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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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어려서부터 잔병치례가 잦더니 큰 병까지 얻어 정수사로 요양을 보냈는데, 아직도 쾌차치 못하고 그 모양으로 있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대비께서는 지극정성이시지."
"정말 치료가 불가능한 병입니까?"
"어의들이 다들 그렇다고 아뢰니 그렇게 알 밖에."
어의들에게 맺힌 것이 많은지 심드렁하게 대답하는 환이었다.
"무슨 병명이시 길래........?"
내가 조심스럽게 묻는데, 환이 웃으며 농담을 했다.
"왜 관심 있느냐? 나이가 35세라 그렇지, 아직 청백지신이니라. 나의 셋째 누님이기도 하고."
"설마요?"
임금 앞이라 함부로 웃지도 못 하고, 대답한다는 게, 나도 모르게 현대병이 또 도졌다.
'이놈 봐라?'
하는 표정의 환이 웃음을 거두고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이만 물러가라!"
"네, 주상전하!"
"첩지는 경의 집으로 보내면 되나?"
"네, 전하!"
"알겠다. 다음에 부를 때까지 몸조심 하거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또 고두를 하던 나는 다친 이마를 또 찧어 그야말로 울상을 지었다.
"하하하.........!"
명종 환의 웃음소리 드높은 가운데, 나는 조심스럽게 대전을 빠져나왔다.
최악의 경우 윤원형에게 부탁해서라도 사형 오건의 관직 진출을 도모하려 했던 나의 계획은 주상과의 이야기가 잘 되어 한 시름 덜 수 있었다.
그날 퇴근길이었다.
이상하게 인순공주(仁順公主)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무슨 지병이 있길래 35살이 되도록 시집도 못가고 병치레만 하고 있을까?
'외롭고 고통스러운 길을 가고 있구나!'
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녀에 대한 상념이 자꾸 떠오르자 나는 머리를 흔들어 상념을 지우고자 애썼다.
어떻게 왔는지 모르게 얼굴 한 번 그녀에 대한 상념에 젖어 어느덧 집에 도착해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오건 선생을 찾았다. 사형 오건은 마침 내가 지정해준 자신의 방에 있었다. 하인을 시켜 내 방으로 청한 나는 미리 준비한 주안상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지난번 마냥 부자가 야박하다는 소리는 듣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설령 농담일지라도.
"오늘 어디 다녀오신 데라도 있으십니까?"
"마포나루에 있는 여각과 상점들을 둘러보았는데 보통이 아니더군. 손님이 얼마나 많은지 미처 점원들이 감당을 못하고 있더군. 하고 신기한 물건도 많더군. 탈곡기라든가 작두우물(작두펌프를 내가 새롭게 작명한 것이다) 등은 실생활에 아주 유용하겠어."
그의 말에 퍼뜩 내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작두펌프를 궁궐에 설치해주고, 탈곡기도 후원의 전답에서 나온 곡식을 수확할 때 공짜로 해주고 광고를 좀 해야겠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나?"
'들켰다. 예리하기는........'
나는 얼른 둘러대었다.
"낮에 주상전화에 나눈 대화가 생각나서요."
"벌써 주상 전에 불려갔던가?"
"헤헤헤........! 그렇게 되었습니다."
멋쩍게 웃은 내가 대충 얼버무렸다. 그리고 말했다.
"그때 사형의 이야기를 꺼내 주상 전하의 재가를 받았습니다."
"무슨 소리야?"
"곧 첩지가 당도할 것입니다."
"첩지?"
"승정원의 주서로 발령이 날겁니다."
"주서라면 '승정원일기'를 작성하고, 서적과 문서관리 타사와의 연락 등 원내 행정사무를 담당하는 직책 아닌가?"
"칠품이죠. 저와 주상 간에 연락할 일이 있으면 사형을 시킬 겁니다. 비밀을 엄수해 주십시오."
"알겠네."
대답과 동시에 생각에 잠겼던 오건이 말했다.
"어차피 이제는 내려가기 틀렸으니 스승님께 서찰이라도 한 통 띄워야겠네. 아! 스승님의 거처를 산청으로 옮기셨네."
"아, 그렇습니까?"
'산청?'
반사적으로 반문을 하고 산청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자 이상 하게 동의보감의 저자인 허준(許浚)이 떠올랐다.
간헐적으로 보던 대장금의 장면과 함께, 스승이 유시태인지 어쩐지 정확치는 않지만, 유 씨는 맞고 그 밑에서 수학하던 허준이 떠올랐다. 또 스승이 임종 시에 자신의 시체를 제자에게 해부하게끔 의술의 도구로 내주던 명장면이 떠올랐다.
또한 연속해서 생김도 모르는 35년을 병마의 고통 속에 보내는 인순공주가 떠올랐다. 나는 곧 결심했다. 밑져야 본전이니 한 번 시도해 보기로.
그런데 왜 여기서 이런 장면이 떠올랐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전생에서 내가 충청도 사람이라 경상도 쪽으로는 거의 간 일이 없어, '산청'이라는 고을이 신선하게 다가왔기 때문에 오래 기억에 남아있었던 것 같다.
"문면을 작성하거든 제게 주십시오. 제가 하인 놈들을 시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알겠네."
나는 사형의 대답을 들으며 생각난 갈에 지시를 해야겠다고 잠시 방을 나왔다.
이런 데는 우직한 삼돌이 놈이 제격이었다. 나는 삼돌이를 불러 산청에 가거든 유 의원 댁에 공부하고 있는 허준을 꼭 찾아 데려오도록 했다. 그리고 내 홍패를 주어 그의 말에 권위가 실리도록 하는 한편, 금전도 준비하여 스승님과 유 의원 댁에 약간의 금전적 손실을 보전해주도록 했다.
최악의 경우 주상의 뜻이라고 살짝 언질을 주도록 했으니, 임무에 실패할 리는 없어 보였다. 다시 방으로 돌아온 나는 본격적으로 사형 오건과 대작을 해나갔다.
다음 날 아침.
오건 사형이 밤새 작성한 서찰과 함께 내가 챙겨준 돈 냥을 가지고 삼돌이는 산청으로 떠났다. 나도 곧 출근 준비를 서둘러 병조 관아로 향했다.
오늘은 고경명의 안내로 삼사의 하나인 무선사로 향했다.
실무 책임자인 정랑 1명과 좌랑 1명의 영접을 받아 그들에게서 업무 보고를 받았다.
정랑의 보고에 의하면 무선사는 무관, 군사, 잡직의 임명, 임명사령장인 고신(告身)의 발급, 매년 정월에 지급하는 봉급증서인 녹패(祿牌)의 발급, 공무상의 과실을 기록하는 부과(附過), 군인에게 휴가를 주는 급가(給暇) 및 무과(武科)에 관한 사무를 맡는다고 했다.
그들에게 경각심을 주지하는 한편 그들의 업무를 대충 훑어보는 것으로 이날의 업무를 마쳤다. 끝나고 집에 돌아오니 사형 오건이 명종 환의 첩지를 받은 상태였다. 예상대로 승정원의 주서로 발령이 나 있었다.
축하를 해주고 다음날부터 오건 사형은 승정원으로 출근을 하고, 나는 병조로 출근을 해 승여사에 대한 업무보고를 받았다.
승여사는 노부(鹵簿), 여련(輿輦), 구목(廐牧), 정역(程驛), 보충대(補充隊), 조례(皁隷), 나장(羅將), 반당(伴倘) 등에 관한 일을 한다 했다. 이는 왕의 행차에 관한 의장(儀仗), 교통 통신이나 특수한 임무를 맡았던 군대 등에 관한 업무를 말함이었다.
오늘은 한 달에 세 번 있는 비번이었다. 즉 정식 휴가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마포나루로 나가 흥선을 만났다. 그리고 그에게 형 흥정을 한양으로 한 번 올라오도록 지시하고, 송상의 대방과도 만남을 주선하도록 했다. 그리고 저녁나절에는 윤 연과 모처럼만에 회포를 풀고 정동으로 돌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나가 퇴청을 하는데 관아 밖에 하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금와상단 대방께서 송 대방이 왔다고 여각으로 와주셨으면 하는 전갈입니다."
"알았다."
나는 그길로 말을 타고 빠르게 여각으로 향했다.
송상(松商)의 우두머리 송 일속(宋 一粟)은 여각의 안채에 안내되어 있었다. 큰기침을 하고 들어선 나는 아랫목에 좌정하고 있는 송 일속을 정시했다. 사십 중반의 후덕한 풍채에 수염마저 풍성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송 일속입니다."
"윤 흥이네. 뵙게 되어 반갑네."
둘은 초면이지만 뭔가 통하는 느낌이 왔다.
"흉년에 많은 쌀과 염장을 많이 넘겨주셔서 덕분에 많은 이문을 남겼습니다."
"하하하........! 다행이군. 큰 저수지 덕분에 가뭄의 피해를 덜 입어 여분의 쌀이 많았음이네."
화답한 내가 옆에 앉은 흥선을 보고 물었다.
"주안상은 아직 인가?"
"곧 대령할 겁니다. 가주님!"
내가 다시 송 대방을 보고 말했다.
"나도 감사할 일이 하나 있네. 고려 삼 종자와 재배법까지 상세히 일어주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들었네."
"서로 도우며 살아야지요."
이때 비녀 둘이 주안상을 들여왔다. 혼자 들고 들어 올 수 없을 정도라 그런지 안주가 풍성했다. 나는 곧 송 일속에게 한 잔을 따라 주고 나도 한 잔을 받았다. 또 송 대방이 흥선에게도 한 잔을 따라주었다.
"드시지요."
"역시 조선의 최고 거부라 그런지 상차림이 훌륭 하외다."
"차린 것은 없지만........ 이 따위 겸양은 안 하겠네."
"하하하.........!"
나의 농담에 모두 화락(和樂)하는 가운데, 술잔을 가볍게 비운 송 일속이 진지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보시자고 한 이유가 있을 것 같으신데, 밤이 더 깊어지기 전에 들려주시죠."
"다름이 아니라 홍삼을 좀 내게 넘겨주시게."
"네?"
"사 무역을 금하고 있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음이야. 하지만 조선의 전 백성들이 굶어서 노랗게 뜨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해서 나는 이를 가지고 외국에 내다 팔고 그곳에서 쌀을 들여올 생각이야."
"조선 팔도에서는 쌀을 구하기가 어려워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게지요?"
"왜나 명에서 구하고자 함이야."
"그럼, 홍삼을 교역품 삼아.......?"
"그렀네. 나랏님도 이해를 하실 거야."
나의 말에 비로소 좀 안심이 되는지 송 대방의 굳었던 안색이 서서히 풀리며 말했다.
"얼마나.......?"
"다다익선이지."
"험, 험. 우리도 비축량이 얼마 없어서......."
"있는 대로 다 주고, 건삼이라도 있는 대로 넘겨주시게. 하고 가격을 흐리는 일도 절대 없을 것이니 안심하시게."
"알겠습니다. 가서 확인해 보고 최대한 물량을 뽑아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고 앞으로 금산에서도 인삼이 생산이 된다면 증포 기술도 좀 알려주면 고맙겠네. 이 역시 절대적으로 가격을 흐리는 일은 없을 것이니 안심하고. 기본적으로 수급조절을 할 것이고 공급 방향이 기존과는 다를 것이니 안심하셔도 좋네."
나의 말에 생각이 많아지는 송 대방 송 일속이었다. 일속(一粟)이라는 이름이, 이름의 의미대로 좁쌀 하나부터 착실하게 모아야 거부(巨富)가 되라는, 부친의 치부관(致富觀)이 반영된 이름이라 들었다.
* * *
그날 송 대방에게서 홍삼과 건삼에 대한 많은 물량을 확보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끝내 증포 기술을 확약 받지는 못했다. 그를 보내고 열흘 후에 만경에서 흥정이 올라왔다. 역시 여각의 안채에서 흥선을 포함한 셋은 대좌를 했다.
술이 몇 순배 돌자 나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요즘 건조된 선박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지?"
"주로 쌀을 실어 송방이나 여타 경강상인들에게 공급하고, 소금을 실어 나르고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항해기술자들을 많이 확보해 왜와 명나라 또 만주와의 교역에 투입하도록 해. 내 생각에는 말이야, 왜놈들에게는 홍삼과 도자기가 먹힐 것이고, 명나라에는 우리나라 북방과 만주에서 많이 나오는 말과 호피를 비롯한 모피류 및 진주가 먹일 것이야. 만주에는 우리나라의 베와 면포 그리고 풍년에는 쌀을 팔도록 해. 이것이 소위 말하는 삼각무역이라는 거야."
"예를 들어 조선의 베와 면포를 가지고 가 여진 놈들에게 비싸게 팔고, 현지 생산품인 모피류와 말과 진주를 헐값에 사서, 이를 또 명나라에는 비싸게 파는 것이지. 명에서는 비단과 도자기, 약재를 사서 왜놈들에게 비싸게 팔고, 왜에서는 우리가 부족한 유황과 은, 구리, 염초 등을 수입해서 나라에 넘기는 거야. 이는 주상께 내 잘 말해 놓을 테니까. 아니 조선에 못 팔면 이를 명나라에도 팔아도 돼. 이 또한 명나라에도 먹히는 물건이니까."
"하........!"
또 두 놈들이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파리 들어간다!"
내 말에 얼른 입을 닫는 두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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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
늘 행복한 날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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