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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인생-35화 (35/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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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송 대방이 많은 홍삼과 건삼을 우리에게 넘겨주기로 했으니까, 이를 가지고 1차로 왜에 가서 조총, 대포, 염초, 유황, 은, 쌀, 구리 순으로 매입해오도록 해. 조총은 쉽게 구할 수 있겠지만 대포는 어려울 수도 있어. 하면 양이선(洋夷船)에 미리 예약을 해놓도록 해. 다음에 비싼 값에 사간다고.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잘 알겠습니다. 가주님! 그런데 조총과 대포가 뭡니까?"

"조총은 휴대용 총으로 화승에 불을 붙여 적을 살상하는 무기야. 작은 탄환이지만 사람도 맞으면 죽어. 그리고 대포는 문자 그대로 구경이 엄청 큰 화포라고 생각하면 돼. 알겠지?"

"네!"

"준비가 되는 대로 출항하도록 해. 지금이 10월 말이니 큰 비바람(颱風)은 없을 테니까. 한 가지 원양 항해에서 명심할 것은 가급적 6, 7, 8월은 원행을 피하도록 해. 태풍 철이니까 특히 조심하란 말이야."

"명심하겠습니다. 가주님!"

"됐고. 할 말 있나?"

"요새 유민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어 걱정입니다."

"흐흠........!"

생각에 잠겼던 내가 물었다.

"최고로 큰 배 건조는 시작되고 있나?"

"아직........."

"왜?"

"목재가 부족합니다. 지난번 중형 배 두 척을 건조하는 바람에 고군산군도에는 쓸 만한 나무들이 거의 베어지고 없습니다."

"흐흠.......! 그렇다 라?"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내가 결단을 내리고 말했다.

"좋아! 이렇게 하도록 해."

이렇게 운을 뗀 나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목포 앞바다에는 수많은 큰 섬들이 널려있어. 아무리 해금정책을 써도 뱃사람들은 있게 마련이고, 그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잘 알 테지만 그곳에는, 장산도, 기좌도, 팔금도, 자은도, 비금도, 하의도 등 큰 섬만 꼽아도 수없이 많아."

"이 섬을 차례대로 개발하되 명심할 것은 가장 뒤쪽에 있는 섬부터 차례로 개발하란 말이야. 그래야 아무래도 남의 눈에 덜 띌 것 아니겠어? 유민이 많으면 큰 배는 물론 중선 건조도 같이 시작해. 물론 목재 문제 때문에 한 섬에서 하면 안 되겠지. 하고 염전도 동시에 일궈. 지난번 신시도 마냥.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가주님!"

흥정이 공손히 대답하는데 흥선은 또 놀란 얼굴을 하고 말했다.

"외삼촌을 목포에 자리잡게 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군요."

"물론이지. 그곳에 섬으로 공급되는 생필품 및 여타 물류기지가 되는 셈이지."

"역시........"

흥정 또한 순순하게 감탄을 하자 내가 덧붙였다.

"바둑을 두다보면 알겠지만 한 수 앞만 보고 두다가는 판판히 깨지게 되어있어. 최소한 서너 수 앞은 보고 두어야지 그나마 소성이라도 할 수 있는 거야. 그러니까 형들도 너무 눈앞의 이익에만 연연하지 말고, 먼 장래를 보고 포석하는 버릇을 들이도록 해. 알겠지?"

"네, 가주님!"

"그런데 염초 문제 말입니다."

"뭐가 궁금한데?"

"조선에서도 생산되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이지. 그러나 그 투입되는 노임에 비해 생산성이 너무 저조해. 그래서 양도 얼마 안 되고."

이후 나는 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장시간에 걸쳐 염초 제법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그 이야기를 정리하면 이랬다.

조총의 위력을 좌우하는 것은 곧 화약이었다. 양질의 화약이 있어야만 충분한 살상력과 사거리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해서 화약 제조는 조선의 국가적인 사업이었다.

당시에는 화약의 원료가 되는 염초(焰硝)를 얻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지금은 초석(硝石·질산칼륨)이라 불리는 물질이었다. 당시에는 흙에서 염초를 얻었다. 이를 취토법(取土法)이라고 불렀다.

흙에도 맛이 있다. 여러 종류의 흙 가운데 화약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맹맹한 일반 흙이 아닌, 일정한 '숙성 과정'을 거친 짠 흙(일명 함토)과 매운 흙(일명 엄토)이었다. 문제는 이런 흙이 아무 곳에나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애매한 곳에 많았다는 점이다. 주로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의 마루 아래나 화장실 근처의 흙이 최고의 화약재료로 각광을 받았다.

화약 원료 구하기가 얼마나 중요했는가 하면, 당시 염초의 재료인 흙을 수집하는 취토군(取土軍)이란 병과가 따로 있었을 정도였다. 취토군은 흙을 파는 도구와 수레를 갖고 이 집 저 집을 가리지 않고 들어가 할당량을 채웠다. 그러다 보니 집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취토군을 꺼렸다.

아무런 약속 없이 문만 두드리고 들어와 처마 밑과 화장실 주변의 흙을 몽땅 퍼가니 굳게 다져졌던 마당이 비가 오면 진흙탕으로 변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취토군이 돌아다닐 즈음에 미리 마당 가득 모래를 깔아 버리거나, 권문세가의 경우 사전 답사를 나온 취토군 병사를 잡아 흠씬 두들겨 패는 일도 있었다.

이런 일이 빈발하자 국왕까지 나섰다. 화약을 만드는 일은 국가방위와 직결되는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화약 제조의 진흥을 위해 국왕의 명령으로 '특별 취토령'이 선포되기도 했다. 훈련도감을 중심으로 도성 안의 각 지역을 무작위로 나눠 집주인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무조건 흙을 파오라는 명령이 하달됐다. 이를 방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군령으로 엄히 다스리겠다는 내용이 덧붙여졌다.

당시에는 집의 크기에 비례해서 파낼 흙 또는 염초의 양을 결정하고 취토군들이 작업을 했다. 그런데 비가 올 때도 있고, 흙의 성질이 안 좋은 곳도 많아 할당량을 채우기가 늘 어려웠다. 그래서 비상시에는 국왕이 살고 있는 궁궐의 처마 밑이나 화장실 근처 흙도 죄다 퍼내 화약재료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렇게 구한 흙은 곱게 태운 재를 섞어 물에 녹이는 '사수'라는 과정을 거쳤다. 이를 가마솥에 넣고 끓였다가 채에 걸러 고운 침전물을 모은 후 끈적끈적한 아교로 뭉친다.

그런데 흙의 양과 비교해 보면 사수 과정을 거쳐 나온 초석은 일반인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적었다. 지금으로 치면 덤프트럭 한 대의 흙을 정제해 밥공기 하나 정도의 초석을 얻은 정도였다. 그러니 수백 근의 화약을 만들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산더미 같은 흙이 있어야만 했다.

이렇게 어렵게 모아진 초석을 '정초'라고 했는데, 정초에 유황과 재를 적당히 섞고 쌀뜨물을 부어 절구에 넣고 부드러워질 때까지 오랜 시간 찧는 '도침'이란 과정을 거쳐야 했다. 문제는 힘을 조금만 잘못 가하면 폭발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나무로 만든 절구에 조금씩 넣고 작업을 해야만 했다.

이런 작업을 거쳐 절구 속의 물질이 밀가루 반죽처럼 부드러워지면 그것이 바로 화약이 됐다. 이처럼 조선시대에는 조총 한 발을 발사하기 위해 들어가는 적은 양의 화약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정성이 들어갔다.

화약을 모두 만들고 나서는 사각형으로 낱개 포장을 해서 반드시 만든 장인의 이름을 쓰게 했다. 만든 지 5년 안쪽의 화약이 맹렬하게 터지지 않을 경우 해당 장인을 붙잡아 곤장세례를 하고 다시 만들도록 했다.

염초에 대해 한참 설명을 하고 나니 어느덧 밤이 깊어져 있었다.

* * *

내가 사적인 일로 바쁜 사이 조정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드디어 윤원형이 영의정이 되어 권력의 정점을 찍고, 문정왕후의 지시대로 승 보우가 병조판서가 되었다. 또 이희검 병판은 예조판서로 전임되었다.

이런 중에 드디어 산청에 갔던 삼돌이가 돌아왔다. 그의 곁에는 내 또래로 보이는 청년이 동행해왔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지만 함부로 굴지는 않았다.

"다녀왔습니다. 가주님!"

"그래, 수고했다. 스승님의 무고하시고?"

"잘 지내고 계신다고 걱정 말라 전하라 하셨습니다요."

"다른 당부의 말씀은 없었고?"

"매사를 신중하게 처리하라 하셨습니다."

"알았다. 이 청년이 내가 말한 그 청년인가?"

"그렇습니다. 가주님!"

"구암(龜巖) 허준(許浚)입니다. 선비님!"

나와 삼돌이와의 이야기가 다 끝나가는 듯하자, 스스로 나서서 자신을 소개하는 허준이었다.

"잘 왔소. 오는 동안 고생은 하지 않았소?"

무관 양반가의 서얼 출신으로 일찍이 의도(醫道)의 길을 걸었던 청년 허준은, 한양까지 자신을 데리고 온 의도를 몰라 조바심치는 가운데, 그래도 상대가 따뜻이 맞자 다소 안도가 되는 모양이었다.

"네, 덕분에 큰 고생 없이 잘 올 수 있었습니다. 선비님!"

"내 이름은 윤 흥이고, 현 병조정랑 직에 있소."

"아! 네, 나리!"

황급히 다시 고개를 조아리는 허준이었다.

"자,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사랑채로 들어가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눕시다. 아직 식전이지요?"

"네, 그렇습니다."

"삼돌아, 여기 저녁 좀 들여보내고 너는 가서 편히 쉬어라."

"네 가주님!"

삼돌이가 등을 돌리자, 나는 허준을 데리고 내가 머무는 사랑채로 향했다.

자리에 좌정하자 내가 궁금한 것을 물었다.

"의술은 많이 익혔소?"

"아직 이제 초보단계입니다."

"겸양이 지나치군."

"나리께서 저를 한양으로 부르신 까닭을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음, 그것은 말이오."

이렇게 운을 떼고,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상대가 잘 알아들을까 고민하는 나였다.

"내 가까운 누이가 있는데, 오랜 지병을 앓아 웬만한 의자들은 모두 손을 놓은 지경이오. 해서 산청에서는 의도에 좀 밝은 것으로 소문이 난 그대를 예까지 초빙한 것이오."

"제 의술은 보잘 것 없습니다. 나리의 기대를 무산시키지 않을까 근심이 큽니다."

"모두 손 놓은 병이니 못 고쳐도 할 수 없지만, 나는 가능한 한 허 의원이 고쳐주었으면 더 한 바람이 없겠소이다."

내가 왜 이렇게 거짓말을 하며 그를 안심시키려 하느냐 하면, 그는 아직 나보다도 어린 17세 청년이라, 그가 아무리 역사적으로 빼어난 의원이라도, 너무 이른 시기라 큰 기대를 걸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알기로 그는 20대 초반에 산청에서 서울로 초치되어 양반가의 고관을 치료한 덕분에, 장안에 화제를 몰고 오는 등 유명해졌기 때문에 더 더욱 시기상조라 보았던 것이다. 아무튼 나의 말에 허준이 답을 했다.

"최선을 다하겠사오나 너무 기대는 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소. 오늘은 배불리 먹고 푹 쉬시오."

"네, 나리!"

나는 그와 함께 저녁을 먹고, 석식이 끝나자 그를 바깥사랑채로 안내해 편히 쉬게 하고, 이어 오건 사형을 찾아가 내일은 명종의 알현을 요청했다.

이튿날 나는 허준을 말쑥하게 갈아입히고 우선 나와 함께 병조로 출근을 했다. 그러자 허준의 눈이 놀라 동그래졌다. 가까운 누이라더니 권부의 아문으로 데리고 왔으니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처음부터 진실을 말해줄 것을 하는 후회가 들었다. 그렇지만 이제라도 늦지는 않았다. 그래서 내가 차근차근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다. 이 나라의 셋째 공주가 있는데 어려서부터 몸이 약하더니, 무슨 병인지 오랜 투병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과, 유명한 어의들도 못 고치고 있다하니, 허준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러나 이제 와서 허준 입장으로서는 옴치고 뛸 수도 없는 입장이라, 더욱 난감해 하는 것 같았다. 둘이 그러고 있는데 오건 사형이 직접 나를 데리러 왔다. 물론 나의 알현 신청이 받아들여져 명종에게 가자고 온 것이었다.

셋은 곧 왕의 집무실인 사정전으로 향했다. 우리는 곧 승지의 신분 확인을 받고 상선 내관의 안내로 명종 앞에 부복하게 되었다.

"신 병조정랑 윤 흥 전하께 문후 드리옵나이다."

"고개를 들라! 헌데 옆의 인물은 누구 인고?"

"소신이 청한 의원입니다. 외람되지만 나름 유명한 의야라, 인순공주님의 지병에 도움이 될까하여 청하여 왔습니다."

"경의 뜻은 갸륵하나 척 보니 아직 약관도 안 되어 보이는데, 뭇 어의들이 다스리지 못한 병을 치료할 수 있겠소?"

"자고로 병은 소문을 내야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밑져야 본전이니 제 성의를 보아서라도 맡기어 보시지요."

"흐흠.........! 일단 알겠다. 그대는 어디 사는 누구인고?"

허준이 왕의 물음에 황망하여 황급히 엎어져 고개를 조아리며 고했다.

"소신 산청 고을에 사는 허 준이라 하옵니다."

"멀리서도 왔군. 그런 산골에서 청할 정도면 이름은 꽤나 나있겠는걸."

혼자 중얼거리듯 말한 명종이 고개를 돌려 나에게 말했다.

"이는 과인 단독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고, 대비께 고하여 허락을 득할 일이니 잠시 기다리시게."

"네, 전하!"

명종은 곧 대전 상궁을 불러 문정왕후에게 사실을 고하도록 했다. 그리고 명종과 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채 이각이 되지 않아 문정왕후가 치맛바람을 날리며 들이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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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고맙고 감사합니다!

^^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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