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박인생-55화 (55/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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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런 개혁 정책도 삼 년이 한계였다.

그해 섣달에 아들을 앞세우고 시름시름 앓던 대왕대비 문정왕후마저 덜컥 세상을 버리니, 그의 나이 향년 63세로 원 역사보다도 2년이나 먼저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문정왕후의 국상마저 치르면 나는 도리 상으로나 인간적으로 보아도, 삼년 후에는 꼼짝 없이 공주와 결혼을 해야 되기 때문에, 이후에는 정치 일선에 나서기가 힘들 것이다.

어쨌거나 온 나라가 또 한 번 국상을 당하여 초상을 치르느라 정신이 없는 가운데, 나는 퇴근 후 여각에서 송 대방 송 일속을 만나고 있었다. 둘은 대화에 열중하느라 푸짐하게 차려진 주안상이 그냥 그대로 있었다.

"송 대방, 내 말대로 하시오. 북쪽의 국경 무역은 만상이나 유상에게 넘겨주고, 왜와의 해상 무역 또한 내상에게 넘겨주시오. 그리고 송상은 국내를 전부 발로 뛰시오. 지금 해온 것보다 더 보상과 부상 수도 늘리고 방물장수도 늘리시오. 가급적 그들 모두에게 우리나라 글자는 깨우치게 하여, 기별서리 역할을 하도록 하고."

내가 이야기를 몇 번에 걸쳐 송일속에게 반복하는 이유는 그만큼 국내 여론을 환기시키는 데는 이들의 역할이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영감마님의 시책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여 지금까지 저희들이 움직여온 것은 사실 아닙니까? 물론 영감마님이 주도적으로 노력하시어 개성에서만 유통되던 화폐가 이제 전국적으로 쓰일 수 있게 되어, 상업이 더욱 활성화 되었고, 전국적인 오일장 역시 영감마님이 노력한 부산물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 보부상들을 상대로 한글을 깨우치게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라서........"

말끝을 흐리는 노회한 송 대방에게 나는 최후의 패를 제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한글을 깨우치게 하는데 드는 비용 일부를 부담할 테니 더욱 노력해주오."

"영감마님의 노고를 생각하면 그런 것 까지 기댈 게재가 아니나, 현실적으로 저도 영감마님의 시책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좀 답답한 면이 있는지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그럼 됐소. 벌써 술이 다 식었구료. 이제 술이나 한 잔씩 하면서 더욱 우리 금와상단과 송상과의 유대를 강화합시다."

"감사하옵니다. 영감마님!"

이렇게 되어 둘의 대화는 다 끝났고, 그때부터 우리는 본격적인 술판을 벌였다.

* * *

그로부터 삼년 세월이 흘렀다. 아니 햇수로는 4년이 흘러 1567년 정월달이 되었다.

내 나이 어언 23살이 되었고, 인순공주의 나이는 40세가 되었다. 그야말로 당시 조선 여성으로 볼 때 조금 과장을 보태면 할머니가 다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공주의 나이였다.

나는 그동안 도승지로 2년을 근무하다가 호조판서로 옮겨 선혜청과 상평청을 관리하면서 보다 대동법 확대실시와 저페(楮幣:종이돈)까지 보급하려 했으나, 기득권층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쳐 답보를 면치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것으로 보아도 개혁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가 뼈저리게 절감하는 요즈음의 나였다. 그래서 요즈음은 반포기 상태인데다 이제 공주와의 결혼으로 은퇴하게 되면 나는 당분간 정계를 떠날 생각이었다. 그 기간이 얼마가 될지는 전적으로 하늘만이 아는 일이 될 것이다.

아무튼 나는 요즈음 이제 두 번의 국상도 다 끝났고 해서, 더 늦기 전에 공주와의 결혼을 해야겠다고 생각은 했으나, 막상 하려니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주저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대비 심 씨가 나를 대비 전으로 불렀다.

곧 옛날 문정왕후가 쓰던 통명전이었다.

"부르셨습니까? 대비마마!"

"어서 오세요, 윤 대감!"

나도 정이품 판서이니 대감으로 불려진지 오래라 이제는 익숙한 호칭이었다.

대비 심 씨에게 예를 표하고 멀찍이 물러나 새삼 오늘 대비를 보니, 올해 36세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많이 늙었다. 머리도 희끗희끗 하고 이마에 주름살도 생기고 있었다. 명종 사후 홀로 지낸 고독감에다가 그간 수렴첨정을 하느라 더욱 많이 늙은 듯 했다.

"다름이 아니오라 늦었지만 미뤘던 혼례를 서둘러야 할 듯해서요. 이제 왕실에 윗분들을 다 떠나시고 본전이 제일 웃어른이 되었네요. 하니 본전이 주관을 하지 않으면 아무도 공주와 부마의 일을 신경 쓸 사람이 없군요."

말 하는 심 씨의 입에서는 이상한 고적감이 묻어나왔다.

"저도 늘 생각은 해왔습니다만 연 이은 국상을 당하여 어쩔 수 없었고, 또 당사자가 되다보니 제 입으로 얘기한다는 것이 쑥스러운 일인지라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택일을 하여 주시면 그에 맞추어 준비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우리 조정으로 보면 큰 손실이나 지금까지 기다려온 공주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 없는지라, 서두르도록 하겠습니다. 하고 이제 본전도 그만 정사에서 손을 떼고 싶습니다."

"전하의 총명으로 말하면 능히 그러셔도 되나, 아마 조정 중신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1년만 더 애를 써주시죠."

"본전의 생각으로는 당장이라도 물러나고 싶으나 정 대감께옵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어떻게든 일 년은 더 참고 노력해보도록 하지요."

"사직을 위해 더 다행한 일이 없사옵니다."

"참 일전에 가져다주신 감자와 고구마를 참으로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아직 양이(洋夷)에서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이제사 씨감자와 씨 고구마로 생산을 하다 보니, 양을 많이 드릴 수 없어서 죄송했습니다. 올 봄에 농사가 잘 되면 우선적으로 대비마마와 주상 전하께 가장 많이 진상하도록 하겠사옵니다."

"호호호........! 말씀만이라도 벌써 입안에 군침이 도는 듯하네요. 그보다도 그게 가난한 백성들에게는 한 끼 식사로도 요긴하다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설움 중에 배곯는 설움만한 게 있습니까? 작황이 좋아 온 나라에 빨리 빨리 보급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대감께옵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궁에서도 달래기가 무안한데요."

"대비마마의 심성이 어지셔서 그렇습니다. 혹자들은 축재를 하고 해도 배부른지 모르는 아귀들도 있으니, 다 심성 나름이 아닌가 합니다."

"호호호........! 그렇게 보아주시니 고맙군요. 그리고 작년 가을에 설치한 작두우물은 궁에서 일하는 나인들에게 칭송이 대단하고요. 또 그 뮈시기냐? 탈곡기라던가는 아주 효율이 높은 획기적인 상품이라고, 양반 지주층에서 인기가 대단하다면서요?"

"백성들이 어떻게 하면 좀 더 편안하게 살까? 어떻게 하면 보다 효울적으로 농사를 지을까 고민하다보니 생긴 작품이지만, 대단치는 않을 것을 가지고 대비마마에게까지 칭찬을 듣자니 황감하군요."

"호호호........! 아무튼 대감과 같이 총명하고 재주 많은 사람은 일찍이 조정에서 본 적이 없어요. 그런 분을 한 사람 때문에 빼앗긴다는 것은 큰 손실이지만, 또 그만한 사람이니 우리 불쌍한 공주마마도 잘 위해 주실 것이라고 믿어요. 하고 또 종친이나 여타 나라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도 많고, 방법도 많으니, 조정과 사직을 위해서 앞으로도 더 힘써주시길, 궐내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부탁을 드릴게요."

"그렇게 높이 보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종종 찾아뵙도록 하겠사옵니다."

"아니? 그럼, 안 찾아올 생각이셨어요?"

"하하하........! 그런 것은 아니고........"

"농담이라도 절대 그런 말씀 마세요. 저서부터도 어려운 일이 생기면 부마님께 매달릴 텐데 박정하게 저버린다고 생각하시면 안 되죠."

"알겠사옵니다. 대비마마!"

"바쁘신 분을 오늘 제가 너무 붙잡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기분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왕실의 최고 어른을 이렇게 저 혼자 오랜시 간 뵐 수 있다는 것이, 더 없는 광영의 자리였습니다."

"호호호.......! 말씀마저 사람을 취하게 하는 묘한 재능이 있는 분이세요. 늦었지만 공주마마가 부럽기도 하네요."

"별말씀을........!"

사실 개인적인 촌수로 따지면 공주에게는 손아래 올케이니 내가 더 어른대접을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신분이 신분이니만큼 내가 좀 추울 수밖에 없는 둘의 관계였다. 아무튼 나는 그길로 작별을 고하고 대비 전을 물러나왔다.

아직 근무 시간이 시간이 좀 남았지만 막상 공주와 식을 올릴 생각을 하니 본 부인에게 많이 미안했다. 착잡하기도 하고 아무튼 묘한 기분에 나는 일찍 퇴근하여 집으로 갔다. 나의 퇴근 소식을 들었는지 아내가 딸아이를 안고 나왔다.

채 1년도 안 된 놈이 벌써 두 살이 된 딸아이였다. 아내는 두 번째도 딸을 낳았다. 안고 있는 놈이 그놈인 것이다. 그만이 아니라 윤 연도 딸을 낳아 나는 딸만 셋으로 딸부자였다. 그래서 어머니가 모두 못마땅해 하셨지만 인력으로 안 되는 일을 어쩌란 말인가.

"무슨 일 있었어요? 오늘은 일찍 퇴청하셨네요."

"응, 그럴 일이 좀 있어서."

아내도 어차피 알 일이지만 가능한 미루고 싶은 것은 무슨 심리인가.

나는 내심 한숨을 불어내며 무거운 마음으로 그냥 내가 기거하는 사랑채로 들어갔다.

그런데 아내도 무슨 눈치를 챘는지 요즈음 잘 안하던 짓을 했다. 딸아이를 유모에게 맡기고 손수 술상을 보아 사랑채로 들어온 것이다.

"모처럼 당신에게 한 잔 올리고 싶어서요."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해서는 아니고?"

"꼭 그렇게 입으로 직설적으로 뱉으셔야겠어요. 그냥 모처럼 아내의 봉사라고 생각하면 되시죠."

"그러면 그럴까."

"그렇다고 꼭 입 다물고 계실 것은 아니시죠?"

"이 사람이 지금 병 주고 약주나?"

"호호호.........! 제가 그랬나요? 일단은 즐겁게 잡주세요."

"이거, 받아도 영 찜찜한데.........."

"그렇다고 제 성의를 무시하시면 안 되시죠."

"알았어, 알았다고, 일단은 받고 보자고."

아내가 조용히 미소를 띠고 내게 술 한 잔을 따랐다. 내가 받은 잔을 막 마시려는데 아내가 말했다.

"저도 한 잔 주세요."

"오늘따라 이 사람, 왜 이래?"

"언제는 안 마신다고 성화드니요?"

"지금은 분위기가 그게 아니잖아, 언제 사람들이 들이닥칠지도 모르고."

내 말에 아내가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안채로 술상을 옮길까요?"

"아, 그게 아니고........"

아내가 먼저 이상한 제의를 하니 괜히 뒤가 켕기는 나였다.

* * *

그날 밤 나는 아내와 대작을 하면서 기어코 공주와의 결혼이 임박했다는 것을 실토하고야 말았다. 순간적으로 아내가 멍했지만 그뿐이었다. 오랜 세월 두고 어차피 닥칠 일이라고 체념을 해서인지 금방 담담해지는 아내였다.

나는 그런 아내가 더욱 안 되었어서 꼭 끌어안고 잤다.

다음 날 내가 등청을 하니 대비 전에서 내게 혼인 날짜를 통보해왔다. 공교롭게도 나와 아내가 결혼한 삼월 삼짇날이었다.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지만 나는 순순히 동의했다. 막상 혼인날짜까지 잡히자 나는 일이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개혁은 지지부진이고 어차피 물러날 것이라면 빨리 물러날 결심을 하고 선조 균에게 독대를 요청했다. 이제 열여섯 살로 어엿한 성인이 된 균은 제법 노련하게 나를 상대했다.

"혼인에 무슨 문제라도 있소?"

"전하! 그런 게 아니오라, 신 이만 호판 직에서 물러날까 합니다."

"거, 무슨 소리요. 아직도 혼인 날짜도 많이 남았는데.......?"

"한두 달 더 근무해봐야 그렇고 후임에게도 인계 절차가 있으니........"

"안 되오. 혼인 전 날까지 해주시오. 과인이 경을 얼마나 의지하는지 잘 알고 있잖소?"

"오십 보 백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차피 떠날 것이라면 일찍 그만두고 좀 신도 쉬고 싶습니다."

"경은 과인의 성격을 몰라서 하는 말이오? 좌의정 홍섬(洪暹) 같은 이는 고령이라 사직한다는 상주(上奏)에, 과인이 궤장(几杖)과 안석(案席:벽에 세워놓고 앉을 때 기대는 방석)을 하사하고서라도, 붙들어 앉힐 것을 모른단 말이오?"

"잘 압니다만, 신과는 경우가 다르지 않습니까?"

"그거나 그거니까, 무조건 그때까지는 근무하시오. 아무래도 경이 떠난다니 심란한 판에 더 이상은 왈가왈부하지 마시오."

그간의 경륜으로 이제 많이 노련해진 선조 균의 말에 나는 그날은 더 이상 말도 못 붙이고 어전을 물러나왔다. 어전을 물러나오면서 생각하니 떠나는 마당에 뭐라도 좀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열흘 후 균에게 다시 독대를 청해 사직이야기를 꺼냈다. 그래도 완강히 거절하길래 내가 은근한 어투로 말했다.

"전하, 신 청이 하나 있습니다."

"뭐든지 말 해보오."

"제 처가에 대대로 내려오는 산이 몇 필지 되는데, 듣기로 아무래도 철과 금이 매장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곳에 철점과 금점을 열 수는 없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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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감사드리고요!

^^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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