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구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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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근 만 여리를 항해해서 유구국의 섬들이 눈에 아스라이 잡힐 듯 들어왔다. 남청빛 바다가 삼월의 푸른 하늘에 유난히 쪽빛으로 푸르러 보였다. 이를 망원경으로 확인한 나는 더 이상 접근을 안고 부근을 선회하도록 했다.
아니 저들이 우리를 발견하면 접근하지 않을 것 같아 소형선 5척만 만안으로 천천히 진입하도록 했다. 그리고 우리는 오히려 더 먼 바다로 빠졌다. 잠시 후, 점점이 떠 있던 가장 큰 섬의 외곽에 떠 있던 세키부네 한 척이 황급히 만안으로 진입하는 것이 보였다.
한참 소란스럽더니 미끼를 문 세키부네가 한 두 척 몰려드는가 싶더니 근방 30척의 대 선단이 되어 후퇴하는 소형선박 뒤를 쫓기 시작했다. 남풍이라 빠르게 접근해왔지만 우리 측의 소형 선박은 잡힐 듯 잡힐 듯하면서도 잡히지 않고 점점 그들을 먼 바다로 유인해 내었다.
충분히 유인되어 우리가 있는 먼 바다에서까지 그들이 시야에 잡혔다. 미리 학익진(鶴翼陣)으로 반 포위 상태를 구축하고 있던 우리의 선박들이 까만 연기를 내뿜으며 빠르게 접근했다.
대선단의 출현에 깜짝 놀란 저들이 다시 도망가려 선수를 돌렸지만 빠르기에서 증기선과는 비교도 안 되는 저들이 당할 리가 없었다. 이윽고 왜의 배들과 1,000보 이내로 접근했다 싶자 나의 명령이 떨어졌다.
"공격하라!"
나의 명령과 함께 대형 돛 세 개 중 가장 높은 주 돛에 붉은 깃발이 내걸렸다. 이를 신호로 각 함에서 신기전 수천 발이 적의 세키부네를 향해 발사되었다. 화염과 함께 흰 연기가 긴 포물선을 그리더니 적의 세키부네에 내려 꽂혔다.
콰광! 꽈광! 쾅쾅!
일부는 겨냥이 빗나가 바다 속으로 빠져들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신기전이 저들의 세키부네에 내려꽂히며 1차 2차 폭발을 일으켰다.
곳곳에 불이 나고 적의 시체가 찢겨 터져 나가는 가운데 일부 군사들은 폭발 여력에 바닷 속으로 수장이 되기도 했다. 이어 후장식 대포가 회전을 하며 적함에게 방향을 맞추더니 이차 고각을 맞추어 발사를 했다.
쾅 쾅 쾅!
천지를 진동하는 굉음과 적 선단이 반파 완파되며 속속 수장되기 시작했다. 그 안에 탄 인간들이야 말 할 것도 없었다. 강렬한 섬광 속에 한갓 물체가 되어 터져나가고 풍압에 이리저리 구르다가 처참한 최후를 맞이할 뿐이었다.
그래도 일부 도주하는 선박들이 있었다. 일본 쪽으로 2척 유구국 쪽으로 3척이었다. 그러자 나의 명령 없이도 소형 선박들이 이들의 뒤를 빠른 속도로 쫓았다. 이내 사정거리에 들자 화차에서 승자총통 40문이 일제히 불을 뿜기 시작하고 어느 함정에서는 장군전이 발사되어 단 한발로 적선을 수장시키기도 했다.
보다 빠르게 접근한 함정 하나에서는 대완구에서 비격진천뢰가 발사되어 적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웬 박같이 생긴 무쇠덩어리가 배 한 가운데로 떨어지자 그 긴박한 순간에도 호기심으로 모여들었다가 갑자기 이 진천뢰가 폭발하는 바람에 모두 비산이 되어 하늘을 날았다.
이어 점점 가까워진 아군 함정에서 분당 12발을 발사 할 수 있는 후장식 소총에서 총탄이 빗발치듯 쏟아졌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그나마 난파선에 생존해 있던 자들이 한 몸에 수십 발의 총탄 세례를 받고 수장되거나 시신을 온전히 보전하지 못했다.
때 아닌 폭풍이 몰아쳤던 바다는 곧 언제 그랬느냐는 듯 평온을 되찾았다. 맑게 빛나는 오후의 햇살 아래 남청으로 빛나는 쪽빛 바다는 그 진함을 되찾고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나의 명에 의해 우리는 곧 유구국의 주 섬으로 상륙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가까워지자 앞머리를 밀어 옆으로 붙인 유구국 사람들 가운데 앞머리를 밀어 상투를 튼 왜놈들이 보였다. 나는 곧 다시 전투준비를 발령하고 작은 배들부터 서서히 상륙 작전에 들어갔다.
왜놈들만 모여 있으면 그냥 일대 포격전으로 깡그리 몰살을 시키겠는데 그것도 아니니 곤란했다. 그래도 가까이 접근해 있는 것은 우리가 상륙하는 과정에서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신기전 몇 발을 부근에다 쏘도록 했다.
우리의 불꽃놀이에 혼비백산을 저들이 모두 물러났지만 그래도 몇 발작 안 물러나고 이를 갈고 버티고 서 있는 놈이 있었다. 이제 15~6세쯤 되어 보이는 소년 장수였다. 그 자가 백 여 명으로 추산되는 왜병의 지휘자인 모양이었다.
아무튼 일단 거리가 벌어지자 우리는 소형선부터 하선을 시작했다. 내가 탄 대형 선박은 완전히 접근할 수는 없어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단정을 내려 차례로 하선했다. 차례로 상륙을 해 1만 대군이 집결을 해도 오연히 앞을 막아서고 있는 당랑거철의 사마귀가 있었다.
나의 명에 같이 하선한 흥정이 그에게 왜어로 물었다.
"네 놈은 누구 이 길래, 저 죽을지 모르고 앞을 막아서고 있느냐?"
"나는 사쓰마 번의 시마즈이헤이사(島津家久)의 장남 시마즈토요히사(島津豊久)라 한다."
1만 명의 대군 앞에서도 추호도 겁먹지 않고 당당하게 대답하는 소년 장수였다.
"누구건 상관없다. 왜 유구국을 침략했느냐?"
"우리 가문은 형세가 외롭다. 유구국을 점령하여 세를 불리려했다."
"몇 명이 왔느냐?"
"총 400명이 왔다."
"그 병력으로 무엇을 한다고...... ,?"
"그래도 우리는 수리왕부를 점령했다."
그의 말에 통역을 하던 흥정이 어이가 없는지 한동안 나를 뻔히 바라보았다. 이 때 멀리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행렬이 보였다. 이에 내가 명했다.
"제압하던지 항복을 받던지, 빨리 해."
나의 명에 측근에 서 있던 운검, 권율, 이순신, 운봉, 운곡이 각자 자신이 맡은 병력 앞으로가 대기하였다. 나는 이들 중 이순신에게 명령했다.
"3연대장 이순신은 저자를 산 채로 잡아오도록!"
"네! 총사령관님!"
씩씩하게 대답한 이순신이 곧 자신의 부하들에게 명했다.
"1, 2, 3, 4 대대장은 제 자리를 지킨다. 본부대대장만이 나를 따라 저자를 생포한다!"
명령과 함께 이순신이 앞장을 서자 휘하 직속부대 400명만이 이순신의 뒤를 따랐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시마즈토요히사가 응전태세를 갖추었다. 이 모습을 본 나는 어이없는 웃음을 흘리다가 흥정에게 명했다.
"통역해! 토요히사에게 일대일로 대결해서 진다면 항복하겠느냐고 물어봐!"
"네!"
곧 흥정이 토요히사에게 내 말을 전했다. 그가 답했다.
"좋다! 나는 사무라이다. 패하면 더 이상의 싸움은 없다. 오직 자결로 분노를 씻을 뿐이다."
이에 내가 이순신에게 명했다.
"정 어쩔 수 없으면 죽여도 되지만 가능한 생포하도록!"
나의 명에 이순신 단독으로 전면으로 나섰다. 이렇게 되자 다가들던 유구국의 관리로 보이던 자들도 흥미로운 눈빛으로,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게 되었다. 이때 나는 슬쩍 운검을 불러 다른 명령을 내렸다.
"순신이 혹시라도 불리하면 도와주고, 저자가 할복할 것 같으면, 이를 제압해 못 하도록 해!"
"네, 주군!"
나의 명을 받고 운검이 이순신을 따른 병력의 제일 선두로 가, 바야흐로 막 전개되려는 싸움을 주시하게 되었다.
"이얍!"
갑자기 토요히사가 무지막지한 기합성과 함께 선공을 해왔다. 양손검 직단세로 순신의 정수리를 쪼개려 달려든 것이다. 이에 순신이 눈을 빛내더니 침착하게 반 보 옆으로 미끄러져 그의 예봉을 피했다.
그러나 실패로 돌아간 토요히사의 검이 재빠르게 순신의 측면 하부를 훑었다. 이에 흠칫한 순신이 칼을 내어 막고는 그대로 밀어붙였다. 아무래도 빠른 연결동작으로 불안정한 자세였던 토요히사가 힘에 밀려 한 걸음 비척였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순신의 검이 바람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어느새 보법을 밟아 토요히사의 곁에 접근한 순신이 그대로 미끄러지듯 회피동작을 하는 토요히사의 상투를 잘랐다. 단번에 자신의 상투가 흩날리는 것을 본 토요히사가
'분하다!'
는 한 마디 외침과 함께 자신의 가슴을 찔러갔다.
쨍그랑!
이순신의 검이 다시 한 번 바람처럼 움직여 그의 검을 쳐냈다. 토요히사의 검이 무력하게 바닥을 굴렀다. 토요히사의 신형이 바람 빠진 인형처럼 서서히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무릎을 꿇은 그가 애원했다.
"더 이사 무사를 욕 보이지마라! 단 칼에 내 목을 쳐다오."
이때 내가 나섰다. 물론 흥정을 통한 통역이었다.
"우리가 유구국의 형제를 대신하여 너희 번을 지원해주겠다."
나의 말에 아연하여 자신의 귀를 한 번 파보는 토요히사였다.
"정말이냐?"
"그렇다!"
"대가는?"
"차차 논하자. 네가 살아있어야 협상도 가능하지 않겠느냐?"
"좋다! 조선군으로 보이는데 맞느냐?"
"너무 예의가 없구나!"
나의 호통에 찔끔하는 토요히사였다.
나는 그를 무시하고 유구국의 관리에게 물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평정소(評定所)의 삼사관(三司官) 중의 하나인 숀인입니다."
근 오십 줄에 가까운 숀인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어떻게 된 일오?"
"우리 수리왕부는 지금까지 평화로운 세월을 보냈소. 그런데 갑자기 저들이 상륙하여 무자비한 살상을 자행할 줄은 몰랐습니다. 미처 전열을 가다듬기 전에 왕부가 함락당하여 곤욕을 치르고 있던 중 마침 도와주시게 된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인 줄 알겠소. 나는 대 조선국의 부마로써 귀국을 돕기 위해 왔소."
"이렇게 공교로울 데가, 과연 천우신조라 할 만한 합니다!"
"국왕을 뵐 수 없겠소?"
"아! 경황이 없어서 결례를 범했습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잠깐, 이들을 처리하고 갑시다."
"네!"
나는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는 토요히사에게 말했다.
"저들을 저대로 그냥 내둘 것인가? 졌으면 무장을 해제시켜라!"
나를 분한 듯이 한 번 노려보던 토요히사에게 부하들에게 명했다.
"미안하다! 내가 패했다. 나를 따르는 자들은 전원 무기를 버려라! 아니면 나를 죽여라!"
어리지만 정말 기개있는 토요히사의 말에 모두 흐느끼며 병기를 버리는 왜병들이었다.
"됐다!"
일갈한 나는 흥정과 순신에게 명해 저들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파악하도록 했다. 그리고 나는 평정소의 삼사관 원의 하나라는 숀인을 따라 이들의 왕부로 향했다. 나의 행차에는 운검이 바짝 따르며 나를 호위했다.
우리 일행이 결코 크지 않은 왕부의 대문으로 행하는데 한 사람의 대신이 또 나타나 나를 영접했다. 알고 보니 섭정(攝政)이라는 신하 중에서는 최고의 지위에 있는 난잔이라는 사람이었다.
서로 간단히 통성명을 하고 예의를 차린 우리는 계속해서 수리왕부의 왕궁을 향해 나아갔다.
내가 수리왕부로 향하고 있는데 나를 부르며 쫓아오는 인간들이 있었다.
"주군, 같이 갑시다!"
"전투 중에 똥이나 싸고 있는 놈을 누가 믿겠누?"
나의 호위장(護衛將)으로 임명된 임 선달과 모사진이었다. 곧 허필량, 손자대, 송익필이 그들이었다. 모사진이야 그렇다 쳐도, 나를 호위할 놈이 전투 중에 하필 설사가 난다고 변이나 보고 있으니, 그래서 내가 한마디 중얼거리며 들은 척도 않고 걷고 있는 것이다.
"주군, 주군.........!"
언제부터 임 선달이 주군으로 부르고 있는지 기억도 없지만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열심히 수리왕부의 관원들 뒤만 따랐다. 세 모사들도 나를 따라 오느라고 기를 쓰고 걷고 있었다.
이윽고 정문인 수례문(修例門)이라 쓴 현판을 지나는데 섭정 난잔이 내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왕이 이 층 창가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몰라 내가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는데 송익필이 다가와 다시 한 번 묻고는 통역을 했다. 섭정이 한 말은 중국어였고, 송익필이 내게 이를 통역한 것이다. 송익필이라는 인간이 천재는 천재였다.
부친이 옛 주인을 고변한 대가로 한때는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이것이 뒤집어져 본래의 주인은 신원이 되고, 송익필은 다시 서인 신분이 되어 관가에도 진출할 수 없게 된 요즈음의 송익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왜어는 물론 중국어 여진어까지 매일 역관을 모셔 배우더니, 오늘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허필량도 이예 질세라 가담해 왜어는 능숙했고, 손자대는 또 만주어에 관심을 보여 여진어에 능통했다.
아무튼 내가 섭정의 말에 흘깃 고개를 제쳐 스치듯 바라보니, 왕은 육순 정도의 나이에 상당히 창백한 안색으로, 말라보이기까지 했다.
"정전이 이 층이오?"
"워낙 더운 나라라 이층이 시원한 관계로 보통 이층에서 정무를 보십니다."
고개를 끄덕인 내가 앞서 안내하는 삼사 관원을 따르다보니 워낙 좁은 왕궁이라 금방 정전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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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
늘 즐겁고 유쾌한 날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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