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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삼월 삼짇날이 되었다.
나와 인순공주의 혼인날이 도래한 것이다. 나는 허례가 싫어 약소하게 거행할 것을 주장했지만 선조 균과 대비 심 씨는 입장이 또 다른 모양이었다.
연거푸 국상만 치르다가 모처럼 경사가 생겼으니 성대하게 혼례를 거행해야 한다고 주장해 결국 나는 이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근정전 뜰에서 화려한 혼례식이 거행되었고 경회루에서 만조백관이 참여하는 연회도 개최되었다.
번거로운 예식이 모두 끝나자 나는 공주와 내가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을 데리고 만경의 본가로 향하였다. 이 행렬에는 어머니의 가마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정동 집에는 아내와 딸들 그리고 남녀 하인들만이 남아 쓸쓸하기 짝이 없게 되었다.
아내 또한 함께 내려갈 것을 권유했으나 무슨 일인지 당분간 한양에 있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바람에 그녀의 원대로 해주었다. 윤연 또한 마포나루의 집에 하인들과 함께 머물러 있었다.
빠른 행군으로 근 열흘 만에 우리 일행은 만경의 본가에 도착했다. 많은 하인들이 열 지어 선 가운데 우리는 본가에서 간단하게 다시 한 번 혼례를 올렸다. 그리고 초야(初夜)가 돌아왔다.
조촐한 주안상이 차려진 가운데 우리는 마주보고 앉았다. 붉은 대홍초가 활활 타오르는 가운데 나는 처음으로 공주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혼례를 원치 않았기에 가급적 마주치는 것을 피했고, 혼례 날에는 붉은 면사로 가려져 있으니 볼 재간이 없었다.
그리고 이곳으로 오는 동안에 신부는 내내 가마를 타고 왔으니 나랑 거의 마주칠 일이 없었다. 아무튼 나는 수줍어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신부를 보고 말했다.
"참으로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었소. 드디어 우리가 오늘 비로소 초야를 맞이하게 되었구료. 어디 공주마마의 옥용 좀 자시 보게 고개 좀 들어보오."
"부끄럽사옵니다. 부마님!"
'젠장 나이 사십이면 나이 값을 해야 할 텐데, 수줍음은 어린 신부들과 다름없으니........ 하긴 처녀의 수줍음이 나이를 먹었다고 어디로 가는 것은 아니겠지.'
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공주가 고개를 들길 바랐으나, 한마디 외에는 계속하여 고개를 숙이고 있는 공주 때문에 내심 답답하여 목소리가 약간 커졌다.
"고개를 좀 들라하지 않았소?"
'공주면 대수냐! 이젠 내게 시집 온 아낙일 뿐이지.'
내 말에 마지못해 천천히 고개를 드는 공주였다.
얼핏 대전에서 본 그대로였다. 둥글넓적한 생김에 살집이 풍만하고 후덕한 인상이었다. 조선으로 치면 최고 미인이라고 칭할 만하나 내 눈에는 두 부인보다 못해 보였다. 그래도 대체적으로 예쁘긴 예쁜 얼굴이었다.
"미인이구료!"
공치사 하는데 돈 드는 것도 아니라, 나는 한마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사실 미인은 미인이었다. 내 눈에 두 부인보다는 아름답게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아무튼 나의 말에 공주는 다시 고개를 푹 떨구었다.
"자, 우리 술 한 잔씩 나눠 마시고 초야를 치러봅시다."
나의 '초야'라는 말에 모닥불을 둘러쓴 듯 이제 완연히 목까지 붉어지는 공주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제 나는 으레 그러려니 하고 옥병을 들어 금잔에 황금빛 술을 가득 따랐다.
"첫날밤의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서라도 한 잔 하는 것이 좋소. 한 잔 하도록 하오."
"네, 부마님! 부마님의 잔은 제가 한 잔 따라 올리도록 하겠사옵니다."
"그러하오."
그런데 말 하는 게 허스키였다. 지금까지는 단음절 내지 몇 마디 하지 않아서 그렇지 제대로 들으니 좀 거친 음성이었다. 타고나길 그런 걸 어쩌겠나. 나는 잔을 들어 공주에게 내밀었다.
공주가 내 잔에도 술을 가득 따랐다.
"자, 우리 건배 한 번 합시다. 늦은 결혼이지만 백년해로를 위하여!"
"네, 부마님!"
둘은 잔을 부딪쳤다. 내가 단숨에 비우고 그녀의 하는 거동을 보니 결코 얼굴을 돌리지도 코도 잡지 않았지만 찔끔찔끔 마시는 모양새가 많이는 못 마실 술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곧 사래가 들린 사람처럼 콜록콜록 거리며 술잔을 반이나 남겼다.
하는 모양새를 보니 억지로 강요해서 마실 술이 아닌지라 나는 그냥 내버려두고 나 혼자 자작하여 몇 잔을 거푸 따라 마셨다. 벌써 혼인을 세 번해도 첫날밤이 긴장되는 것은 사실이어서, 술을 더 마시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서너 순배의 술을 들고나니 낮에 마신 술까지 더해져 불콰해졌다. 미안해 아직도 들고 있는 공주의 잔을 말없이 회수한 내가 말했다.
"그만, 잡시다."
"네, 부마님!"
나는 대홍초 하나만 남기고 모든 불을 껐다. 그리고 밖을 향해 소리 질렀다.
"물러가라!"
"킥킥킥........! 네! 부마님!"
"큭큭큭........! 네, 대감마님!"
모두 물러가는 발자욱 소리가 들리자 나는 공주의 쪽도리를 벗겨주었다. 그리고 겉 예복을 벗기고 차례로 한 꺼풀씩 그녀의 웃옷을 벗겨나갔다. 나의 이 행위에도 긴장을 해서인지 벌써부터 바르르 떠는 공주였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서 내가 말했다.
"긴장이 많이 되는 모양인데, 술을 한 잔 더 합시다.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면 긴장이 한층 덜 할 것이오."
"저, 술은........."
"그렇게 마시면 술을 숟가락으로 떠먹는 것과 뭐가 다르오. 그렇게 마시지 말고 가급적 한꺼번에 쭉 마셔야 사래도 들리지 않고 제대로 마실 수 있소. 술 냄새가 정 역겨우면 코를 막고서라도 마셔보오."
"네, 부마님!"
그래도 말은 잘 들으니 다행이었다. 공주랍시고 첫날밤부터 콧대나 세우고 했으면 정말 아니었다. 화를 낼 수는 없고 거칠게 다루어 크게 경을 치게 하는 수도 있으니까.
내가 한 잔을 다시 가득 따라주니 공주가 이번에는 아예 손으로 코를 막고 단숨에 들이켰다. 그러나 이번에도 사래가 들리긴 마찬가지였다. 너무 빨리 마신게 탈이었다. 나는 연신 콜록거리는 공주의 뒤로 돌아가 그녀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민망한지 공주의 뒷목까지 붉어져 있었다.
공주가 곧 진정이 되자 나는 원님 덕에 나팔 분다고 나도 자작으로 한 잔 따라 마시려니 공주가 얼른 눈치 있게 내 잔을 채워줬다. 다시 한 잔을 가볍게 비운 나는 뒤늦게 숭숭 썬 돼지고기 한 점을 간장에 살짝 찍어 그녀에게 안주로 권했다.
"아~! 하시오!"
"부마님!"
부끄러운지 이 행위에도 자신도 모르게 고음이 튀어나오는 공주였다.
"이 정도 가지고 부끄러워하면 어떻게 첫날밤을 무사히 치르겠소. 어서 입을 벌려보오."
"......... 네, 부마님!"
주저주저 대답한 만큼이나 주저주저 입을 벌리는 공주였다.
나는 제비새끼 마냥 벌린 그녀의 입에 고기 한 점을 빠르게 넣어주고 늦게 젓가락을 빼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악........!"
"하하하........!"
"장난이 너무 지나치시옵니다. 부마님!"
울상을 짓는 그녀를 보고 있노라니 나는 또 웃음이 터져 나와 다시 한 번 대소를 터트렸다. 공주도 끝내 우스운지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덕분에 공주의 긴장감이 한층 덜 해지고 나는 작업에 가속도를 붙일 수 있었다. 이제 상의는 얇은 속적삼 하나만 남았다. 그래서 내가 지시하듯 제법 엄하게 말했다.
"하의는 공주가 스스로 벗어보오."
나의 말에 움찔하더니 진심인지 아닌지 내 표정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 한 번 나를 쳐다보던 공주가 나의 변함없는 표정에 살며시 일어나 예복 치마를 벗고는 또 다시 주춤거렸다. 내 시선이 머물면 벗는 속도가 더딜 것 같아서 나는 아예 고개를 외면하고 딴전을 쳤다.
보나마나 공주는 계속해서 나의 시선을 의식하며 하나씩 옷가지를 벗는 모양이었다. 이따금씩 사르락 사르락 소리가 나며 옷 벗는 소리가 들리나, 뭔 놈의 것을 그렇게 많이 껴입었는지, 아직도 옷 벗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아직, 멀었소?"
나는 아예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물었다.
"다, 다 되어 가옵니다. 부마님!"
난청인 사람은 절대 들을 수 없는 작은 목소리로 공주가 답을 해왔다. 그 순간 나는 장난기가 발동하여 갑자기 고개를 홱 돌렸다.
"어머나........!"
속치마 하나를 남겨놓고 망설이던 그녀가 그 상태 그대로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모습이 현대를 경험한 내게는 생경한 풍경이라, 나는 나도 모르게 또 다시 대소가 터져 나왔다.
"하하하........!"
나의 웃음에도 공주는 부끄러움으로 다만 고개를 푹 숙이고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웃음을 그친 내가 말없이 농에서 비단금침을 꺼내어 바닥에 깔았다.
"제가 할 것을........"
"아니오. 이것은 다 신랑의 첫날밤 서비스요. 헙.......!"
나도 모르게 말실수를 하고 그녀를 쳐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의아한 표정이었다.
"투철한 봉사정신이라는 류구국(琉球國)의 언어요."
"류구국은 어디 옵니까? 부마님!"
"저 현 오키나와를 말하는 것으로, 험, 험.......! 왜국의 더 남쪽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요."
"그런 작은 나라의 말도 배우시옵니까? 부마님?"
"필요에 의해서 배우고 있소. 조선말과 비슷한 말이 매우 많소."
"그래요?"
거짓말이 거짓말을 부르고 있었지만 나는 태연했다.
이런 말을 나누는 사이 분위기가 반전되어 무드가 깨졌지만 공주의 긴장감은 많이 누그러졌다. 다시 덥혀야 했지만 나는 차근차근 진도를 나가기로 했다.
"이리 와 보오."
그러나 공주는 얼굴만 붉힌 채 꼼짝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내가 가야했다. 나는 천천히 그녀에게 접근하여 하나 남은 속옷 적삼을 벗겼다. 그러나 비단 천으로 꽁꽁 동여맨 천 하나가 마지막 관문으로 남았다.
"부마님, 이제 그만 불 좀........."
'왜, 그 소리를 안 하나 했다.'
세 명 다 똑같이 청하는 말이 마침내 그녀의 입에서도 나왔다.
"앞으로 많은 날을 수없이 볼 텐데 첫날밤 보기로서니 무에 부끄럽다고......."
"그래도 싫사옵니다. 제발 불 좀 꺼주세요."
공주라 그런지 그 전 부인들과는 대거리 하는 것이 틀렸다. 좀 더 완강한 것이다.
'에효, 할 수 없지!'
나는 상의만 벗겨놨는데도 벌써 풍만한 몸집을 보며, 일어나 등잔에 불을 밝히고 촛불은 껐다. 그리고 등잔의 심지도 좀 줄였다.
"더 이상은 양보할 수 없소."
강경한 나의 말에 고개만 푹 숙이고 있는 그녀였다. 나는 다시 그녀의 곁으로 돌아와 그녀의 남은 옷마저 벗기기 시작했다.
속치마의 끈을 풀고 어렵게 이를 벗겨내니 이제 고의가 남아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만, 이불 속으로........"
"아니, 가슴만 풀고."
나의 말에 무어라 항변하려 입을 벙긋거리나 말이 되어 나오지는 않는 그녀였다. 나는 그녀의 뒤로 돌아가 마침내 가슴을 가린 천의 매듭을 풀었다.
"어멋!"
천이 벗겨지자 비명을 지르며 황급히 자신의 가슴을 가리는 공주였다.
"어디 좀 보오."
돌아서서 짓궂은 미소로 뱉는 나의 말에 그녀가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여 황급히 이불 속으로 피신하는 공주였다.
"바퀴벌레다!"
"어머!"
내 말에 깜짝 놀라 본능적으로 요 위를 한 손으로 잡을 듯이 집는 공주였다. 그 바람에 출렁 떨어지는 거대한 가슴을 나는 순간적으로 볼 수 있었다. C컵을 넘어 족히 D컵은 되는 가슴이었다.
"하하하.........!"
"뭐예요!"
나의 웃음에 속은 것을 알고 화를 벌컥 내는 공주였다.
'이제 성깔 나오나. 이래서 오냐 오냐, 받들어 키워진 것들은........'
확실히 두 아내와는 다른 공주였다.
"미안, 공주의 예쁜 가슴을 보기 위해 장난 한 번 쳐보았소."
나의 말에 표정이 누그러지는 공주였다.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그만 너무 놀라다 보니........"
"됐소. 이제 잡시다."
"네."
대답은 얌전히 했지만 도대체가 누울 생각이 없는 듯 멍하니 앉아있는 공주였다.
"이제 그만 불을........"
"또 불 타령이오!"
호통 치는 듯한 나의 말에 움찔하는 공주였다.
'나의 말이 너무 심했나?'
나의 말에 놀라 한동안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는 공주였다.
'이거, 쩨쩨하게 아까의 복수야, 뭐야?'
나는 지금 선입견을 가지고 무의식적으로 그녀와 자존심 경쟁을 벌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미안, 미안. 이제 그만 잡시다."
나는 옷을 입은 채 그냥 이불 속으로 들어가 공주를 끌어안아 갔다. 몸집이 있어서 쉽게 끌려오지 않았지만, 그녀가 마음을 먹자 너무 수월하게 내 옆에 누워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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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
오늘도 즐겁고 유쾌한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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