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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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감옥 미어터진다. 상것들은 그냥 광에다 가두고 번이나 잘 서라!"
"네, 영감마님!"
나의 명에 이들이 빈광을 뒤지나 빈 곳이 하나도 없는 모양이었다.
"재물을 꺼내 마당에 쌓고 죄인들을 광에 가두어라!"
나의 다시 내린 명에 도부외들이 광안에 있는 물건을 밖으로 집어던지는데, 값비싼 비단이며, 패물, 노리개, 온갖 피륙에 심지어 얼마나 지천을 하면 광에까지 두었는지, 각종 보석까지 우수수 쏟아졌다.
얼마나 축적한 재산이 많았으면 실록에 이들이 축적한 재산이 국고보다 많았다고 기록했겠는가.
아무튼 곧 이쪽저쪽 광에서 토해낸 온갖 기물들이 곧 작은 동산을 이루었다. 나는 이 모양을 보고 씁쓸하게 입맛을 다시며 현장을 빠져나왔다. 그러다가 우연히 포승줄에 엮인 정난정과 눈이 마주쳤다.
"사위, 아닌 밤중에 이 무슨 변괴인가? 분명히 뭐가 잘못되었지? 저 재물을 다 가져도 좋으니 어서 나를 풀어주고, 영감마님도 돌려보내 주시게."
"죄송합니다. 어명이라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깍듯이 예를 차린 나는 더욱 울며불며 매달리는 정난정을 모른척하고 아예 집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비로소 하늘이 보였다. 오늘 따라 달도 되게 밝았다. 보름달은 아니어도 열이레 여드레 달은 되는지 제법 둥글었다.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고. 세상의 이치가 다 이와 같으니, 다 부질없도다."
나는 갑자기 세상 다 산 노인이라도 된 양 길게 탄식하고, 쓸쓸히 의금부 관아로 돌아왔다.
* * *
관아에서 날밤을 꼬박 새운 나는 핏발이 선 눈으로 홍 부진무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윤원형, 정난정 외에도 이기(李芑), 임백령(林百齡), 정순붕(鄭順朋), 황대임(黃大任) 등등 주요 일당을 전부 체포하여 하옥 시켰습니다. 그 외에도 이에 관련된 자들이 무수히 체포되어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수고했소!"
치하한 나는 한쪽에 서 있는 정 부진무를 보고 물었다.
"대비는 어찌 하고 있소?"
"있는 욕은 다 걸러 부으며 주상 전하만 찾고 있습니다. 입에 올리기 외람되오나, 심지어 이런 말도 하셨습니다.
'제 놈이 나 아니었으면 어찌 지금의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다고, 오늘날 나를 이리 박대한단 말이냐?'
하며 길길이 날뛰시기도 했습니다."
"극악스러운 여인이니 절대 말단 궁녀에 이르기까지 외부 출입을 시켜서는 안 될 것이오. 당연히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가는 것도 막아야 하오."
"명심하겠습니다. 영감마님!"
홍 부진무 보다는 배짱이 두둑한 정 부진무지만 밤새 얼마나 문정왕후에게 시달렸는지 꼴이 반쪽이 되어있었다. 나는 쓰게 웃으며 홍 부진무에게 하옥시킨 자의 상세한 명단을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나는 잠시 집무실에 앉아 눈을 붙였다가 사시 초가 되자, 홍 부진무가 작성한 명단을 들고 어전으로 찾아들었다. 도승지가 막아섰지만 사안이 사안인 만큼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갔다. 결국 이 도승지가 포기하고 나는 곧 상선내관의 고함으로 명종 환을 알현할 수 있었다.
"오늘은 만사가 귀찮아 아무도 대면치 않는다고 했거늘, 그대가 밀고 들어왔군."
"중요 국사를 방기하시면 아니 되십니다."
"알았다. 그래 무슨 일인가?"
"어명에 따라 윤원형 일당을 밤새 체포하여 전부 하옥시켰으며, 대비마마 또한 유리안치( 流離安置) 아니 연금 상태로 모시고 있습니다."
"그래? 수고했군."
입 꼬리가 말려 올라가며 비웃는 듯한 웃음으로 말끝을 맺는 명종이었다.
순간 속에서 천불이 솟으며 무언가가 확 치밀어 올라왔다. 저의 치세를 위해 나는 밤새 잠 한숨 못자고 동분서주 했건만, 이 군왕이라는 작자는 죽은 자식 불알 만지느라 지금 때가 어느 때인지 똥오줌도 못 가리고 있었다.
이것도 잠시, 심호흡을 하고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니 어쩌면 이만해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약한 성정에 조석으로 변하는 명종 환인지라, 만약 그녀의 성화에 못 이겨 문정왕후라도 풀어주는 날이면, 까딱 잘못하면 내가 죽을 판이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절박한 심정이 된 나는 나의 주특기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또 어전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고하는 것이다.
"만약 대비마마를 풀어주면 신뿐만 아니라 이번에는 주상전하도 결코 무사치 못할 것입니다. 하니........."
"지금 네가 과인을 겁박하는 것이냐?"
갑자기 분노를 쏟아내며 막말을 하는 명종이었다.
"겁박하는 것이 아니라 협박하는 것입니다. 결코 역사의 죄인은 되지 마옵시라고. 저야 혼자 죽으면 되지만 전하는 그게 아니잖습니까? 연산군의 경우를 보십시오. 모든 역사는 승자에게 유리하게 기록되는 것입니다. 만약 주상전하께서 불행이 닥치기라도 한다면 과연 사관들이 무어라 기록할지 상상이라도 되십니까? 이 모든 것을 떠나 배고픈 백성들을 위해 참 눈물을 흘리시던 위대한 성군으로 제발 돌아오십시오. 한 번 간 사람은 절대 돌아올 수 없음이니, 정신을 차리십시오."
눈물까지 뚝뚝 흘리며 이마는 깨져 또 다시 피는 눈 속으로 파고드는 나의 흉측한(?) 모습에 심약한 명종은 많이 놀랐는지 탈색된 안색으로 말했다.
"내 경의 말대로 할 것이니, 편히 마음먹고 이만 물러가라."
"망극하옵니다. 전하!"
나는 곧 어전을 물러나왔다. 바로 말을 달려 의금부 관아로 돌아온 나는 신속히 중죄인들의 추국(推鞠)을 진행하도록 했다.
오래 끌어봐야 하등 좋을 것이 없으므로, 나는 전 의금부 예하 관원들의 퇴근을 불허하고, 그때부터 적극적으로 심문을 하도록 지시했다. 이렇게 삼일 동안 추국이 밤낮으로 진행이 되는 동안 한 곳에서 사달이 났다.
문정왕후가 곡기를 끊고 단식에 돌입한지 삼일 째인데, 여전히 미음도 들지 않고 있다는 정 부진무의 보고였다. 이것이 또 왕의 귀에 들어가면 무슨 사달이 벌어질지 몰라 이번에는 내가 직접 문정왕후를 방문하기로 했다.
부하들의 인사도 건성으로 받으며 나는 심각한 안색으로 통명전 안으로 들어갔다. 나의 등장에 시녀들이 무슨 뱀을 보듯 지레 놀라 탈색한 얼굴로 급급히 피하기 바빴다. 나는 악마가 된 기분이 되어 막 달아나는 시녀를 불러 세웠다.
"이리 오너라!"
나의 명에 오금이 안 떨어지는 모습으로 간신히 다가온 시녀를 보니 엄청 애 띄어보였다. 나는 와중에도 놀리고 싶은 마음이 들어 물었다.
"왜 달아나지? 내가 귀신악귀라도 되느냐?"
"그것이 아니오라......."
벌벌 떨며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는 어린 시녀였다.
"그럼, 뭐냐?"
"대비마마께 고하러........"
"앞장서라."
"네, 네!"
여전히 사시나무 떨 듯 떠는 시녀를 보니 놀리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나, 부드러운 음성으로 내가 말했다.
"안 잡아먹을 테니, 걱정 말고 안내나 잘 하거라."
"네, 네 영감마님!"
시녀의 안내에 따라 바로 대비 전 내실에 이른 내가 문가에 고했다.
"신 의금부 진무 윤 흥 대비마마께 문후 여쭈러 왔습니다."
"들어와라!"
음성이 아주 미약해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못 들을 정도로 작았다.
측근 시녀가 열어주는 문으로 내가 내실에 들어서니 문정왕후는 하얀 머리띠를 두르고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중이었다.
"그렇게 서있지 말고 이리와 앉게."
나를 보자마자 마구 분노를 쏟아낼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삼일 간의 단식으로 음성은 미약했으나 눈에는 오히려 맑은 정광이 가득했다.
"네!"
짧게 대답한 나는 그녀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거리를 좀 두고 앉았다.
"이제 우리는 완전 남인가?"
예상치 못한 노회한 여걸의 질문에 나는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하지만 나는 침착하게 앉아 답변을 보류한 채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답변을 했다.
"그렇다고도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좀 더 알아듣기 쉽게, 무슨 말이지?"
'하하, 요것 봐라!'
내심의 생각을 지우며 내가 다시 답변을 했다.
"대비마마의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입니다."
"그래........?"
잠시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던 그녀가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주상 전하를 뵐 수는 없겠지?"
"이제 주상전하도 바로 설 연치가 훨씬 지나지 않았습니까?"
"호호, 과연 그 때문이로구나. 그렇다면 이제 정말 보기가 힘들겠군."
혼자 말인 듯 나직이 뇌까린 그녀가 갑자기 내 눈을 똑바로 정시하며 물었다.
"아직도 그대는 내 사위인가?"
"대비마마의 손에 달렸다 했습니다."
"요구조건이 있군."
"단식을 푸십시오. 하고 일체의 정사에서 손을 떼십시오."
"하면 나도 조건을 말하겠다."
"내 막내 동생 원형이를 살려다오."
"제 손에 달린 일이 아닙니다."
"아니야, 아니야!"
머리까지 절레절레 저은 문정왕후가 말했다.
"죽으면 네 손에 죽지, 환 아이의 손에는 안 죽어. 아니 못 죽이지. 어려서부터 효자지만 너무 심약한 아이니까."
말문이 꽉 막히는 나였다. 정곡을 찌른 말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윤원형이 두려워서라도 이참에 아주 죽일 결심을 단단히 한 상태였다. 잠시 숙고하던 내가 답했다.
"그렇게 못 하겠다면 어쩌시겠습니까?"
"호호, 그렇다 라........?"
여기서 다시 천정을 멀거니 바라보던 문정왕후가 돌연 악독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죽어보여 주지. 그럼, 과연 어떻게 되겠나? 주상은 어미를 죽인 불효막심한 놈으로 용상의 지위가 온전할까? 하물며 자네의 지위야 호호호........!"
한마디로 우습지도 않다는 말이었다. 확실히 두려운 여인이었다.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생각했다.
'이럴 때는 사람 보는 눈이 정확해야 한다. 과연 내 눈앞에 앉아 있는 여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는 여인인가? 마음속의 울림은 그렇다라는 답이었다.'
"거래를 합시다."
"좋아! 내 딸 인순을 끝까지 책임지시게."
"좋습니다. 약조하죠."
"좋아!"
고개를 끄덕인 문정왕후는 갑자기 어디서 그런 힘이 나는지 고함을 질렀다.
"들었지? 인순!"
"네, 어마마마!"
옆의 내실 문이 열리며 인순공주가 울며 튀어나왔다. 울며 치마폭에 매달리는 인순공주의 등을 두드리는 문정왕후의 시선은 천정의 무늬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로써 모든 것을 이루었다. 내 대비가 아닌 한 사람의 어미로써 말하지. 사위! 비록 철딱서니 없으나 내 죽은 후에도 딸년을 많이 아껴주시게나."
그 말에는 어느 모녀처럼 절절한 모성애가 넘쳐흘렀다.
"알겠습니다."
짧게 대답한 내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그녀가 나직하게 말했다.
"앉게. 내 자네에게 내 마음을 확실히 보여주도록 하지. 내 자네가 보는 앞에서 미음을 들도록 하겠네. 그러면 되는 거지?
"네!"
나의 확고한 대답에 딸을 부르는 왕대비였다.
"공주!"
"네, 어마마마!"
"미음 들여라."
"네~! 어마마마!"
인순공주가 환한 표정으로 그 지체에도 뛰듯이 달려 나갔다.
"저런, 저런........! 나이가 몇인데........ 어염집 아낙같이 구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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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고맙습니다!
^^
늘 좋은 날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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