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행어사 -->
3
처녀는 이 마을에서는 그래도 잘사는 지 제법 괜찮은 집으로 들어갔다. 삼 칸 모옥에 행랑채가 두 칸에 사랑채도 있는 집이었다. 외양간에는 송아지도 한 마리 메어져 있었다. 처녀가 부엌으로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던 중인지 처녀의 어머니로 되어 보이는 사십 대 중반의 수수한 아주머니가 나왔다.
"우리 딸아이로부터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누추하지만 행랑채로 들어가세요. 그런데 집안이 좀 시끄러울 텐데........"
"괜찮습니다. 한데 잠 안 자는 것만으로도 황송하지요."
나의 대답에 아주머니는 아무 말 없이 행랑채로 우리를 안내하고 곧 부엌으로 다시 사라졌다. 우리가 곧 두 채의 행랑채에 나누어 여장을 푸는데 처녀가 쇠죽을 쑤려는지 우리가 있는 곳으로 와서 불을 지폈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 우리가 내어준 쌀로 지어준 저녁을 먹고 일찍 잠을 자려고 일행이 자리를 잡는데, 어디서 술에 잔뜩 취해 노래를 부르다가 욕을 퍼붓다가, 종잡을 수 없는 음성이 우리가 자고 있는 집을 향해 점차 다가오고 있었다.
"도둑놈들, 이 할이 어떻게 일 년 사이에 12승(升:12되)이 된단 말이냐?"
그러고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는 중년남성의 목소리가 이제는 완연히 우리가 묵고 있는 집으로 들어왔다.
"꽃순이 엄마 나왔소!"
"아이고, 웬 술을 그렇게........ 그래 돈은 좀 어디서 연통 좀 하셨어요?"
"이 가뭄에 어느 놈이 돈을 빌려줘?"
"아이고, 이걸 어쩌누......... 꼼짝없이 우리 땅마지기나 빼앗기게 생겼네."
"다 도둑놈들이야, 나라에서 하는 일이라고 믿었더니, 분명 2할로 이자를 적어놓는다고 해놓고, 그게 어떻게 1년 조금 넘는 사이에 12승이 돼? 거기에 일 자 하나를 더 써넣어 우리 땅을 강제로 빼앗으려 드는 게 틀림없어. 도둑놈의 새끼들!"
듣고 보니 내용이 심상치 않다. 해서 내가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고 밖으로 나가자, 모두 따라서 밖으로 나왔다.
"아니, 우리 집에 웬 손님들이 이렇게 많소? 진즉에 얘기하지. 내 목청을 낮추었을 것 아니오."
"괜찮소."
나는 답변을 하고 그 집 안채 툇마루로 올라가 좌정하고 사연을 물었다.
"억울한 일을 당한 모양인데, 사정을 좀 들을 수 있겠소?"
"알아봐야 내게 뭔 도움이 되겠소. 댁들도 속만 터지니 차라리 모르는 게 낫소. 나 혼자 속 알이 하면 그만이니까."
"그래도 이야기를 하다보면 속이라도 시원할 게 아니겠소. 어디 들어나 봅시다."
"그럼, 날이 추우니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안방으로 들어갑시다. 그러고 꽃순이 엄마는 막걸리 남은 것 있으면 들여오고."
"네, 서방님!"
이렇게 되어 나는 주인장과 함께 안방으로 들어가 막걸리 몇 잔을 나눠 마시며 대화를 하게 되었다. 그와 대화를 나눈 결과 들어보니 내용인즉슨 이러했다.
즉 작년 저 작년에 이 집 주인은 군에서 환곡(還穀)을 신청해 6가마를 얻어다 꽃순이 언니를 시집보내는데 썼다. 그런데 문서를 작성할 때는 분명히 연 2할의 이자로 해서, 작년에 7가마 2말을 갚게 되어 있었다했다.
그랬던 것을 작년에도 흉년이 들어 갚지를 못하자, 매일 와서 아전들이 등살을 피워대기 시작했다. 내년 농사를 지어 갚겠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차라리 저당 잡힌 땅으로 대신 변제를 하라고 매일 조르더니, 내일까지 순순히 안 내놓으면 땅을 강제로 몰수하겠다고 최종 통보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간에 이자가 이자를 새끼 쳐, 총 이자까지 13가마 2말을 내놓으라며 그만큼 땅으로 몰수하겠다는 내용을 전하고 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문서를 보여 달라 했더니 분명 6가마에 대한 이자로 연 2할이 책정되어 있었고, 연체 이자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그리고 담보로 농토 5마지기가 설정되어 있었다.
이에 나는 막걸리 얻어먹은 답례로 내일 나랑 같이 관아로 가서 따지자고 했다, 그랬더니 순진한 주인장은 괜히 봉변당하지 말고, 억울하지만 땅으로 그냥 변제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주인장을 잘 달랬다. 밑져야 본전이니 나랑 같이 가 보자고 거듭 설득하여 주인장의 동의를 얻었다.
그렇게 하고 밖으로 나온 나는 두 명의 대리(帶吏)를 은밀히 밤새 모처로 파견하였다. 이튿날 진시가 되자 나는 느긋하게 운봉 사형제의 호위를 받으며 이곳 주인장과 함께 배천(白川) 고을 수령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새벽녘에 네 명의 내금위 무사들도 모처로 떠나 우리 넷만 배천 관아로 동행을 하게 된 것이다. 내가 일행과 함께 배천 관아 입구에 들어선 시간은 대리와 내금위 무사와 잠정 약속한 사시 정이었다.
내가 출현하자 곧 대리 두 놈이 목청을 뽑아 외쳤다.
"암행어사 출두요!"
밤새 모집한 삼문(三門)의 역졸과 대리가 동헌의 문을 두드리면서 큰 소리로
'암행어서 출두!'
를 거듭 외치자 나와 동행한 주인은 놀라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고, 문이 황급하게 열리며 안에서도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쏟아져 나온 고을 수령과 이속들의 영접을 받으며 동헌(東軒) 대청에 착석 개좌했다. 그리고 나는 동헌 뜰에 꿇어앉은 고을 수령과 이속을 향해 말했다.
"지금부터 배천 고을의 제반 업무에 대한 감찰을 실시하겠다. 우선 공문서부터 가져오너라!"
이렇게 명한 나는 곧 공문서를 가져오게 하여 '번열(反閱:공문서 검열)'을 하고, 관가 창고를 번고(反庫:창고의 검열) 했다.
또 불법문서가 현착(現捉)되자 나는 수령의 관인과 병부(兵符)를 압수하고, 창고에 '封庫(봉고)' 두 자를 쓴 백지에, 마패를 날인해 창고 문을 봉했다. 이어 감옥에 수감된 죄수를 점검하고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재심해 풀어주었다.
또 죄가 결정되지 않아 오랫동안 감금된 죄수 즉 체수(滯囚)를 풀어주었다. 또 내가 묵었던 주인장의 사건을 심리하여 올 가을까지 변제를 유예하되, 이자는 연 3승으로 판시하여 그를 돌려보냈다.
그리고 양민을 괴롭히는 향간호우를 적발 착수비관(捉囚秘關:어사발급의 영장)을 발급, 체포구금하고 처벌하였다. 또한, 원부(怨夫), 원부(怨婦)의 소지(所志:소장)나 정장(呈狀)을 접수하고, 제사(題辭:판결, 처분), 입안(立案:증명문), 완문(完文:처분하는 문서) 등을 발행해 원한을 풀어주었다.
이렇게 하여 나는 배천의 성읍 시찰을 마감하고 날도 춥고 하여 암행어사의 소임을 마치고 귀환하기로 했다. 또 나는 곧 서계(書啓:보고서)와 별단(別單:부속문서)을 각 한 통씩 작성하여 명종에게 복명하는 날에 제출할 준비를 했다.
서계는 수계(繡啓)라고도 부르는데 나는 생읍(암행을 목표로 한 고을)시찰에 관한 특별지시사항, 봉서에 지시된 특별사항 등을 채록, 탐문한 것을 서한형식으로 조목조목 기술하였다.
그 내용의 일부 중에는 이런 구절도 있었다.
'도적이 되는 것은 도적질하기 좋아서가 아니라, 배고픔과 추위가 절박해서 부득이 그렇게 된 것이다. 백성을 도적으로 만드는 자가 과연 누구인가?'
라고 적었다.
또 임꺽정이 도둑질한 재물을 일부를 빈민에 나누어 주어, 백성들에게는 '의적(義賊)'이라는 내용도 기술하며, 가렴주구와 탐학을 일삼는 관리들을 발본색원 할 것을 건의하였다. 또 차제에 조정부터 일신하여 새롭게 정사를 펼 것을 건의하였다.
또 농법의 근본적인 개선과 구황작물의 확보로 최소한 아사자는 나오지 않도록 조정에서 힘써야 한다는 내용도 기술하였다. 이렇게 서계와 별단 작성을 마치자 나는 한양으로 귀환하였다.
한양에 도착하여 제 1착으로 접한 소문이, 임꺽정이 신속한 재판에 의하여 보름 만에 효수(梟首)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이어 나는 어전으로 들어가 서계와 별단을 받치고 3일 간의 휴가를 얻었다.
내가 집에 도착하자 미리 연통을 받은 식구들이 모두 대문가에 나와 나의 귀환을 환영하였다. 어머니는 물론 아내마저 나와 하인들과 함께 도열하여 나를 맞았던 것이다. 나는 오자마자 하인을 시켜 만경의 흥정을 한양으로 불러오도록 조치하고, 곧장 아내와 함께 어머니의 방으로 가 귀환 인사로 대례를 올렸다.
"별고 없으셨습니까? 어머니!"
"집안에 앉아 있는 늙은이에게 무슨 별일이 있겠누. 단지 이 추운 겨울에 타지방까지 공무를 수행하고 온 애비가 고생이 많았지."
"나라의 녹을 먹다보면 어쩔 수 없이 행할 일도 많죠. 아직 젊어서 그런지 큰 고생인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다니 다행이다. 추은 데 객지에서 오랜 세월 고생했으니, 어서 가서 푹 쉬어라."
"네, 어머니!"
곧 어머니의 방을 물러난 나는 아내의 방으로 갔다.
방에 앉자마자 아내의 안색을 유심히 살피니 내가 떠날 때보다는 그래도 안색이 많이 좋아져 있었다.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내가 뚫어지게 쳐다보다 얼굴을 붉히며 묻는 아내였다.
"나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모든 걸 잊어."
"아니래도 체념을 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잘난 서방을 둔 숙명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비우니 한결 몸과 마음이 좋아졌어요."
"참으로 당신 말마따나 잘 난 것도 걱정이야. 고목은 가만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냥 두지를 않는 경우지."
"쳇, 여전히 자랑은......."
"지금 뭐라고 했어?"
"아, 아니 예요!"
나는 부정하는 아내에게 덤벼들어 간지럼을 태우니, 아내는 그냥 반쯤은 상체가 저절로 넘어갔다. 나는 그런 아내에게 더욱 가까이 접근해 무수한 키스 세례를 퍼부었다. 아내의 얼굴이 온통 달아오르고 급 흥분하여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아예 이부자리를 펴서 아내를 반듯하게 누였다.
"누가 들어오면 어쩌려고........?"
"감히 어느 연놈이."
나는 흰소리를 치며 불안해하는 아내를 달래 하나 둘 옷을 벗겨나갔다. 이윽고 백일하에 아내의 멋진 육체가 드러나고,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아내의 삼삼한 자태를 감상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 * *
다음날 나는 마포로 나와 낮에는 상점을 둘러보고 밤에는 첩 윤 연을 끼고 잤다. 솔직히 섹스로만 말 한다면 나와 윤 연의 궁합이 더 잘 맞았다. 윤 연은 특이한 체질이라 그와 한 번 자본 사내는 영원히 잊지 못할 기억을 가질 것이다.
그렇지만 만사가 육정(肉情)으로만 해결될 일은 아니 잖는가? 현대와 달리 조선시대는 체면에 죽고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에, 한 여인에게 빠져 매사를 등한히 한다면 낙오자 되기 딱 맞았다. 이는 지금도 매한가지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집으로 돌아와 하루를 더 쉰 나는 다음날이 되자 시간에 맞추어 입궐했다. 입궐해 업무를 보고 있는지 얼마 안 되어 명종 환이 상선내관을 통하여 나를 불렀다. 곧 예를 갖추고 나의 요구에 의해 상선내관과 대전궁녀마저 물리치고 독대를 하였다.
"내 경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듣기위하여 모두를 물리쳤소."
"황공하옵니다. 전하!"
"내 경의 서계를 보고 백성들의 곤궁하다 못해 비참한 삶에 많이 눈물지었소. 임금이라고 구중궁궐에 앉아 수라라고 이를 목구멍으로 넘겨야 할지........ 참으로 과인을 많이 돌아본 시간이었소."
지금도 목이 매이는 지 한참 뜸을 들인 명종 환이 다시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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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고맙습니다!
^^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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