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박인생-51화 (51/141)

<-- 고명 -->

5

딸아이가 깜찍하도록 예뻤다.

"잘 오시었소."

환대를 한 나는 꼬마요정 같은 딸아이와 주저앉아 눈을 맞추고 물었다.

"몇 살?"

"다섯 살 이예요."

"이름은?"

"배 운영(裵 雲影)."

운검의 성이 원래 배 씨(裵 氏)였던 모양이었다. 나는 곧 마당 한편에 서 있는 우리 집의 집사격인 손자대를 불러 방 배치를 했다. 사랑채 바로 내 옆방을 그에게 내주도록 한 것이다. 그 옆방을 오건 사형이 쓰고 있는데, 곧 나가겠다고 했다. 부인도 곧 불러올릴 모양이었다. 아직은 나의 만류로 그냥 있지만 그의 고집을 생각하면 오래 있지는 않을 것 같다.

"아직 식사 전이지요?"

"오다가 주막에서 한 술 먹기는 했소만........"

"아버지! 나 배고파요."

딸의 말에 눈을 흘기던 그가 무안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에 내가 손자대에게 지시를 했다.

"거하게 저녁상 하나 봐오오."

"네, 가주님!"

복명하고 달그림자 속으로 사라지는 손자대였다. 나는 운검 부녀에게 그동안 짐을 정리하라 시키고, 나 역시 미진한 것을 처리하기 위해 잠깐 내 방으로 갔다.

그로부터 그는 우리 집의 식객(食客)이 되었고, 나에 의해 나의 호위대장에 임명되었다. 운봉 사형제가 그 밑에 배속된 것이다.

* * *

오늘 아침 내가 등청하여 보니 웬일인지 선조 균이 아직 사정전에 납시지를 않았다. 다른 때 같았으면 왕이 되어서 기분이 좋은지 매일 나보다 먼저 출근하는 사람이 균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나는 율곡 이이와 덕계(德溪) 오건 사형을 데리고 함께 침전인 강녕전으로 가보았다.

상선내감이 지키고 서 있다가 나를 맞았다.

"기침하셨소?"

"방금 전에 하셨습니다."

"오늘은 좀 늦네."

내가 지나가는 투로 묻자 상선내관 김 씨가 대답했다.

"무슨 일로 기분이 상하셨는지 어제 저녁부터 내내 용안이 펴지지 않으셨습니다."

"그래? 알겠소. 내가 전환시키도록 하지."

말을 끝낸 내가 본격적으로 침전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전하! 기침하셨습니까?"

"응, 나가. 잠시만 기다려."

상궁에 의해 이제 곤룡포가 입혀지는 모양이었다. 잠시 후 균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나타났다.

"전하, 오늘은 기분이 별로이신 것 같습니다."

"좀, 그래."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응? 아무 것도 아니야."

나의 물음에 급 당황하여 급히 고개를 흔드는 균이었다.

대답을 않는데 더 캐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나는 화제를 전환했다.

"경연(經筵)에 늦겠습니다. 빨리 가시지요."

"음, 그래?"

나를 따라 종종 걸음을 치는 균이었다.

경연의 강의 방식은 대체로 세종 년간(1418∼1450)과 성종 년간(1469∼1494)에 정비되었는데, 매일 아침에 조강(朝講)을 실시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주강(晝講)과 석강(夕講)을 포함하여 3차례 강의하는 경우도 많았다. 조강(朝講), 주강(晝講), 석강(夕講)으로 진행되는 하루 3차례의 경연은 성종 연간에 확립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경연에 참석하는 경연관(經筵官)은 정1품 영사 3인, 정2품 지사 3인(知事), 종2품 동지사 3인, 정3품 당상참찬관(堂上參贊官) 7인. 그리고 정4품 시강관(侍講官), 정5품 시독관(侍讀官), 정6품 검토관(檢討官), 정7품 사경(司經), 정8품 설경(說經), 정9품 전경(典經)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영사는 3정승(三政丞)이 겸직하였고, 참찬관 이상은 중신(重臣)들 가운데서 선임하였으며, 시강관 이하는 홍문관 관원들이 겸직하게 하였다.

그러나 모든 경연관들이 경연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었는데, 조선 초기에는 보통 동지사 이상 1인, 참찬관 1인, 시독관 이하 4, 5인 정도가 참여하였고, 조선 후기에는 보다 많은 인원이 경연에 참가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벼슬하지 않는 유학자를 경연관에 임명하기도 하였기도 하였다.

아무튼 선조 균이 아직 나이 어려 한창 배울 나이인지라, 조정 중신들은 조강(朝講), 주강(晝講), 석강(夕講)까지, 하루 세 번의 경연을 개최할 것을 주장했지만, 그럼 정무는 언제 보느냐는 나의 반발로 지금은 조강 석강만 매일 개최되고 있었다.

우리가 경연장에 도착하니 영의정 이준경과 좌의정 심통원 우의정 이량 등 삼정승이 참석해 있었는데, 경연의 주체인 홍문관에서는 시강관과 시독관 외에, 아주 젊어 보이는 사람 하나 만이 참석해 있었다.

'이거 나사가 빠져도 단단히 빠졌군. 고참들은 다 참석했는데, 쫄다구들은 다 어디 가고...... 한 번 군기를 바짝 세워야겠어.'

이런 나의 생각이 곧 현실화 되어 숙청의 피바람이 조정에 분다.

어쨌든 나의 건의에 의해 초빙되었던 남명과 퇴계 선생은 계속 고사만하고 있어, 조정에는 아직까지도 삼흉(三凶) 중 이 흉(二 凶)이 정승 직을 수행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주상 이 균이 경연장에 도착하자 모두 분분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곧 조강이 시작되었다. 곧 조강 경연관이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오늘 처음 보는 25세 전후의 젊은 청년이었다.

"전하! 사경(司經) 이 산해(李 山海) 오늘의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부교재인 '정관정요(貞觀政要)'를 가지고 하겠습니다."

'아, 저 사람이 이 산해(李 山海)로구나!'

그 또한 조선 중기의 유명한 문신이라 나 또한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었다. 듣기로 그는 그의 아버지 지번(之蕃)이 산해관(山海關)에서 그의 잉태를 꿈꾸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했다.

어려서부터 작은아버지인 토정 이지함(李之菡)에게 학문을 배웠고, 글씨는 6세 때부터 썼는데, 장안의 명인들이 그의 글씨를 받으려고 모여들기도 했다고 한다. 명종에게 불려가 그 앞에서 글씨를 쓰기도 했고, 지난번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가 되었고, 이듬해 경복궁 대액(大額)을 쓰기도 했다했다.

아무튼 강의가 시작되어 그가 먼저 원문을 통독했다. 그리고 그 내용을 강의하기 시작했다.

"이 정관정요(貞觀政要)는 당 태종과 신하들의 문답집으로 훗날까지 제왕학(帝王學)의 모범이 될 정도로,

'창업과 수성 중 어느 것이 어려우냐?'

는 문답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운을 뗀 아계(鵝溪) 이 산해의 강의가 이어졌다.

"어느 날 태종이 측근들에게 물었습니다.

'제왕의 사업 중 창업과 수성 중 어느 것이 더 어려우냐?'

고. 이에 재상인 방현령(房玄齡)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창업 초기에 천하는 난마처럼 어지럽고 각지에 군웅이 할거 하고 있습니다. 이 대업을 이루려면 이들 군웅과의 쟁패전에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창업 쪽이 훨씬 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위징(魏徵)이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아함........! 그거 과인도 벌써 배운 이야기야."

"네?"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반문하는 이 산해였다.

"과인이 묻겠어? 경은 창업과 수성 중 무엇이 어렵다고 생각해?"

균의 물음에 이 산해가 즉답했다.

"둘 다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맞아. 하지만 이미 조선은 창업이 되었으니, 이제부터 수성에 집중하라는 이야기 아니야?"

균의 명석함에 내심 혀를 내두르는 좌중의 인물들이었다. 실제 선조는 사서오경 등 두루 학문에 능통하고, 글씨와 그림에도 일가견을 이룬 인물이었다.

다만 큰 단점이 있으니,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인물이 있을까봐, 늘 노심초사하며 과도한 짓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방계 서얼의 콤플렉스를 안고.

* * *

경연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내가 물었다.

"오늘 경연 참석자들의 면면을 보고 느끼신 게 없습니까?"

"기분이 별로 안 좋았어. 중간 요직들이 많이 빠졌잖아."

"그 보다 신은 다른 데서 조선조 관료조직의 맹점을 발견했습니다."

"그래? 그게 뭐야?"

"이 조선조는 국왕과 신하의 연석회의나 주요 관청 사이의 정책협의기구가 없기 때문에, 모두 오롯이 주상 전하만 쳐다보고 답변을 바라니, 임금이 매우 정무를 처리하기가 어렵습니다. 헌데 조강은 국왕을 중심으로 의정부, 육조, 승정원, 홍문관, 사헌부, 사간원 등이 한자리에 모이는 자리이기 때문에, 정책을 협의하기에 편리합니다. 따라서 이 경연장에서 활발한 토론을 하여 각 관청간의 벽을 허물고, 서로 횡적으로 협조할 것을 협조해야만, 국왕의 임무가 대폭 줄어들 것입니다. 앞으로는 어명을 내려 그렇게 시행하도록 하십시오."

"역시 그대는 천재고 나의 장자방이야! 내 꼭 그렇게 하도록 할게."

나의 말에 기분이 좋은 지 비로소 환하게 웃음꽃이 피어나는 균이었다. 왜 아니겠는가? 자신의 업무가 대폭 줄어든다는데.

아무튼 나의 제안에 선조 균만 좋아한 게 아니라 율곡과 덕계마저도 찬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에 내심 으쓱하는 나였지만, 이제 이를 겉으로 드러낼 만큼 나도 풋내기가 아니었다.

"그런데, 아침에는 왜 우울하셨습니까?"

"그거, 별거 아니야."

"그래도 궁금합니다."

"응, 그거. 과인이 요즈음 주변 궁녀들에게 시선을 좀 주었더니 누가 고자질을 했는지, 어제 대비 전에 불려가서 혼났어. 간택을 하기 전에 벌써부터 아랫것들을 넘보면 서열도 흐트러지고, 장차 신하들은 어떻게 보려느냐고 하며 우선 배우고 익히는데 힘쓰라고 하시더군."

"하하하.........!"

내가 크게 웃는데 반해 균은 울상을 짓고, 두 사람은 크게 웃을 수 없어 입을 가리고 고개를 돌렸다.

분위기가 진정되자 내가 진중한 안색으로 말했다.

"전하께옵서 추진하는 대유들의 초빙은 그들의 고사로 아직 빛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초청에 더욱 정성을 쏟으시되 그 안이라도, 선대왕 때 잠시 주춤했던 현량과(賢良科)를 부활시키시어, 초야에 숨어 있던 많은 보석 같은 인재들을 등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게 있었어? 당장 실시하도록 하지."

"중신은 물론 대소신료들의 반대가 녹록치 않을 것입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그들이 조정에 들어온다는 것은, 반대로 자신들의 자리가 위태로워진다는 말과 같으니, 많은 반대가 있을 것입니다."

"그도 그렇겠군."

곧 시무룩해지는 균에게 나는 의기를 북돋아주었다.

"모든 좋은 정책을 시도하자면, 항상 기득권층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이를 이겨내야만 그 정책이 살아 숨 쉬어 백성과 나라를 살찌우는 것입니다."

"알았어. 나도 고집이 있는 사람이니 절대 좋은 일에는 물러서지 않을 거야!"

"장하시옵니다. 전하! 전하의 그 마음이 곧 만백성의 홍복이옵니다!"

나의 과장된 손동작에 균은 마음이 흐뭇하여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여기서 내가 제기한 현량과에 대해 잠시 언급하고 넘어가면 이렇다.

종래의 과거제가 제도가 자체의 본질적인 모순으로 인해 유생은 사장(詞章)만 학습하게 되고, 성리학의 학리추구와 실천은 소홀한 면이 있었다. 이 폐단을 극복할 수 있는 관료선발 방식으로 유일천거제가 가장 바람직하며, 그 방법으로 내가 현량과를 실시할 것을 제안한 것이다.

여기서 '유일천거(遺逸薦擧)의 '유일(遺逸)'은 초야에 묻혀 있는 학자, 문신, 효행 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유일천거제는 곧 사림파세력의 관료진출을 의미하기도 했다. 또한 유일인사에 대한 천거뿐만 아니라 성균관생 중에 뛰어난 재질이 있으나, 여러 차례 과거에 떨어진 자를 구제하기 위한 명목으로 성균관 유생 천거제를 실시한 예도 있다.

아무튼 나의 말이 이어졌다.

"현량과가 고위 관료의 등용문이라면 학행(學行) 즉 학문과 덕행이 뛰어난 자 곧 배움과 실천력이 뛰어난 자를 선발하여 하급 관료로 삼으시옵소서. 이는 과거에 급제하지 못했으나 명망 있는 인물을 모시기 위한 한 방편이니, 이 두 제도를 잘 운용하시면 조정에는 청신한 기풍과 함께 뛰어난 인물들로 넘쳐날 것이옵니다."

나의 진언에 균이 흡족한 미소로 답했다.

"알겠소. 내 도승지 아니 과인이 장자방의 말을 잘 따를 테니, 앞으로도 충언을 아끼지 말아줘요."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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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감사드리고요!

^^

늘 졸은 날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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