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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인생-50화 (50/141)

<-- 고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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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사형제가 마포나루에 당도해보니 백동 은동은 한 옆에 쪼그려 있고, 한 사내 하나만이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여각에 다른 손님은 없었고?"

"네! 국상 중이라 요즘 매출이 뚝 떨어졌다고 들었습니다."

나의 물음에 돌려 대답한 운곡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우리가 은동의 손짓에 접근하여 그 손님에게 잠시 보자 하니, 볼 것 없다고 하며 필요하면 여기서 해결하자고 해서, 바로 그 자리에서 서로 손을 쓰게 되었습니다."

운곡의 말이 이어졌다.

"손님이 맨손 대결을 원했기에 운봉 사형이 먼저 달려들어 그와 한판 싸움이 붙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지는 것을 못 보던 운봉 사형이 시종일관 밀렸습니다. 결국에는 그 자의 주먹을 운봉 사형이 안면에 몇 차례 허용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볼 수가 없어서 제가 나섰습니다. 그 자가 싸우는 도중에 보니 등에 검이 매어 있길래 검으로 대결을 요청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도 100여 수 만에 이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정말 처음으로 접하는 대단한 고수였습니다."

"가자!"

"가서 어쩌시려고요?"

나의 명에 운곡이 처음으로 제대로 된 말대꾸를 했다.

"국상중인데 음주가무를 하다니, 안 되면 공권력으로라도 잡아드려 너의 복수를 해야지. 운봉은 의금부 관아에 가서 내가 말했다고 하고, 나장 열 명 정도만 데리고 와. 우선 우리 둘이 가볼 테니."

"네!"

무뚝뚝하게 대답한 운봉이 의금부 관아로 가고, 나는 운곡을 데리고 마포나루를 향해 바람처럼 말을 달렸다. 내가 마포나루에 도착하니 밖에 쪼그려 앉아 있던 백동과 은동이 죽은 조상이 살아 돌아온 것보다 더 나를 반겼다.

"아직 그 무뢰배는 있는가?"

"네, 영감마님!"

"안내해라!"

"네! 영감마님!"

나는 운곡을 데리고 백동과 은동을 따라 여각의 주청 안으로 들어갔다. 백동의 말대로 그 자는 아직도 혼자 앉아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마셨다는 이야기인데 주량도 굉장히 센 모양이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나는 그 자를 노려보며 천천히 그 자를 향해 접근했다. 그 자는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천천히 호로병을 막걸리 잔에 기울이나, 술이 다 됐는지 나오다 말았다. 그러자 그 자가 안쪽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주모! 술 더 가져와!"

"네, 네!"

안에서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 꼴을 보니 화가 단단히 난 내가 그 자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지금 국상중이라 술을 금하는 것, 모르나?"

"그럼, 주청을 닫던지?"

나의 말에 비로소 눈을 들어 말을 하는데 입가에는 비릿한 미소가 맺혀있었다.

"밥 팔라고 문 연 것이지, 술 팔라고 문 연 게 아니다."

"흥, 핑계는 좋다."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대꾸하는 무뢰한 이었다.

이때 안에서 술을 가지고 나오던 비녀(婢女) 하나가 나를 보더니 주춤했다. 내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갖다 주어라!"

내 말이 의외였던지 그 사내가 다시 시선을 들어 나를 보는데 봉두난발로 콧잔등 이하만 보여 정확한 나이도 알 수 없는 사내였다. 그 모습이 어딘가 기인(奇人) 냄새가 나서 나도 방법을 달리했다.

"마시고 술 더 취하면 잡아가려 하니 어서 많이 마셔라."

"하하하........! 솔직해서 좋군."

이때 밖이 왁자지껄하더니 운봉이 불쑥 들어왔다.

"나장들 데리고 왔습니다."

"권문에 있나?"

운봉의 말을 들은 사내가 비릿하게 웃으며 나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그렇고 아니라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피곤하군!"

나랑 말장난하는 것이 피곤하다는 것인지, 아니면 나장들까지 몰려오니 그들을 상대하는 것이 피곤하다는 말인지, 한마디를 툭 던진 사내가 애써 청한 술을 마시지도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장내의 사람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천천히 밖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하는 사내였다. 그런데 나로서도 사내가 이렇게 나오니 막상 상대하기가 어려웠다, 정말 이 자가 체포하는 과정에서 저항이라도 한다면 나장들이 그야말로 큰 피해를 입게 생겼다.

나는 갈등하며 사내의 등 뒤만 시선으로 쫓고 있었다. 그런데 메고 있는 칼이 상당히 커 보인다는 생각이 들며, 그 자의 칼집에 시선이 고정되는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고함을 질렀다.

"잠깐!"

나의 말에 말없이 걸음을 멈추고 반쯤 몸을 돌려 미동도 않는 사내였다.

"메고 있는 검이 혹시 운검(雲劒) 아닌가?"

"하하하........! 아주 맹물인 줄 알았더니, 눈은 살아있구나!"

"운검을 멘 자가 어찌 이곳에 와서........."

나는 중얼거리듯 말하고 운봉에게 말했다.

"얘들 돌려보내!"

"네?"

"명대로 해!"

"네, 영감마님!"

"영감이라니 그 나이에 벌써 당상관인가?"

운봉의 말을 새겨들었는지 제대로 반응하는 운검을 멘 자였다. 내가 말이 없자, 그자가 재차 질문을 던졌다.

"혹시 그대가 요즘 장안에 소문이 자자한 고명대신이자, 도승지인가?"

"나를 아나?"

"맞군!"

그 뿐이었다. 혼자 중얼거리듯 말한 그 사내가 다시 돌아서서 발걸음을 떼어놓았다.

"잠깐!"

나의 제지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우뚝 걸음만 멈추는 사내였다.

"잠시 대화 좀 나눌 수 있겠소?"

"못할 것도 없지. 술만 낸다면."

"좋소. 술은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제공할 테니, 뒤채 여각으로 자리를 옮깁시다."

"앞장서시게."

비로소 반공대로 말을 하는 사내였다. 나는 사내에게 말 못할 사연이 있는 것 같아 그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고, 솔직히 내심으로는 이 사내가 탐이 났다.

운검을 메고 있다는 것은 '조선 제일 검'에 근접했다는 말이니, 운봉 사형제를 격패시킨 것은 어쩌면 당연한 노릇이었다. 이런 사내를 내가 거느릴 수 있다면 더한 바람이 없겠다는 생각으로, 나는 빠르게 뒤채 여각으로 향했다.

이윽고 내가 쓰는 여각 안채에 도착한 나는 곧 거하게 한 상 봐오도록 운곡에게 주문을 하고 내실로 들어갔다. 말없이 나를 따라 안으로 들어오는 사내였다. 나는 사내를 대우하여 아랫목으로 안내했다.

"앉으시죠."

내 말투도 깍듯해졌다. 실제 운검(雲劒) 아니 정식명칭 별운검(別雲劍) 벼슬을 한 자라면, 정2품 고위직으로 현재 나의 품계보다 높은 자를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예의도 차릴 줄 아는가?"

한마디 툭 던지고는 서슴없이 아랫목 상석을 차지하는 사내였다. 나는 말없이 웃다가 궁금한 것을 물었다.

"혹시 선대왕을 모시지 않았소?"

"........."

나의 물음에 대답은 없었으나 흠칫하며 눈에 띄게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는 사내였다.

"내 짐작이 맞군요. 그렇다면 다음 대 군왕을 모시면 되지......."

"두 주군을 섬길 수는 없음이야."

나의 말에 화를 내듯 격정적으로 말하는 사내였다.

"그래서 초부(樵夫)로 돌아가 야인 생활이라도 하기 위해 상투도 푼 것이오?"

"상(喪) 중이고, 겸사 겸사야."

"상중인걸 아는 사람이 술을 마시오?"

"오늘 따라 요절한 사람 생각이 많이 나서........"

"운검이라면 통상 두 사람이잖소? 또 한 사람은.......?"

"새로운 왕을 모시기로 되어있지."

"그렇군요. 그 사람은 두 주인을 섬기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모양이군요."

"사람 나름이지."

이때 비녀 둘에 의해 푸짐한 술상이 들어왔으므로 잠시 대화는 중단되었다.

곧 술상이 차려지자 나는 전대 운검에게 술 한 잔을 따라주고 나는 자작을 했다.

"드시지요?"

"고맙네."

나나 운검이나 빠르게 술잔을 비웠다.

내가 다시 술병을 집어 들려 하는데 운검이 빠른 동작으로 술병을 잡아 내게 한 잔을 권했다.

"받게."

"고맙소!"

"내 잔도 한 잔 받으시오."

"고맙네!"

나도 그에게 한 잔을 따라주었다.

다시 가볍게 한 잔을 비운 내가 그에게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작정입니까?"

"술 꽤나 하나 보군."

동문서답하며 답변을 회피하는 전대 운검이었다.

"먹고 살만한 재산이야 축적해놨을 테니, 초야에 묻혀 유유자적 하실 계획이시오?"

"그런 것 없네."

"벼슬이 벼슬이니 만치......."

"약값으로 다 들어가고 없어."

"네?"

"그런 게 있어."

"그럼, 앞으로 어떻게 사실 작정입니까?"

"내 한 몸뚱이라면 어떻게 하면 못 살겠나? 딸아이 때문에 걱정일세."

"그럼, 그냥 계시지........"

"이 사람이........."

말끝에 노여움이 잔뜩 묻어나는 운검이었다. 역린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내가 갑자기 그 앞에 넙죽 엎드렸다. 그리고 간청했다.

"이 어린 사람을 도와주시죠. 절대 서운하게 대접해 드리지는 않겠습니다."

"나 보고 지금 두 주인을 섬기라는 말인가?"

"두 주인이 절대 아닙니다."

"그럼?"

"백성을 섬기는 것입니다."

"뭐?"

미처 내 말뜻을 못 알아듣고 급하게 반문하는 운검이었다.

"제가 백성들을 위해 헌신하니, 백성을 섬기게 되는 것이란 말입니다. 헐벗은 민초들을."

"궤변이지만 그 말 참, 재미있군."

"도와주십시오."

다시 한 번 깊숙이 고개를 조아리며 간청을 하는 나였다.

나의 간청에도 묵묵히 천정을 바라보며 말이 없는 사내였다.

한참을 그렇게 있던 사내가 이윽고 나를 한동안 예리하게 쏘아보더니 말했다.

"진정으로 백성들을 위한 삶을 살 것인가?"

"맹세할 수 있소."

"흐흠........!"

침음하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전대 운검이었다.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그의 입술 끝을 주시했다.

이윽고 생각에서 깨어난 운검이 입을 열었다.

"내 생각을 말하기 전에 하나만 묻지?"

"만약에 내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 딸아이의 종신(終身)을 책임져 줄 수 있나?"

"헌신하는 자에 대한 당연한 의무요,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고맙군!"

말을 끝낸 사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엎어지다시피 빠른 속도로 절을 하며 내게 말했다.

"주군! 절 받으시오. 이는 만백성을 위한 절이지, 당신 개인을 흠모하여 올리는 절은 아니오."

역시 궤변이나 나와 함께 하겠다는 그의 말에 나는 감격하고 황망하여 얼른 몸을 돌려 절을 받지 않았다. 나의 모습을 보고 운검이 말했다.

"예의를 아는군요."

"푸 하하하.........! 아직 그대의 절을 정면으로 받을 만큼 낯짝이 두껍지는 못하다오."

그러나 운검은 진지하기만 했다.

"진실로 만백성을 위해 힘써야 하오. 그렇지 않으면 언제라도 나도 등을 돌릴 테니까."

"알겠소. 그런데 그대를 어떻게 불러야 하오?"

"오랜 세월 운검으로 있었더니 이름을 잊었소이다. 그냥 '운검(雲劒)'이라고 불러주시오."

"그럼, 그럽시다."

이후 우리는 서로 맹약(盟約)의 잔을 갈라 마시고 헤어졌다. 그가 짐을 정리해서 우리 집으로 찾아온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내가 퇴근해서 집에 있는데 그가 나타났다. 달무리 진 밤이었다. 5~6세쯤 돼 보이는 여아의 손을 꼭 잡고, 뒤에는 간단한 짐을 실은 말을 이끈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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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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