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동성국을 꿈꾸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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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개호로 유입되는 지천이 많은 곳으로 자연스럽게 샛강과 내가 많아, 곳곳에 습지대가 산재하고, 또한 발달한 평원에는 이를 잘 이용해 터전을 일군다면, 사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배치되어도 무난한 땅이었다.
나는 곧 호위병들과 함께 말을 달려 그곳으로 향했다. 하루를 중간에서 묵었다. 그리고 이튿날은 아침 일찍 출발하여 말을 달린 결과, 정오 쯤 우리 일행은 흥개호 변을 따라 달릴 수 있었다.
호수의 얼음이 모두 녹아내린 홍개호 주변은 풍부한 물고기와 플랑크톤으로 이름조차 제대로 모르는 수없는 새떼들이, 봄을 맞아 경유지 또는 이곳에 살기위해 모여드니, 정말로 장관을 이루었다.
그 중 백학들의 군무들을 바라보며 질주하기 어언 한 시진. 마침내 우리는 서쪽 첫 경작마을의 정착촌 건설 현장을 볼 수 있었다. 3진으로 도착하여 얼마 안 되었는지라 배정받은 자신의 땅에다 집을 짓느라 가족마다 굉장히 분주했다.
어느 집은 기술이 부족한 것인지 남자들이 제대로 없는 것인지, 이제 땅을 다지는 집이 있는 곳이 있는가 하면, 어느 집은 벌써 기초 아궁이 공사에서 방을 들일 공간까지 확보한 집도 있었다.
나는 그런 집중에서 어느 한 집을 눈여겨보았다. 나의 출현에 모두 인사를 하는 등 소동을 벌였지만 대충 인사를 받고, 내 눈은 집들이 표준 설계대로 짓는 지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권장하고 있는 표준설계도는 이러 했다. 북방식 가옥의 전형대로 아궁이가 있으면 그 위에 정주간이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정주간은 현대식 개념으로 말하면 아파트에서 거실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아궁이와 문 하나가 있어 직접 드나드는 것이 가능하고, 온 가족이 모두 모여 즐길 수 있는 제법 넓은 거실인 정주간을 지나면, 복도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두 개씩, 총 4개의 방이 배치되는 구조였다.
식구가 많아 이것도 부족하면 이 방식대로 기억 자 또는 디귿 자로 지으면 될 일이었다. 또 하나 남방 가옥과 다른 점은 겹 벽이라는 것이었다. 즉 현대식 개념을 도입해 바깥벽이 있고, 반자 정도의 사이를 두고 안벽이 있어, 이곳의 길고 매서운 추위에 대비토록 한 것이다.
그리고 나중을 대비해 아궁에는 일정한 레일이 깔려 화덕을 넣을 수 있는 구조로 했고, 벽난로도 설치할 수 있는 구조로 집을 짓게 했다. 거기에 창문은 채광을 위하여 기존 북방가옥의 없는 듯한 구조보다는 이중창을 설치하여, 어느 정도 보온은 유지하면서도 실내를 밝게 하여 위생도 유지하도록 했다.
나는 위의 사항을 떠올리며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확인하니, 모두 표준설계대로 건축을 하고 있어 안심이 되었다. 이곳에 온 김에 잠시 마을 백성들과 간담회를 갖고 그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한 나는 곧 그곳을 떠났다.
* * *
그렇게 한 달이 흐른 후였다.
북방에도 여름을 맞아 녹음이 우거지고, 제법 더위를 느낄 무렵 이곳을 떠났던 누르하치가 돌아왔다.
그가 돌아오는 행렬은 곧 가축의 대이동과 함께였다. 300여 가구로 추산되는 이들이 저마다 돌보는 말과 양떼를 몰고 빠오(겔)를 실은 채 왔다. 그는 돌아오자마자 운검을 찾았으나 운검이 없자 나를 찾아왔다.
"탈 없이 잘 돌아왔구나."
"제가 어린애입니까? 저도 이제 한 몫 하는 성인입니다."
"내 눈에는 아직도 어린애인데?"
"그런 말씀 마십시오. 의빈마마! 저도 이젠 타 컸단 말입니다."
"허허, 그렇다 치고, 가족도 함께 돌아왔느냐?"
"웬걸요. 할아버지 때부터 명나라 놈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으니, 제법 살만하죠. 그러니까 이곳으로 이사할 이유가 없단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아무리 입이 닳도록 권유를 해도 우리 가족은 한 사람도 안 왔습니다."
"서운하겠구나."
"할 수 없죠, 뭐."
"몇 가족이나 온 것이냐?"
"삼백 가족이 좀 넘습니다.
"그들의 살 자리를 제공해야 할 텐데......... 이렇게 하면 어떻겠느냐?"
"어떻게요?"
누르하치가 잔뜩 기대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16세에서 40세의 남자라면 전부 우리 군의 정찰병으로 받아드릴 테니, 군에 종사하고 위(尉)의 녹봉을 받는 것이다."
"이곳에 온 사람들은 전부가 가축이 얼마 안 되어, 우리의 일족 중에서도 못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나머지 사람들이 가축을 기르게 하고, 장정들은 군인이 된다면 훨씬 생활에 도움이 되겠네요."
"그렇지?"
"대신 청이 있습니다."
"뭔데?"
"50세까지 나이를 연장해 주십시오. 정찰 정도는 전부 해낼 수 있습니다."
"정찰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정찰 과정에서 다툼이 있을 수 있으니, 기본적인 훈련은 다 받아야 된다."
"그렇다면 우리 종족만으로 정찰병을 꾸릴게 아니라, 기존의 조선족 중에서도 승마에 능한 자들로 정찰대를 꾸리면, 훨씬 규모도 커지고 조금 부족한 사람도 조선군의 가세로 묻어가지 않을까요?"
'그놈 참, 영리하네! 하긴 저 정도 되니 전 여진을 통일하고 궁극적으로 명을 삼키는 토대를 마련했겠지.'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내심의 생각을 얼른 지운 내가 대답했다.
"네 말대로 그렇게 하도록 하자."
"야호~! 감사합니다! 의빈마마!"
좋아서 펄쩍 뛰던 누르하치가 실례를 깨닫고 얼른 내게 인사를 했다.
"얼른 이 기쁜 소식을........"
"잠깐!"
"네!"
막 자리를 떠나려는 누르하치를 불러 세운 나였다.
"무예는 어느 정도 익혔느냐?"
"기본은 익혔습니다."
"그렇다 라.........? 그렇다면 너는 오늘부터 내 호위병이 되어라. 물론 중간 중간에 운검 사부를 찾아가 무예 익히는 것도 게을리 하지 말고."
"네, 좋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청이 더 있는데요?"
"말하라!"
"제 친구가 이번에 14명 함께 왔거든요. 승마에 아주 능하고 활도 명사수들이예요. 그들도 함께 의빈마마의 호위대에 들어가면 안 될까요?"
"일단은 데려와 봐라. 내 눈에 들면 허락할 테고, 아니면 정찰조에 포함시킬 것이다."
"알겠습니다. 의빈마마! 이제는 가도 되지요?"
"그래. 다녀와라!"
"야호~!"
환호하며 달려 나가는 누르하치였다.
나는 그런 그를 보며 빙그레 웃고 있었다.
채 반 시진도 지나지 않아서 누르하치는 친구라는 14명의 소년들을 데리고 왔다. 제일 어린 사람은 열세 살에서부터 많은 사람은 열여섯 살까지 또래의 소년들이었다. 나는 그들을 데리고 아직 다 갖추어지지 않은 연무장으로 갔다.
당연하게 임 선달을 비롯한 호위들이 따랐다. 곽재우는 물론 약포 정탁을 비롯한 세 명의 문관도 따랐다. 관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연무장이 있어 우리는 걸었고, 누르하치를 포함한 열다섯 명의 여진 전사(?)들은 말을 탔다. 그들이 탄 말 박자 소리만 일정한 간격으로 울려 퍼지는 가운데 우리는 어느덧 연무장에 도착했다.
나는 시선을 들어 전방을 바라보았다. 바람에 누운 이름 모를 풀들을 지나 멀리 자연스럽게 솟아난 전나무, 가문비나무, 회녹색 사시나무 사이로 볏짚으로 만든 인형들이 보였다.
"시작해라!"
나의 명에
'야호!'
누르하치가 무슨 아프리카 원시인들이 지르는 깃 같은 기성을 지르자, 15명의 전사들이 일제히 말에 채찍을 가해 달려 나갔다. 말의 속도가 점점 빨라져 나중에는 눈으로 쫓기도 바쁜 쯤에, 그들의 묘기 시연이 시작되었다.
질주하는 말 위에서 눕고, 거꾸로 매달려 달리는가 싶더니, 어느덧 배 밑으로 스며들었다. 다시 말 등으로 솟아오른 그들이 더욱 박차를 가해 달렸다. 상체를 꼿꼿이 세운 그들의 손에는 어느덧 활이 들려있었고 말은 더욱 빨리 질주를 했다.
"야호!"
누르하치의 기성이 신호가 되어 이들은 자연스럽게 나무 사이로 스며들었고 일제히 시위를 놓았다. 나타났다 숨었다하는 표적 인형들이 가슴에 화살 한 대씩을 맞고 부르르 떨었다. 휘돌아 다시 풀밭으로 나온 그들의 손에는 창이 쥐어져 있었다.
마상에서 휘두르고 찌르고 배 밑으로 숨으며 이들의 숨 가쁜 질주는 계속되었다.
"참으로 신기(神技)로군요!"
여간해서는 남을 칭찬할 줄 모르는 약포의 말을 받아, 이항복이 말했다.
"말 위에서 먹고 잔다더니 그 말이 사실인 모양입니다. 참으로 재주들이 신묘합니다. 신묘해!"
"나라도 어렸을 때부터 말만 가지고 놀았으면 저 정도는 가볍게 할 것 같소."
이들의 칭찬에 질투라도 하듯 곽재우가 말했다.
"그래서 종족의 습성이 무서운 것이죠."
점잖게 반박하는 한음이었다. 임 선달은 다만 빙긋 웃음을 띤 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어떤가? 호위대장!"
나의 물음에 별 것 아니라는 듯 임 선달이 가볍게 대답했다.
"쓸 만합니다."
"호위대로 부려도 되겠는가?"
"쓸데가 있겠죠."
"알았소!"
나는 아직도 빙글빙글 돌아가며 속사를 하고 있는 그들을 호령해 멈추게 했다.
"그만!"
나의 명에 질주하던 말들이 한 동작인 듯 일제히 멎었다. 조선말이라도 알아듣는 듯 신기한 동작이었다.
"어때요? 의빈마마!"
"합격이다!"
"우와~!"
누르하치가 창대를 치켜들어 환호를 하자, 한 동작 늦게 여진 전사들이 활을 든 채 두 손을 번쩍 치켜 올렸다.
무척 좋아하는 그들을 보며 나는 이 시점에서 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았다. 조선어를 익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격술도 익혀야 했다.
"누르하치!"
"네, 의빈마마!"
"빠른 시일 내에 모두 조선어를 익히도록 하고, 총을 한 자루씩 지급해 줄 테니, 사격술도 익히도록 해라!"
"감사하옵니다. 의빈마마!"
누르하치가 기뻐하며 동료들 속에 묻히자, 약포 정탁이 말했다.
"발해 위님! 일정 기간 동안은 총의 지급을 늦추는 것이 좋겠습니다.
무슨 뜻이냐는 듯 내가 시선을 들었다.
"누가 뭐래도 저들은 충성심이 검증이 안 된 이족들입니다."
"흐흠........!"
잠시 생각하던 내가 답했다.
"명나라를 창업하신 태조 주원장께서도 한동안은 항복한 적들로만 호위대를 구성한 적이 있소."
"그때 태조는 절체절명의 위기였습니다."
지지 않고 반박하는 약포였다.
"한 번 뱉은 말을 철회할 수는 없소. 신뢰의 문제요."
"고집을 세우실 일이 아닙니다."
약포의 말에 곽재우가 중제 안을 내놓았다.
"지급을 하되 일정 시점까지는 신변에 가까이 들이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이 말을 임 선달이 조용히 받았다.
"제가 책임을 지고 시행하겠습니다."
나는 대답 없이 눈을 들어 먼 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누르하치는 예외요."
"알고 있습니다."
연무장을 빠져나가는 호위대들의 발걸음이 조급해졌다. 오늘부터 밤새워 말을 달릴 그들의 모습이 눈앞에 훤했다.
그날 오후였다.
그리워하던 가족들이 왔다.
나는 정무를 팽개치고 달려 나가 그들을 맞았다.
"어서 오오. 부인들!"
"쳇, 무심한 양반!"
가장 오랫동안 나와 살을 섞은 김 씨 아내가 푸념하듯 뱉었다.
"보고 싶었습니다. 의빈마마!"
"그리웠습니다. 서방님!"
공주와 윤 연의 말에 나는 두 사람도 내 품으로 끌어들였다. 그러나 내 품은 그렇게 넓지 못했다. 양보라도 하듯 먼저 안겨있던 김 씨 아내가 자세를 낮추어 빠져나갔다.
나는 손을 뻗쳐 그녀가 멀리 도망가지 못하게 하고, 모두를 아직 나무향내 나는 집으로 이끌었다. 나를 포함한 세 부인이 공주의 집으로 내정된 곳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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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
늘 즐겁고 유쾌한 날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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