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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인생-42화 (42/141)

<-- 진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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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높은 상관이지만 면신례는 어김없이 행해졌다. 나는 며칠을 두고 부하들에게 술대접을 하고 돈 냥이나 집어주어서야 이들을 장악할 수 있었다. 이후 업무 파악을 하니 특별한 사안이 없어 나는 외부로 출타하였다.

고위직인 부진무나 지사 등은 자리를 지키라 하고, 나는 도사(都事) 2인, 영사(令史) 4인, 백호(百戶) 8인, 나장(羅將) 12인을 데리고 일단 밖으로 나왔다. 위세를 자랑하기 해야겠으나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해서 나는 마포나루로 방향을 잡고 그곳으로 향하였다.

왕명으로 민폐를 끼치는 자들을 잡아들이기 위해서라는 명분이었다. 나는 철릭을 입고 검을 비껴 찬 채 수행하는 도사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아무튼 나는 영사와 나장들의 호위를 받으며 일로 마포나루로 향하였다.

가는 곳마다 우리의 행차에 이것은 무슨 모세의 기적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고, 마치 바닷길이 쫙 갈라지 듯 분분히 길을 틔우기 위해, 양옆으로 피하기 급급한 일반 백성들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오연히 먼 산에 시선을 두고 아랑곳하지 않고 내 길만 걸어갔다.

우리 행렬이 마포나루에 이르니 이제는 이곳이 난리가 났다. 날 시퍼런 금부의 나장들이 앞뒤로 설치며 길을 여는데, 도사 영사의 귀인까지 담뿍 거느린 나의 출현에 온 시장바닥이 뒤집어졌다.

내가 여각으로 들어서자 몰래 숨어서 보는 치들은 신이 났다. '저 잘나가는 집이 뭘 잘못하여 찍혔나보다' 이런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는 심리로 눈을 반짝이는데, 곧 나장들이 파수를 서듯 외각으로 창을 겨누자 모두 실망하여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나 곧 의금부 진무가 나라는 사실을 알고 전에는 가끔 타관에서 온 자들이 주청에서 설치는 자들이 있었으나, 백동 은동 형제들이 해결하던 일마저 없어질 판이 되었다. 잘되는 년은 넘어져도 가지 밭에 넘어진다고, 이게 그 짝 아닌가!

아무튼 나는 공무를 빙자해 사적인 일을 볼 수 있었다. 내가 한양으로 귀환하자마자 호출한 만경의 흥정 형이 마침 올라왔던 참이라, 나는 그를 데리고 여각 안채로 향하였다. 대좌를 하고 간단하게 서로 안부를 물은 우리는 곧 본론에 들어갔다.

"그래, 왜에 갔던 일은 어찌 되었소?"

신분이 고귀해지자 절로 내 음성이나 태도에도 위엄이 풍기는지 흥정 형이 한껏 굳은 표정으로 답변했다.

"조총은 백 정을 구하였으나 대포는 구입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 선주문은 해 놓았고?"

"네, 양이의 상인에게 웃돈을 얹어도 좋으니 꼭 사겠다고 주문을 해놨습니다."

"잘 했군. 염초와 유황은?"

"염초 500근, 유황 100근을 구하였으나, 가주님의 특별한 지시가 없었던지라......."

"주상에게 구입을 하도록 종용은 해보았으나 중신들과 상의한다는 등 어쩌고 하는 것으로 보아, 기대할 게 못되는 것 같소. 비금도 개척은 잘 되고 있나?"

"네, 일차로 오천 여명이 입도 했습니다."

"염초를 그곳에 잘 보관해놔. 특히 습기에 유의하고."

"네, 가주님!"

"그럼, 선박 건조와 염전도 일구어지고 있는가?"

"이제 시작 단계입니다."

"알았어. 특히 인부들에게 잘 대해줘. 그 사람들의 요구가 특별한 것이 아니잖아, 한 입 해결하기 위해 몰려든 자들이니, 절대 배곯게 하는 일은 없도록 해."

"명심하겠습니다. 가주님!"

"은과 쌀, 구리는 어찌 되었어?"

"홍삼을 매매한 돈이 터무니없이 많아 은 십만 냥, 구리 1000관을 매입하였으나, 쌀은 그네들도 없어, 2천석 밖에 구매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쌀은 말이야......."

"네."

"이제 사창(社倉)이 허용되었으니, 적당한 곳에 이백 석씩 열 곳에 출자를 해, 자본도 불리고 백성들의 배고픔도 해결하도록 해. 특히 유의할 것은 사장(社長)을 잘 선정하여 비리 발생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도록 해."

"명심하겠습니다. 가주님!"

"다 됐나?"

"조총은 어떻게 처리합니까? 가주님!"

"지금 가지고 왔나?"

"네!"

"일단 여각으로 옮겨. 내 바로 군기시로 반입할 테니까?"

"네, 가주님!"

"참!"

"네, 가주님!"

나는 바로 등을 돌려 밖으로 나가려는 흥정을 불러 세웠다.

"비금도에 언제가 될지 몰라도 화약과 총포기술자들이 갈 거야. 그때를 대비한 시설을 완벽하게 준비해놔."

"네, 가주님!"

"그리고 오늘은 내려가지 말고 내일 아침에 한 번 더 들려. 내 꼭 전할 말과 그림이 있으니."

"네!"

"그럼, 일봐."

"네, 가주님!"

인사를 꾸벅 하고 나가는 흥정을 보며 나는 곧 흥선을 불러들여 국밥을 한 그릇씩 말아, 나를 호위해온 영사 이하 금부의 나졸들을 대접하도록 했다.

조선은 아직 먹거리가 대세인 시절이었다. 즉 먹거리를 위해 묵숨을 내건다는 말이다. 일반 백성들은 하루 두 끼도 못 먹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아침부터 밤중까지 피땀을 흘리는 것이고, 먹이사슬에서 그 위에 있는 자들은 박봉으로는 견디지를 못 하니, 윗전이나 토호들과 짜고 비리를 저지르는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밥 한 그릇도 금부의 최고 실세가 내는 것은 그 의미가 달랐다. 베풀고 은근히 충성을 유도하는 상관의 뇌물일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내가 이를 치사하게 꼭 기획하는 것은 아니고, 당장 이들은 먹고 나면 힘쓸 일이 있었다.

나무상자에 대못질까지 하여 차곡차곡 담긴 조총 백 자루를 밀무역을 단속한 성과라 하여, 군기시로 반입하려는 것이 내 본래의 의도였다.

"많이 먹고 힘 좀 쓰거라! 음. 하하하........!"

나는 음침하게 웃으며 나장들이 국밥 한 그릇씩을 들고, 길거리에서 쪼그려 앉아 먹고 있는 풍경을, 느긋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일행이 식사를 끝내자 의금부로 돌아가기로 했다. 아니 군기시로 조총을 가져다주기로 했다. 그래서 백호와 나장들을 보고 말했다.

"우리는 벌써 한 건 했다. 사 무역을 하다가 적발된 압수품이다. 이것을 군기시에 가져다주어야겠다. 식사들은 잘 했지?"

"네!"

우렁차게 복명하는 나의 쫄다구들이었다.

"그럼, 밥값들 해야지. 가자!"

"네!"

나는 씩씩하게 대답하는 내 부하들을 데리고 여각으로 갔다. 그곳에는 내가 지시한 대로 조총 100자루가 10개씩 포장되어 10개의 나무상자에 안치되어 있었다. 이것을 백호 8인 나장 12명까지 하니 딱 20명이라, 2명 1조가 되어 1상자씩 들라 했다.

나는 이들에게 그것을 들려 보무도 당당히 군기시로 향하게 했다. 그런데 이놈들이 별로 무겁지도 않을 것을 가지고 생색을 내려는지, 허리를 굽히고 괜히 낑낑거렸다. 그래서 내가 한마디 했다.

"그 위에 우리 한 사람씩 얹어 태우고 갈래?"

"아, 아닙니다!"

나의 말에 곧 바로 허리가 펴지고 비로소 보무도 당당해지는 걸음걸이였다.

이렇게 해서 군기기에 이르니 구임 둘이 죽은 조상이 살아서 돌아온 듯 반갑게 나를 영접했다. 이들이 이렇게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지난번 내가 호구 걱정 말고 열심히 하라고 뱉은 바를 실천하기 위해, 나는 이 두 사람에게 쌀 5석(石)을 아무 대가없이 매달 지급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내 개인 돈에서 주는 것이다. 이에 여간해서는 군입을 안 떼는 흥선마저도 '가주님은 오지랖이 넓어도 너무 넓다'고 푸념까지 한 일이 있었다. 아무튼 이들의 환대에 나는 그간의 안부를 물었다.

"그동안 잘들 지내셨소?"

"아이구, 영감마님! 말씀 낮추십시오!"

이들도 나에 대해서는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단번에 나를 '영감'이라 부르는 것이 그 방증이었다. 원래 영감(令監)은 정삼품과 종이품의 관리를 높여 이르던 말인데, 영감 소리를 들으니 현대의 삶을 살았던 나로서는. 어째 나를 늙은이 취급하는 것 같아 어감이 듣기에 별로 좋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하긴 이들에게는 내가 열렬한 후원자인데, 나의 거취에 눈을 감고 있었다면 그것은 일종의 배은망덕이었다. 나는 이런 그들에게 넉넉한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지난번에 내가 얘기한 조총이 이 상자에 들어 있소. 우선 이것과 똑 같은 제품을 하나 만들어 보시오. 그러면 그 기반위에 내가 개량할 사항을 일러주리다."

"네, 영감마님!"

나의 말에 박영준(朴永準)이 얼른 허리 굽혀 대답을 했다. 나는 시선을 돌려 장돌쇠(張乭金)에게 말했다.

"신기전은 만들었소?"

"아, 아직........."

"왜?"

"예산도 예산이지만 제조 영감님의 허락이 떨어져야....... 쓸데없이 만들었다가는 저희들만 경을 칩니다요."

"알았소. 내 조치를 해 줄 테니, 이번에는 틀림없이 만들어야 하오."

"네, 영감마님!"

"그리고........"

나는 둘의 시선을 끌기 위해 말끝을 길게 끌었다.

"말씀하십시오. 영감마님!"

곧 그들이 허리를 굽히자 나의 말이 이어졌다.

"혹시 만약에 말이오."

이렇게 말하고 사방을 둘러보니 우리 셋 외에는 없었다.

"무슨 일이 잘못되면 우리 집으로 오시오. 내 당신들의 평생을 보장하리다."

"고맙습니다요. 영감마님! 우리와 같은 천직(賤職)을 누가 영감마님 같이 살뜰히 챙겨줍니까? 만약 저희들에게 하교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만 하십시오. 저희들이 목숨을 걸고서라도 해내겠습니다요."

"고맙소. 내 그 말 잊지 않으리다. 그럼, 부탁 좀 하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소인들의 일인데요."

"그럼........!"

나는 그들의 인사를 받으며 유유히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나는 그 길로 탑전(榻前:임금의 의자라는 뜻으로 곧 어전을 가리킴)으로 찾아들었다. 도승지 이윤경의 내락을 받은 나는 곧 상선내관의 안내로 탑전에 비스듬히 앉아있는 명종을 만나 볼 수 있었다.

예를 갖추고 내가 말도 없이 묵묵히 앉아 있자 명종이 자세를 바로 하고 내게 말했다.

"왔으면 말을 해야지. 왜 그러고 있소?"

"전하께옵서 딴 생각을 하고 계신듯한데 소신이 말씀드리면 귀에 들어오겠습니까?"

"하하하........! 그런가? 이제 내 귀를 씻고 들을 테니, 할 말이 있으면 어서 하오."

"전하........!"

내가 갑자기 머리를 찧으며 간절하게 불렀다.

깜짝 놀란 명종 환이 용상에서 반쯤 일어나 허리 굽혀 물었다.

"왜, 왜 그러오?"

"전하께옵서는 이러다가는 역사의 대역 죄인이 되시옵니다. 아니 종묘는 물론 능침도 보전 못하는 불효막심한 대역 죄인이 될 것이옵니다."

"무슨 그렇게 심한 말을........."

나이 간절한 호소에도 아직도 그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환이었다.

"신이 목숨을 걸고 단언컨대 전하의 재임 시에 저 무지막지한 왜놈들 30만이 떼로 몰려와 조선8도를 유린하는 것은 물론, 종묘를 불태우고 능침을 파헤치는 만행을 저지를 것입니다."

지금 명종의 나이 올해로 30세이다. 명종이 세수 60세까지 산다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그 안에 죽으면 할 수 없고.

"믿기 어렵지만 경이 쓸데없는 말을 할리는 없고, 그래서 내가 어찌해야만 되겠소?"

"지금부터라도 군비를 확충하고 장수들은 물론 군도 제대로 훈련시켜야 할 것이옵니다."

"그야 그렇지만, 나라가 이렇게 흉흉하니.........."

"그럼, 최소한이라도 하십시오."

"그래, 그것이 뭐요?"

"오늘 신이 사사로이 왜에 거래하던 물품을 압수해온 것이 있습니다. 곧 조총이옵니다."

나의 말에 빙긋이 웃음 짓는 명종이었다. 내가 일전에 조총을 언급한 바 있기 때문에 어떻게 된 연유인지 감을 잡은 것이다.

"곧 이 조총을 천 정 이상 만들어 훈련원에 비치하고 사격술을 연마해야 하옵니다. 그냥 대충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는 실력이 되도록 배양을 해야 하옵니다. 하옵고 신기전은 물론 여타 총통류도 대거 만들어 유사시에 대비해야 할 줄 아옵니다. 또한 염초와 유황도 대량으로 확보하여 많은 화약도 비축하고 있어야 합니다."

"흐흠........! 요는 예산이 문제가 아니오?"

"불요불급한 것 외에는 지출을 삼가시고 하다못해 내탕금도 줄이십시오. 해서 최소한의 대비는 해야만 역사의 죄인이 되지 않으실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내가 역사의 죄인이라는 말을 언급하지 움찔하는 명종이었다. 그에게 가장 두려운 것이 있다면 '어머니의 말씀'과 '역사의 죄인'이라는 말일 것이다. 군왕 치고 역사의 죄인이 되어 천고에 손가락질 받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이는 벌써 왕이라고 할 수도 없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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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고맙습니다!

^^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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