아서 알 수 있듯이 인재가 많지 않더냐? 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우물 안의 개구리였습니다. 오기를 잘 왔다고 생각합니다. 오기 전까지는 세상에서 제가 제일 잘난 줄 알았습니다. 와서 많은 영걸들을 보노라니 절로 투쟁심이 끓고 배움에 힘쓰게 됩니다."

"옳은 자세다. 오늘 내가 특별히 시간을 내어 부른 것은 이를 깨우쳐주기 위함이었으나, 스스로 자각하고 있다니 되었다."

"감사합니다. 의빈마마이기 전에 제 사형이라는 게 자랑스럽고 고맙습니다. 더 배우고 익혀서 누가 되는 사제는 결코 되지 않겠습니다."

"고맙다. 기대하겠다. 나에게 특별히 청할 것은 없느냐?"

"현재로서는 없습니다. 오직 배움의 시간이 부족하나 이는 시간이 해결해 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다."

나는 이 순간만은 순수한 사형으로서 그의 등을 두드려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나는 곧 곽재우를 돌려보내고 이번에는 이 항복을 내 곁으로 불렀다.

"불러계시옵니까?"

"생활하는데 어디 불편한 것은 없는가?"

"불편한 것이 좀 있지만 모두 그러하니 입으로 말할 게재는 아닌가 합니다."

"흐흠.......! 그렇군."

갑자기 내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왜 아직 약관에도 이르지 않은 자네를 선발했다고 생각하나?"

"저도 그 이유를 몰라 지금도 어리둥절합니다."

"장차 나라의 큰 기둥이 될 것 같아서 이네."

"그것을 어찌 아십니까?"

조선의 역사를 알고 있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대답이 곤궁해진 내가 얼른 둘러대었다.

"내가 미래를 투시하는 능력이 있다고 하면 믿을 수 있겠나?"

"전적으로는 아니지만 일부는 믿습니다."

"왜?"

"발해 위님께서 발명해 놓은 것을 보고서죠."

"그렇군.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오늘 특별히 자네에게 시간을 내는 것은, 앞으로 더욱 분발하여 확실한 나라의 동량이 되어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라네."

"의빈마마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고맙네!"

"오히려 제가 고맙지요."

이렇게 해서 이항복을 보낸 나는 한음 이덕형도 불러 똑같은 말을 했다.

'더욱 분발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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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지금까지 후원해주신 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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