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루하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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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은 전객사의 융숭한 환대를 받았다. 내 지위가 저보다 훨씬 높은 백작이니, 이제 거만은 꼬리를 감추고 아부까지 떠는 바람에 통쾌하기 까지 했다. 나에게는 그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황제가 답례로 내려주는 회사품의 내용이 중요했다. 그래서 내가 기대를 하고 있는데, 드디어 전객사가 그 물목을 내게 전해주었다. 그 내용을 살펴보니 대개가 비단으로, 채단(綵緞), 초피(貂皮), 내장단(內粧緞), 운단(雲緞), 안마(鞍馬) 등으로, 세폐, 방물의 양과 회사품에는 큰 차이가 났다.
가격으로 대충 환산하면 세 배 정도의 가격으로 쳐서 그 양을 주었던 것이다. 여기서 하나 특이한 것은 말의 가격이었다. 원래 여진에서 말 상품의 중등 말 값이 40필에 거래되는 것을 우리는 중등 중 말 값으로 쳐서 25필에 샀다.
그것을 융경제는 한 마리당 450필 값으로 쳐서줬다. 환산하니 면포 1필이 당시 가격으로 5~6말이었는데, 이를 쌀로 계산을 하니 말 한 필 당 가격이 225가마였다. 이것에 또 500필 값을 곱하니 112,500가마 값이 되는 어마어마한 가격이 되었다.
한 마리 당 18배의 가격을 쳐준 것이다. 우리가 싸게 사기도 했지만, 어마마한 이득을 본 것이다. 아무튼 이것을 융경제는 다시 우리에게 금으로 환산해서 내렸다. 이러니 각국마다 조공을 더 하겠다고 아우성 아니겠는가. 그런 것을 이번에 년1공으로 당겨놓았으니, 나는 아주 수지맞는 장사를 한 것이다.
다음에도 말이나 한 천 마리 사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떠날 준비를 해야 했다. 떠나는 날 융경제를 뵙고 가려했더니 환우가 있다고 해서 우리는 전객사의 환송을 받으며 자금성을 물러나왔다. 우리는 곧 다시 온 대로 천진으로 가서 배를 타고 귀로에 올랐다.
내가 중산국에 도착하니 분위기가 어쩐지 어수선 했다. 곧 내가 정전에 도착하자마자 권율이 바로 나를 뵈러 왔다.
"아무리 반가워도 숨이나 좀 돌리고 만나자고 해야지, 어찌 벌써부터 찾아오셨소?"
"전하가 안 계신 동안 여송의 양이들이 쳐들어와 한 바탕 시위를 하길래, 신기전 몇 발을 쏴줬더니 꽁지가 빠지도록 도망갔습니다."
"괘씸한.........! 한 번 단단히 맛을 보여줘야겠구만."
"그렇사옵니다. 한 번 제대로 본때를 보여줄 필요가 있을 것 같사옵니다."
"바로 추격해서 한 번 본때를 보여주지 그러셨소?"
"그러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전하도 안 계신데 괜한 분란을 만드는 것 같아서 참았습니다."
"잘 하셨소. 가능한 무력은 자제하는 것이 좋지만, 말을 안 듣는 상대에게는 회초리로 다스려야지 어쩌겠소."
"알겠습니다. 전하!"
"다른 일은 없고요?"
"큰 문제 될 것은 없었사옵니다."
"알겠소. 수고하셨소. 앞으로도 계속 수고 좀 해주시고."
"네, 전하!"
내가 더 이상 말이 없자 권율은 내게 고개를 한 번 조아려 보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이어 섭정과 송익필이 들어와 자잘한 것을 보고했으나 대단한 사안도 아니라서, 나는 돌아서자마자 잊어버렸다.
그러고 며칠을 보내고 나니 고국을 떠난 지 너무 오래 된 것 같아 한 번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를 생각하자 내 자존심이 이상하게 출렁거렸다. 어떻게 되었든 나도 이제 어엿한 일국의 왕인데, 나이 어린 선조에게 고두하며
'전하!'
소리를 하려니 왠지 낯간지러운 생각이 들었다.
명나라 황제 융경제 한 테는 어떻게 하면 하사품을 많이 받아낼까만 생각했는데, 선조를 생각하니 그런 생각이 드는 내 마음이 이상했다. 아무튼 이번에 조선에 가면 장기간 있을 생각을 하니, 쇼호 왕을 다시 끌어 들여겠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오랫동안 최고 수뇌가 자리를 비우면 아무래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마음을 먹자 나는 곧 행동에 옮겼다. 나는 곧 그의 거처를 찾아갔다.
"어쩐 일이오? 드문드문 얼굴을 대하니, 얼굴조차 잊어버리겠소이다."
내가 왕이라고 존대를 해주는 장인이었다.
"이번에 조선에 한 번 다녀올까 합니다. 아무래도 시일이 오래 걸릴 것 같아서요."
"그래서요?"
"어느 나라이든지 왕이 궐위 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1년 이상 걸릴 듯하니 장인어른께서 다시 정무를 보살피셔야겠습니다."
"그런 경우가 어디 있소?"
"제가 장인어른께서는 말씀드리지 않았지만 조선에서도 요직에 있는 사람입니다. 이번에 가면 모든 걸 정리하고 오겠습니다. 그동안만이라도 잠시 정무를 보살펴 주십시오."
"하긴 평범한 사람이 그렇게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죠. 그러나 저러나 이걸 어쩌나........?"
"제가 다녀올 동안만 맡아주시면 됩니다."
"할 수 없지. 그렇게 합시다."
"내일 바로 떠나겠습니다."
"군사는 남기고 가는 것이죠."
"당연하죠. 이 나라가 제게 어떤 나라인데요."
"하하하........! 고맙소."
이로써 나는 한시름 덜었다.
나는 장인의 거처를 나오자마자 나를 따르는 사람들과 중신들을 모두 정전으로 불러들였다.
장내를 한 번 쓸어본 나는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금번에 조선을 다녀오려 하오. 그동안 상왕(장인을 전에 상왕으로 모셨음)께서 내가 없는 동안은 정무에 복귀하시어 대사를 논할 것입니다. 그렇게 아시고 일을 처리해주시고, 권율 장군은 계속해서 이곳에 남아 이 나라를 보호해 주세요."
"알겠사옵니다. 전하!"
"나머지는 전부 조선으로 갈 준비를 해주시되, 특히 지난번 명나라에서 하사받은 비단 등을 일본에서 팔아치울 예정이니, 그에 대한 준비도 해주시고, 이곳에서는 질 좋은 맥궁을 만들기 위한 재료인 무소뿔을 가능한 많이 챙겨서, 조선으로 가져갔으면 좋겠습니다."
내 말에 흥정이 답변을 하고 부복했다.
다음 날.
나는 만삭이 된 왕비에게도 작별을 고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이번 길에는 권율을 제외한 군사가 모두 장도에 올랐다. 운검과 고경명은 물론 이순신마저 이번에는 전부 동행하게 되었다. 송익필 또한 나의 지낭으로 함께 동행하게 되었다. 물론 바늘 가는데 실 가듯이 누르하치도 사부를 따라 동행하게 되었다.
선단은 곧 출항을 해 나의 지시대로 고토열도 즉 오도열도(五島列島)로 향했다. 이곳이 지난번 우리 일행을 습격했던 왕직의 부하들이 머무는 곳으로, 나는 지난번 결심대로 이곳을 점령하여 손에 넣을 예정으로, 그곳으로 향하게 한 것이다.
섣달이라 북풍이 사납게 불었지만 증기기관이라 항해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태풍철도 아니고 해서 우리는 무사히 오도열도가 바라보이는 부근 해상까지 왔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자 나는 생각이 바뀌었다. 포로들의 진술 과정에서 알아낸 이야기가 새삼 기억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오도(五島)를 후원하는 사람이 오도의 뒤에 위치한 섬인, 히라도(平戶)의 영주 마쯔라 다카노부(松浦隆信)라는 사실을 기억해 낸 것이다. 뱀을 때려잡으려면 그 머리를 때려잡으랬다고, 괜히 내 미래의 부하들로 점찍어 놓은 자들과 투닥거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사령선에서 곧 진로의 변경을 명했다. 나가사키(長崎) 북서부에 위치한 두 개의 섬 히라도(平戶)로 진로를 수정한 것이다. 나의 명에 따라 선단의 배들은 선수를 틀어 출렁이는 바다물결을 헤쳐 나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우리는 멀리 히라도의 명물인 기암절벽이 바라다 보이는 해상까지 진출했다. 우리의 접근에 히라도를 순시하던 세키부네 한 척이 빠른 속도로 다가와 심문을 하였다.
"어디서 온 선박인가?"
대단한 놈이었다. 대 선단을 보고도 위축되지 않고 제 임무를 수행하다니.
그래서 내가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우리는 조선에서 온 수군으로 너의 영주를 만나야겠다."
"무슨 일로?"
"교역은 물론 상의할 일이 있다."
"더 이상 진입하지 말고 잠시 기다려라."
"여쭈어보고 가부간에 결과를 알려주겠다."
"알겠다."
그의 말에 따라 우리가 기다리길 2각 정도가 되자, 그자가 다시 돌아와 결과를 통보했다.
"영주께서 만나시겠다고 한다. 단 무장인원은 100명 이상 데려갈 수 없다."
"좋다! 안내하라!"
흥정과 송익필이 위험하다고 말리는 것을 나는 듣지 않고, 최근 계속해서 나의 호위를 맡고 있는 뛰어난 자 95인을 선정에 수행하게 했다. 그리고 나는 배에 이순신을 남겨 임시로 모든 지휘권을 넘겨주었다.
이어 나는 임 선달과 운검 그리고 송익필과 흥정 등의 호위를 받으며 수행무사 95인을 데리고, 작은 배에 승선해, 그들의 인도로 그들의 항구로 갔다. 이윽고 우리가 영주관에 도착을 했는데 나는 그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인물을 만나 반가운 해후를 했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Francisco de Xavier) 신부가 그 사람이었다. 이 사람이 예수선교회에서 비금도에 선교사로 파견되어 온 사람이었다. 이때 나는 아무래도 포교를 허락하면 조선 조정과 무수한 마찰이 있을 것 같아, 조선 국왕이 선교를 허락하지 않는다고 둘러대자, 의외로 선선히 다음을 기약하고 떠난 사람이었다.
즉 자신은 원래 인도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던 사람으로, 원래는 일본을 선교하러 갈 예정이었으나, 본부의 명으로 어쩔 수 이곳에 왔다며, 다음을 기약하고 선선히 일본으로 건너가더니, 이곳에서 조우할 줄은 몰랐다.
그래서 사람의 인연은 돌고 도니 함부로 사람을 대하면 안 된다 한 모양이었다. 아무튼 다시 한 번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반가움을 금할 수 없었다.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반갑습니다. 형제여! 어서 오시오!"
말과 함께 나를 격의 없이 포옹하려 달려드는 하비에르 신부였다. 이에 같이 살짝 안으며 내가 물었다.
"잘 지내셨소?"
"덕분에요. 이리 오시오. 내 소개하리다. 이쪽은 히라도의 영주 마쯔라 다카노부입니다."
"이쪽은........"
내가 얼른 나서서 나 자신을 소개했다.
"조선 장수 윤 흥이라 합니다."
"반갑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고맙소."
우리는 다카노부의 안내에 따라 영주관 안으로 들어갔다.
다이묘 치고는 작은 영주라 그런지 내부도 옹색했다.
자리를 권해 내가 좌정을 하자 수행원들이 내 뒤로 죽 늘어섰고, 저 쪽도 가신 몇이 배석을 했다. 중간에는 하비에르 신부가 앉아 양편을 번갈아가며 주시하고 있었다.
분위기가 안정되자 히라도의 영주 마쯔라 다카노부가 물었다.
"조선의 장수가 무슨 일로 저를 보자고 하신 겁니까?"
나는 말을 돌리지 않고 직선적으로 나가기로 하고 바로 물었다.
"오도열도의 해적들을 지원하고 계십니까?"
"해적이라니요. 그 사람들은 아국의 서도(西都)라 불리는 이곳의 교역이 활발히 이루어지도록, 첨병과 수호역할을 할뿐, 그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내 금번에 명 조정의 요청으로 입국한 바, 왕직을 이곳에서는 '오몽'이라 부른다죠? 그 자를 따라 도망친 무뢰배들과 그 부하들을 징치해 줄 것을 요구 받았습니다. 참고로 나는 명국의 백작이기도 합니다."
말을 마치자 나는 내 말의 신빙성을 더하기 위해, 융경제가 하사한 신분 패를 내보였다. 나는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거짓말을 잘도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내민 신분 패를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던 다카노부가 말했다.
"오몽과 함께 명국 인이 이곳으로 망명한 것은 사실입니다. 또한 그가 기른 당신들 말로 '도이(島夷:왕직이 기른 일본 무사)'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곳에서 벌어지는 국제교역의 질서를 유지할 뿐, 해적질을 하지는 않습니다."
이쯤에서 내가 쌍서 도에서 잡은 포로들을 들이대면 좋으련만, 그들은 모두 북해도의 탄광으로 보내졌으니 아쉬웠다. 천생 말로 계속해서 윽박지르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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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감사드리고요!
^^
늘 즐겁고 유쾌한 날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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