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해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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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게 보셨소. 아무리 명군, 성군이 들어서도 조선은 개혁을 하는데 태생적으로 한계가 있소. 신분상 최상에 위치한 양반들의 혜택이 너무 많아요. 막말을 하자면 천한 상것들의 등을 쳐서 자신의 배를 불리는 격이지요."
"의빈마마, 어찌 그런 말씀을.........?"
"내 말이 틀렸소?"
".........."
아무 대답이 없는 율곡 이이였다.
"해서 내 드리는 말 이오만, 내 이번에 발해(渤海)로 봉작을 받아 고국을 떠나게 되었소."
"고국에 계시면 천하제일의 부(富)에, 성상의 총애, 고명대신이라는 누구도 범접 못할 위상, 게다가 전대 공주의 부마로써 종친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위상을 가지신 분이, 또 뭐가 부족해서 그 황량한 만주 벌판으로 가신다 하오십니까?"
나를 생각하는 율곡의 마음이 얼마나 절절한지 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다 그렁그렁했다. 나는 그의 따뜻한 마음에 내면이 훈훈해지는 것을 느끼며 이이를 다정히 불렀다.
"율곡!"
"네, 의빈마마!"
"그대의 입으로 열거하듯이 내 조선 내에 거주하면 아무 보족함이 평생을 호의호식하며 떵떵거리며 살 수 있소. 그러나 그대의 가슴이 항상 무언가 하나 부족해 허전하듯이, 나 역시 마찬가지라오."
이때 술상이 들어왔으므로 율곡은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 눈짓으로 두고 나가라 일렀다.
"해서 드리는 말씀이오만 나는 내 생전에 저 잃어버린 광활한 만주벌을 되찾고 십고, 또한 턱밑까지 기어오른 왜놈들을 보란 듯이 엉덩이를 뻥 차주고 싶소. 그렇지 않다면야, 내가 사서 고생할 일이 없지요."
"제가 의빈마마의 능력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일개 개인의 힘으로 그게 가능합니까?"
"그대도 나에 아는 것은 아마 빙산의 일각일 것이오. 내가 누구요? 자신 없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 사람이오. 윤원형을 제거하듯이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하고 대비해서 일을 벌인단 말씀이지. 예를 들어볼까요?"
내 얘기해 취해 묵묵히 고개만 끄덕이는 율곡이었다.
"내 바다에 떠다니는 배 하나만 가지고 예를 들더라도 지금 세상에 노 젓지 않고, 돛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나가는 배를 보셨소?"
"세상에 그런 배도 있습니까?"
"내가 지금 움직이고 있는 배가 그렇소. 크기도 어마어마해서 길이가 50장이요, 폭이 20장은 되오, 이런 거대한 배가 스스로 둥실 떠서 움직이는데 그 배의 속도는 얼마나 빠른지 쾌선이 쌍돛을 부풀려도 내가 만든 배를 도저히 쫓지 못하오."
"설마 요.......?"
믿지를 못하는 율곡이었다.
나는 더 이상 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빙그레 웃을 뿐.
"하고, 대포란 놈을 내가 만들었는데 성채의 문루가 단 한 방에 날아가는 것은 물론 단단한 석축도 한 방이면 다 무너지오. 그 뿐 아니오. 비격진천뢰로 말할 것 같으면 한 발에 반경 3장 이내가 초토화되고, 천보총은 천보 밖에서도 인마를 살상하오. 이만하니 내 만주에 대해 욕심을 내는 것이오."
"도저히 믿기지를 않사옵니다. 의빈마마!"
"내 모든 것을 실물로 다 보여 줄 소 있소. 그대는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어찌하겠소?"
"의빈마마께 제 평생을 의탁하지요."
"남아 일언은 중천금이요."
"여부가 있사옵니까, 아무리 빠른 말로 추격을 해도 잡지 못하지요."
"하하하.........! 됐소."
"네?"
나는 율곡의 궁금증에는 대답을 않고 계속해서 내 페이스로 몰아갔다.
"언제 짬을 낼 수 있겠소?"
"그야........"
"휴가원을 제출하시오. 여종의 남편에게도 출산휴가를 주는 나라인데, 당상관이 며칠 말미를 얻자고 하는데 거부야 하겠소?"
"너무 서두르는 것 아니옵니까?"
"절대 그렇지가 않아요. 그대도 잘 알다시피 세월은 언제까지나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오. 그대만 해도 벌써 인생의 중반을 넘어서지 않았소?"
"그야 그렇지요."
"당장이라도 재출하시오."
"참 내........."
'내가 너무 서둘렀나?'
"술이 초가 되겠소."
한 템포 늦추기 위해 나는 엉뚱한 수작을 했다. 남녀 간에만 밀당을 잘해야 되는 것이 아니다. 인생살이 자체가 알고 보면 밀당의 연속 아닌가?
"이런 내 정신 좀 봐. 정말 의빈마마의 말씀에 취해 덥힌 술이 다 식었습니다 그려. 다시 데워오라 할까요?"
"그냥 마십시다. 아랫것들 추운데 오라 가라 하지 말고."
"역시 의빈마마는 예나 지금이나 아랫사람들을 너무 잘 챙기십니다 그려."
"뒤통수를 맞지 않는 제1의 비결이오."
"하하하........! 그렇게 뒤통수가 두려우십니까?"
"나는 팽(烹)이라는 말이 제일 두려웁디다."
"하하하.......! 토사구팽(兎死狗烹)이 제일 지랄 같은 말이기는 하죠."
".........."
율곡의 입에서 저런 저속한 말이 나올 줄은 몰랐으므로, 나는 한동안 맨붕 상태에 빠졌다.
이튿날.
관아의 객사에서 하루를 머문 나는 율곡과 함께 길을 나섰다. 그가 나를 따라 길을 나선 것은 나의 설득이 주효하기도 했지만, 평소 그의 생각이 개혁적이지 않았다면 불가능 했을 것이다.
그의 평소 생각이 어땠는지는, 그가 훗날 선조에게 올린 만언봉사(萬言封事) 즉, 장문의 글로 임금만이 볼 수 있게 봉해진 상소에 잘 나타나 있었다. 율곡 이이의 눈에 비친 조선은 이미 고칠 수없는 썩은 집이었다.
"오늘 나라의 형세는 마치 오랫동안 고치지 않고 방치해둔 큰집(萬間大廈)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크게는 대들보에서 작게는 서까래까지 썩지 않은 것이 없어 근근이 날만 넘기며 지탱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동쪽을 수리하면 서쪽이 따라 기울고, 남쪽을 뜯어고치면 북쪽이 휘어 넘어져서, 어떤 장인(匠人)도 손을 댈 수가 없습니다. 오직 날로 더 썩어 붕괴될 날만 기다리는 그런 집과 오늘의 나라꼴이 무엇이 다르다 하겠습니까?"
율곡이 만언봉사(萬言封事)에서 쓴 표현이다. 아무튼 이런 율곡이 낸 유급 휴가의 일종인 사가독서(賜暇讀書)원이 주상에게 제출하여 허락이 떨어지기 전에, 율곡의 사직서가 또 당도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일행은 빠른 속도로 말을 달렸다.
나는 추위를 많이 타는 율곡을 위해 두툼한 솜바지 저고리와 튼실한 모피를 제공하여, 그의 몸을 챙겨주었다. 길을 나서면서 용의주도하게 미리 준비했던 까닭이었다. 마포나루에 당도하자 우리 일행은 대기하고 있던 선편으로 남해로 내려갔다.
우리가 탄 배는 내가 건조케 한 배 중에서는 제일 소형선이었으나, 그래도 길이가 45m요, 폭이 15m로 조선의 어느 배 보다 컸다. 군선인 판옥선이 대략 이 정도 길이 될 것이다. 그래도 조선 수군의 승선 인원이 130명 정도 승선한다면, 노꾼이 90명이고 나머지가 전투요원이지만 우리는 전부가 전투요원이니 비교 자체가 불가능 했다.
두 개의 쌍돛은 위장이고 판저(板低) 즉 일층에서 역청탄을 때 움직이는 증기기관이므로 노꾼이 필요 없었던 것이다. 아무튼 대양으로 나가자 단 하루 만에 서해를 가로지른 우리는 이때부터 놀란 율곡을 아예 기절시켜 버릴 정도의 최첨단 문물을 보여주었다.
길이가 150m나 되는 대형선이 스스로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장면에서 반쯤 뒤로 넘어진 율곡이었다. 여기에 원거리 함포 사격으로 단 한 방에 위장 대항용 목선을 침몰시키자, 그 굉음과 위력에 완전히 뒤로 넘어가는 율곡을 내가 간신히 지탱해주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이제 막 시운전을 하기 위해 제작된 증기기관차가 새까만 연기를 내뿜으며, 저 혼자의 힘으로 달리는 것을 보고는 완전히 기절을 했다. 그 후유증은 대단이 컸다. 율곡은 이제 가서 근무하라하니, 사직서부터 작성해서 내게 주고, 또한 가족이 이쪽으로 이사 와야 된다는 장문의 편지만 인편에 줘서 부칠 뿐, 아예 도초도에서 꼼짝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율곡의 사직원을 들고 다시 선박 편으로 선조 균을 만나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문후 인사를 여쭙고 율곡의 사직원을 제출하자 선조 균이 물었다.
"이것이 무엇인가?"
"이율곡의 사직원입니다."
"왜 이것을 의빈이 제출하는가?"
"그도 봉작 령에 함께 가겠다고 했습니다."
"아직 그가 청원한 사가독서의 허락 유무도 결정을 안했는데, 하긴 이것은 전적으로 왕이 결정하는 것인데, 청원하는 자체도 우습거니와, 이제 사직원을 제출했으니....... 그렇다 치고 다른 용건이 있소?"
"지난번에 제가 제출한 명단의 사람들은 전부 수배가 되었는지요?"
"중간에 자꾸 자꾸 사람이 추가되어, 이제 막 수배가 끝나 한양으로 집결하고 있는 중이오. 그런데 그 인물 중에는 과인과 비슷한 연령대도 있던데, 그들은 무엇이 탐이나 선정을 한 것이오?"
"벌써 학문에 일가를 이루었다는 소문과 두 사람의 우의가 깊으니, 마음씨 또한 최소한 남을 배반하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에서입니다."
"과인은 의빈의 선정 기준을 모르겠으나 들쭉 날쭉이고, 아무튼 최상위 직책이라야 정4품이니, 약속대로 고위직이라 할 만한 사람은 없어서, 모두 수배를 했소만, 정녕 다 필요하기는 한 거요?"
"그것도 부족합니다."
"하기야 인재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노릇이지만 이제는 안 되오. 조선의 미래의 동량이 될 사람들은 다 뽑아가는 듯해서 말이오."
"설마요?"
"하하하.........! 웃자고 한 소리요. 우리 조선이 몇 사람 뽑아간다고 흔들릴 정도면 벌써 나라가 망해도 몇 번을 망했을 것이오."
'그렇지도 않을 걸.'
내심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를 입 밖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나중에 그 면면을 보면 알겠지만, 이 후에 임진왜란이라도 일어난다면 나라가 망하는 정도가 아니라 폭삭 망할 것이라고 나는 단언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나는 그동안 대충이나마 지도를 그려주면서 흥개호(興凱湖) 주변 일대를 탐사하라고 선발대 100여 명을 보냈고, 그들을 기다리는 동안 선조에게서도 통보가 왔다. 사람이 다 모였으니 인수해 가라는 것이었다.
나는 곧 선조를 만나 뵙고 감사를 표한 후, 그 인물들을 인솔하여 일단은 궐 밖으로 나왔다. 아무튼 그 면면을 보면 다음과 같았다.
정탁, 유성룡, 이항복, 이덕형, 신립, 이일, 김천일, 박광옥, 최경회, 곽재우, 김여물, 이종장 등 13명이었다. 여기에 내가 개인적으로 뽑은 사람 즉 성혼, 김효원, 이율곡, 이억기, 김시민 등 5명을 보태면 총 18명이 나의 봉작령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이들은 내가 선조에게 약속한 대로 당상관 이상의 고관은 한 사람도 없었다. 제일 높은 품계라야 예문관 응교(應敎)로 있는 정탁으로 정4품이었고, 나이도 가장 많아 올해 47세였다. 유성룡은 31세로 병조좌랑, 이일이 40세로 경성판관, 신립은 나보다 한 살 어린 27세로 종사품의 오위도총부 경력, 이항복, 이덕형은 나보다 11살이 어려 이제 17세였다. 김천일은 나보다 8살 위인 36세로 아직 초야에 묻혀있었다.
아무튼 내가 설득한 사람 이외의 사람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명으로 강권하니 벼슬을 받아야 사양도 하지만, 이것은 그런 개념이 아니고 사약을 내리거나 귀양을 보내면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듯, 추방 형식을 띠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싫어도 나와 동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어명으로 가족까지 동반하게 되니 이들의 사기는 극도로 침체된 상태였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으로 날벼락을 맞은 격이니, 모두 죽지 못해 나의 인솔 하에 일단 당사자들만 우리 집으로 갔다. 나는 이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일장 연설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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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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