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안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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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나는 보까지 데리고 금점을 열 계획인 무극으로 향하였다. 말로 달리니 반나절 조금 지나 곧 무극에 당도할 수 있었다. 처남도 내가 남겨 준 말로 승마를 배웠는지 익숙했다.
이곳은 산의 중턱에 위치해서인지, 푸르른 나무 사이로 안이 잘 보이지를 않았다. 주로 소나무와 참나무가 자라는 조선의 일반적인 산의 풍경이었다. 우리 일행이 말을 끌고 소롯길을 오르는데, 우리를 발견했는지 흡이 달려 내려왔다.
"어서 오세요. 대감마님!"
반갑게 외치는 그였다.
"잘 지냈소?"
나의 인사에 황급히 다시 한 번 허리를 굽히는 흡이었다.
"대감마님 덕분에 무탈하게 잘 지냈습니다."
"장가는 갔겠지."
"아들만 둘입니다."
'이거, 나보다 다 재주들이 좋네!'
딸만 셋인 나의 처지를 떠올리고 얕게 한숨을 뱉는 나였다. 그 표정을 감추기라도 하듯 내가 빠르게 물었다.
"만경당에 많은 말을 보내주었다지?"
"서신이 왔기에 작은 도움이나마 드렸습니다."
"고맙군."
대화를 나누다 보니 목책을 두른 목장과의 경계가 나타났다.
안으로 들어가니 수백 필을 건사할 수 있는 축사가 줄줄이 이어져 있었다. 말과 소는 보이지 않았다. 방목을 시킨 모양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지금 말과 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금점 이야기가 중요했기 때문에 옆에 따라 붙고 있는 흡에게 바로 이야기 했다.
"큰처남! 내 상감께 이곳에 금점을 열어도 좋다고 허락을 득했으니, 이제 소와 말은 비금도로 보내고 금점을 시작하도록 하오."
"알겠사옵니다. 대감마님!"
"경험은 없지만 노련한 광부들을 많이 구해 대감마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 없도록 하겠사옵니다."
"고맙소!"
나는 가볍게 답례하고, 단양을 가보아야겠다는 말로 하산을 시작했다.
그날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금곡리로 돌아온 나는 일찍 취침을 하고자 했다. 내일 단양의 석회석 지대를 가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내가 온 소식을 들은 막내처남과 셋째 그리고 둘째 처남까지 몰려들어 술을 마시자는 바람에 일찍 잘 수가 없었다.
나는 술을 마시면서도 마음은 콩밭에 가 있었다. 만약 단양에 시멘트 공장을 짓는다면 그것을 누구에게 맡길까 고민하느라 술맛이 제대로 나지 않았다. 이것을 눈치 챘는지 막내처남이 물었다.
"두주불사의 매형이 왜 오늘은 술을 사리세요?"
"단양에 공장 하나를 지으려 하는데, 맡길만한 사람이 없어서 목하 고민 중이라네."
"제가 맡으면 안 될까요? 다른 사람들은 다 한 가지씩 맡아하고 있는데........"
"과거는 어찌 하고?"
"아, 이제 공부도 지겹습니다."
"어른들이 아시면 동의하지 않으실 텐데?"
"제가 잘 설득하죠."
"가만 있어보자."
잠시 생각을 굴리던 내가 재차 입을 열었다.
"만약 처남이 그 공장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으면 내 음서로 자리 하나 알아봐 주지. 관직에 근무하면서도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고 과거에 합격하면 그만큼 출세가 빠를 거야. 이 정도 제안이면 장인 장모님도 반대를 못하시겠지."
"좋은 안 이예요."
박수까지 치며 좋아하는 막내처남이었다. 신분도 신분이려니와 막내라 그런지 성격이 제일 밝은 편이었다.
"일단 그렇게 알고 있고. 자 이제 죽어보자고."
나의 말에 아연 긴장으로 잔을 들어 올리는 처남들이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다. 과음을 한데다 요즘 출근을 안 하다 보니 아무래도 긴장이 많이 풀려서인가보다.
나는 곧 아내가 손수 떠온 물로 세면과 양치질을 하고 장인장모를 찾아뵈었다. 그리고 막내처남 급에 대해 어제 나눈 이야기를 그대로 들려드렸더니, 장인은 썩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장모님은 반겼다.
말이 과거급제 정말 과거에 급제한다는 것은 일종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기에, 음서라도 일단 관직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다는 것에 장모님은 아주 좋아하셨지만, 장인으로서는 이 모든 게 탐탁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드러내고 딱 부러지게 반대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일단 두 분의 허락이 떨어지자 나는 곧 행장을 수습해 단양을 가기로 했다. 흥정과 운봉 여기에 막내처남 급, 그리고 내 수발을 들기 위해 하인 중에서는 삼돌이가 따라나섰다. 이렇게 우리 일행이 해가 중천에 떠서 길을 나섰는데 모두 말에 올라 빠르게 길을 재촉했다.
처남은 처남대로 말이 있었지만 삼돌이 것이 없었는데, 삼돌이는 처갓집에 있는 말을 하나 빌려 탔다. 다섯이 빠른 속도로 말을 달려가는데 우리가 막 달천 강을 지난 즈음이었다. 멀리서부터 나를 부르며 오는 사람이 있었다. 임 선달이었다. 그런데 언뜻 보기에도 일행이 있었다.
"의빈마마! 딱 마주쳤네요."
어디서 났는지 말까지 구해타고 꺼덕거리고 있었다.
"잘 만났네. 그렇잖아도 길이 어긋났으면 며칠 기다렸어야할 참인데 말이야."
"어디로 출타중이십니까?"
"단양에 좀 가보려고."
"아! 그럼, 이거 문제인데.........?"
머리를 긁적이며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는 임 선달이었다.
이때였다. 내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있었다.
"충주 목사 오 청신이옵니다. 의빈마마!"
"아니, 공무다망하신 목사께서 예까지 어인 일이십니까?"
"제가 의빈마마의 행차를 아뢰었습죠. 하하하.........!"
방약무인하게 웃는 임 선달을 보고 있노라니 골치가 아팠다. 무예는 뛰어나나 성품이 방약무인하여 예의범절에 구속되지 않을뿐더러, 때로는 오늘 같이 약은 짓도 하니 골치가 지끈지끈 아파오고 있는 것이다.
"쓸데없는 짓을 했군. 내 지금 급히 단양을 가는 길이오니 오는 길에 한 번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아, 네! 일단 이거라도 받아 노자에 보태 쓰십시오. 여봐라! 게 뭐하고 있는 게냐!"
"아! 네, 네!"
괜히 따라온 두 관병에게 호통을 치는 충주목사였다. 이에 당황한 두 관병이 굽실거리며 말에 실려 있던 궤짝을 내리느라고 부산을 떨었다. 이에 내가 급히 제지를 하며 말을 하였다.
"오 목사님! 내가 조선의 제일 부자임을 모르십니까? 마음만으로 받겠으니 내버려두시고....... 임 선달! 내 분명히 경고하건데, 앞으로 한 번만 더 이런 일이 있을 때는 내 곁을 떠나야 할 거야. 필요한 게 있으면 여기 윤 흥정에게 말해. 얼마든지 챙겨줄 테니까! 알겠어?"
"제 장난이 지나쳤습니다."
"당신은 장난일지 몰라도 이게 뭐야! 괜히 바쁜 사람 오라 가라 해서 체면도 안 서게 말이야."
나의 호통에 임 선달이 조개 입이 되어있는데 엉뚱한 사람이 고개를 조아렸다. 충주 목사였다.
"알겠사옵니다. 의빈마마!"
뻘쯤하여 비지땀을 흘리는 충주 목사가 안 됐어서 내가 말했다.
"말은 필요하니 우리가 잘 쓰고 다시 갖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안 가져오셔도 됩니다."
"그럴 수야 있나요. 일간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바빠서 이만! 따라 와!"
임 선달을 향해 호통을 치며 말에 박차를 가해 앞으로 내달리는 나였다.
* * *
우리가 단양에 도착하니 벌써 어스름 해가 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일단 현에서 일박을 하기로 하고 잠자리를 구하도록 했다. 워낙 인구가 희박한 촌이다 보니, 주막이라도 있을까 하고 걱정을 하고 있는데, 눈이 밝은 임 선달이 소리를 질렀다.
"저쪽 강변 끝집에 주기가 펄럭이고 있습니다요."
"잘 됐군."
나는 일행을 이끌고 주막으로 향했다. 남한강 상류로서 이곳까지 나룻배가 통행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손님이 있는지 생각보다는 규모가 컸다. 그래야 부엌이 포함된 세 칸 모옥에 외양간이 하나 달랑 있을 뿐이었다.
우리 일행이 접근을 하니 등에 불을 밝히고 있던 주모가 반색하며 우리를 맞았다.
"어서 오세요. 나으리들!"
대뜸 우리를 보더니 우리의 신분을 대충이나마 유추했는지, '나으리'라 불렀다.
"방 있소?"
나의 물음에 빠르게 나를 아래위로 훑어 내린 주모가 말했다.
"보다시피 방 2개가 비어있으나 흉해서........."
"찬 이슬을 맞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 주시오. 그리고 저 말들에게도 콩을 듬뿍 넣어 좋은 죽을 써주시오."
"아, 네, 네!"
대답은 엉뚱하게도 집 모퉁이서 들렸다. 굴뚝을 돌아 나오는 서방인지 뭣 인지는 몰라도, 그의 품에는 땔감이 한 아름 안겨있었다. 어느새 아낙은 부엌으로 들어가고 사내가 우리를 안내했다.
"들어가시죠."
"그럽시다."
"저녁은 뭘로........?"
미처 고개를 방안에 다 들이밀기도 전에 저녁식사 종류부터 묻는 사내였다.
"국밥으로 한 그릇씩 주시오."
"이곳 특산 매운탕도 있는뎁쇼."
보기보다 장사를 잘 하는 사내였다.
"그럼 매운탕으로 냄비......."
말을 하다 보니 조선에서 냄비를 보지 못했다. 오직 오지그릇이라는 뚝배기 류가 있을 뿐이었다. 생각이 길어지면 여러모로 골치 아프므로 일단 사내에게 말했다.
"우리가 먹을 만큼 알아서 가져오시오."
"네, 네!"
"막걸리도 한 동이 내오시오."
내 뒤에서 소리를 지르는 임 선달이었다. 아까 그렇게 혼나고도 저렇게 쌩쌩하니, 하여튼 괴짜는 괴짜였다.
점점 더워지는 날씨지만 그래도 밤이면 추우므로 모두 내게 아랫목을 권했다. 새삼 봉놋방을 둘러보니 벽도 그냥 황토 흙이요. 바닥도 맨바닥에다 새까맣게 변색된 돗자리가 두 잎 깔려있을 뿐이었다. 뭐가 기어 나올듯해 찜찜한 생각이 들었지만, 별 수 없이 하룻밤을 보내야 된다는 생각에, 나는 곧 체념을 하고 생각에 잠겼다.
냄비를 만들며 양은냄비가 제일 좋으나 알루미늄을 구하기 어려우므로, 쇠 냄비를 생각하니 너무 투박해 수요가 있을 지 걱정이 되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떠오른 것이 이번에는 프라이 팬이었다. 이것은 용도만 잘 설명하면 그런 대로 팔릴 것 같았다.
비금도에 가면 시험제작하여 일단 시장에 내놓아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이에 대해서는 생각을 접었다. 곧 국밥과 함께 주로 붕어가 들어간 매운탕이 큰 뚝배기 째 나왔다. 이어 막걸리도 동이 째 나왔다.
우리는 빠르게 식사를 끝내고 모두 취침에 들었다. 그러나 임 선달만 죽장을 짚고 밖으로 나갔다. 교대로 번을 설 모양이었다.
초저녁부터 잠을 잤으므로 나는 새벽 일찍 일어났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산책을 나섰다. 하긴 조선이야 어디가나 공기야 맑지만 산속의 공기는 그래도 좀 틀렸다. 내가 강가에 이르니 부지런한 주막의 사내가 벌써부터 낚시질을 하고 있었다. 저렇게 잡아 손님에게 파는 모양이었다.
새벽이지만 아직도 주위는 어둑해 주인은 횃불을 비추고 있었다. 그 모양을 보니 어렸을 때 낚시꾼들이 쓰던 카바이트의 칸델라 불빛이 생각났다. 그렇지만 석회에 뭐가 추가되는 것 같아 생각을 접었다 발암물질이라는 기사도 본 것 같고.
아침을 먹고 우리는 빠르게 매포로 향하였다. 새벽부터 서두른 덕에 이슬이 걷힐 때는 꽤 많이 와 있었다. 밭에는 농부들이 웃거름을 주려는지 퇴비를 내고 있었다. 가만 석회질 비료도 있잖아? 농사를 많이 짓다보면 대개의 논밭이 산성화 되는 데, 이때 이를 알칼리성 아니 중화시키기 위해 주는 하얀 비료를 농사짓던 부친과 함께 한 번 준 기억이 났다.
그때 그 비료의 설명문을 읽은 것이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석회질비료는 비료의 4요소로서 산성 토양을 중화시켜주고, 채소나 콩류 등의 밭작물 재배에 필수 다량 원소로서, 생장을 촉진하고 뿌리를 튼튼하게 한다.
"하하하........! 그러고 보면 나도 기억력 하나는 끝내주는 놈이군!"
나의 갑작스런 웃음과 중얼거림에 일행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 쏠렸지만, 조선 팔도에 비료를 만들어 팔 생각을 하니, 아니 다른 나라까지 수출할 생각까지, 싱글벙글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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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고맙습니다!
^^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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