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영주 -->
2
상을 물리자 피곤한지 잠이 쏟아졌다. 낮에 전투를 하느라, 딴에는 긴장을 안 한다고 해도 긴장이 되었는지 수마가 몰려왔다.
"자야겠다. 모두 물러가라!"
"번 병 1천명을 증원하도록 하겠습니다."
"알아서 하도록!"
운검의 말에 나는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모두 물러가길 재촉했다. 와타나베가 요와 이불을 펴놓고, 장지문을 닫는 것으로 사라지자, 방에는 나 혼자만 남게 되었다. 대충 옷을 훌훌 집어던진 나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자다가 문득 잠이 깨었다. 목이 말라 자리끼리 물을 먹고 나니 어디선가 철썩이는 파도소리가 들려왔다. 완전히 잠이 달아난 나는 오두마니 앉아 있었다. 이 생각 저 생각 온갖 잡생각이 떠올라 나를 괴롭혔다.
창문에는 어느새 달이 돋았는지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나는 잡념을 지우기라도 하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밤공기가 쏴 하고 몰려들었다. 아니 어디선가 바람에 대나무 쓸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심호흡을 깊게 몇 번 한 나는 다시 창문을 닫고 자리에 누웠다. 여전히 잠이 오지 않아 나는 엎어졌다.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을 설계해 보았다. 요즈음 내가 가장 번민하는 것은 임진왜란 문제였다.
아직도 햇수로 따지면 21년이 남았지만 그때가 되면 내 나이가 문제였다. 48세로 근 오십 줄이 가까워진다. 그렇게 되면 언제 천하통일을 해보고 죽겠는가. 다른 나라를 집어 삼킨다는 것이 하루 이틀에 되는 것도 아니고.
요즈음 조선의 하는 꼬라지를 보면 내가 막을 실력이 되어도 수수방관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조선조 개국 이래 근 이백년이 가져다 준 평화에 조선은 상하 모두가 전쟁을 잊고 사익 추구에만 골몰하고 있었다.
또 내가 역성혁명을 일으키자면 선조가 백성을 버리고 의주까지 피난을 가는 등 왕의 권위가 한없이 추락하는 게 나에게는 나았다. 그러나 전란에 시달릴 백성들을 생각하면 이것은 아니었다.
나는 더 큰 꿈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황제가 된다면 조선의 왕쯤이야 턱으로 부릴 수 있지 않을까? 중국을 먹기 위해서는 그 전에 우선 여진을 먹고, 일본을 삼키는 것이 수순이었다.
나로 인해 조선의 수군이 제일 강하다. 여기에 여진의 말을 이용한 기동력, 여기에 백년의 싸움으로 단련된 왜국 보병, 이것이라면 환상의 조합 아닌가? 그래도 조선의 전 군사력을 이용할 수 없는 나는 많은 면에서 불리했다.
아직 명은 강했다. 더 더군다나 나의 계획대로라면 임진왜란으로 명의 국력을 소진시키지 못하니 더욱 불리했다. 어떻게 하든 명의 국력을 소진시켜야 한다. 이 명제가 머리속에 떠오르자 나는 청의 멸망한 원인 중의 하나를 퍼뜩 떠올릴 수 있었다.
'아편(阿片)!'
그래 아편을 조기에 대대적으로 명에 투입하여 은의 역 유출을 시도하는 것이다. 명국이 부강해진 이유는 계속해서 그들의 산업 특성상 도자기와 차나 비단 등 주요 수출품으로 인해 양이의 멕시코 은은 물론 일본과 동남아 각국의 돈을 빨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영국의 아편 수출로 인해 상황이 역전되었으니, 지금 시도해도 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그럼, 아편은 어디서 구해오지? 청나라 때는 인도에서 주로 생산해서 공급했다. 벌써 지금도 인도는 영국의 지배하에 놓여있었다.
양이와 거래를 하면 이 방법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양이가 상대적으로 번성을 해서 이 방법도 궁극에는 좋은 방법이 못 되었다. 그러면 내가 재배해서 수출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그렇다면 경작지로는?
온대에서도 자라나 아무래도 따뜻한 곳이 최적지였다. 그렇다면 유구? 아무래도 땅덩이가 너무 적다. 고산국(高山國:현 대만)? 여송? 여송은 지금쯤 스페인 놈들이 루손 섬에 들어와 있을 확률이 높았다.
대만만이 원주민만 살고 아직 뚜렷한 세력이 없는 것이 떠올랐다. 곧 대만을 정복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여기에 아편도 재배하고 담배도 재배해서 중국과 왜에 뿌려, 먹고 살만한 놈들은 전부 중독자로 만들어야겠다는 사악한 생각이 내 머리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아편과 담배를 대대적으로 재배해 밀무역에는 해적 놈들을 기용하면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니 해적의 용도까지 해결이 되었다. 다음은 당면한 과제로 어떻게 마쯔라 가문을 키울 것인가가 대두되었다.
그 문제는 지금은 세력이 약하지만 장차 대 가문이 될 곳을 선정하여 지원하는 정책을 펴기로 했다. 마치 전번의 시마즈 가문처럼. 그 문제는 내일 송익필을 불러 물어오면 되겠다 싶어 나는 다시 잠자리에 들어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나는 기상을 하자마자 흥정과 송익필을 불러들였다.
"불러계시옵니까?"
눈곱을 떼며 들어오는 송익필을 보자 나도 아직 세면을 하지 않아, 눈곱이 붙어 있을지 몰라, 나도 모르게 얼굴을 매만지게 되었다. 이어 흥정도 들어와 내 맞은편에 앉았다. 나는 먼저 흥정에게 물었다.
"지난번 휘상과 명 조정으로부터 받은 비단 등 모든 물품이 그대로 다 있지?"
"네, 그렇습니다."
"여기서 다 털고 들어가도록 하지. 비싸게 받을 수 있을 것 아니야?"
"그렇습니다. 왜놈이나 양이 모두 명나라 비단이라면 좋아하니, 최고의 시세로 팔 수 있을 것입니다."
"좋아! 하고 양이로부터는 화약을 대량으로 사들이고 왜놈들한테는 품질이 우수하니 도검류를 대거 사들이도록 해."
"알겠사옵니다."
"나머지는 알아서 하고. 참 어제 내가 예물로 바치겠다는 것도 꼭 사들이고,"
"명심하겠사옵니다."
"나가 일봐!"
"네, 전하!"
"전하소리 함부로 하지 마. 앞으로 조선에 들어갈 텐데, 가문이 절단 나!"
"명심하겠사옵니다."
잔소리를 해서 흥정을 내쫓은 나는 송익필을 지그시 바라보며 물었다.
"부근에 우리가 집어삼킬 만한 세력이 없을까?"
"모리(毛利) 가문이 있습니다."
"모리 가문........?"
"모토나리(毛利元就)가 얼마 전에 죽었습니다. 당주가 된 손자 모리 데루모토(毛利輝元)는 모리 료센 등 가신의 보좌를 받아 친정을 시작했으나, 올해 19살로 아직은 미숙합니다."
"흐흠.........! 알아서 잘 판단했겠으나, 다시 한 전 잘 검토해 보도록!"
"네!"
송익필을 물린 나는 곧 세면을 하고 조반상을 받았다. 조반을 먹고 나니 와카나베가 자신의 소 영주라는 12살 소년 마쯔라 히라도(宋浦平戶)를 데리고 들어왔다.
"인사드리세요. 대영주 윤 흥님이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마쯔라 히라도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비만한 자식이 없다던가? 아비는 배포도 있고 무예도 뛰어나다 들었는데, 생김부터가 너무 유약해 보였다. 온실 속에 자란 화초를 보는 느낌이었다.
"네가 성인이 될 때까지 이 히라도는 내가 다스리겠다. 불만이 있나?"
"아, 아닙니다."
내가 쏘아보며 묻자, 겁먹은 얼굴로 금방 고개를 숙이는 히라도였다.
"다음에 또 볼 기회가 있겠지. 오늘은 이만 물러가도록."
"네, 네!"
벌벌 떠는 히라도를 다독여 끌고 나가는 와타나베의 등이 오늘따라 더 왜소해보였다.
이날 오후가 되자 고경명이 왕오 외에 서해, 진동, 섭마 등 해적 두령 세 명을 데리고 나를 찾아왔다.
"삼가 대 수령을 뵈오이다!"
네 명의 인사를 받은 내가 말했다.
"편하게 앉거라!"
"네, 대 수령님!"
"어제의 전투로 많은 선박이 파손되었을 줄 안다. 빠른 시일 내에 복구하도록!"
"인원이 얼마나 되지?"
"어제 전투에서 800명을 잃어 약 3,500명 정도 됩니다."
왕오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직도 많군."
"요즈음 내가 전해 듣기에 너무 위축되어 있는 것 같아. 선박이 복구되는 대로 명나라는 물론 다른 나라와도 밀무역을 할 것이니, 훈련을 좀 더 철저히 시키고, 준비를 하도록 해."
"네, 대 수령님!"
나의 명에 네 명이 일제히 부복했다.
"할 말은 없나?"
"선박을 건조할 돈이........"
"내 돈은 흥정에게 지시하여 주도록 하겠다. 하고 만약 마쯔라 군이 이곳을 빠져나가는 일이 있으면, 이곳의 질서 유지를 맡도록 해. 이제 관세도 폐지되었으니 크게 할 일은 없겠지만, 분란을 조성하는 자들을 축출하고, 도민(島民)들을 보호하도록 해!"
"알겠사옵니다. 대 수령님!"
"하고 관세가 폐지되어 이 성의 생활이 곤란해졌으니 밀무역으로 그만큼의 돈을 충당해주도록 해. 알겠나?"
"네, 대 수령님!"
나의 강한 압박에 일제히 고개를 더욱 깊숙이 조아리는 네 두령이었다.
"물러가도 좋아!"
왕오 외에 고개만 조아리며 '대 수령'만 찾다가 물러가는 서해, 진동, 섭마 등의 세 두령이었다. 왕오부터 섭마에 이르기까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모두 옛 왕직의 부하들로 명나라 사람들이었다.
오후에 나의 지시로 왕오 등에게 선박을 건조할 대금을 지급하기 위해 잠깐 들른 흥정에게 나는 지시 사항을 몇 가지 더 추가하였다. 섬라 상인들에게 고무를 구입하고 일본이나 양이 상인 등에게 유황도 더 구입하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흥정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예물로 뭐 사들인 것이 있나?"
"코끼리와 공작새, 악어, 열대 과일을 사서 얼음에 좀 재워놨습니다."
"잘 했군. 모든 준비가 되었으면 내일은 조선은 돌아가도록 하지."
"네, 의빈마마!"
벌써부터 미리 연습을 하는 것인지 익숙한 호칭으로 나를 부르는 흥정이었다.
그가 나가자 나는 다시 와타나베, 송익필, 고경명을 불러들였다. 먼저 고경명과 송익필을 보고 당부를 했다.
"고 부연대장은 구봉과 함께 이곳에 남아, 와타나베를 도와주도록 해. 구봉은 정보를 더 모아 모리(毛利)가가 약할 것 같으면 치도록 하고, 아니면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도록 해."
"알겠사옵니다. 총 사령관님!"
"네, 주군!"
두 사람의 대답에 만족한 표정을 지은 나는 이번에는 와타나베를 보고 말했다.
"내일이면 내가 조선으로 돌아갈 거야. 여기에는 이 두 사람이 남아 있을 것이니까, 모든 문제는 이 두 사람과 상의해서 처리하도록 해. 알겠지?"
"네, 대 영주님!"
그러고 보면 내가 벌인 일만큼이나 내 호칭도 참으로 다양하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곧 세 사람을 내보냈다. 그들이 나가자 오늘의 일은 모두 끝난 것 같아 밖으로 나가니, 차가운 북풍이 내 옷깃을 헤집기 시작했다.
* * *
비뢰도와 도초도에 사람과 수입한 물품을 부린 나는 곧 배를 타고 선조를 배알하러 갔다. 배에는 선조에게 드릴 예물이 실려 있음은 물론이었다. 그 중에는 코끼리와 악어도 있어 운반에 애를 먹고 있었다.
악어는 유리로 만든 수족관에 넣어 별도의 마차에 넣었고, 코끼리는 너무 거대해서 특별 제작된 마차에 실려 있었다. 우리 일행이 이런 모습으로 한양 도성에 나타나자 궁으로 가는 연도에는 구경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특수마차라지만 안이 다 보여 코끼리는 물론 악어의 모습까지 전부 볼 수 있었으니, 신기한 동물들의 구경거리에 비키라도 해도, 잘 안 비켜서고 달려드는 판이었다. 이 모습은 궐내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여서, 모처럼 만의 나의 출연이지만 나를 보고 반가워하는 사람들보다 코끼리와 악어를 보고 더 놀라는 사람들이 많으니, 내심 나는 기분이 즐겁지만은 않았다.
이 모든 일이 내가 자초한 일인 걸 어찌 하겠는가? 아무튼 내가 사정전으로 향하는데 선조 균도 벌써 보고를 받았는지 중문 앞에 마중을 나와 있었다.
-----------------------------------
.. /작가의 말/..................................
고맙습니다!
^^
늘 좋은 날 되세요!
^^
이전글: 대영주
다음글: 대영주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