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영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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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얼마만인가? 의빈!"
"강녕하셨사옵니까? 전하!"
"경이 없으니 좀 무료했소이다만, 경이 돌아오니 벌써 이렇게 궐내가 시끌벅적하지 않는가? 하하하.........!"
나의 출현과 기수(奇獸)의 출현에 더욱 흡족해 하는 선조 균이었다.
"이 동물은 정말 크구나! 웬만한 동산만 하지 않은가? 이름이 무엇인고?"
"코끼리라 하옵니다. 전하!"
"이 흉측하게 생긴 놈은 뭐라 하는 고?"
"악어라 하옵니다. 전하!"
우리가 이 소동을 벌이고 있는데 대비 심 씨마저 나타났다.
"강녕하셨사옵니까? 대비마마!"
"못 본 사이 풍채가 더욱 헌앙해지신 것 같아요."
"별 말씀을 요!"
"어머나!"
코끼리는 보고 별로 놀라시지 않으셨지만 악어를 보시고는 기겁을 하는 대비 심 씨였다. 나는 내심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웃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얼른 큰 보자기로 악어를 덮고 말했다.
"주로 강에 서식하지만 흉포한 놈으로, 이빨이 아주 단단해 웬만한 물고기들은 맥을 못 주지요."
"정말 흉측하게 생긴 놈이 생긴 대로 노는 모양이네요."
"그렇사옵니다. 대비마마!"
"어쩌면 그렇게 무심하세요."
"이국을 돌아다니다 보니 세월 가는 줄 몰랐습니다. 대비마마!"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들어가시죠? 대비마마!"
균이 말하고 먼저 발을 떼어놓자, 대비 심 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심
'다 컸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균의 말에 따라 대비와 나는 사정전으로 향했다. 코끼리와 악어, 공작새, 열대과일 등 진상품들은, 일단 말을 관리하는 사복시(司僕寺)의 차비노(差備奴)와, 과일을 담당하는 내자시 관노들에게 맡겨졌다.
앞서가던 선조 균이 갑자기 발걸음을 우뚝 멈추더니 말했다.
"신안위의 봉지가 문제되어 과인이 대처하는데 혼이 났소."
"무슨 말씀이시 온지요? 전하?"
"수군 순시선이 전라도 섬을 순시하다보니, 섬섬 곳곳에 사람이 산다는 장계가 수시로 올라오고 있소. 이 문제를 가지고 대신들이 말이 많았단 말이지요."
여기까지 설명을 한 선조 균이 내 얼굴을 들여다보듯 하며 물었다.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글쎄요........!"
잠시 생각을 하던 내가 오히려 물었다.
"전하! 요사이 북변은 어떻사옵니까?"
"장계 올라오는 것을 보면 야인(野人)과 소소한 다툼이 끊이질 않고 이어지고 있소."
"소신의 생각으로는 신안 위 봉작내의 백성들을 내륙으로 끌어들이면 굶어죽기 십상이옵니다. 그렇다고 내버려두자니 자꾸 말썽이 일고,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북방을 개척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그야 할 수 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과인도 하고 싶소. 하지만 세종 할아버지 이후 꾸준히 추진해온 게 북변의 안정화 시책인데, 지금까지 개척은 고사하고 안정도 힘들어 하지 않았소?"
"소신이 그것을 하고자 합니다."
"그게 가능할까?"
상당히 회의적인 선조 균의 태도였다.
"신안 위 봉작 내의 백성들을 그곳으로 옮겨 생활 터전을 마련해 주는 한편, 북방의 소란도 잠재우고 싶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지만, 흉년에도 삼남의 백성들을 함길도로 이주시키려 하면, 백성들이 기피하는 바람에 번번이 실패하고 있는데........."
"소신이 한 번 해보겠습니다. 소신을 한 번 믿어봐 주십시오."
"하긴 경이라면 특별난 재주가 있으니, 가능할지도 모르지."
"허락하시는 것이옵니까?"
"하면 신안 위는 반납하는 것인가?"
"네, 대신 북변에 봉작을 내려주십시오."
"봉작 명을 뭐로 하면 좋겠소?"
지루한 이야기가 계속되자 대비 심 씨가, '한 번 들려 달라'는 말과 함께 먼저 자리를 떠났다. 선조와 나도 곧 사정전으로 자리를 옮겨 대화를 계속했다.
"그곳이 옛 우리의 고토 발해(渤海)의 땅이니, '발해 위(渤海 尉)'라고 하시는 게, 어떻겠사옵니까?"
"과인의 입장에서야 있는 땅 떼어주는 것도 아닌데, 경이 작명한 이름 하나 하사 못 하겠소. 원대로 하오."
"망극하옵니다. 전하!"
"그래, 언제부터 이주를 시킬 생각이오?"
"일단 적당한 장소부터 물색을 한 후에, 몇 차례에 걸쳐 차례차례 이주 시킬 생각이옵니다. 그때까지만 참으라 하면 될 것이옵니다."
"알겠소. 그렇게 합시다."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청이 하나 있습니다."
"뭐요? 가능한 한 과인이 들어주리다. 변변한 땅 덩어리 하나 못 떼어주고, 섬이다, 북변이다, 외진 곳만 골라 주고 있으니.........."
"아무래도 위민(尉民)들을 통제하자면 몇몇 무관과 문관들이 필요하옵니다. 그 사람들을 제가 선발해 갈 테니, 윤허하여 주옵소서."
내가 또 부복하여 고두하며 청을 하자, 특유의 버릇이 나왔다고 균이 좋아라 하며 말했다.
"하하하........! 그 정도 청도 못 들어준 데서야, 어디 조선의 국왕이라 할 수 있겠소. 경의 마음대로 선발하여 가시오. 허나 고관들은 안 되오."
"망극하옵니다. 전하!"
다시 한 번 고개를 조아린 나는 이제 이번 진상품으로 가져온 코끼리와 악어 등의 이야기로 넘어갔다.
"신이 금번에 진상한 코끼리는 마정에서 관리하게 하옵시고, 악어는 따뜻한 곳에서만 사는 놈이오니, 제가 유리로 큰 온실을 지어 그곳에서 살 수 있도록 하겠사옵니다. 공작새는 금계 등을 키우는 곳에서 관리를 하면 될 것이옵니다."
"고맙소. 헌데 유리(琉璃)라는 놈은 또 뭐요?"
"백 번의 말보다 나중에 온실을 지어놨을 때의 실물을 보시는 게 나읠 것이옵니다."
"알겠소. 내 그렇게 하리다."
"특별히 할 말씀이라도 있소?"
"없사옵니다. 전하!"
"하면 경이 겪은 이국의 풍물에 대한 이야기나 해보오."
"미개한 왜놈들이라고 절대 깔 볼일이 아닌가 하옵니다. 전하! 지금도 저희들끼리 근 백 년을 다투어오고 있사오나, 현재 왜국에는 오다 노부나가라는 걸출한 인물과 함께,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 영걸들이 나타나 조만간 국내 통일을 이루고, 그 무력을 조선과 명으로 투사할 것이오니, 이에 대한 철저한 대비를 해야 할 줄 아옵니다."
"내 생각은 하고 있으리다 만은 평화 시기에 괜한 분란만 조성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소."
"항상 평화로운 시기에 위기를 대비해야만 탈이 없사옵니다. 만약 두 손 놓고 있다가 불시에 그들의 침공이라도 당하면, 사직이 위태로움은 물론 온 나라 백성들이 그들의 창칼에 한갓, 버러지 취급을 당할 것이옵니다. 통촉하여 주옵소서!"
"알았소, 알았어. 이국의 풍물 이야기 좀 들으려 했다가 경의 잔소리만 듣게 생겼잖소. 이국의 생활을 마치자마자 바로 온듯하니 얼마나 피곤하겠소. 쉬었다가 다시 한 번 만납시다."
"네, 전하! 신 이만 물러가겠사옵니다."
"그러 하오."
나는 다시 한 번 선조 균에게 예를 표하고 그 자리를 물러나왔다. 이어 나는 잠시 대비 전에 들러 몇 마디 나누고 모처럼 사형 오건을 만나고 싶어 승정원으로 행했다.
승정원으로 오 건 사형을 찾아갔으나 그는 그곳에 없었다. 이조 정랑으로 발령이 나서 갔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뜨끔했다. 역사적으로 오 건 사형이 그 자리를 물러나면서 추천한 인물이 김효원(金孝元)으로, 당시의 대사간이었던 심의겸(沈義謙)의 반대로 촉발된 것이 동서 당쟁의 시작이었다.
심의겸은 대비 심 씨의 동생으로 외척이었지만 당시 삼흉의 하나로 불리는 외삼촌 이량을 탄핵할 정도로 심지가 곧은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니까 김효원이 이조정랑에 임명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반대했던 것이다.
그 이유로 그는, 당시 과거에 합격하지는 않았으나 이미 시중에 문장으로 그 문명을 떨치고 있던 김효원이, 당시의 실세였던 윤원형의 사위 이조민의 집에 드나드는 것을 안 뒤로는, 권문세가에 빌붙는 다는 이유를 들어, 그의 이조정랑 취임을 적극 반대했던 것이다.
이 사건과 심의겸 동생 충겸의 이조정랑 취임 건을, 이번에는 김효원이 척신을 그 자리에 앉힐 수 없다고 반대하는 바람에, 사림이 둘로 나뉘어 당쟁이 시작되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금방이라도 당쟁이 시작되기라도 하는 양, 한 걸음에 달려 이조로 갔다. 마침 오 건 사형은 자리에 있다가 나를 따뜻이 맞았다.
"어서 오시오. 의빈!"
"잘 지내셨습니까? 사형!"
"덕분에요."
조선 관료의 임면권을 쥐고 있는 요직 중의 요직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인지, 예전보다 상당히 밝아 보였다. 성격이 다정다감하기보다는 엄하고 곧은 사람이다 보니, 나를 만나 반기면서도 크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는 오건 사형이었다.
그러나 저라나 당쟁의 시발이 되는 김효원의 위치가 궁금하여 그에게 물었다.
"김효원을 잘 아십니까?"
"잘 아다마다 요. 요즈음 떠오르는 신진 대 문장가 아니오?"
"지금 어디에서 근무하고 있습니까?"
"병조좌랑으로 근무하고 있소."
고경명의 후임으로 김효원이 들어간 모양이었다.
"율곡은 요?"
"금번에 청주 목사로 부임해 갔지요."
"건강은 괜찮습디까?"
"나와 같이 근무할 당시는 괜찮았지요. 아, 이제 나이 서른여섯 살 아니오? 한창인데 웬 건강 타령이오?"
"사형도 항상 건강에 신경 쓰십시오. 젊다고 과신할 일이 아닙니다."
"허허........! 그러지요."
내가 왜 사형에게 율곡의 건강에 대해 물었느냐 하면, 49세라는 나이로 비교적 단명을 했기 때문에 너무 안타까워서, 벌써부터 신경이 쓰여서 그랬던 것이다.
"사형 조만간 술 한 잔 합시다."
"벌써 가시게요?"
"모처럼 한양에 들었는데, 사형의 안부가 궁금해서 잠시 들른 것뿐입니다."
"고맙습니다. 의빈!"
"사형 조만간 저희 집으로 한 번 찾아오시죠."
"그러지요."
나는 사형의 대답을 들으며 예조를 나와 그 길로 전에 내가 정랑으로 근무한 적이 있어 친근한 병조로 찾아갔다. 그러나 떠난 지 몇 해 지나지도 않았는데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나는 지나는 사람에게 물어야 했다.
"좌랑은 어디 있소?"
"마침 저기 서류를 들고 오시네요."
"고맙소."
전생의 범생이답게 깎듯이 아랫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에게도 인사를 한 나는, 다가오는 김효원 앞으로 걸어가 말을 붙였다.
"성암(省庵) 이시오?"
"저를 어찌 아십니까? 아! 사형 아니십니까? 아, 결례가 많았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그만......... 스승님으로부터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김 효원입니다. 의빈마마!"
"소식은 들었소."
요사이 밖으로 싸돌아다니는 바람에 김효원이 과거에 합격한 이후, 스승 남명 선생 밑에서 수학했다는 것을 사실 나는 몰랐었다. 이 사람은 또한 퇴계의 문인이기도 했다.
"퇴궐하고 우리 집에 한 번 들러주시오. 내 성암에게 긴히 드릴 이야기가 있소."
확실한 나이는 몰랐지만 삼십 전후로 나이가 나보다 많아 보여 함부로 말을 놓지 못하고 있는 나였다.
"알겠습니다. 의빈마마!"
"그럼, 저녁에 뵙시다."
"네, 의빈마마!"
김효원과 작별을 하고 곧바로 그곳을 물러나온 나는 사간원 정언으로 근무하던 성혼을 찾아갔다.
그러나 그 또한 공조정랑으로 자리를 옮긴 후였다. 알게 모르게 작용하는 나의 영향력 때문인지 모두 요직을 꿰차고 있는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아무튼 내가 공조로 성혼을 찾아가니 자리에 없어, 퇴근하고 우리 집으로 와달라는 전언을 남기고 그 자리를 물러나왔다.
다음으로 사헌부 지평으로 근무하고 있던 정철을 찾아가니 그는 부친의 상을 당해 경기도 고양으로 갔다는 것이다. 부모상을 당했으면 당분간은 움직이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당분간 그에 대한 생각은 접었다.
그날 저녁.
내가 하인들을 시켜 풍성한 주안상을 준비해놓고 기다리자니 김효원과 성혼이 차례로 나를 찾아왔다. 나는 그들을 반갑게 맞아 차례로 내가 기거하는 사랑채로 이끌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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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감사드리고요!
^^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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