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박인생-39화 (39/141)

<-- 암행어사 -->

2

이렇게 채 오리를 가지 않아 포졸들은 기 신고한 포졸의 손짓에 따가 산중에 위치한 다섯 농가를 완전히 에워싸게 되었다. 산과 들에는 지난번 내린 눈의 잔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거운데, 농가 다섯 채를 둘러싼 포졸들 사이에는 괴괴한 정적만 흐르고 있었다.

남치근이 수신호를 하자 일제히 관군이 다섯 농가로 달려들려 하는데, 제일 앞쪽의 농가에서 웬 노파를 부축한 장정과 함께 두 사람이 뛰쳐나왔다. 이때 노파가 북쪽 능선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임꺽정 이라는 놈이 저 산으로 도망갔다. 얼마 전에 도망간 놈이 임꺽정이오."

노파의 외침에 남치근의 지시가 아니라도 모두 산 능선을 향해 우르르 달려가는데, 노파를 부축한 장정은 태연하게 지휘부가 있는 남치근의 부대에 합류하였다.

잠시 후, 임꺽정을 놓치고 관군들이 속속 합류하자 남치근은 좀 더 부대를 북쪽으로 배치하기 위하여 신속이 북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하여 나는 노파와 합류한 덩치를 놓치지 않고 세밀히 살피고 있었다.

이때 그는 노파와 함께 남들이 눈치 채지 않게 늦장을 부려 서서히 열의 후미에 위치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나는 그놈이 임꺽정일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덩치부터가 장난이 아니었고, 아무래도 행동이 수상하였다. 해서 나는 수행해온 네 금위의 무사와 운봉사형제를 불러 말했다.

"저 열의 후미에 처져 노파와 있는 놈을 눈치 채지 않게 다가가 체포하여 오시오!"

나의 명에 여섯 사람이 슬금슬금 후미로 처져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이윽고 여섯이 그 덩치를 멀리서 포위한 모양새가 되자 나는 손짓을 하여 공격개시 명령을 내렸다.

이에 불문곡직 내금위무사들 네 명이 달려드는데 그 덩치가 이를 알고 제일 먼저 앞으로 달려오는 무사를 강력한 주먹으로 때려눕혔다.

"임꺽정이 저기 있다."

"비로소 확신한 나의 외침에 전 관군이 일제히 내 손가락을 따라 달려가고, 그새 임꺽정은 두 사람을 더 쓰러 넘어뜨리고 몇 발짝 달아난 상태였다. 이에 운봉사형제가 일제히 검을 뽑아 달려드니, 맹렬한 그 기세에 주춤하는 임꺽정이었다.

그때부터 이 대 일의 격투가 시작되었다. 운봉 사형제의 날렵한 칼부림에 임꺽정이 도저히 안 되겠는지 품에서 짧은 비수 한 자루를 꺼내어 대항하기 시작하였다. 이 와중에 몰려든 관군들이 이들을 몇 겹으로 에워쌌다.

이제 격투는 점점 치열해지고 있었다. 운봉이 선두에 서서 무식한 대도를 법식에 맞추어 공세를 하면, 운곡은 그 빈틈을 보좌하는 형태로 검을 놀리고 있었다. 이에 임꺽정이 죽을힘을 다해 이에 대항하는데 점차 그가 지쳐가는 기색이 역력했다.

큰 황소만한 덩치가 거친 숨결을 쉑쉑 토해내는데 좀 멀리 떨어진 내게도 그 큰 숨소리가 다 들릴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운봉사형제는 고수답게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계속하여 임꺽정을 압박하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둘의 눈부신 무예에 경탄하며 관전하고 있는데, 갑자기 임꺽정이 대갈일성을 토하며 정면 돌파를 시도하였다. 죽음을 도외시한 과감한 돌파에 운봉이 멈칫하는 사이 한 발 뒤쳐져 있던 운곡에게 까지 접근한 임꺽정이었다.

허나 거기까지였다. 비호처럼 슬쩍 반보 비켜선 운곡의 쾌검이 임꺽정의 팔을 스쳤다고 느끼는 순간, 무엇이 백설의 벌판 위에 뚝 떨어졌다. 비수를 쥐고 있던 임꺽정의 오른 팔이 바닥에 팽개쳐지며, 아직도 신경이 살아 꽉 움켜진 비수와 함께 펄쩍펄쩍 뛰었다.

무기와 함께 한 팔을 잃은 임꺽정은 이제 완전히 적수가 되지 않았다. 몇 수를 더 버텼으나, 이제 앞뒤의 공격을 맞아 어스 순간 그가 맥없이 앞으로 푹 꼬꾸라졌다. 운봉의 검등 공격을 뒷덜미에 맞은 임꺽정이 강력한 충격에 기절을 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남치근에게 소리쳐 빨리 지혈을 하도록 하고 잡혀 있는 서림(徐林)에게 그가 임꺽정이 맞는지 확인하도록 했다. 임꺽정이 쓰고 있는 털벙거지를 벗겨내고, 얼굴에 칠해진 잿빛 재를 눈으로 지우자, 사내의 맨 얼굴이 나타났다. 이에 서림이 말했다.

"임꺽정이 맞습니다."

이에 남치근이 불끈 노해 서림에게 소리쳤다.

"이 산만한 덩치면 얼굴의 생김과 관계없이 임꺽정인 줄 알았을 텐데, 네놈은 왜 바로 고하지 않았느냐?"

"일전에 그의 형 가도치(加都致)를 잡고 임꺽정으로 보고한 전례가 있듯이,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아니래도 비슷하면 일단은 발고를 해야 할 것 아니냐?"

"일단 잡았으니 되었습니다. 그만 하시지요."

나의 만류에 마지못해 서림에 대한 질책을 멈추는 남치근이나 아직도 못마땅한 기색은 역력했다. 내가 볼 때 서림은 임꺽정이 농가에서 나올 때부터 임꺽정이 아무리 변장을 했다지만, 그가 임꺽정임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임꺽정과 조우하니 그와 함께 했던 세월이 새록새록 생각나, 의리상 갈등을 지금까지 해오다가 때를 놓친 것 같았다. 아무튼 서림의 확인까지 거치자 안도한 남치근이 내게 접근해 말했다.

"감군으로 오시자마자 큰일을 해내셨소이다. 역시 행운을 몰고 다니는 사람은 따로 있나 봅니다. 죄송하오나 우리 관군이 체포한 것으로 공적을 보고하면 안 되겠소이까?"

염치도 좋은 위인이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고생해온 그의 행적을 생각하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었다. 이 나이에 종삼품인데 공에 연연할 나도 아니었기에 수월하게 나는 이를 허락했다.

"좋을 대로 하시오."

"감사하오! 감군 영감!"

나는 새삼 인사를 차리는 남치근에게 씨익 웃어주는 것으로 화답했다. 이 후 삼도에서 몰려들었던 포졸들도 고생을 마치고 속속 임지로 복귀하였고, 남치근 역시 직접 임꺽정을 함거에 싣고 삼엄한 호위 속에 한양으로 향발했다.

나는 다시 감영이 있는 해주로 내려와 장날을 맞이하여 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고 있었다. 당시 시골 소읍까지 오일장이 활성화 된 것은 아니었으나, 큰 고을에는 장이 서고 있었다.

흉년이라 장날이래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있을 것은 다 있었다. 낫, 호미, 쇠스랑 등 농기구를 파는 철점이며, 쌀을 비롯한 오곡도 모두 출하되어 손님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포목점에서는 베는 물론 면포, 비단까지 모두 거리에 내놓고 팔고 있었다.

나는 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다가 싸전에 발길이 멈추었는데, 그 중의 한 상인이 파는 되가 아무래도 내 눈에 작아보였다. 그래서 아직도 한쪽 팔을 동여매고 있는 무사를 제외한 세 무사를 그 상인에게 보내 그 되를 압수해 오도록 했다.

세 명의 무사는 곧장 그 상인에게 다가가 나의 위세를 믿고 아무 양해도 구하지 않고 불문곡직 되를 빼앗아 왔다. 이에 상인이 항의하면서 쫓아오는데, 따지면 나에게 따지라며 무사들은 그를 아예 상대하지도 않았다.

나는 나에게까지 항의하는 그 상인에게 슬쩍 품에서 꺼낸 마패를 보여주고 물었다.

"내 신분이 무엇인지 알겠소?"

"네, 나리! 암행........"

"쉿, 되었소. 조용히 하시오."

"네, 나리!"

얼굴이 하얗게 탈색되어 더욱 깊숙이 부복하는 그를 일별한 나는 유척((鍮尺) 즉 놋쇠의 재질에 눈금이 새겨진 자로, 되를 검시해보니 기준보다 반 치가 작았다.

"이래도 할 말이 있느냐?"

"나리,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사색이 되어 싹싹 비는 상인을 보니 가련한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한 번 이런 일이 있으면 경을 칠 것이다. 알겠느냐?"

"네, 나리!"

"당장 가서 정상적인 되로 바꾸어 장사를 하도록 해라!"

"네, 나리!"

이 모양을 지켜보고 있던 구경꾼들에 의해 아무래도 내 소문이 빠르게 퍼질 것 같아, 내심 나는 경솔을 자책하며 역관에 들러 말을 빌려 타고 남쪽으로 빠르게 내려갔다. 이렇게 이틀을 급히 내려갔는데 어느덧 넓은 벌판에서 또 하루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마침 벌판 중앙에 큰 마을이 있어 찾아드는데 마을 입구에 큰 버드나무와 함께 우물이 하나 있었다. 그곳에는 저녁을 지으려는지 댕기머리를 한 처녀 하나가 동이에 물을 긷고 있었다. 버드나무와 물 긷는 처녀를 보니 문득 어느 암행어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박문수 어사라고 기억이 되는데 하도 어려서 들은 이야기라 확실치는 않다. 아무튼 어느 어사가 어느 농촌마을에 도착을 했는데, 지금과 같은 풍경으로, 버드나무 아래서 처녀가 하나가 동이에 물을 긷고 있었다. 때는 더운 여름날 저녁이라 어사는 처녀에게 물을 요청하였다.

"아가씨, 물 한 그릇 얻어 마실 수 있겠소?"

"네."

수줍어 볼을 붉히며 물을 긷던 바가지에 물을 하나 가득 뜬 아가씨가, 그 바가지를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그 물에 버드나무 잎을 몇 잎 따서 뿌려주었다.

이에 어사가 물을 마시는데 갈증이나 급히 마시려 해도 버드나무 잎이 자꾸 입안으로 빨려들어, 오히려 후후 불며 천천히 마실 수밖에 없었다. 천천히 물을 다 마신 어사가 처녀에게 물었다.

"왜 잎을 뿌려주었소?"

"물도 급히 마시면 체한답니다."

고개를 숙이고 작은 목소리이나 또렷이 답변을 하는 아가씨였다.

이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은 어사는 한 술 더 떠 아가씨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날도 저물어 가는데, 어디 하룻밤 묵을 곳이 없겠소."

"누추하지만 저희 집으로 모시겠나이다."

이렇게 되어 어사는 이 처녀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어사가 방안에 앉아 있자니 밥상이 들어오는데, 고봉으로 가득 고인 하얀 쌀 밥 위에 묘하게 뉘 세 개가 놓아져 있었다. 그리고 반찬은 생선 하나가 통째로 올라와 있었고, 여타 반찬이 몇 가지가 더 놓여있었다.

뉘가 뭔지는 아시지요? 방아를 찧다보면 채 안 찧어져, 까지지 않은 벼 그 자체를 말합니다. 아무튼 뉘 세 개가 하얀 쌀밥 위에 삼각형 모양으로 놓여 있어, 도드라지게 눈에 띄는지라, 이상한 생각이 든 어사는 밥을 먹을 생각도 않고, 그 의문점을 해결하는데 몰두하였다.

"뉘 세 개라?"

"뉘 세 개라?"

밥도 안 먹고 혼자 중얼거리는데 문득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뉘 세요?"

자신의 신분을 묻는 말이 아닌가. 그리하여 어사는 재치있게 이를 알려주어야겠다고 생각을 하는데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일단 밥이나 먹자고 수저를 드는데 문득 통째로 올라온 생선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그래서 어사는 이후 밥을 먹긴 했는데, 생산에는 손 하나 안 대고 다만 네 토막을 내어 내보냈다.

맛있게 식사를 한 어사가 아무 생각 없이 잠을 청하려는데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암행어사 출두요!"

이 소란에 잠을 자기는 틀렸다고 생각한 어사가 밖으로 나와 마을 주민들을 진정시켜 모두 돌려보내고 그 처녀 아비에게 물었다.

"내 신분을 어찌 알았소?"

"우리 딸아이가 생산이 네 토막 난 것을 보고 고기 어(漁)자로 보고 유추하였사옵니다."

"하하하........! 참으로 영리한 따님을 두셨소!"

즉 고기 어(漁) 자(字)에서 끝에 점 네 개가 찍힌 것을 보고 신분을 유추했다니, 처녀의 재치나 영민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 후 어사가 이 아가씨와 혼인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르겠다. 이런 일화가 생각나자 나는 미소가 채 가시지 않은 얼굴로 아가씨에게 물었다.

"물을 좀 주시겠소?"

"네."

수줍게 대답하며 물 한 바가지를 올리는데 겨울철이라 버드나무 잎이 없는 것이 참으로 유감이었다. 이후 내가 또 아가씨에게 물었다.

"날이 저물어 하루 유숙할 곳을 찾는데 마땅한 거처가 없겠소?"

"모종의 일로 집안이 소란스럽기는 하지만 개의치 않으신다면 저희 집으로 모시겠사옵니다."

"고맙소!"

나는 답례를 하고 앞장서서 가는 물동이 인 처녀의 살랑거리는 둔부를 바라보며 뒤를 따랐다.

--------------------------------------------

.. /작가의 말/..................................

감사드리고요!

^^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이전글: 암행어사

다음글: 암행어사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