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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인생-37화 (37/141)

<-- 허준과 노처녀 공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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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는 원래 천자가 타는 부거(副車:예비수레)를 끄는 말이라는 뜻이며, 그 말을 맡아 보는 관리를 부마도위라 했다. 부마도위의 봉록이 재상에 버금가자 이후부터는 오직 천자의 사위에게 부여되는 벼슬이 되었다. 따라서 부마도위를 줄여서 보통 부마라고 하는데, 왕의 사위 또는 공주의 남편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에라, 이럴 때는 차라리 천자가 끄는 말이 되는 게 낫겠다!'

내심 투덜거리며 나는 곧장 집으로 퇴청해버렸다. 업무고 지랄이고, 고가 점수고 다 귀찮았기 때문이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주안상을 보라해서 나는 사랑채에 틀어박혔다. 그래도 한 줄기 정신은 남아서 윤 연의 집에서 거주하는 손자대를 불러오도록 하인에게 지시했다.

내가 술이 얼큰하게 취해있는데 손자대가 달려왔다.

"부르셨습니까? 가주님!"

"다름이 아니라........"

이렇게 운을 뗀 내는 손자대에게 부마의 물망에 오르게 된 경위를 상세히 설명했다. 내 말을 들은 손자대가 물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로 부마도위가 싫으신 겁니까?"

"물을 것도 없이 정말 싫소!"

"흐흠.........! 그렇다면야......... 이렇게 해보시면 어떻겠습니까?"

"어떻게?"

나도 모르게 달려들어 그에게 묻고 있었다.

"사가독서(賜暇讀書)를 신청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그것은 독서당에서 녹봉 받으며 글 읽는 것인데.........?"

"요새는 자택에 칩거하며 독서를 할 수 있도록 변경되지 않았습니까? 또 가주님께서는 자택이 이곳만 있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옳거니........!"

손자대의 꾀에 무릎을 탁 치며 좋아하는 나였다.

"하하하........! 그대는 역시 나의 장자방이야!"

나의 칭찬에 메기입을 더 크게 벌리며 하품하듯 웃는 손자대였다.

나는 그 이튿날 사형 오건을 통해 명종에게 사가독서를 품신하고는, 허락이 떨어지던 말던지 상관치 않고 전라도 만경으로 줄행랑을 놓았다. 측근만을 대동한 채 만경의 본댁에 칩거한 나는 모처럼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정말로 그간 읽고 싶었던 책을 시렁까지 높이 싸놓고 하루 하루를 독서로 소일하고 있었다. 그렇게 흐른 세월이 한 달쯤 흐른 후였다. 하루는 한양에서 나장들을 앞세운 금부도사가 출현했다.

나는 이들에 의해 한양으로 압송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죄명을 씌운 것은 아니고 주상이 잡아오라는 것이었다. 이에 식구들도 안도를 하는 가운데 나는 또 다시 측근들을 데리고 한양으로 올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금부도사에 의해 사정전 앞까지 호송이 된 나는 결국 명종과 대면하게 되었다.

"공주가 그렇게 싫은가?"

"네, 소신에게는 너무 과분합니다."

"보통 양반들은 삼처사첩도 부족해 더 얻기를 안달하지 않는가?"

"소신은 애초부터 부인 하나면 족하다 여겼습니다. 첩을 얻게 된 것도 신의 뜻은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세월에 정성을 분산시키는 것은 과히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하하........! 경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군. 선지식으로 무장이 되어있는가 하면, 여자 문제에 대해서는 고루하기 짝이 없군. 흐흠........! 어쩐다........?"

"해량하여 주십시오! 전하!"

급히 부복하여 다시 간청을 하는 나였다.

생각을 정리한 듯 명종 환이 입을 열었다.

"이 문제만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음이야. 어마마마께서 원체 완고하게 고집을 세우고 있어서, 나도 어쩔 수 없으니, 경이 양보하시게."

'결국 또 원점인가? 꼭 그렇지만도 않군! 늙은 할망구만 꺾으면 주상은 그냥 넘어오겠어.'

이렇게 판단한 나는 더 있어봐야 진척이 없을 것 같아 일단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손자대에게 꾀를 빌리니 석고대죄 (席藁待罪)의 수였다.

이튿날 나는 대신들이 출근을 하기도 전에 궐 앞에 거적을 깔고 엎어져 있었다. 결코 공주와는 혼사를 치를 수 없으니 처벌을 바란다는 행위였다. 나의 모습에 출근하는 사람마다 서로에게 어떻게 된 연유인지를 묻고, 개중에는 어떻게 알았는지 이를 알고, '복도 많은 놈'이라고 수군거리는 자들도 있었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 사흘째 물만 먹고 계속하여 시위를 벌이자, 궐 안에서 도승지가 나타나

나를 다시 궐 안으로 청했다. 내가 다시 대전 안에 입실하니, 주상 외에도 왕대비도 와 있었다.

내가 엎드려 죄를 청하자, 주상은 아무 말이 없는데 문정왕후가 나섰다.

"그렇게 공주가 싫은가?"

"신에게는 너무 과분하옵나이다."

"하지만 내게도 고집이 있음이야! 마지막으로 제안하겠다. 일단 약혼(約婚)식 만 올려라. 혼례는 부마의 마음이 돌아서는 날 올리겠다."

결기서린 그녀의 말에서 나는 직감적으로 이것이 최후의 통첩임을 알았다. 만약 이마저 거부했다가는 내 일신은 물론 우리 가문마저 풍비박산 날 것이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좋다! 일단은 수락하여 시간을 벌고, 그 안에 무슨 수를 내자!'

마음이 결정되자 나는 우물쭈물 하지 않았다. 바로 답을 하였다.

"신을 너무 어여삐 여기시오니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사옵니다. 대비마마!"

이제 할 말이 없으니 너희들 마음대로 하라는 말에 대비의 표정이 급격히 펴지며 말했다.

"고집을 꺾으니 얼마나 예쁘냐. 약혼식은 일 순(一 旬) 후에 하겠다. 부마도 준비를 하도록 해라!"

"황공하옵니다. 대비마마!"

이렇게 해서 사건은 일단락되고 중국 놈들이 한 번 하고 나면 열흘 후에 한다는 목욕에서 유래되었다는 일 순(一 旬) 즉 열흘 후에 약혼식만 남게 되었다.

열흘 후.

창덕궁 통명전(昌慶宮 通明殿).

대비가 거처하는 이곳에서 약혼식은 거행하게 되었다.

내 뜻에 따라 조촐하게 거행되게 되어, 우리 측에서는 나와 어머니만 참석하셨다. 그리고 궁에서는 대비 문정왕후, 주상과 중전 심 씨, 그리고 당금의 실세이자 문정왕후의 동생인 윤원형이 참석하였다. 당연히 약혼 당사자인 인순공주도 참석하였다. 또 특별손님으로 유일하게 초대된 사람이 있으니, 공주를 병마에서 구해 낸 허준이었다.

전례에 따라 진행된 식이 끝나고 피로연이 열리게 되었다. 나는 비로소 공주를 똑바로 보게 되었다. 지금까지 병 치례를 해온 사람답지 않게 풍만한 살집에 후덕한 상이었다. 척 보기에도 열이 많고 혈압이 높은 상이었다.

나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공주가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이를 본 문정왕후가 한마디 했다.

"이제야 제대로 된 그림을 보는 것 같고 만!"

"하하하.........!"

"호호호.........!"

별로 우습지도 않은 말인데도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인지 모두 과장되게 웃었다. 나만 뚱한 그 표정 그대로였다.

"어찌 우리 부마는 오늘 웃는 것을 못 보겠누?"

"네? 아.........! 아침 먹은 게 잘못됐는지 속이 거북해서........!"

"하하하.........!"

"호호호........!"

내 말에도 모두 과장되게 웃었다. 안 웃는 사람은 어머니와 나뿐이었다. 공주도 뭐가 좋은지 입을 가리고 호호거리고, 허준도 가끔 미소를 짓곤 했다.

"주상도 한 말씀 하시구랴."

이건 사회자도 아니고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는 문정왕후였다.

"험 험, 오늘 마침내 누이가 병상을 떨쳐 일어나 약혼식까지 치르게 되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과인은 오늘이 있기까지 고생을 많이 한 어의 허준에게 비단 10필을 내려 그 공을 치하하고자 합니다. 또 부마에게는 어마마마의 명에 따라 종삼품에 봉하고, 금일부로 동부승지에 봉합니다."

"황공하옵니다. 전하!"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 굽혀 감사를 표했다. 허준 또한 나를 따라 주상께 사은했다. 명종의 포상에 모두 즐거워하는데 이번에도 문정왕후가 나서서 사돈인 어머니에게 한마디 했다.

"사부인께서도 한 말씀 하시구랴."

어머니가 조용히 말씀하셨다.

"예쁜 천금을 주셔서 너무나 황송하옵니다. 함께 받들며 화목한 가정을 이루겠사옵니다. 감읍하옵니다. 대비마마!"

'남 속도 모르고 감읍은........'

"부마가 누굴 닮아 인물이 훤한가 했더니 사부인을 닮아서 그런 모양이구랴."

문정왕후의 말에 모두 고개를 주억거리나 나는 이 피로연이 얼른 끝나기만 바랐다.

이때 문정황후가 윤원형에게 말했다.

"동생이 이 자리에서 빠질 수 없지 한 말씀 하시게."

"누님이나 저나 저 아이에게 딸을 맡겼으니, 앞으로 우리가 잘 보여야 할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대비마마!"

"말인즉슨 옳다마는 홀대했다가는 내 가만히 안 있을 테다."

'몇 백 년 산 다더냐?'

나의 속내였다. 이를 모르는 나머지 사람들은 별로 우습지도 않은 문정왕후의 말에 괜스레 크게 웃었다.

"하하하........!"

"호호호........!"

"중전도 한 말씀 하셔야지요?"

"대비마마께서 저렇게 훌륭한 부마를 두시게 된 것을 경하 드리옵니다!"

"중전의 말씀 고맙소."

"망극하옵니다. 대비마마!"

중전이 급히 고개를 숙이는 가운데 곧 술잔에 술이 따라지고 이제 자리는 완전히 술판으로 변했다. 그래봐야 제대로 마실 수 있는 사람은 나와 주상뿐이고 나머지는 조금씩 입에만 대는 정도였다.

안에서는 점점 술자리가 무르익어 가는데 밖에서는 싸락눈이 사르락 사르락 내리고 있었다. 싸락눈이 그렇듯 통명전 마당과 정원수를 천천히 희게 덮어갔다. 그나마 이따금 심술궂은 바람이 건듯 불어, 마당의 흰 화강암 판석을 드러나게 하였다.

겨울도 머지않았다. 곧 봄이 오리라.

* * *

나는 다음날부터 동부승지(同副承旨)로써 승정원으로 출근을 했다. 승정원의 임무는 오늘날의 청와대 비서실과 흡사했으나 더욱 광범위 했다. 그 임무의 일부를 말하면 아래와 같았다.

승정원의 임무는 왕명출납, 시종, 정부기능, 외방출사기능이었다. 왕명출납은 가장 중요한 기능으로 국왕으로부터 하달되는 모든 명령과 정교(政敎)는 반드시 승정원이 살펴 국왕에게 다시 허락을 받은 뒤에 하달했다. 의정부 대신도 승정원을 경유하여 왕을 면대해야 했다.

왕에게 올리는 모든 부주(敷奏)와 복역(復逆)의 일도 위와 같은 과정을 거쳐 왕에게 보고, 전달되었다. 모든 상소도 승정원을 경유했다. 또 승지는 6방(房)으로 나누어 6조의 업무를 분장했는데, 이와 관련하여 국왕의 자문에 응하여 국정전반에 대해 의견을 개진했다.

여기서 부주(敷奏)는 윗사람에게 아뢰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복역(復逆)은 임금의 잘못된 하교가 있으면 승정원에서 도로 올리어 바로 잡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또 동부승지는 승지 중에서 제일 서열이 낮았다. 승지로 부임하는 사람은 중간에 끼어들 수 없고, 이렇게 제일 낮은 서열에서 출발하여 윗사람이 승차하면, 차례로 승진을 하는 것이 관례였다.

6방(房)으로 나누어 6조의 업무를 분장한다고 했는데, 나는 공조(工曹) 담당이었다. 아무튼 내가 출근한지 며칠 지나지 않아 명종은 나를 불러 면담을 했다. 아니 자문을 구했다.

"요즘 과인을 조석으로 괴롭히는 것이 있소."

"........."

나는 조용히 경청만 하고 있었다.

"아직 임꺽정이라는 괴수가 잡히지 않아 황해도 일대는 물론 조선 팔도의 민심이 흉흉하오. 아니래도 가뭄으로 흉흉한 민심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오. 해서 말이오만 동부승지를 맡은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이참에 민정시찰을 한 번 하고 오오."

여기서 말을 끊고 나의 표정을 한 번 살핀 명종 환의 말이 이어졌다.

"민정을 시찰하는 길에 아예 암행어사 역할도 하오. 해서 탐관오리들을 징치하고 특히 이번에는 황해도로 가서, 임꺽정과 같은 괴수를 왜 토포하지 못하는지, 그 원인도 한 번 밝혀보오."

"명심 봉행하겠나이다. 전하!"

"모든 준비를 오늘 갖추어 놓을 테니, 내일 바로 떠나는 것으로 하오."

"명 받들겠습니다. 주상전하!"

"그럼, 수고 좀 해 주오."

"네, 전하!"

대답은 냉큼 냉큼 잘 하고 어전을 물러나왔지만 내 속 생각은 이러했다.

'아이고, 아직도 늦추위가 지속되고 있는데, 이 무슨 팔자야!'

온갖 상념이 스치는 가운데 나는 내 자리로 돌아와, 아직 추위가 물러나지 않은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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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고맙습니다!

^^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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