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박인생-80화 (80/141)

<-- 누루하치 -->

3

운검에게 배사지례를 드린 누르하치가 내게 물었다.

"저는 이제 어떻게 하나요?"

"너, 동 대인 잘 알지?"

"네."

"그 사람이 너를 면천시켜 줄 것이다. 그러니 아무 걱정 말고 나를 따라가면 된단다."

"당장 요?"

"그럼!"

"옷가지는 요?"

"시장에서 새 옷으로 사주마."

"아이, 좋아라!"

아직은 아이답게 무척 좋아하는 누르하치였다.

"여각으로 가자!"

나의 말에 따라 우리는 말을 달려 다시 여각으로 돌아왔다. 빠르게 돌아왔건만 모든 이야기가 다 끝났는지 흥정이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야기는 잘 됐나?"

"네, 앞으로 정기적으로 저희와 거래를 하기로 했습니다."

"명에서도 사 무역을 통제하니 조심해서 행해야 하오."

"몇 번의 교역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하긴 내가 공자 앞에서 문자 쓴 꼴인가?"

나의 말에 다른 사람 같았으면 소리 내어 웃을 일도, 흥정은 소리 내어 웃지 않고 입술만 끝만 살짝 말아 올라가다 말았다.

"동 대인과의 거래는 어떻게 하기로 했지?"

"내일 오시에 만나 일단은 우리가 저들이 가져온 물건을 구매해서 은으로 지불을 하면, 저들은 또 그 돈으로 저희들 배로 가서 필요한 것을 구매하기로 했습니다."

"물건을 가져오지 않으니 절차가 복잡하군."

"팔릴지 안 팔릴지도 모르니, 어쩔 수 없지요."

"그럼, 왕 방주와는 이번 기회는 전혀 거래가 없는 것인가?"

"웬걸요. 그들도 저희들 배로 와서 물목을 보고 구매하기로 했습니다."

"잘 했군. 그러나 저러나 우리도 어디 묶을 데를 정해야 되는데, 이럴 때는 호위를 많이 데리고 다니는 것도 물 키는 일이군."

"어쩔 수 없지요. 대인의 몸이 소중하니 경비가 아무리 많이 들더라도 그런 돈은 아까와 하실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돈도 돈이지만 숙소를 한 군데에서는 다 구하지 못 할 것 같아서 걱정하는 게야."

"2교대로 번을 설 테니, 반 정도만 어느 곳을 잡으면 되는데, 그 많은 방이 아무래도 없지 싶은데 어떻게 하지요?"

"여기 오니까 벌써 기온이 천지 차이인데. 그렇다고 야영하기에는 날씨가 추워서 무리가 있겠고. 어떻게 포개자던지 뭐 하던지 한 번 구해봐."

"네, 대인어른!"

흥정이 방을 구하러 간 사이 나는 운검을 불러 햇기 있을 때 옷이라도 사주고 오라고 은 냥 깨나 집어주었다.

잠시 후, 흥정이 돌아와 말했다.

"아직 낮이라 방이 열 개는 있다는데 어찌 할까요?"

"며칠만 고생하면 되니, 전부 예약하고 일찍 저녁들 먹고 자는 것으로 하지."

"네, 대인 어른."

그렇게 해서 그날 밤을 이 광녕 여각에서 묵은 우리는 다음 날 오시가 되자 어김없이 나타난 동양성에 의해 물건을 흥정하게 되었다. 결국 그에게서 상등 말 오백 필과 담비 가죽 500장, 여우 가죽 300장 또 진주 100알을 구매한 우리는, 동 대인과 함께 우리의 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금주에서도 남쪽으로 더 내려간 바닷가 선착장에 정박해 있던 우리 배에 일행이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사흘 후였다. 우리의 배를 보자마자 놀라 뒤로 자빠지는 동 대인을 달래 우리는 그에게 배의 물건 중 견본품을 꺼내 구경시켜주었다.

그 중에서 동 대인은 주로 철제 제품을 많이 구매했다. 솥과 철제 냄비, 여러 종류의 철제 농기구, 도검류, 그 외 도자기 50여 점과 바늘 100쌈, 무소 뿔 100개도 구매했다. 또 우리는 말 값으로 한 필당 면포 25필을 주기로 했으므로, 50마리 값으로 면포 250동을 주었다.

동 대인이 모든 대금을 지불하고 돌아가자 때를 맞추어 휘상의 방주 왕 신안이 왔으므로 우리는 그에게도 견본품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그는 홍삼 500근 외에 바늘 1,000쌈, 탈곡기 100개, 도검류 300점, 석회질비료 5,000포대, 철제 농기구 200여 점을 구매했다.

이를 그는 우리의 요구에 의해 중국제 비단과 도자기, 약재로 지급을 하기로 하되, 물품은 항주에서 한 달 후에는 언제든지 우리가 요구하면 건네주기로 했다. 그 대신 지금은 휘 상단의 방주 이름으로 약속어음을 끊어주었다.

왕 방주와의 거래가 이렇게 끝나자 우리는 저들이 구매한 물품을 하역하고, 다음을 약속하며 출항을 했다. 다시 유구로 돌아온 나는 일찍 조공(朝貢)을 행하기로 하고 물품을 준비시키는 한편, 누르하치에게는 운검이 기거하는 방 옆에 별도의 방 하나를 마련해주어, 학문과 무예를 익히도록 했다. 학문은 틈틈이 송익필이 담당했고 당연히 무예는 운검이 담당했다.

그리고 나는 밀린 정무를 모두 처리하고 내가 직접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명에 다녀오기로 했다. 신하들이 맹렬히 반대했지만 나의 뜻을 꺾을 수는 없었다. 이번에도 수행인원은 같았다.

이럭저럭 열흘을 유구에 머문 나는 곧 출항하여 항주로 향했다. 지난번 왕 방주와 약속한 물품을 항주에서 먼저 회수하고 거기서 장사도 좀 하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긴 항해 끝에 항주에 도착하여 약속 장소인 항주의 휘상 전당포를 찾아가니, 왕 방주의 연통이 있었다.

요즘 왜구가 다시 날뛰어 북방의 장성을 수비하러 갔던 척계광(戚繼光)이, 다시 내려와 왜구를 섬멸하려 한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이 바람에 절강 순무의 사 무역 단속이 심하니, 영파(寧波) 가까이 있는 쌍서항(雙嶼港)에서 약속한 물품을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할 수 없이 우리는 선수(船首)를 남쪽으로 돌려 항주에서 멀지 않은 영파 쌍서항으로 향했다. 주산열도에서 서로 마주보는 별 볼일 없는 작은 섬이 쌍서(雙嶼)항 이었다. 섬에는 풀과 나무도 많지 않고, 새도 무리를 짓지 않았다. 그러나 남북의 수륙이 서로 연접하는 곳에 있고, 천연의 심수해항(深水海港)이었다.

16세기, 해상탐험가인 포르투갈 인들이 이 하늘은 높고 황제는 멀리 있는 독특한 지리조건을 갖춘 섬을 선정해서, 화물 창고를 섬 위에 만들었다. 그 후 중국의 해상밀수무역상인인 임벽천(林碧川), 이광두(李光頭), 허동(許棟)도 거점을 이곳에 설치했다.

가정19년(1540년), 예전에는 새도 알을 낳지 않던 쌍서도에 이미 약 삼천여명이 거주하게 된다. 그중 포르투갈 인들이 약 1,200명에 이르렀다. 섬 위에는 민가, 교회, 병원, 재판소, 창고, 거래소가 있었다. 유럽의 중급 규모의 시장도시 같았다.

현지인들은 벽안의 외국인을 배척하지 않았고, '같은 배를 탔다고 여기고, 삼척동자도 해적(포르투갈 인을 가리킴)을 의식부모(衣食父母) 즉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는 부모로 여겼다' 명나라는 세계 각국과의 상품을 이곳에서 교환, 중개, 집산했다.

일본에서 오는 상품, 스페인에서 오는 백은도 이곳을 통하여 계속하여 중국으로 흘러들어갔다. 중국의 비단, 자기, 차등은 이곳에서 세계로 나갔다. 당시의 쌍서 도는 후세사가들이 '16세기 상해'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러나 절강 순무 주환(朱紈)에 의해 이 밀무역 기지는 소탕되고, 천연 항은 통나무와 바닷풀로 막혔다. 그러나 사람의 생명력은 끈질겨서, 바다 아니면 먹고 살길이 없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다시 밀무역이 싹트는 항구가 되었다.

우리는 이즈음에서 쌍서 항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한낮이 좀 기운 시각에 쌍서 항에 도착하니 약속대로 왕 신안은 물품을 가지고 항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간만의 해후에 수인사를 나누고 약속한 물품을 인도받았다.

그리고 우리가 왕 신안에게서 더 구매할 물건이 없나 상의를 하고 있는데, 섬 안쪽에서 함성이 일며 일단의 무리들이 몰려왔다.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닌 왜구들이었다.

'웬 왜구?'

놀라 쳐다보고 있을 때가 결코 아니었다. 나는 경비 병력으로 100명밖에 섬에 데리고 오지 않았는데, 저들은 500명 정도는 되어보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즉각 발포 명령을 내리고 왕 신안 이하 그를 따라온 상인과 일꾼들을 우리 뒤로 돌리고, 전령 하나를 보내 먼 바다에 정박해 있는 우리의 선편에 알리도록 했다.

우리가 이런 행동을 취하는 사이 왜구들은 벌써 우리 전방 1마장 가까이 접근해 오고 있었다. 유효사거리에 안에 들었으므로 아군의 신속한 대응에 선두로 달려오던 왜구부터 총탄에 맞아 픽픽 쓰러졌다.

때로 어떤 놈은 영화에서 마냥 생쇼를 하며 팔을 허공으로 젓다가 쓰러지는 놈도 있었다. 그런데 몰려드는 왜구 중에는 조총을 든 놈들도 있어서 우리를 향해 쏘는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사거리가 미치지 않아 아군에게는 큰 위협이 되지 못했다.

그래도 아군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조총을 든 자들부터, 조준 사격을 하여 제일 먼저 해치웠다. 그러나 우리의 인원은 적고 저들의 달려오는 속도가 있어서, 이제 선두 열은 반 마장 가까이 접근해 오고 있었다.

이때 대원의 일부가 대완구를 통해 비격진천뢰 3발을 발사했다. 그러자 그 와중에서도 유성룡의 징비록에 나오듯이, 생전 처음 보는 무쇠 박을 호기심으로 쳐다보던 자들이, 폭사하며 뼈와 살을 하늘 높이 솟구치게 하는 놈들도 있었다.

그동안 선두 열은 더욱 접근해 이제 100보 앞으로 접근해 오고 있었다. 100여 정의 천보총이 맹렬하게 불을 뿜어내는 가운데, 다시 앞 열이 줄줄이 쓰러져도 뒤의 놈들은 완전 꼭지가 돌아 저 죽을지 모르고 달려들고 있었다.

이제 남은 인원은 이백 정도. 다시 비격진천뢰 서너 발이 선두 열 앞에 터지고, 천보총은 또 다시 격렬한 소음을 내며 적을 죽음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다시 절반이 준 100여 명이 50보 앞으로 접근해 왔다.

비로소 장전을 마친 화차 한 대에서 승자총통 40개가 순식간에 600발의 탄환을 쏟아내니 왜구들이 우수수 쓰러지며 떼죽음을 당했다. 비로소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지 앞에 선 자들부터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내가 소리쳤다.

"항복하는 자는 살려준다!"

이 말을 흥정과 왕 신안이 왜어로 소리를 질렀다. 확실히 일개 조직의 수장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상인과 일꾼들이 두려움으로 벌벌 떨고 있는데도, 그만은 침착한 거동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나의 외침이 저들의 사기를 급전직하 시켰는지 왜구의 일부가 열에서 이탈했다. 그래도 달려드는 일부가 있었다. 그런 놈들에게는 어김없이 천보총의 탄환이 그들을 지옥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이에 더욱 겁을 집어 먹은 왜구들이 대부분 항복 대열로 합류하는데, 와중에도 몇 놈은 죽음을 자초하고 있었다. 그놈들에게는 천보총이 또 다시 불을 뿜고, 놈들은 영락없이 지옥행 열차를 탔다. 이 당시는 열차가 없었으니 마차를 타고 갔다.

전장은 어느덧 화약연기만 자욱할 뿐 정적이 내려앉았다. 운검의 인솔 하에 대원들이 총구를 겨눈 채 항복한 왜구들에게 접근했다.

"병장기를 버려라!"

어느새 간단한 말 정도나 군사 용어는 익혔는지 운검이 왜어로 소리쳤다. 대부분이 그의 말에 따라 칼을 버리는데 조총을 든 놈도 있었다. 이놈이 운검을 향해 조총에 심지를 붙였다.

이 모양을 본 운검이 하늘을 날았다.

싹! 소리가 나는 듯하더니 쿵! 소리가 나며, 그의 목이 허무하게 지상으로 추락했다. 타들어가던 조총 역시 발치 아래도 떨어지는 것을, 운검은 이마저도 발로 차서 멀리 날려 보냈다. 이 모양을 보고 제일 좋아하는 놈이 있었다. 누르하치였다.

"우리 사부, 최고!"

지금까지 천보총과 신무기의 활약에

'무예를 배우면 뭐 하나?'

하는 회의에 젖어 있던 놈의 얼굴이 희색이 만면해 던진 찬사였다.

항복한 자들의 숫자를 세어 보니 꼭 30명이었다. 곧 심문이 이어졌다.

"일당이 있나?"

나의 물음에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고 대답이 없는 왜구들이었다.

"이것들이!"

선두 놈의 조인트를 까도 녀석들의 입은 본드(?)로, 아~ 쓰발 본드도 없지.

하여튼 부레풀로 붙여놨는지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아니래도 내가 말을 하고 흥정이 이를 또 통역해서 이들의 반응을 살피자니 열불이 나는데다, 이들마저 이러고 있으니 속에서 천불이 솟아올라와 미칠 것 같다.

'내 오늘부터 외국어를 익혀야겠다. 왜어든, 만주어든, 명나라 놈들 말이든 다 익혀서, 국제적(?)으로 노는데 지장이 없게끔 하겠다!'

이놈들 덕분에 나는 십년 후 4개 국어 아니 양이의 말까지 5개 국어를 하는 국제적 플레이어가 된다.

아무튼 시범적으로 나의 지시에 의해 제일 앞에 서있는 놈의 목이 하늘로 치솟고서야, 자백을 하는데 아직도 섬의 후미에는 일당 500인이 배를 탄 채 있다는 것이다. 요는 우리의 인원이 얼마 안 되니까, 500명만 기어 올라왔다는 이야기고, 이제는 사정을 알고 전부 도망갔을 것이라는 일치된 진술이 이었다.

'너희들이 오산한 게 있는데, 아군 측 배의 속도란다. 그렇게 말하면 추격을 포기할 준 안 모양인데,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이제야 허겁지겁 육상으로 오르는 아군 측 구원군 500명을 나는, 다시 되돌려 보내며 왜구들의 배를 추적해 전부 나포해오도록 했다.

까짓것 장군전 몇 발씩 안기면 왜구들의 배는 전부 수장될 떼고 살려면 항복 아니면 바다 속으로 뛰어들어야 할 텐데, 그런 놈들이야 뜰채로 건져 올리면 아니, 단정을 내려 밧줄로 모가지 걸면 저희들이 어쩔 것인가.

밧줄마저 피해 잠수하는 놈은 나름대로 복이다. 일찍 상어의 밥이 되거나 할 테니. 노예가 되어 강제노역에 시달리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전장을 수습하라 이르고 못 다한 상담을 진행하려는데, 포로 중의 왜구 한 놈이 나에게 접근해 말했다.

그런데 행색은 왜구인데 말하는 게 쏼라쏼라 명나라 말이었다. 이놈의 말을 통역을 통해 전해들은 바, 자신들은 '왕직(王直)의 부하로 원래는 절강 총독 호종헌(胡宗憲)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호종헌 역시 자결한 것을 알고, 한탕해서 돌아간다는 것이 오늘날 이렇게 되었다는 사연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함께 들은 휘 상의 총상(總商) 왕 신안의 표정이 변한 것을 나는 똑똑히 보았다. 주로 휘 상의 조합원들은 그를 방주보다, '총상(總商)'이라 즐겨 부르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아무튼 무슨 사연이 있음을 직감적으로 눈치 챘지만, 그가 입을 열지 않는 데야 나는 물어보기도 뭣해 그냥 모른 척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정리되자 그가 입을 열어 전하는데, 사연은 이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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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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