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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인생-31화 (3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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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내가 병조 관아에 찾아드니 병조판서(兵曹判書)를 비롯한 당상관(堂上官)은 물론 정육품 병조좌랑(兵曹佐郞)에 이르기까지 모두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나를 반긴 것이 아니라 모두 고개 돌려 외면했다.

'허허, 참 내.........'

나는 내심 씁쓰레한 고소를 머금지 않을 수 없었다.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명함 돌리기의 일종이라 할 수 있는 회자(回刺)까지 행했는데 이 모양이었다.

아무튼 이들은 소위 면신례(免新禮)라는 신참 길들이기 즉 신고식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얘기를 하지 않아서 그렇지 이 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지난번 봉사 직을 맡았을 때도 행한 일이었지만 여전히 이해되지 않고 익숙지 않은 것이 이들의 신고식 문화였다.

나는 이날 하루 종일 끝내 겉돌아야 했다. 이들이 나를 외면하고 모든 업무에서 나를 배제했기 때문이었다. 할 수 없이 나는 병판 이하 병조좌랑에 이르기까지 이날 저녁 모두 유명한 기생집으로 초대할 수밖에 없었다.

이 자리에서 나는 당상관 이상은 부처님이 좌우에 여러 보살들을 거느리고 있듯 '좌우보처'라 해서 양쪽에 기생 하나씩을 안기고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접대를 행했다. 그러고도 부족해 집에 다시 한 번 초대를 해 '용두봉미'라 해서 진수성찬으로 접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 용두(龍頭)는 생선을 봉미(鳳尾)는 닭고기를 이르는 이들만의 은어였다. 그러고도 직위에 따라 수백 냥에서부터 수십 냥까지 돈까지 집어주어야 했다. 이것으로 내 신고식이 끝났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었다.

이제는 나의 하급자들에게도 이에 준하는 접대를 해야 했다. 이들에게 까지도 돈을 지급했는데 윗사람들 보다는 덜 준 게 사실이었다. 아무튼 이 일로 내 신고식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후에도 나는 사모를 벗어 연못에 들어가 물고기 잡는 흉내를 내는가 하면 부엌에 들어가 거미를 잡는다고 해서 시꺼먼 벽을 만지게 하고, 또 이 새까매진 손을 씻은 물을 마시게 해 나를 토하게도 만들었다.

이는 폭탄주 돌리기로 유명한 신임검사 환영회의 신고식이나 레지던트들의 신고식 때 링겔를 맞을 정도로 혹독한 술 문화 정도의 류가 아니었다. 이 폐단은 조선조가 망할 때까지 이어지는 악습으로 수차례 왕에게 건의 되어 존폐 논란이 있었으나 그때뿐이었다.

오죽하면 구도장원공으로 유명한 이이가 이 거친 신고식 문화 때문에 관리생활을 못할 정도라고 토로하고 왕에게까지 고했으나 다 별무신통이었다. 아무튼 나는 이렇게 혹독한 보름 동안의 적응기를 거쳐 이제 제대로 된 관리 생활의 길에 접어들었다.

오늘도 여일하게 출근한 나는 이희검(李布儉) 병조판서(兵曹判書: 正二品)는 물론 병조참판(兵曹參判: 從二品), 병조참의(兵曹參議: 正三品 堂上), 병조참지(兵曹參知: 正三品 堂上) 등 윗사람에게 차례로 인사를 드리고, 바로 내 아래인 병조좌랑(兵曹佐郞: 正六品)에게도 인사를 받았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신기한 것은 병조좌랑이 고경명(高敬命)이라는 사실이었다. 역사에서 전라도 담양에서 의병을 일으켰다가 순절(殉節)한 유명한 의병장인 그였다. 나보다도 12살이 많아 금년 30살이었다.

"오늘은 정식으로 업무를 보는 첫날이니 업무나 익히고 내일은 예하 삼사(三司)와 일군색(一軍色), 이군색(二軍色)을 둘러보도록 하죠."

"알겠소. 제봉(霽峰)!"

고경명이 비록 아랫사람이지만 나이가 많아 함부로 하기도 어려웠다. 호가 제봉(霽峰)인 것은 그의 소개로 처음 알았다. 첫날은 이렇게 대충 업무를 파악하고, 퇴근 후에는 또 술자리를 가졌다. 최연소 장원공이 병조에 입사해서 기분이 좋다고 병판 이희검 대감이 비로소 직접 술을 내신 자리였다.

이 자리에는 나와 당상관 이상 4인만 참석하게 되어 있었으나, 나의 추천으로 좌랑 고경명도 함께 참석했다.

"최연소 장원공이 다른 부서도 아닌 우리 부서로 와서 내 기분이 아주 좋네. 자, 한 잔 받게."

"감사합니다. 대감!"

나는 두 손으로 공손하게 그가 직접 따르는 술을 받았다. 그리고 급히 잔을 비우고 말했다.

"대감마님! 제 잔도 한 잔 받으시죠."

"암 받아야지."

기분 좋은 듯 껄껄 웃으며 기꺼이 손을 내밀어 내 잔을 받는 병판 이희검 대감이었다.

이렇게 나는 윗사람들이 차례로 내리는 술잔을 받고 그들에게도 술 한 잔씩을 따라 올렸다. 뿐만 아니라 고경명에게도 내가 직접 술을 따라주는 등, 자리가 무르익자 비로소 기생들이 줄줄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거나한 또 한 판의 술자리를 끝내고 나는 취기가 몽롱해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날 내가 잠자리에 들어 아내를 안아가니 아내는 술 냄새가 난다고 상을 찡그리면서도 잘만 안겨왔다. 딸아이는 유모가 데리고 자니 밤일에 전혀 지장이 없었다.

"오늘은 어땠어요?"

"오늘은 최연소 장원공이 병조로 왔다고 병판대감께서 크게 기뻐하시며, 퇴근 후 술까지 한 잔 사셔서 이렇게 늦은 게 아닌가."

"그거 자랑인거 아시죠?"

"암, 당연히 자랑이지."

"너무 으스대지 말고 겸손하게 처신하세요."

"그럼 한창 잘나갈 때 뻐겨야지 언제 뻐기남?"

"말은 그렇게 하시지만 소첩은 잘 하리라 믿어요. 그렇죠?"

"암, 내가 누구 신랑인데........"

나는 말을 끝내자마자 갑자기 달려들어 아내를 간지럼 태웠다.

"호호호.......! 여보, 여보!"

누가 바깥에서 들으면 색 쓰는 줄 알겠어서, 나는 이내 멈추고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 * *

다음 날.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나는 어제 좌랑 고경명과 이야기 나눈 대로 병조에 소속된 부서를 찾아갔다. 먼저 찾아간 곳은 삼사(三司)중 무비사(武備司)였다. 군적(軍籍) 작성 및 병기, 전함 등 군정(軍政) 일반에 관한 사무를 맡아보는 곳이었다.

사전에 통보가 되었는지 우리가 무비사에 들어서니 정랑 2명과 좌랑 2명이 입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정랑(正郞)님!"

그런데 듣는 어감이 이상했다. 그것도 사십대 중반의 사내새끼가 정랑(正郞)이라고 부르는데, 여인이 다정하게 부르는 정랑(情郞)이라는 말이 연상되어, 과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만나자마자 한 마디 했다.

"앞으로는 다른 말로 불러주시오. 정랑 말고도 부르는 호칭이 많지 않습니까? 낭청(郞廳)이니, 낭관(郞官)이니, 전랑(銓郞), 조랑(曹郞) 등등 부를 이름이 많은데, 하필 듣기 이상하게 정랑이 뭡니까?"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다른 호칭으로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굽신거리는 이 사람도 나중에 알고 보니 한태수라고 나랑 같은 정오품 정랑이었다. 하지만 내가 이들의 인사권을 쥐고 있으니, 더럽지만 굽신거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무튼 한태수는 우리를 별실로 안내했다. 간이 탁자를 사이에 두고 우리 둘과 저들 넷이 자리를 잡았다. 먼저 고경명이 나를 소개하니, 한태수가 저들도 자신들을 다시 한 번 내게 소개를 했다. 이어 한태수가 무비사의 업무내용을 보고 하기 시작했다.

"저희 무비사는 각 도의 군정(軍丁)을 뽑아서 군적을 만들고, 전국의 목장 상황과 우마의 수효를 조사하여 마적(馬籍)을 만드는 일, 병기, 전함의 관리, 군사의 점호와 사열, 무예의 훈련, 주야로 궁궐을 지키는 숙위와 순찰, 성보(城堡), 진수(鎭戍), 방어와 정토(征討), 군관과 군인의 파견, 군역 담당자의 교대와 군역에 징발된 자에게 보인을 정해주는 급보(給保), 휴가를 주는 급가(給暇), 노부모의 부양을 위해 군역을 면제해주는 시정(侍丁), 부모의 연령과 가족 형편에 따라 그 아들의 군역을 면제해주는 복호(復戶), 화포(火砲)와 봉수(熢燧), 개화(改火)와 금화(禁火), 군사 발병권의 표지인 부신(符信), 궁궐 내와 도성 안을 야간 순찰하는 경첨(更籤) 등에 관한 사무를 맡아 보는 등 일이 아주 많은 곳입니다."

한태수의 말마따나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듣는 내가 지루해서 하품이 나오는 것을 참느라고 혼났다. 그렇다고 중간에 자르자니 저들은 물론 무비사를 무시하는 것 같아, 그것도 곤란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 내가 점잖게 질문을 던졌다.

"제가 마포나루의 순경(巡更)의 장(將)이었다는 것은 아시죠?"

"네, 들어 알고 있습니다."

한태수의 답변에 나는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제가 그때 절절이 느낀 것인데, 겨울이면 왜 이렇게 춥고 시간은 더디 가는지 경험을 안 해본 사람들은 잘 모를 것입니다. 방한복 하나 없이 겨울의 혹독한 밤을 순경한다는 것은 예사 일이 아닙니다. 내 휘하에는 없었지만 다른 곳에서는 업무 중 얼어 죽은 자가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해서 제안 드립니다."

나는 여기서 이들의 표정을 한 번 살펴보고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집동우리라도 하나 마련해 그 안을 들락거리며 근무하게 되면 동사자가 현격하게 줄어들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에 대한 예산을 배정해서 올 겨울부터는 얼어 죽는 자가 하나도 나오지 않게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꼭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한태수의 답변에 만족한 표정을 지은 내가 계속해서 말했다.

"오늘 업무 내용을 들어보니 무비사가 하는 일이 정말 많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고생이 많다는 것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 일이 국방과 치안에 관계된 일이니 절대 허투루 처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더 더군다나 면포 몇 필에 양심을 팔거나 비리가 있어서는 절대 안 될 것입니다."

나의 말이 여기에 이르자 모두 표정이 굳어지는 것이 역력했다. 그래서 나는 이들의 경직된 분위기를 풀어주기 위해서라도 가볍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왜놈들의 정세는 알고 계십니까?"

"저희들끼리 내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비사 어느 좌랑의 답변에 내가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재차 물었다.

"저들이 한 사람에게 통일된 후의 일은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야........"

머뭇머뭇 더 이상 답변을 못하는 좌랑이었다.

"내 예상입니다만 저들은 자신의 대항세력을 소진시키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조선을 침략할 것으로 봅니다."

나의 말에 저의들끼리 마주보나 심각성은 그렇게 못 느끼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여러분들은 아직 피부에 닿지 않아 실감을 못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래도 우리의 할 도리는 다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훗날 역사의 죄인이 되지 않으려면........"

일단 여기서 말을 끊은 내가 계속해서 말했다.

"해서 마적(馬籍)의 관리, 병기, 전함의 관리, 하다못해 성곽과 봉수대, 화포의 관리 등 국방에 관계된 일이라면 절대 한 점 허투루 다루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를 등한히 여겨는 자는 반드시 고과에 반영해 좌천을 시킬 것입니다. 추운 겨울에 북방에 가서 떨고 싶지 않거나, 남쪽 바다에 가서 왜구의 칼에 맞아죽고 싶지 않은 자는 근무를 똑바로 하라고 하십시오. 알겠습니까?"

"네!"

세 사람이 큰 소리로 복명하는데 반해 다른 한 사람의 정랑 즉 이원길의 얼굴은 떨떠름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왜? 이 낭청은 그렇게라도 하겠단 말입니까?"

"그렇지는 않지만, 처음부터 너무 옥죄는 것 아니오?"

"업무를 제대로 처리하라는데 그게 뭐가 옥죄는 것입니까?"

"알겠소."

간단하게 대답하지만 그의 내심을 들여다보면

'네가 얼마나 가는지 두고 보겠다.'

뭐 이런 내심인지, 숨기려 해도 비릿한 냉소가 떠오르는 것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태도에 나 역시 기분이 나빴지만, 더 이상 다그치기도 그래서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고 오늘은 그냥 돌아가기로 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합시다. 내 다음에 또 들르지요."

말을 끝낸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그때 이원길의 목소리가 내 뒷골을 잡아 당겼다.

"초짜라 저렇게 날뛰지만 과연 얼마나 가는지 보겠다."

나를 보고 들으라는 듯 대놓고 떠들지는 못해도 제법 목소리가 컸다. 분개한 내가 돌아서서 손을 좀 봐주려고 몸을 트는데 고경명이 나를 말렸다.

"으래 저희들이 오래 묵었다고 텃세를 부리는 것입니다. 아직도 면신례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니 일일이 대항하다보면 체신만 깎이지 하등 도움이 안 됩니다. 그냥 가시지요."

그렇게 말 하고 나를 이끌고 자리를 피하던 고경명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저들에게는 면신례 때 박하게 대했습니까? 좀 이상하네요."

"세 냥 밖에는 안 넣었는데.........?"

"너무 적었군요. 그나마 직접 이름도 안 부르고 저 정도로 나온 것만 해도 많이 봐준 것입니다. 그러니 너무 마음에 담아 두지 마세요."

고경명의 말로 유추해 보아도 세상사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절실히 느꼈다. 어쨌거나 기분이 나쁜 것은 사실이었다.

아무튼 내가 이렇게 생각에 잠겨 있자 고경명이 말했다.

"다음으로 무선사(武選司)나 가보시죠."

"됐소. 이런 기분으로는 일이 잘 안 될 것 같소. 기분도 꿀꿀한데 퇴근 후에 우리 집에 가서 술이나 한 잔 합시다."

"오늘도 입직(入直)하여 내각사(內各司)의 성기(省記)를 관장해야 합니다."

"참 내 ........!"

일이 틀어진데 대해 내심 입맛을 쩍쩍 다시는 나였다.

여기서 고경명이 말한 성기(省記)는 매일 궁궐(宮闕)을 경비(警備)하는 장수에게 교부하는 군호(軍號)와 궁궐의 각처에 입직하는 관원, 하예(下隷) 및 각영(各營), 각문(各門)에 입직하는 장사(將士)의 이름을 열기(列記)하여, 승정원(承政院)을 거쳐서 임금에게 올리던 서면(書面)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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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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