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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인생-65화 (65/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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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렇게 하고 있는 사이에 활짝 열린 문 사이로 마당을 내다보니, 우물 기술자가 다 된 삼돌이가 웬 버드나무가지를 들고 헤매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돌아다니던 삼돌이가 소리쳤다.

"여깁니다. 여기!"

그의 외침에 새로 들인 머슴인 듯한 자가 작은 돌을 주워 삼돌이가 가리킨 곳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삼돌이의 버드나무가지를 들고 설치는 동작이 하도 이상해 하루는 내가 삼돌이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무슨 짓 하고 있는 것이냐고. 그의 왈.

'수맥이 흐르는 곳은 버드나무가 저절로 반응해 휘어진다는 것'이었다. 그곳에 작두우물을 박으면 백발백중이라는 이야기에 많이 신기해한 적이 있었다.

아무튼 우리가 안방으로 들자 장모님이 궁금한 것부터 물으셨다.

"외손자들은?"

"번거로울 것 같아서 안 데려왔어요. 엄마!"

"하여튼 요새 젊은 것들은 일신 편한 생각만 하고........"

"나 잔소리 들으러 온 거 아니거든요?"

장모의 말에 발끈하는 아내였다.

"됐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신 장모님께서 들으라는 듯 말씀하셨다.

"모처럼만에 우리 집안의 은인인 사위가 왔는데, 씨암닭이 아니라 더 한 것이라도 한 마리 잡아야지."

"소라도 한 마리 때려잡으시게요?"

"호호호........!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럼 또 사위의 목장에서 벌충하는 번거로움이 생길 것 같아........."

곧 죽어도 손해는 안보겠다는 장모님의 말씀에 나는 앞 뒷발 다 들고 말했다.

"그냥 닭이나 한 마리 잡으세요."

"아니래도 그럴 예정이었네."

"우선 술부터 한 잔 내와."

나와 마주대하기가 거북한지 술부터 주문하는 장인어른이셨다.

"알았어요. 술이야 금방 내가지만 안주 없다고 타박이나 하지 마세요."

"알았소. 대충 해서 일단 내와 봐."

이렇게 해서 대낮부터 우리의 술타령이 시작되었다.

그것도 처음에는 마시는 속도가 좀 느렸다. 왜냐하면 갑자기 들이닥친 우리 때문에 정말로 내온 안주가 부실했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나도 술을 자주 마시는 편이다보니 안주를 꼭 챙겨 먹는 버릇이 생겼나보다.

아무튼 장모님이 급히 닭 세 마리를 잡고 손수 술 몇 되를 더 내와, 거들러 나갔던 아내까지 합류하자 비로소 본격적인 술판이 벌어졌다.

내가 장모님이 찢어주는 닭다리를 받으며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도 한 잔 할 테야?"

"네!"

거침없이 대답하는 아내 때문에 나만 놀란 것이 아니라 장인장모까지 놀라 딸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돌아보셨다. 비로소 뭐가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는 아내이나 자신의 한말을 취소하지는 않았다. 그러자 장인이 한마디 했다.

"아낙이 무슨 술이냐?"

"요새는 시절이 그런 시절이 아닙니다."

나의 반론에 두 분의 이목이 내게 집중되었으나 나는 한 술 더 떠 아내에게 술까지 따라주었다.

"사위도 참, 잘 하고 있네. 계집 술 가르쳐서 어디에 써 먹게."

"그런 장모님은 안 드세요?"

"이 나이 되니 비로소 입에 대지. 언감생심 젊었을 적에는........."

"그런 말씀 마세요. 술도 음식입니다. 먹고 잘 소화만 시키면 되는 것인지, 나이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참으로 요새 세상에 저렇게 마음 넓은 사람도 있으니, 너는 이년아, 복 받은 줄 알아!"

"엄마는 정경부인에게 이년 저년이 뭐 예요? 상스럽게."

"지금 벼슬 했다고 이 어미 앞에서 자랑이냐?"

"그건 정경부인의 말이 옳아요. 지체가 있는데 아무리 어미라도 함부로 말을 하면 안 되지."

"아이고 내 오늘 서러워서.........."

장모님이 삐치셔서 벌써 앞치마 자락을 들썩이자 내가 얼른 나섰다.

"딸이 시집 잘 갔다고 생색낸 말을 가지고 그러시면 본인도 겸연쩍어지잖아요. 자, 마음 너르신 장모님께서 사위 술 한 잔 받으시고 노여움을 푸세요."

"호호호........! 그럴까?"

언제 그랬냐는 듯 급 방긋으로 술잔을 받으시는 장모님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술판이 몇 순배 돌자 아내나 장모님이나 모두 얼굴이 달아올라 보기 좋았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술이 오르는지 아내가 안하던 짓을 했다. 내 귀에 대고 속삭인 것이다.

"오늘 보나마나 따로 재우려 하실 거예요. 그러니 당신이 나서서 우리 한방에 잘 수 있도록 해봐요."

"뭐?"

나도 모르게 반문하는 나는 두 번이나 놀랐다. 하나는 평소와 다른 아내의 용기에 놀랐고 또 하나는 아이를 낳더니 아내도 이제 뭔 맛을 아나 하는 느낌에서였다. 아무튼 나의 반문에도 말해놓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아내였다.

그래서 내가 장모님께 말했다.

"오늘 장모님은 사랑채에서 장인어른과 주무시라는 데요."

"뭐라고? 아이고 남사스럽게 못하는 소리가 없네."

장모님이 그 연세에도 부끄러운지 앞치마로 얼굴을 가리고 말씀하셨다. 이러는 판이니 아내는 더 더욱 홍당무가 되어 쥐구멍을 찾고 있었다.

장인 또한 괜히 헛기침을 하며 어색함을 달래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내가 쐐기를 박았다.

"그럼 그런 줄 알고 있겠습니다. 하고 술자리는 이만 파하는 것으로 하죠. 술도 좀 깰 겸 안식구하고 산책 좀 하고 오겠습니다."

나는 이렇게 간만의 용기를 발휘한 아내를 구렁텅이(?)에서 건져주었다.

* * *

다음 날.

나는 말을 타고 만정리로 갔다. 운봉과 흥정이 나를 수행했다. 짐을 내려놓은 말 덕택에 셋은 이른 시간에 철점 예정지인 만정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제 왕의 허가까지 받았으니 공공연히 광산을 개발해도 되었다.

그 소식도 전할 겸 서얼 둘째처남 보(保)를 보기 위해 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가는 길의 주변 풍경이 이상했다. 그 전에는 논과 밭 사이에도 마을을 이룬 농가가 꽤 있었는데,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해서 주변을 세세히 훑어보니 민가들이 전부 산기슭으로 이동해 지어져 있었다. 처갓집을 가면서도 지나친 풍경인데, 걷는 말 위에서도 자는 경지에 이른 내 눈에는 안보였던 모양이었다. 이 모양을 보니 대뜸 연상되는 게 있었다.

홍수였다. 처음 처갓집으로 근친오던 날 본, 달래 강변의 풍경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양쪽으로 달래 강을 막아놓은 제방이 있긴 했으나 낮고 그나마도 세월이 오래되어서 인지 곳곳에 무너진 곳이 많았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그 정도였으면 대홍수에는 분명 버티지 못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홍수를 생각하니 처음 내가 만경강에 만들어 놓은 보(洑) 생각이 났다. 강바닥을 파고 나무를 박은 지지대에 석축을 쌓게 했으나, 오래지 않아 나무가 썩으니, 그나마 오래 버티지를 못한 기억이 난 것이다. 이를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시멘트로 했으면 하는 생각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시멘트를 생각하니 현대에서 시멘트 공장이 몰려있는 충주의 윗고장 단양이 생각났다. 매포의 현대시멘트가 떠올랐다. 절친 한 놈이 그 현대시멘트에 다녔는데, 하도 술 사준다고 해서 한 번 놀러갔는데, 분진을 뒤집어쓰고 나온 녀석의 모습이 잊혀 지지를 않았다.

그리고 친구에게 시멘트를 어떻게 만드냐고 물었더니 그의 대답이 수월했다. '제일 간단하게 만드는 방법은 석회석 분말에 용광로에서 나오는 부산물인 슬래그(slag)를 소량 섞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 슬래그는 주로 석회, 실리카, 알루미나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것이 시멘트를 만들 때 필요한 모래, 산화철, 보크사이트와 같은 성분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철을 조금 넣고 굳는 시간을 조절하기 위해 5% 이내의 석고를 첨가하면 끝이라는 것이었다.

석고는 석회암 지대에 같이 출토되니 별도로 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녀석의 말대로라면 결론적으로 시멘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용광로에서 나오는 찌꺼기와 철만 있으면 된다는 소리였다. 당연히 석회석 광산에서 석회와 석고는 챙겨야 되겠지만 말이다.

그래 결심했다.

죽이나 되나 밥이 되나 한 번 시멘트를 만들어 보기로. 시멘트만 만들면 용도가 다양하게 쓰일 것 같았다. 목재로서는 쉽지 않은 고층 건물도 보다 쉽게 지을 수 있고, 도로포장 등 그 용도가 무궁무진할 것이다. 석고도 출토된다니 곧 석고붕대를 한 환자들도 곧 조선에서 볼 날이 멀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드는 나였다. 석고로 조각할 놈도 있으려나?

나의 끝간데없이 이어지던 상념이 돌연한 흥정의 부름에 멈추어야 했다.

"저, 저것 좀 보십시오! 장관이질 않습니까?"

흥정의 손가락 끝을 따라 가보니 어느덧 철점 예정지에 다 왔는데 빼곡하게 심어놓은 계수나무 울타리가 인상적이었다.

"품깨나 들었겠군!"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상을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 때 우리 일행을 발견했는지 커다란 목문이 열리며 안에서 일단의 인물들이 튀어나왔다.

척 보아도 둘째처남 보임을 알 수 있는 사람과 그의 부인인 듯한 여자, 그리고 머슴인지 일꾼인지 모를 사내들이 다섯 정도 보였다.

"어서 오세요! 의빈마마!"

오다 말고 길가에 엎드려 넙죽 절을 하는 보였다. 황망하여 내가 얼른 말에서 뛰어내리며 소리를 질렀다.

"이게 무슨 짓이오? 어서 일어나시오."

"처음 뵈었을 때는 철이 없어 철딱서니 없이 굴었지만 지금도 그럴 수 있나요? 아무튼 의빈마마가 되신 것을 경하 드리옵니다!"

나는 달려가 얼른 그를 부축해 일으키며 말했다.

"나는 서얼 같은 것 안 따진다고, 처남매부로 지내자던 말 잊었어요?"

"잊지야 않았습죠. 하지만 그건 철없을 때의 이야기고........"

"쓸데없는 소리 그만 하고 어서 안이나 구경해 봅시다."

"네, 네!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참, 내자이옵니다. 의빈마마!"

"안녕하세요?"

공손하게 고개를 조아리나 상기된 얼굴이었다.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나의 깍듯한 인사에 황송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전형적인 촌부였다. 그만큼 수더분하게 생기고 겸손이 몸에 밴 사람 같았다. 곧 머슴들이 일제히 절을 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고한다!'

는 말로 인사를 받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간 우리는 눈을 크게 떠야했다. 밑에는 닭들이, 물가에는 오리가, 민둥산이었던 산에는 크고 작은 나무들이 많이 식재된 가운데, 양과 염소가 무리를 지어 이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남쪽과 북쪽 산기슭에는 대규모 축사와 계사가 지어져 있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투하되었는지를 알 수 있게 했다.

'이 사람도 범상한 사람은 아니구나!'

일군 기업을 보고 내가 느낀 첫 소감이었다.

"굉장히 고생 많이 했겠군."

"저의 업인데 소홀히 할 수 없었지요. 더 더군다나 처음으로 인간으로 대우해준 처남님 헙...... 의빈마마인데 그 감격을 잊고 등한히 한다면 인간의 도리가 아니죠."

"내가 오히려 더 고맙군."

나는 나도 모르게 새삼 보의 손을 부여잡고 있었다. 잠시 서로의 체온을 나눈 우리는 곧 손을 떼고 내가 물었다.

"주상으로부터 철점 허가가 나서 개발을 하려는데 처남은 어떻게 생각하나?"

"잘 되었습니다. 애초부터 그 때문에 사들인 것 아닙니까?"

"이 철점의 책임자로 나는 처남을 내정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경험이 없어서 잘 될까 모르겠습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이 정도의 성실성과 근면성을 지녔다면 광산도 틀림없이 성공할 거야. 하고 내가 알려준 노두 알지?"

"네. 수십 번도 더 가보았는걸요."

"그랬으면 됐네. 나는 철광을 운영하되, 남과 다르게 운영하려고 하네. 결을 따라 정을 쪼고 곡괭이로 파는 것은 품만 먹지 생산성이 없어요. 그래서 주로 사철과 사금 채취가 대세지만 나는 되도록 작은 구멍을 깊게 뚫어, 그 안에 화약을 대량 집어넣어 발파하는 방법을 사용할 거야."

"그럼 대규모 생산이 가능하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나는 바로 현장에서 이를 용해하여 철괴를 만들어, 전량 우리가 사용할 계획이야. 물론 수로를 이용해 운반해야겠지. 그렇게 알고 모든 준비를 처남이 해줘요. 또 일간 화포장을 보내 내 생산 방법을 시험해 볼 테니까. 그 안에 철점 장인과 대장장이도 많이 구해놓고."

"알겠습니다. 의빈마마!"

"뭐 없는 거야? 오늘은 벌써 출출하군."

"조식을 거르셨습니까?"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셨더니 밥맛이 모래알 씹는 것 같아서 말이야."

"하하하........! 예나 지금이나 약주는 무척 좋아하시나 보군요."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뭐."

애늙은이 소리를 하며 나는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장 닭을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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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고맙고 감사합니다!

^^

늘 좋은 날들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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