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박인생-52화 (5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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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사정전에 도착했다. 나는 곧 자리를 물러나 승정원 내 집무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단독으로 꾸며져 있는 내 집무실에서 이이를 불러들였다. 그를 마주 대하고 보니 처음 이율곡을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현대의 5천원 권 지폐의 초상으로 매일 접할 수 있는 위대한 인물을 본다는 감회에 내심 기쁘기도 한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매일 접하고 보니 솔직히 나보다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에서 수많은 정보를 접한 나에 비하면 그의 사고가 우물 안 개구리로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인품이 빼어나고 경전에 대한 지식만은 해박하여, 함부로 경시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그런 율곡을 불러놓고 물었다.

"내 그대를 매일 접하고 보니 품성이 아주 훌륭하오. 그대와 같은 인물이 또 있다면 천거를 해보오."

"음.........!"

잠시 생각하던 율곡이 입을 열었다.

"제가 19세에 만난 이래로 망년지교가 된 사람이 있습니다. 저 보다는 한 살 위로 선대왕 6년에 생원, 진사시에는 합격했으나, 병이 나서 복시에는 응하지 않은 관계로, 아직도 초야에 묻혀 있는 우계(牛溪) 성혼(成渾)이라는 벗입니다. 그를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성혼? 성혼이라........?"

해동십팔현(海東十八賢)의 한 사람으로, 이황의 주리론(主理論)과 이이의 주기론(主氣論)을 종합 절충해, 절충파의 비조(鼻祖)가 된 사람으로, 율곡 사후 한때 서인의 영수가 되어 동인의 공격을 받기도 한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에 대해서는 확실히 몰라, 일단 율곡에게 그를 초빙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이의 대답은 자신이 없어보였다.

"벼슬에는 별로 뜻이 없어 응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정성이 필요한 것 아니오. 정성이 지극하면 감동하여 다 응하게 되어 있으니, 너무 걱정 말고 극진히 초빙해 보오."

"네, 알겠습니다."

"과거에 합격했다면 등과가 쉽겠으나 그렇지 않은 모양이니 일단 학행(學行)으로 천거하여 등용하는 것으로 합시다."

"네, 영감님!"

"제발 그렇게 좀 부르지 마오. 왠지 내가 늙었다는 소리로 들린단 말이오."

"하하하........! 그럼, 남들처럼 영감마님으로 부를 까요?"

"그러 하오."

이렇게 시작된 업무가 그럭저럭 끝나고 나는 바로 집으로 퇴근하여 내 방으로 운검의 밥상과 함께 들여오도록 했다. 곧 운검이 들어오는데 바늘에 실이 딸려오듯 꼬마아가씨 배 운영이 함께 들어왔다.

내가 운영에게 눈을 맞추고 물었다.

"우리 꼬마 아가씨는 오늘 무엇 하고 놀았어?"

"아버지에게 무예를 배웠어요."

"응?"

의외의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눈이 커졌다.

"아가씨가 무예를 익히다니, 학문을 익히지 그래?"

"하늘을 나는 우리 아빠가 나는 너무 멋있어요. 나도 커서 꼭 그렇게 될 거예요."

"참, 내.........!"

야무진 꿈을 꾸고 있는 꼬마아가씨에게 뭐라고 말은 못하고 나는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쓴웃음을 지은 것은 나뿐이 아니라 운검도 마지못해 무예를 가르치기는 하지만, 탐탁지 않은지 그 역시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무튼 곧 저녁상이 들어왔고 우리는 함께 식사를 했다.

식사가 끝나자 내가 운검에게 말했다.

"내 운검에게 두 가지 부탁을 하고자 하오."

"말씀하시지요."

"하나는 한 사람을 초빙해 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운검께서 내일이라도 당장 집에 계실 때는 만주어와 중국어를 익히란 부탁이오."

"만주어와 중국어, 그것을 무엇에 다 쓰게요?"

운검의 당연한 질문에도 나는 웃지 않고 정색을 하고 말했다.

"내 솔직히 말하리다. 궁극적으로 우리나라 백성들을 편안하고 윤택하게 살게 하려면, 우리만 잘 한다고 될 일이 아니오."

이렇게 운을 뗀 나의 열변이 점입가경으로 그 도를 더 해갔다.

"내가 보는 시국관은 이러오. 지금 바다 건너 왜국에서는 한참 내전이 진행 중이지만 머지않아 한 사람에 의해 통일 될 것이오. 이것이 무엇을 말 하느냐? 곧 우리에게는 재앙이 된다는 소리요. 범용한 사람이 몇 백 년 전에 걸친 내전을 끝낼 수 있겠소? 천만의 말씀이오.

그는 곧 일대 영걸이라는 소리요."

"그런 사람이 왜 모르겠소? 아직도 왜국 곳곳에 준동하고 있는 지방 세력을 그냥 둔다면 장차 자신에게 반기를 들 세력임을. 해서 그 세력이 투사되는 곳이 곧 조선이 될 것이니, 장차 준비를 안 한다면 조선은 그야말로 대재앙을 만날 것이오. 하지만 나는 이에 대한 대비로, 두 사람을 염두에 두고 있소, 물론 나라 전체가 대응할 준비를 해야 되지만 내 개인적으로 두 사람을 일본에 파견해 도모하는 바가 있소. 마찬가지로 만주 즉 여진족도 문제요."

여기서 말을 끊었던 나의 말이 이어졌다.

"아직 여진족은 명나라의 이이제이 책에 의해 분열되어 있지만, 그들도 한 사람의 영걸에 의해 통일될 날이 머지않았소. 이 또한 같은 이치로 우리에게 대재앙이 될 것인즉, 나는 그에 대한 준비로 운검을 지목하고 싶소."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주시죠."

이제 운검도 진지한 낯빛이 되어 한 무릎 달려들며 내 이야기를 경청했다.

"지금부터라도 만주어와 중국어를 익히시어 그 영걸이 될 인재를 제자로 삼아도 좋고, 아니 부하로 삼아 운검의 손으로 만주를 통일하시오."

"그럼, 지금 나보고 만주벌판에 뛰어들어 만주족을 통일하란 말이오?"

"사내라면 응당 그 정도 포부는 지니고 있어야지, 왜? 자신 없소?"

"그대는 꿈이 커도 너무 크군."

"사내로 태어나 민족의 재앙을 막고 흥기시킨다면, 이 보다 더 보람 있는 일이 어디 있소?"

"그 문제는 내 생각 좀 해보리다. 그런데 누구를 초빙해오라는 말이오."

"강화도에 가면 권율이라는 사람이 있소. 부친이 영의정을 지냈으니 찾기는 쉬울 것이오. 많은 예물도 준비해 드릴 테니, 일단 우리 집으로 초대를 해서 그 사람 됨됨이를 살펴봅시다."

"그런데 도대체 이 많은 정보를 그대는 어찌 아는 것이오?"

"내가 거대상단을 운영하는 것을 모르고 계셨소? 왜와 중국은 물론 만주까지 거래를 하고 있단 말이오."

"허, 허.........!"

갈수록 태산이라 한숨 비슷한 탄식 밖에 나오지 않는 운검이었다.

그런 운검이 한동안 나를 멀거니 바라보더니 말했다.

"일단 강화도에 다녀와서 만주어와 명나라 말을 익히는 것으로 합시다."

간접 허락이었다. 나는 운검의 대답에 만족감을 표시하고 운영을 바라보니, 어느새 칭얼거리던 운영은 아빠 품에 안겨서 새끈새끈 잠들어 있었다.

그로부터 보름쯤 흐른 어느 날이었다.

내가 등청하니 못 보던 청년 하나가 율곡과 함께 있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 사람이 성혼(成渾)임을 알았다. 파주 우계에 살던 이 사람을 율곡이 몇 번을 사람을 놓아 초청해온 모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집무실에 앉자마자 율곡이 그 사람을 데리고 들어왔다.

"영감마님! 전에 제가 얘기하던 우계 성혼이라는 벗입니다."

"잘 오셨소. 그래 출사의 뜻은 굳히셨소?"

"율곡의 간곡한 청도 있고 하니 일단은 근무해보렵니다. 제 자리는 있는지요?"

"내 곧 자리를 마련해 보리다. 너무 염려 말고 며칠만 말미를 주시오."

"알겠사옵니다. 영감마님!"

나는 그로부터 며칠 후 성혼을 국왕 균에게 아뢰어 정육품(正六品) 사간원 정언(司諫院 正言)에 임명하였다. 사간원 내에서는 최 말직이지만 고과 대상도 아니었고, 상하 간에 엄격한 규율도 없어, 업무시간에도 서로 흉허물이 없었으므로 성혼도 잘 적응하였다.

또 내가 성혼에게 한 사람을 추천하라니 뜻밖에도 그는 정철(鄭澈)을 추천하였다. 그래서 내가 정철에 대해 알아보라 하니, 그는 작년에 실시된 식년 문과에서 장원 급제한 재인(才人)으로, 정오품 (正五品)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을 제수 받았으나, 처남을 살해한 경양군(景陽君)의 처벌문제에서 강직하고 청렴한 자세를 고집하여, 선대왕 명종의 뜻을 거슬리는 바람에 말직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에 나는 그를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으로 올려주고, 그 직을 수행하도록 했다. 이런 정철에게 나는 또 한 사람을 천거하라 하니, 그가 천거한 사람은 구봉(龜峯) 송익필(宋翼弼) 이었다.

본관은 여산(礪山)이고 자는 운장(雲長)으로, 아버지는 천문학관 사련(祀連)이었다. 할머니가 안돈후(安敦厚)와 비첩(婢妾) 사이에서 태어난 서녀(庶女)였으므로, 그의 신분도 서얼(庶孼)이었다. 아버지 사련이 안돈후의 손자 처겸(處謙)을 역모자로 고변(告變)하여 안 씨 일가를 멸문시켰다. 이 공으로 사련은 당상관에 오르고 부유해졌다.

탁월한 지략과 학문으로 세인들이 '서인(西人)의 모주(謀主)'라 일컬을 정도로, 훗날 정여립의 모반 사건을 기획 실행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은 인물이기도 했다. 나는 그를 정철의 소개로 나의 집무실에서 만나보았다.

"송강(松江)이 그대를 천거했소. 어떻게 생각하오?"

"평소 그와 교유가 있어 소인을 천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저는 본디 서얼 출신인데다가 아버지의 고변으로 일시 부귀를 누리고 있으나, 조석지변인 세상인심을 생각하면 관직에 오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오호! 그래요?"

나는 그의 뜻밖의 말에 새삼 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럼, 일생을 초야에 묻혀 지내겠단 말이오?"

"초야에 있어도 뜻 맞는 이만 있다면 얼마든지 자신의 이상과 생각을 관철할 수 있다고 봅니다."

"좋소. 그럼, 나와 함께 우리 집에 기거하면서 그대의 뜻을 펼쳐보는 것은 어떻겠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아직 채 약관도 안 되는 것으로 아는데, 벌써 도승지에 장차 부마가 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고명대신의 한 사람으로 영향력이 막강하지요. 제가 봉사하고자 하는 분이 귀인 같은 분이십니다. 받아만 주신다면 주군의 앞날을 위해 아니 장차 이 나라를 위해 멸사봉공(滅私奉公) 하겠습니다."

"장하오. 그대의 의기가. 오늘부터라도 당장 우리 집에 거하면서, 나의 함께 많은 문제를 상의하도록 합시다."

"고맙습니다. 주군!"

이렇게 해서 나는 또 하나의 유명한 지략가를 얻었다. 그날 저녁 내가 송익필을 데리고 집에 오니 그렇게 뜸을 들이던 권율이 내 집에 와 있었다. 몇 번의 사람을 보내서야 마침내 그를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왜 이렇게 보기가 힘드오?"

"아직 가세 넉넉한데다 술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괜히 일찍 관가에 진출해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 영감마님의 뜻을 거슬렸습니다."

8살 많은 그를 보고 있노라니 정말 급할 게 하나도 없는 듯 천하태평이었다. 그의 나이 46세 때인 1582년(선조 15)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정자로 관계에 첫발을 내딛는 그이고 보면, 그런 말을 할만도 하다는 생각이 드는 나였다.

그의 호가 만취당(晩翠堂)인데, 만취(晩翠)라는 말은 늦겨울에도 변하지 않는 소나무, 대나무 따위의 푸름, 늙어서도 지조를 바꾸지 아니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 보다는 그가 술을 좋아한다고 하니, 술에 잔뜩 취한 상태인 만취당(漫醉堂)으로 불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나였다.

"그래 뜻을 바꾸어 지금은 관가에 진출할 의향이 있는 것이오?"

"그게 아니라 저는 무예에 뜻을 두고 있습니다. 집에서는 모두 문신의 길을 걷길 바라지만, 저는 저 광활한 만주벌을 질타하는 호쾌한 장수가 되는 것이 제 꿈입니다. 그러다보니 집에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이렇게 술에 취해 있는 날이 많으나, 금번에 운검과 비무를 해보고는, 그에게 무예를 배우고자 이렇게 어려운 걸음을 하게 되었습니다."

"좋소! 내가 볼 때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해야 능률도 오르고 일정한 성취도 얻게 되니, 그것이 더 나은 길인 것 같소. 그렇다고 너무 문(文)을 등한히 하면 하급자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하는 수가 있으니, 이 또한 게을리 하는 것은 좋은 방편이 못 되는 것 같소."

"영감마님의 뜻을 잘 알겠습니다. 제가 오늘부터 이 집에 머물며, 운검으로부터 무예를 배워도 되지요?"

"아무렴, 그것이 내 뜻이기도 하오."

"대신 영감마님........!"

"주저 말고 말해보오."

"매일 술이 안 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하하하.........!"

"내 조선의 제일 갑부는 몰라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는 틀림없으니, 그 정도 청이야 얼마든지 가하오."

"고맙습니다. 영감마님!"

이렇게 해서 권율 또한 우리 집에 머물면서 운검으로부터 무예를 배우게 되었다. 내가 권율을 막 돌려보내고 송익필과 늦은 밥상을 받고 보니, 육지의 권율이라면 바다의 패자 이순신이 내 머리에 퍼뜩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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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고맙고 감사합니다!

^^

늘 즐겁고 유쾌한 날들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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