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박인생-87화 (87/141)

<-- 발해 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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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은 서로 모르시오?"

"문명이야 일찍이 들었지만 서로 접촉할 기회가 없어, 오늘 처음입니다."

성혼의 말에 김효원도 맞장구를 쳤다.

"시생 역시 동감입니다. 성암(省庵) 입니다."

"우계(牛溪)라 하오."

나의 소개로 통성명을 하고, 둘의 나이를 따져보니 김효원이 올해 서른으로 나보다 세 살 많았고, 성혼이야 나보다 열 살 많은 것을 알았으니, 김효원보다 일곱 살이 더 연배였다.

벼슬도 정오품과 정육품으로 품계 하나가 차이가 났다.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아무튼 나의 소개로 두 사람도 통성명을 하자 나는 본격적으로 두 사람에게 술을 권하며 이야기를 주도해나갔다.

한 잔씩 술을 마시고자나자 나는 술이 취하기 전에 본론을 꺼냈다.

"시생이 오늘 부로 주상전하로부터 새로운 봉작을 하나 하사받았소."

"그곳이 어디 입니까?"

관심이 가는지 김효원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저 북쪽 우리의 고토 발해 땅 전부요."

"네? 그곳은 지금 실질적으로 우리의 영토가 아니잖습니까?"

"아니지만 본 의빈으로서는 그렇게 만들려 하오."

"의빈마마의 꿈이 예전부터 큰 것이야 알았지만,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혹여 주상전하의 대폭적인 지지라도 약속 받으셨습니까?"

성혼의 물음에 내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전혀 그런 일이 없소이다. 하지만 본 의빈은 내 스스로의 힘으로 이룰 자신이 있소."

"자신감만으로 될 일이 아니잖습니까? 역량이 얼마나 되시는지 몰라도, 조선조 개국 이래 남의 땅이 된 것을 어찌 일개인의 힘으로 수복한다 하시옵니까? 전 조선이 국력을 기울여도 힘든 일을."

김효원의 반론에 나는 미소를 잃지 않고 대답했다.

"내 신안 위의 봉작을 받은 이래 많은 힘을 그곳에 비축해 두었소. 두 분은 믿지 않겠지만, 우리에게 조공을 바치던 저 남쪽의 따듯한 나라 유구국도 사실상 내가 통치하고 있소."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내 말이 완전히 뻥이라고 생각을 했는지 술자리에서까지 한 걸음 물러나 앉는 김효원이었다. 그러나 성혼만은 진지했다. 율곡과 통교한 이래 그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몰라도, 진지한 그의 태도였다.

갑자기 내가 밖에다 대고 소리를 질렀다.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주군, 임 호위장이옵니다."

나의 부름에 임 선달이 불쑥 방문을 열고 고개를 디밀었다.

"천보총 한 자루만 가져오시게."

"네, 주군!"

둘의 대화에 놀라워마지 않는 두 사람이었다. 잠시 후, 임 선달이 천보총 한 자루를 방안으로 들이밀고 사라졌다. 임 호위장 이하 백인 호위 모두 검을 차고 나를 호위하고 있지만, 천보총 역시 큰 궤짝에 넣어 백 자루 이상이 우리 집에 보관되어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감히 조선에서 내 짐을 검사할 놈은 선조 균 이외에는 없을 것이다.

나는 긴 자루의 총신을 가진 갈색과 묵 빛으로 빛나는 천보총을 흐뭇한 시선으로 쓰다듬다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이것이 무엇인 줄 아시오?"

"천보총이라면서요?"

김효원의 말에 내가 웃음기를 띠고 물었다.

"이 성능을 아느냐 말이오?"

"그야........."

주저주저 답변을 못하는 김효원이었다.

"그렇다면 조총이라는 말은 들어보았소?"

"그 역시 못 들어 보았소이다."

묵직한 성혼의 말에 내가 여전히 웃음기를 지우지 않고 말했다.

"이렇게 국제정세에 어두워서야, 도대체 무엇들을 하고 있는 줄 모르겠소이다."

여기서 말을 끊은 내가 정색을 하고 물었다.

"왜국이 근 100년에 가까운 내전을 벌이고 있다는 말은 들어보셨죠?"

"그 정도는 들어 알고 있습니다."

성혼의 말에 내가 여전히 풀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들 또한 조총이라는 신무기로 싸움박질을 하는지 오래요. 지금 다른 나라는 활과 검을 가지고 싸우는 시대가 아니란 말이오. 조총과 같이 누구나 단기간에 배워 사용할 수 있는 살상력 높은 무기를 들고 싸우고 있는데, 조선은 아직도 한밤중 꿈속이니....... 이를 잘 아는 나로서는 속이 터지다 못해 뒤집어질 지경이오. 해서 내가 주상전하의 윤허 아래 개량한 이 총이 바로 천보총이라는 것이외다."

"이 총이 그렇게 무섭소이까?"

비로소 뭔가 감히 잡히는지 김효원이 경직된 표정으로 물었다.

"조총과는 비교가 안 되는 세계 최강의 최신 무기가 이 천보총이요."

여기까지 말하고 나는 노리쇠를 후퇴하여 동으로 제조된 노란색 탄알 하나를 꺼내 보여주며 말했다.

"이 탄환을 맞으면 아무리 덩치 큰 소라도 절명하오. 하물며 인간이라야. 이 총은 그것을 천보 밖에서 다룰 줄만 알면, 삼척동자는 물론 칠순노파도 인마를 살상할 수가 있소. 그래서 이 무기가 더 무서운 것이오. 힘없는 노인이나 아이들까지 단기간 내에 무장을 시킬 수 있고, 위력은 그 무엇과도 비길 수 없으니, 본 의빈이 고토 회복이니 어쩌고저쩌고 말을 꺼내는 것이지, 나는 절대 몽상가가 아니오. 이 밖에도 위력이 대단한 개량된 총통류는 물론 이도 따르지 못하는 대포라는 놈도 있는데, 이 한 방이면 거함도 즉시 찬 바닷물 속으로 수장이 되오."

내 말이 여기까지 이르자 두 사람의 낯 색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무기의 위력을 깨달아서가 아니라, 내 말의 진의를 어느 정도는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자신들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쉽게 이 집을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라는 것쯤은, 조선의 초 엘리트라는 이들이 모를 리 없었던 것이다.

"나는 두 분이 고토 회복에 전적으로 동참해 줄 것을 이 자리에서 정식으로 요청하는 바요."

"의빈마마의 뜻이야 알겠지만, 너무 갑작스런 일이 돼놔서........."

말끝을 흐리는 김효원으로서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황당하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성혼 역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인지, 연신 길게 자란 수염을 쓸고 있었다.

좌중에 어색한 침묵이 감돌자 내가 각자의 빈 잔에 손수 술을 치며 말했다.

"고토 회복에는 많은 병사와 무관들도 필요하지만 이를 행정적으로 뒷받침하고 통치할 문관 조직 역시 필요하기에, 조선에서는 내노라하는 두 분을 감히 오늘 내 모셨소이다."

그래도 역시 두 사람은 깊은 생각에 잠겨 술잔에는 손도 대지 않고 있었다.

긴 침묵 속에서 문득 깨어난 김효원이 먼저 긴장한 낯빛을 감추지 않고 물었다.

"시생이 의빈마마의 뜻을 따르면 어떻게 되는 것이고, 아니라면 어떻게 되는 것이오?"

감정이 묻어나는 도발적인 물음에도 나는 전혀 흔들리지 않고 무표정한 표정으로 말했다.

"멀리는 저 고구려와 부여의 옛 땅을 회복하는 것이요, 가까이는 발해의 영광을 재현하는 위대한 사업에, 나는 기꺼이 두 분이 동참해 줄 것으로 믿소."

나는 김효원의 말을 비껴가며 다시 한 번 압박을 가했다.

"그럼, 우리는 그곳에서도 문신(文臣) 역할을 하는 것이오?"

"정확히는 문신(文臣)이 아니라 문관(文官)으로서 발해 위(渤海 尉)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내 말은 새로운 나라를 창업하는 것이 아니라, 선조에게서 받은 발해 위라는 곳의 관리로 당신들이 기용된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새로운 나라를 창업한다는 것은 역모 죄로 엮이기 십상이기 때문에 말을 정정해준 것이다.

"그게, 그것이지만 의빈마마의 뜻은 확실히 알았소. 헌데 요는 의빈마마께서 우리가 참여하지 않을 시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는 점이오."

시종 꼬장꼬장 굽히지 않고 대드는(?) 김효원이었다.

"내가 이 자리에서 굳이 그 말을 해야 하오?"

되받아치는 나의 말에 두 사람의 표정이 완전히 백지장이 되었다.

"가족까지 함께 갈 수 있을 것이오. 나는 두 분이 문서의 자구(字句) 하나에 연연해 숲을 바라보지 못하는 썩은 선비들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이 자리에 기꺼이 모셨던 것이오."

"험, 험........! 언제 떠납니까?"

성혼이 헛기침을 하며 마침내 결심이 섰는지 물었다.

"우선은 선발대를 보내어 현지의 실정을 파악한 후, 일진이 도착하여 어느 정도 기반을 마련한 다음, 본격적인 이주가 차례로 진행될 것이나, 뜻을 모았다면 오늘 두 분은 사직서를 써주시죠."

내 뜻을 확실히 안 이상 이제 두 사람은 현직에 출근할 수 없음을 내비치는 말이었다. 각오는 했겠지만 또 다시 낯빛이 굳어지는 두 사람을 위해 말했다.

"우선은 내 봉작 령인 신안 위에 가족과 함께 가셔서, 이곳과는 딴판인 현지의 문물을 한 번 살피는 것이 좋겠소이다."

나의 말에 확실히 결심을 굳혔는지 김효원이 아무 말 없이 잔을 들어 순식간에 쭉 들이키더니 말했다.

"의빈마마, 잔이 비었소이다."

"하하하.........! 나 역시 한 잔 하고 채워 주리다!"

나는 말을 마치자마자 금방 술잔을 비우고 넌지시 성혼을 바라보자 무언의 압박을 느꼈는지 성혼 또한 슬며시 잔을 들어 천천히 한 잔을 비웠다.

내가 두 사람에게 차례로 술을 따르며 말했다.

"고맙소. 결코 후회 없는 삶이 될 것이오. 조선에서의 고리타분한 일상에서 벗어나, 저 드넓은 만주벌판을 달리며, 후세에 아름다운 이름을 대대손손 전하게 될 것이오."

나의 말에 고무되었는지 두 사람의 표정이 비로소 한껏 펴지며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고, 열심히 잔을 부딪쳐왔다.

이렇게 되어 두 사람이 영어 아닌 영어의 몸이 되어 우선 그들이 작성한 사직서가 조정에 접수되고, 한편으로는 그의 가족들이 이삿짐을 꾸리게 되었다. 그런 그 날 오후였다. 궐에서 사람이 나왔다. 선조 균이 나를 찾는다는 전갈이었다.

나는 임 선달만을 대동한 채 입궐을 했다.

"불러 계시옵니까? 전하!"

"후원으로 가봅시다. 어제 경이 가져온 코끼리인가 뭔가 하는 놈이 도통 식사를 안 한다니........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하여 경을 불렀소."

내가 수의사도 아니고 따라가 봐야 별 수 없었지만 짐작되는 것은 있어, 균의 뒤에 한 걸음 처져 총총한 어보를 따랐다. 잠시 후, 후원에 도착하여 코끼리 한 마리를 두고 여러 사람이 모여 있는 가운데 선조 균이 호통을 내질렀다.

"어떻게 된 일이냐?"

벌써 조선의 국왕 자리에 오른 지 근 오 년이 다 되어가기에, 열여섯 살의 나이지만 그의 호통에는 제법 관록이 묻어나고 위엄이 있었다.

"이곳에 온 이래로 전혀 여물을 먹고 있질 않사옵니다. 전하!"

선조 균의 호통에 한 사람이 급히 부복하여 아뢰는데 뜻밖이었다. 나이가 주변 사람 어느 누구보다도 무척 젊었던 것이다. 아니 어리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이제 19세에서 많이 보면 21세로 보이는 청년이 엎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의에게는 보였느냐?"

"그들도 잘 모르겠다고........."

"무슨 이런 해괴한 일이........."

노여워하는 균을 달래려 내가 입을 열었다.

"전하, 소신의 생각으로는 먼 곳으로 이동하는 동안에 오는 스트레스......... 아니 긴장감이 원인이 아닌가 합니다. 해서 시일을 두고 지켜보면 괜찮아 질 것 같사옵니다. 하고 먹이는 가능한 생풀을 먹이면 좋으나, 한겨울에 생풀을 구할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혹여 콩을 삶아 주면 어떨까 생각해봤습니다."

"들었느냐?"

"네, 전하!"

"발해 위의 말에 있기에 용서를 하는 것이다. 법을 집행함에 있어서 종친이라고 예외를 기대하지 마라!"

매몰찬 선조 균의 말에 부복한 자가 더욱 깊숙이 부복하며 황감한 어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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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감사하고 고맘습니다!

^^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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