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안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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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널려 있습니다."
"그만 남의 속 태우지 말고 어서 말해보오."
균의 어투에서 짜증기가 묻어나자 얼른 내가 대답했다.
"서해안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섬들입니다."
"그야 해금정책으로 공도(空島)를 유지해야 하거늘........"
"그럼, 어디서 장만하오리까?"
나의 물음에 난감한 표정을 짓는 선조 균이었다.
"경작할 토지는 송곳 꽂을 땅만한 것도 없어, 노비가 되기 일보 직전의 유리걸식으로 떠도는 자들을 모으길 어언 몇개 성상. 더는 신도 버틸 수 없어, 전하의 은총을 바라는 신민이 수만이옵니다. 앞으로 이들이 더 늘어나면 났지 줄어들지는 절대 않을 것이옵니다. 신이 이들에게 인공 해조류와 소금을 만들게 하여, 이들을 버젓한 양인(良人)으로 만들어 세원(稅源)이 되게 하겠습니다. 죽었던 자들이 살아나는 것과 같은 이치옵고, 이들 또한 전하의 하해와 같은 은혜에 감격하여 북녘을 향하여 밤낮으로 고두하고 있사옵니다. 통촉하여 주옵소서! 전하!"
나는 끝내 내 주특기인 고두신공을 발휘하여 대전바닥에 이마까지 찧어대니 더욱 난감해 하는 균이었다. 여기서 나는 한발 더 나아갔다.
"이들을 그냥 내버려두면 선대왕 때의 무지막지한 임꺽정과 같은 무리들이 되어, 산으로 들로 넘나들며 양반은 물론 양인들의 재물을 털 것인 즉, 나라의 큰 해가 눈앞이옵니다. 그 인구가 신의 어림으로 추산하길 도성의 인구보다 많은 물경 이십 만이옵니다. 통촉하여 주옵소서."
"의빈의 뜻은 잘 알겠으나 이는 과인 혼자 결정하기에는 벅찬데, 조정의 중신들과 의논하여........"
"의논하나마나 그들의 답은 뻔하옵니다. 당장 자신의 발등에 불이 떨어지지 않는 한, 남의 고통에 연연할 자들이 아니옵니다. 자신이 기르는 개가 아파하면 허둥거릴지언정 절대 이들의 고통으로 가슴을 부여잡을 자들은 없사옵니다. 하오니 대비마마께만 논의 드리면 신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옵니다. 하옵고 신에게 작은 섬 몇 개라도 봉작으로 내리는 것이 옳은 일 아닌가 하옵니다. 전하!"
"하하하........! 알았소, 알았어. 부자라 봉지 하나 안 내리고 버티어 볼랬더니 더 이상 감당이 안 되는 군. 과인이 곧 대비마마와 상의 드려 좋은 답을 드릴 테니. 그런지 아오."
"신 이곳에서 기다리겠사옵니다."
"성미 한 번 되게 급하군. 알았어, 알았소. 과인이 곧 다녀오리다."
"신, 봉작 명까지 작명해 놓았습니다."
"하하하........! 무언의 압박이군."
선조 균이 그길로 뛰듯이 대전을 벗어났다.
그로부터 채 일각이 안 되어 균이 돌아왔다.
대전을 들어서며 균이 웃음 띤 얼굴로 물어왔다.
"미리 지어 놓은 봉작 명이 뭐요?"
"신의 말을 믿으시오면 만사가 편안하다 하여 '신안위(信安尉)'라 하옵니다."
"거, 참! 말 되네."
허탈한 듯 웃던 균이 돌연 엄숙히 표정을 고쳐 말했다.
"의빈 윤 흥은 듣거라!"
"전하, 의빈 윤 흥 대령이옵나이다!"
"의빈 윤 흥은 금일 이후 서해상의 큰 도서 수개를 임의로 취하라! 하면 과인은 그를 일러 '신안위(信安尉)'라 명명하고, 그곳에 가엾은 백성들이 거두어져 양인(良人)으로 거듭 나아지는 지를 지켜 볼 것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몇 번의 고두에 만족한 표정을 짓던 균이 돌연 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대비마마도 허(許)하셨지만, 혹여 순시선에라도 걸려 조정에 잡음이 일까 걱정하더이다."
"신의 신안위는 비록 몇 개의 섬이나, 이것이 어디의 몇 개라고 정확히 정해지지 않았사온 즉 '신안위'는 항상 물 위에 떠있는 부표(浮漂)와 같이 떠다닐 것이 온즉 안심하옵소서."
"하하하........! 그것 또한 묘안이로다. 하하하.......!"
대소를 멈춘 균이 말했다.
"확실히 경의 재주는 정말 썩히기에는 너무 아깝소. 앞으로도 틈틈이 과인을 찾아뵙고 좋은 재주를 빌려주오."
"감읍하옵니다. 전하!"
"그래, 다른 할 말은 없소?"
"전하께옵서도 얼른 가례를 올리시어 손을 보시어야 할 텐데........"
"일전에 은근히 대비마마께 아뢰었다가 꾸중만 들었소."
"하하하........! 너무 밝힌다고 말이옵니까?"
"그렇소."
"나중에 전하가 가례를 올리시고 나서, 초야 이튿날은 혹여라도 어디 중전이나 후궁께 어디 가자고 하지 마옵소서."
"왜? 그러면 안 됩니까?"
"아무래도 이튿날은 행동거지가 불편한 법인데, 신이 그만 일전에 공주마마께 나들이를 가자고 했다가, 상궁과 공주마마로부터 질책을 받은바 있사옵니다. 하니 조심하옵소서."
"하하하........! 그거 재미있군. 또 재미있는 이야기 없소?"
"신이 대비마마를 못 뵈 온지 꽤 되는 듯싶습니다."
나의 말에 균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답했다.
"아니래도 의빈이 퇴궐하기 전에 꼭 한 번 들려 달랩디다."
"신 이만 물러나겠사옵니다. 전하!"
"멀리 못 나가오."
"황공하옵니다. 전하!"
안 돌아보아도 궐에 갇혀 지내는 소년 군왕의 쓸쓸한 모습이 잡히듯 보였다.
* * *
통명전.
"불러계시옵니까? 대비마마!"
나의 아룀에 전각문이 활짝 열리며 대비 심 씨가 반갑게 나를 맞았다.
"어서 오세요. 의빈마마!"
"너무 격조했사옵니다. 대비마마!"
"이를 말이오. 아무리 신접살림이 좋기로서니 대비 전에 얼굴 한 번 안 비치시다니요."
"깨가 쏟아지니 기름 짜기 바빠서........."
"호호호........!"
나의 썰렁한 농담에도 의외로 크게 반응을 보이는 대비 심 씨였다. 그만큼 나에 대해서는 믿고 열린 마음이라 그러 하리라.
아무튼 웃음을 멈춘 그녀가 말했다.
"거 앉으세요. 하고 너희들은 차라도 좀 내오너라."
"네이, 대비마마!"
수행 궁녀들이 축객령임을 알고 썰물 빠지듯 대전을 물러갔다.
"요즘 돌아가는 모양새가 어떻소?"
"저 역시 정치에 관여한 지가 오래인지라.........."
"주상 아직 보령 유치하나 잘 하고 있다고 생각 드는데 의비마마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대비마마가 잘 꾸려나가시는 것이겠지요?"
나는 그녀가 듣기 좋은 말만 골라 했다.
"아녀자가 나라의 정사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겠소. 다 주상 이하 중신들이 잘 보필한 덕이지요."
심성이 온후한 대비 심 씨는 이를 모두 남의 공으로 돌렸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제 생각은 이것이 다 대비마마의 어진 마음씨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아닐 말이지만 전 대비처럼 정치에 관여했다면 지금쯤 아마 내외로 평판이 좋지 않았을 것이옵니다."
"빈말이라도 고맙소."
"빈말이 아닙니다. 대비마마?"
"호호호........! 하여튼 의빈을 만나면 본 전 역시 기분이 매우 좋으니 어쩐 일인지 모르겠어요."
"황공하옵니다."
겸양한 내가 곧 짚어 말했다.
"뭐니 뭐니 해도 정치의 요체는 백성이 잘 살게 하는 것입니다. 곳간에 인심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등 따뜻하고 배부르면 웬만한 불만은 다 넘어가게 되어있습니다. 허나 문제는 기득권층의 탐욕이죠. 가진 데 더 가지려하고, 한 번 권력을 쥔 자들은 대를 물릴 궁리나 하니, 나라 전체가 어지러워지는 것입니다. 해서 군왕 된 자 이를 어떻게 요리하느냐 하는 것이 정치의 요체가 아닌가 합니다."
"본전이 의빈을 볼 때마다 느낍니다만, 웬만한 노신들보다도 더 노회하고 정치의 요체를 꿰뚫어보고 있으니 참으로 의빈을 조정에서 떠나보내는 것이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음입니다."
"황공한 말씀을.........!"
거듭 겸양하는 내게 심성 고운 대비 심 씨는 당부의 말을 했다.
"어쨌거나 가능한 지근거리에서 보령 유치한 전하를 많이 도와주도록 하세요. 내 믿는 이 의빈 밖에 없으니 기대하는 바가 큽니다."
이렇게 말하니 나는 내심 격랑이 일었다. 그러나 나는 전혀 외부로는 이를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말했다.
"망극한 말씀이나 쫓는 것이 도리이겠지요."
이때 차가 나왔으므로 우리의 환담은 잠시 중단되었다. 아무튼 차를 마신 이후에도 한동안 대비와의 대화가 이루어졌으나 거기서 거기의 대화였다.
이후 대비 전을 나온 나는 곧 퇴궐하여 마포나루로 갔다. 여각 등을 둘러보고 나는 그날은 거기서 윤 연과 함께 잤다. 그리고 그 이튿날 나는 아내 김 씨에게 돌아왔다. 아무리 첩을 인정하는 세상이라 해도 다른 여자와 자고 온 날은, 현대 관습이 남아 있는 나로서는 바로 아내를 찾아간다는 것이, 아직도 주저하는 바가 있었다.
그래도 바로 아내를 찾아가는 데는 아내가 마땅히 기뻐해야할 일이 있었기에 오늘 따라 나는 당당했다. 내가 큰 기침을 하고 아내의 방에 들어서자, 아내는 내가 어디서 자고 오는 것인지 잘 알면서도 일체의 내색 없이 나를 반겼다.
"어서 오세요. 서방님!"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나는 아내를 놀려주려고 일부러 심각한 안색으로 말했다.
"무슨 좋지 않은 일이세요. 과히 안색이 안 좋으시네요?"
"좀 그렇소."
이렇게 운을 뗀 내가 아내의 표정을 살피니 아내 또한 나의 연기로 자못 심각했다.
"사실은 처갓집에 좀 가려하는데 배를 타고 가려하오. 헌데 당신이 배 멀미를 하니 같이 갈 수 있을 지 걱정이 되어서 말이오."
"호호호........! 난 또 뭐라고. 얼마든지 갈 수 있어요."
"배 멀미는 어떻게 하고?"
"당신 품에 안겨서 가죠."
"참, 내.........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인걸."
"그럼, 저 떼어놓고 혼자 다녀오려고 그러셨어요? 근친 이래 처음으로 가자는 당신의 제의인데, 반 주검이 다 되어도 신첩은 갈 테예요."
"알았소. 알았으니까, 준비나 잘 하고 계시오. 우리 공주들은 어쩌지?"
"데려가면 좋지만 배로 가는데다, 제법 컸으니 유모만 있으면 별 일 없을 거예요."
"단출하게 우리 둘만 갑시다."
"시종하는 다른 사람은 없나요?"
"이 지체에 그럼 둘만 다닐 수 있소? 기본은 다 따라붙지."
나의 말에 약간은 실망하는 아내의 모습이었다. 그래도 곧 표정을 회복하고 말했다.
"그래도 고마워요. 친정어머니 아버지 보고 싶어 혼자 눈물 흘린 날이 많거들랑요."
"진즉에 얘기하지 그랬소."
"바쁜 당신에게 폐가 될까봐, 입 꾹 다물고 있었지요."
"알았소. 알았으니까, 이번에는 간 김에 한 오 일 있다가 옵시다."
"고마워요, 여보!"
쪽!
"이거, 이거........!"
내가 가끔 기쁜 일이 있거나 놀려주고 싶으면 도둑 키스를 했는데, 오늘 내가 아내에게 당하고 보니 즐거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뭐가 정말 당한 느낌이 들어 기분이 묘했다. 그래도 나쁜 기분은 아니기에 나는 아내의 엉덩이를 두드려주고는 밖으로 나갔다.
나는 여기까지 수행해온 흥정과 운봉에게 명해 곧 배편으로 충주로 갈 준비를 하도록 했다. 그런데 뭔가 빠진 것 같아 허전했다. 화포장 이장손을 데려온다는 것이 깜빡하고 그냥 왔다. 지금이라도 데려올까 생각하다가 아내와의 약속도 있고 해서 이번은 그냥 가기로 했다.
다음 날 나는 의빈상단(금와상단) 소속의 배 하나를 비게 하여 마포나루를 출발했다. 배에는 우리 일행 외에 상단 소속의 사공과 집안의 하인들만 탔으므로 넉넉하여 말 세 필과 작은 가마 한 채를 싣고도 넉넉하였다. 물론 장인장모에게 줄 예물도 충분히 실린 상태였다.
그렇지만 상품을 싣지 못한 것이 상인 기질이 있는 나로서는 서운했다. 그래도 작두펌프와 탈곡기, 감자, 고구마, 국수, 젓갈류를 선물로 실은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아무튼 배가 막 출발을 하려는데 한 사람이 달려오더니 무작정 배로 뛰어내렸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은 그의 착지자세였다. 깃털처럼 가볍게 날아 내렸다할까 전혀 배에 하중이 전달되지 않아 충격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전생에서 무협지 광이었다는 나는 단번에
'고수?'
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렇지만 나는 이를 내색치 않고 그 무례부터 책했다.
"무슨 짓이냐?"
"하하하........! 술이나 있으면 한 병 주시오."
동문서답도 모자라 빈 철 호로를 흔들어 보이기까지 하는 무뢰한에게 나는 절로 시선이 갔다. 상투를 틀긴 틀었으나 얼마나 단속을 안 했는지 거의 풀어져 새가 몇 마리 들어앉았고, 옷은 남루하다 못해 이곳저곳 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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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후원해주시고 읽어주시는 모든 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
고맙습니다!
^^
오늘도 즐겁고 유쾌한 날 되시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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