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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인생-92화 (9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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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제대로 된 항구를 준설하고, 그곳에 새로운 조선소를 건설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군사적 조치도 단행하여 김천일을 유구로 보내 그곳을 지키도록 했다. 단 권율을 이곳으로 불러들이되, 유구에는 500명의 군사만 남겨 김천일의 지휘를 받도록 했다,

그렇게 되니 우리 군 1만 중 해외에 나가 있는 군사는 총 4천5백 명으로 북해도에 운봉이 2천 명을 데리고 북해도 전체는 물론 사할린을 개척하고 있고, 일본 남쪽에 운곡과 고경명이 각각 1천의 군사를 운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500명은 김천일의 지휘 아래 유구를 사수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 발해 위에는 총 5천5백 명의 기존 군이 주둔하게 되었는데, 나는 이들을 각각 새롭게 편제해 블라디보스토크에 1개 여단을 파견하고, 그 여단장에 김여물을 임명했다. 김여물이 누구 인고 하니, 탄금대 전투에서 신립의 종사관 겸 조방장으로 참여한 사람으로, 탄금대 포진을 애초부터 반대했으나, 결국 패하자 이 전투에서 전사한 사람이었다.

내가 이 사람을 알게 된 것은 특별하다. 전생에서 내 어릴 적 고향이 충주였으므로 어릴 때는 물론 훗날에도 탄금대에 가끔 놀러갔는데, 그 곳에 가면 이 탄금대에 얽힌 이야기가 적혀 있는 안내문이 있다.

그곳에 적인 인물이 신립 외에도 김여물과 이종장인데, 이들의 활약상보다도 이름이 특이해서 기억하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여물은 아시는 바와 같이 소의 먹이를 이르는 말이고, 종장은 끝장인지, 막장인지, 기억하기 쉬운 이름이라 기억된 인물이라 나에게 선택된 경우였다.

아무튼 나는 김여물에게 1개 대대 700명을 떼어주고 블라디보스토크를 사수하도록 했다. 그리고 흥정을 위시한 해상무역에 이순신을 여단장으로 하되, 자원배분이 안 되는 관계로 1개 대대 700명을 떼어주며, 이억기를 예비 대대장으로 훈련시킬 것을 주문했다. 말단 병으로 배치하여 서서히 키우도록 한 것이다.

또 귀환하는 권율을 여단장으로 임명하여 그 밑에 이종장과 김시민을 배치했는데, 이종장은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으로 근무했던 사람이므로 권율 휘하 1대대장으로 봉해, 700명을 인솔하고 우리의 제일 북쪽 즉 야인 여진과의 경계를 지키도록 했다.

또한 권율에게 김시민을 맡겨 장차 장재로 키우도록 했다. 나머지 내 호위병을 제외한 3,300명 중 3개 대대 2100명을 운검에게 배정하여, 여단장 직책과 함께 누르하치를 예비 대대장으로 키우도록 했다.

또 나머지 채 2개 대대가 안 되는 병력은 권율 여단장 휘하에 두고, 이 종장 밑의 중부 지역을 담당하도록 했다. 운검의 지역은 흥개호 서부와 호월호 그리고 새로 임시 도읍으로 조성되는 우스리스크 위쪽 지방 방위를 맡도록 했다.

그리고 신립과 이일에게는 각각 기존 조선 백성들에서 차출된 신병 1개 여단 3,500명을 맡기고, 또한 각각 대대장 급으로 최경회와 박광옥을 함께 하도록 했다. 이 두 사람은 김천일의 예하에서 같이 의병 활동을 한 사람으로, 나이가 40대가 넘었으므로 훈련 담당을 시킨 것이다.

또 곽재우는 임 선달 휘하 나의 부관으로 근무케 했다. 이렇게 대충 틀을 짰으나, 정말 부족한 것이 너무 많았다. 그 중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은 쌀의 운반이었다. 기존 조선 백성들에게서 일부 융통할 수는 있으나,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항상 만경의 우리 창고에 저장되어 있는 쌀 10만 석 외에도, 일본에서 들여온 은으로 쌀을 매입케 한 바 있다. 그런데 은의 시세가 같은 한 냥이라도, 조선은 최소 두 배 이상의 구매력이 있어, 같은 은으로 두 배의 쌀을 살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확보한 쌀을 흥정에게 실어 나르게 했는데 이것이 여간 큰 문제가 아니었다.

별수없이 수없이 왕복하는 외에는 달리 길이 없으므로 올 가을에 수확이 될 때까지는 흥정이 좀 고생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흥정에게는 일단 이곳에서 부족한 의식주와 관계된 것과 생필품부터 구매하도록 했다. 조선에 없으면 일본이나 명나라에서라도 꼭 구해서 대도록 했다. 이런 가운데 나는 문신들에 대한 직제와 직책도 챙겨야 했기 때문에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다.

집이 지어지면 바로 올 봄의 농사를 위해 최대한 땅을 개간하여 기존의 조선족들에게 벼 씨앗을 받아 뿌리도록 하고, 우리는 그들에게 감자나 옥수수 등 신 작물을 주도록 했다. 이렇게 군조직과 행정조직을 갖추다보니 자연스럽게 기존 농사를 짓고 있던 조선 백성들도 파악이 되었는데, 근 7만의 인구가 새로 유입되어 새로운 군 자원을 선발하니, 7천 명의 장정이 선발되었다. 2개 여단을 이룰 수 있는 규모가 된 것이다.

나는 이들을 안정이 되는 대로 신병교육대를 꾸려 그곳에 입소시킬 예정이었다. 그러나 저러나 나는 이렇게 많은 조선 백성들이 살고 있었는데, 선발대는 이에 대해 제대로된 보고가 없었다는 점이 이상했다.

그래서 그들을 불러 추궁한 결과 이 흥개호 밑에도 그 십분의 일쯤 되는 호수가 있었는데, 그들은 이곳 위주로 답사를 하고 왔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곳에도 이런 추세라면 조선 백성이 모여 살 가능성이 농후하므로 이에 대한 추궁을 하니, 개간을 해 농사를 지은 흔적은 무척 많았으나, 조사 당시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다는 답변이었다.

이들이 거짓말을 할 리는 없고 해서 나 혼자 추측 건데 장백 여진의 약탈이 심해, 야인 여진과의 중간지대인 이곳 즉 흥개호 부근으로 집단이주를 하지 않았나 생각했다. 확인 차 기존 이곳의 조선 백성들을 붙들고 물어보니 나의 추측이 맞았다.

이곳으로 집단으로 이주해 기존의 세력과 합치고 더욱 개간지를 넓히면서 자경단도 조직해 가끔 출현하는 여진족의 약탈에 대항하며 생존을 해왔다는 것이다. 때로 그들의 기동력에 일부가 피해를 보기는 했지만, 못살 정도는 아니어서 계속해서 이곳에서 터전을 잡고 살았다는 것이다.

아무튼 4월이 되자 선발대로 차례로 이주한 신안위 백성들이 차츰 안정화 되자 나는 2진 5만을 또 불러들여 더 위 북쪽에 터전을 잡도록 했다. 그리고 또 한 달 보름 만에 나머지 3진 5만을 불러들였는데, 이때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흥개호 남쪽에서 시작해 동쪽을 돌아 계속 북으로 이어지던 흑토지대의 평원을 이들에게는 더 이상 제공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궁여지책으로 최초의 선발 탐사대가 보았다는 호월호(胡月湖) 주변에 1만5천, 흥개호 서쪽 평원 내지는 습지대에 1만5천을 배정하고, 나머지 2만은 대부분이 조선공들이었으므로 블라디보스토크를 개척하도록 했다.

나는 고심 끝에 각 도(道)의 최고위 직인 관찰사에 준한 인사를 편성하기로 하고 각각 다음과 같이 임명하였다. 품계는 종5품으로, 관찰사와 함께 지방을 순력하고 규찰하는 임무를 담당하는 도사(都事)에는 약포(藥圃) 정탁(鄭琢)을 임명하였다.

솔직히 내가 선조에게 청을 넣을 때도 그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다만 그에 대해서 알고 있던 상식으로 그의 호가 멋있으며,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위기에 처했을 때 적극 그를 변호한 사실은 알고 있어, 멋있는 사람으로 판단해 청을 넣었던 것이다.

그러나 벌써 나이가 47세까지 되었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는 경사(經史), 천문, 지리, 상수(象數), 병법 등 다방면에 능통한 인물로, 임진왜란 때 이순신(李舜臣), 곽재우(郭再祐), 김덕령(金德齡) 등을 천거했으며, 이순신이 옥에 갇혔을 때에는 극력 신구(伸救)하여 죽음을 면하게 한 사람이기도 했다.

다음으로 나는 나이 어린 이항복과 이덕형에 대해서도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종구품으로 최하 말단직이지만 관찰사와 함께 법률을 검토하는 역할의 검율(檢律)에 이항복을 임명하고, 종구품(從九品)으로 궁중에 바치는 약재(藥材)를 조사하기 위하여 각도에 파견하던 잡직(雜職)인 심약(審藥)에 이덕형을 임명했다.

이는 실제 그 임무보다는 이제 17세로 한참 더 성장할 그들을 측근에 두고, 비서마냥 부리며 훗날의 더 큰 인재로 만들기 위한 고육책이기도 했다. 아무튼 나는 다음으로 지방관아 마냥 육조(六曹)를 두어 각 분야의 일을 맡겼다. 해서 문관들의 직책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면 아래와 같았다.

도사(都事):정탁

검율(檢律):이항복

심약(審藥):이덕형

이조(吏曹:성혼

호조(戶曹):이이

예조(禮曹):김우옹

병조(兵曹):정인홍

형조(刑曹):김효원

공조(工曹):유성룡 등이었다.

나는 육조 중에서도 제일 중요시 하는 것은 세금 문제와 관련이 있는 호조와 병조 그리고 공조였다. 이이와 유성룡이야 더 설명이 필요 없는 인재이니 말할 것도 없고, 병조에 정인홍을 임명한 것은 임란 때의 의병장 역할도 했기 때문에 병법과 병사(兵事)에도 잘 알리라 판단해 임명한 것이다.

대충 얼개를 짜놓고 나니 잠깐의 짬이 나 나는 뒤를 돌아볼 기회가 생겼다. 그러자 가장 생각나는 것은 나도 인간인 이상 가족이었다. 그래서 나는 만경에 있는 세 부인을 전부 이곳으로 초치할 생각을 했다.

어머니도 모시고 싶지만 이곳이 춥기도 하고 고향을 떠나려 하시지 않을 것 같지만, 일단 내 의사는 전하기로 하고, 다시 조선으로 가는 흥정 편에 부탁을 했다. 가족까지 챙기자 조금 더 마음의 여유가 생긴 나는 전 문관들을 소집해 회의를 열었다.

지금의 우수리스크 약간 북방에 위치한 발해 위의 행정 군사의 중심 도시는 이제 막 건설을 하는 단계라 어수선하기만 했다. 관청이라야 임시로 통나무를 대충 얽고 천을 씌운 조악한 상태지만 넓이는 제법 넓었다.

채광을 위해 창문을 크게 낸 덕에 안은 미세입자도 보일 정도로 밝았다. 그 안에서 우리는 큰 통나무를 반절 뚝 잘라 만든 조악한 책상에서 업무 회의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참석인원은 전 문관과 군무(軍務)의 비서관 격인 곽재우까지 참석하니 총 10명 이었다.

호위대장 임 선달은 이런 데는 흥미가 없어서 백여 명의 호위들과 함께 밖에서 번을 서고 있었다. 나는 따뜻한 양광을 받으며 좌중을 한 번 휘둘러보고 입을 떼었다.

"모든 걸 새롭게 시작하려니 아직도 어수선하지만 여러분들의 마음마저 어수선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기 모인 여러분들이야 말로, 발해 위 내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22만 백성들의 실질적인 지도자임을 명심하고, 말은 물론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조심을 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말을 끊고 한 번 더 장내를 살핀 나의 말이 이어졌다.

"지금까지는 주거 안정을 위주로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느라 제대로 업무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오늘부터는 정상적인 업무에 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제일 먼저 각 조의 업무 분장을 새롭게 하겠습니다. 먼저 도사 직에 대해서 이야기 하겠습니다."

이렇게 운을 뗀 나는 약포 정탁을 새삼스럽게 살폈다. 꼬장꼬장 강직하게 생긴 정탁은 무표정한 얼굴로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문관 중에서는 약포 선생께서 보다시피 제일 연장자이십니다. 해서 저는 도사 본연의 업무도 수행하시되 항상 저의 함께 다니시며 많은 조언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조선의 직제로 말하면 도승지 역할도 겸해달라는 말입니다. 그 요원으로는 백사(白沙) 이항복과, 한음(漢음) 이덕형이 이에 해당되겠습니다. 아시겠지요?"

"네! 발해 위님!"

"두 사람도 본 연의 업무 외에 승지 역할을 해달라는 말입니다. 알았습니까?"

"네, 발해 위님!"

정탁을 따라 호칭하는 아직 홍안의 미소년들을 보고 있노라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런 사람들이 원 역사에서는 훗날 조정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재가 되리라고 생각하니, 우습기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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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죄송합니다.

중간에 5회의 글 일부가 끼어들었는데 잘라내니 다시 예약된 글을 전부재종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 다음 회를 무료로 제공하는 것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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