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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 상의 총상 왕 신안이 하는 이야기를 배경 지식을 덧붙여 설명하면 이랬다.
명은 개국 이래 나뭇조각 외에는 바다에 나갈 수 없게끔 하는 해금정책을 폈다. 조선도 이를 쫓아 똑같이 했다. 그러나 호구지책이 달린 백성들에게는 막는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고 해초를 채취하는 것은 물론 상인들은 비밀리에 때로는 공공연히 해상무역을 했다. 그것을 가정 연간에 심하게 탄압을 하니 시혜를 보던 왜구들이 명의 해안가 또는 내륙까지 쳐들어와 숫한 사람을 죽였다.
이에 나라에서는 몇 몇 강골들을 파견해 왜구를 소탕하려 하나 잘 되지 않았다. 아니 일정의 성과가 있었으나, 그렇게 강직한 사람들은 밀무역업자들의 조정에 대한 로비에 의해 얼마가지 못하고 대부분이 자결로 생을 마감했다.
그 시책의 연장선상에서 부임한 또 한 사람의 관리가 있으니 기 밝힌 호 종헌이었다. 병부시랑 겸 절강 총독 호 종헌은 부임하자마자 양면 작전을 전개한다. 일면 밀무역업자를 잡아들이고, 왜구를 소탕하는 한편 전직 관리들의 탄압을 피해 왜의 오도(五島:다섯 개의 섬)로 달아났던 두령 왕직을 귀순시키는 일이었다.
술수로 호 종헌은 왕직의 가족들을 임의로 석방해 호의호식하게끔 잘 대접하는 한편 감시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런 속에서 호 종언은 가족들 특히 모친에게 자신이 베풀어준 은혜를 앞세워 아들 왕직을 귀순시키는데 일조토록 한다.
즉 자신을 비롯한 가족들은 잘 있으니 얼른 귀순하여 나라의 사은(謝恩)을 입으라는 내용의 편지를 쓰게 한다. 그리고 이것을 부하 한 사람에게 시켜 비밀리에 왜의 섬까지 보내 왕직을 설득하도록 한다.
의당 자신의 부모는 물론 가족은 처형당했으리라 생각했던 왕직은 감격해 귀순 의사를 밝히고, 명의 내해까지 온다. 그러나 왕직 또한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라서 사전에 조정의 환관에게 뇌물을 뿌려 자신이 귀순을 해도 다치지 않게끔 하는 한편, 자신이 귀순하는 대가로 무역을 허용해달라는 약속을 호 종헌으로 받아낸다.
이에 호 종헌이 허락하자 왕직은 자수해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말이 갇힌 것이지, 왕직은 호 종헌에 의해 특별대우를 받는다. 그러나 일은 괴상하게 꼬여 조정에서 호 종헌을 밀어주던 실세 조 문화(趙 文華)가 실각하자, 그는 곧 끈 떨어진 갓 꼴이 되어, 곳곳에서 탄핵을 받게 된다.
그러나 호 종헌은 일말의 발버둥으로 미신을 좋아하는 가정제에게 흰 거북과 오색 영초(靈草) 등을 받치는 등 안간힘을 다하나, 군사비를 횡령했다는 등의 10개 항목에 이르는 죄를 뒤집어쓰고 체포되게 이른다.
이에 전직 순무들과 같이 자결로써 생을 마친다. 그 전에 왕직은 이미 조정의 명으로 관항구(官港口)에서 처형된 상태였다. 로비의 효험도 없이 호 종헌을 밀어주던 조 문화가 실각하고 나서 바로 다음이었다. 이즈음은 호 종헌도 자신의 몸 하나에 지키기에 급급한 상태라 그가 처형되어도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되자 밀무역업자들의 무장보복 공격이 해안 곳곳에서 일어나고 왜구들 또한 날뛰었다. 이때 출현한 것이 척계광의 척가군(戚家軍)이었다. 이들의 활약으로 왜구와 밀무역업자들의 난동이 근절되었다.
그러던 것이 또 세월이 흐르자 밀무역은 성행하고 금번에 왕직의 복수를 하기위한 왜구도 출현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왕직과 왕 신안의 관계를 알아보면 이러 했다.
휘 상은 3가지 단계로 나누어져 있었다. 해상을 운송하는 사람을 핵심으로 하는 조직과, 육상의 행상을 중개하는 조직, 강남의 도시에 있는 휘주 상인의 점포나 수공업공장을 외곽으로 하는 조직 등 크게 세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중 왕 신안의 작은 아버지 왕직은 해상무역의 우두머리였고, 아버지는 육상의 행상을 중개하는 책임자였다. 그러니 왕 신안으로서는 왕직의 이야기가 나오자 아무리 침착한 그라도 표정이 변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왕 총상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왜구와 왕 총상의 관계가 이상한 관계가 되었다. 어찌 됐든 무역을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아보지 않고 무작정 털라고 한 왜구의 잘못이 크긴 컸다. 그렇지만 왜구들의 추가 진술에 의하면 이들은 왕직이 일본으로 건너가 훈련시킨 왕직의 부하들 이었다.
일본의 오도 즉 큐슈 서해안의 군도, 북강, 구하, 나류, 암송, 중통 등의 5개 작은 섬에는 지금도 왕직을 따라 망명한 부하들이 천이 넘고, 일본 현지에서 키운 부하들도 수천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언젠간 이 다섯 개의 섬을 점령해서 이들 전부를 내 부하로 만들기로.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왕직이 내게 감사를 표했다.
"대인이 아니었으면 오늘 모든 상품을 빼앗기고, 꼼짝없이 죽은 목숨이었소. 그 구명지은에 감사드립니다."
"별말씀을 우리는 이미 동지가 아니오. 가까운 사이에 은혜 운운하는 것은 가당치도 않소."
"하하하.........! 역시 대인은 화통해서 좋소이다."
이때 아군 병사들이 한 떼의 왜구들을 줄줄이 포승에 묶어 섬으로 끌고 오고 있었다.
'저것들을 어떻게 대하나?'
오도에 있다는 놈들을 장차 내 부하들로 만들 생각을 했으나, 저 놈들은 곤란했다. 섬에 올라선 순간 이미 동료 거의 대부분이 살해된 것을 보았으니, 내게 원한을 품었으렸다. 그래서 결정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면 노동력이 아깝고, 북해도로 보내 탄광에 쳐 박기로.
일단 마음의 결정이 서자 나는 그들을 돌아보지도 않고 운검에게 명했다.
"전부 배에 태워. 배 한 척에 이백의 군사를 붙여 북해도로 보내! 이놈들 포로들도 마찬가지야!"
"네, 주군!"
운검이 내 명을 수행하러 가자 나는 남을 병사들을 지휘하여 이미 죽은 470구의 왜구 시체전부의 목을 잘라 소금에 절여 상자에 담도록 했다. 아깝지만 폭사되어 머리가 없는 놈은 열외였다.
나는 그렇게 조취를 취하자 왕 총상과 상의하여 이를 절강 순무에게 보고하기로 했다. 그래야 명 조정에서 왜구를 퇴치했다고 해서, 떡고물이라도 떨어질 것 아닌가. 나의 조치에 왕 총상은 그 일은 자신이 수행하겠다고 나서서, 나의 수고를 한시름 덜어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절강 순무의 장계가 지연되어 나의 공이 나중에 포상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장사를 하면서 천천히 북경으로 입조하기로 했다. 마음의 결정이 서자 나는 왕 총상과의 추가 상거래를 끝내고 선수를 돌려 북으로 향하였다.
천진에서 하선한 우리는 상행을 하며 천천히 북으로 향하였다. 호위무사들을 이백으로 대폭 늘리는 대신, 나는 그들에게 총 대신 검과 창으로 무장하도록 했다. 괜히 대륙에서 신무기를 공공연히 내보여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상행은 성공리에 수행되고 있었다. 우리 상단에 귀물(貴物)이 많다는 소문이 퍼지자 산동상인들은 물론 경도상인 뿐만 아니라 멀리 산서상인까지 몰려들어 성시를 이루는 바람에, 우리는 북경에 도착하기도 전에 조공품을 빼고는, 배에 실린 물건 전부를 팔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를 크게 광고하게 한 것이 있으니, 진상품 목록에 포함된 건장한 말 500필 이었다. 전쟁 시가 아니면 이렇게 많은 말이 한꺼번에 동원될 일이 없는지라,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관아에서 시비를 못 거는 것이 수십 개의 늘어진 깃발이 이를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중산국(中山國)'이라 쓰여진 깃발이 처처에 늘어져 있으니. 조공 사절단임을 알고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던 것이다.
유구국을 명 나라에서는 중산국이라 불렀고, 유구국 자체도 중산국이라 칭했다. 그러니까 유구국은 조선식 명칭인 것이다. 앞으로는 중산국으로 통일해서 부르겠다. 아무튼 우리 일행은 이렇게 하여 동지 즈음하여 북경에 입성하였다.
우리가 북경에 입성하자 곧 예부 소속의 전객사(典客司)가 찾아왔다. 사신을 접대하는 것이 그 직책이니 만큼 친절할 것을 기대했으나, 대국의 전객사라서 그런지, 아주 불친절하고 거만하게 굴었다.
우리는 곧 그가 정해준 사신단이 머무는 숙소에 여장을 풀고, 일반 진상목록을 제출하는 한편, 황제나 황후에게 올리는 방물(方物)은 별도로 하여 제출하였다. 조선에서 흥정이 준비한 것들이었다.
황제에게는 황세저포(黃細苧布), 백세저포(白細苧布), 황세면주, 백세면주, 용문염석, 황화석(黃花席), 만화방석(滿花方席), 잡채화석, 백면지(白綿紙) 등을 방물로 제시했다. 황후에게는 여러 빛깔의 모시와 명주, 화석 및 나전소함(螺鈿梳函), 백면지를 방물로 제시했다. 황태후에게는 황후와 똑같이 보냈으며, 황태자에게는 모시, 명주, 화석, 백면지 등을 방물로 제시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조하(朝賀) 즉 황제를 뵙는 의식을 여러 번에 걸쳐 예행연습을 시켰다. 이럴 때는 정말 후회가 들었다. 괜히 서장관으로 참여한다고 해서 이런 곤욕을 치르나 싶었다.
마침내 황제의 어명이 떨어져 우리는 융경제(隆慶帝)를 뵙게 되었다. 의식에 따라 여러 번의 절을 하고 드디어 '고개를 들라'는 말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융경제를 바라보았다.
삼십 대 중반의 위엄 있게 생긴 자였다. 그러나 그를 보니 애처로운 생각이 들었다.
'선군(善君)이나 내년이면 죽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년이면 우리에게 익숙한 만력제(萬曆帝)가 등극할 것이다. 10세 소년 천자가. 아무튼 내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데 융경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국의 진상목록을 살펴보았다. 다 이해가 가나 말이 나지 않는 여국에서, 말이 500필 이라니 가당치도 않도다. 어이 된 일이냐?"
"신이 헤아리옵건데 오이라이트의 화를 당하여, 만이(蠻夷:여진인)들에게 보내는 칙서가 올바르게 당도하지 않아, 말의 진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 같사옵니다. 해서 신이 멀리 만이까지 나가 구해왔사옵니다. 성상께옵서 헤아리는 바와 같이 신의 나라는 소국인지라, 마땅히 진상한 물품이 없어, 먼 곳까지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형편이옵나이다."
"허허........! 그렇다라........?"
잠시 생각하던 융경제가 고개를 끄덕이니 입가에 아주 흡족한 미소를 띠고 말했다.
"절강 순무의 보고에 의하면 왜구 458구의 목을 베었다는데 사실이더냐?"
"사실이옵나이다. 저희 공물을 약탈하려 하기에 대항하여 죽였사옵나이다."
"나라가 작다고 하더니 그것도 아닌 모양이로구나."
"아무리 소국의 나라가 적다한들 왜구 정도를 징치하지 못한데서야, 어찌 일단 유사시 번(樊:울타리)으로서의 역할을 다 하겠사옵니까?"
"하는 말마다 기특하도다. 내 여국의 청을 하나 들어주려는데 무엇이 좋겠느냐?"
"원래 소국은 2년 조공이 원칙이었으나, 근래 양이들의 물품이 많이 입조되는 바람에, 3년1공으로 바뀌었습니다. 해서 이를 1년2공으로 바꿔주시면, 그 은혜 사무치겠사옵나이다."
"허허........! 그래?"
무성한 시꺼먼 수염을 쓰다듬던 융경제가 답했다.
"년 2회 조하는 불가하고, 년 1회에 한 하느니라!"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폐하!"
"하고, 짐은 그대가 아국의 신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왜적을 물리쳐 우리 백성들을 편안케 했고, 또한 상국의 안위를 근심하여 말을 대거 500필이나 들여온 점을 감안하여, 경을 백작(伯爵)에 봉하노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명나라의 공, 후, 백의 세 가지 작위는 모두 1품이다. 외척이나 공신에게만 봉하는 것이 원칙인데, 기꺼이 나에게 하사한 것이다. 젊은 황제의 마음 씀씀이가 갸륵하여 건강에 유념하라고 일러줄까 하다가, 너무 건방을 떠는 것 같아서 그만 두었다.
"하고, 내 말 값은 후히 쳐주리니 앞으로도 충성을 다하길 바라노라!"
"성극이 망극하옵나이다. 폐하!"
"내 미열이 있는 관계로 그대들의 접대를 전객사에 일러 후히 하라 했느니, 그리 알라."
'젠장, 또 해야 되나?'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폐하!"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이며 퇴장하는 젊은 황제 융경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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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고맙습니다!
^^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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