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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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와서 물리면 우리 가문이 풍비박산 납니다. 지금 윤 대감이 어떤 위치입니까? 누님은 임금도 뺨을 때린다는 대비고, 동생은 그 이름만 들어도 산천초목이 부르르 떤다는 당금의 실세입니다. 가역하면 우리 집안은 살아남지를 못해요."
"그래도 그렇지........"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 어머니!"
잠시 후 조금은 진정이 됐는지 어머니가 한탄 비슷하게 말씀하셨다.
"지금 와서 이를 어쩌누 그래.........?"
잠시 멍하니 천정을 보며 넋을 잃고 계시던 어머니가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아무튼 나는 싫으니 그런 줄 알고. 일단 혼사는 거행하라. 대신에 나는 이 꼴 저 꼴 보기 싫으니 만경으로 내려갈련다."
"어머니!"
내가 크게 불러도 어머니는 단호하셨다.
"내 결심은 확고부동하니 말릴 것 없다. 그런 줄 알고, 애비는 내 내려갈 수 있도록 채비나 갖춰라."
"네, 어머니!"
대답하는 내 목소리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전혀 예상 못한 아내도 당황했는지,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어머니 방을 나와 아내와 함께 아내의 방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갑자기 아내가 인상을 찡그렸다.
"왜 그래?"
"배가 아파요."
"어떻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체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요."
아내의 말에 나는 생각했다.
'오늘 첩을 들인다는 말에 충격을 받아서 체했나? 혹시 모르니 공 의야를 불러봐야겠군.'
공진택은 윤원형의 사건 이후, 그 진가를 인정받아 모두로부터 높임과 존경을 받고 있었다. 나는 종을 소리쳐 불러 공 의야를 모셔오도록 했다. 그리고 아내를 부축해 그녀의 방으로 데려갔다.
"잠시 쉬고 있어. 내 의야를 불렀으니, 곧 올 거야."
"당신도 가서 편히 쉬세요. 너무 마음 쓰지 말고요."
"알았어. 내 의원을 모시고 다시 오리다."
나는 대답을 하고 아내의 방을 나왔다.
채 반 시진도 지나지 않아 공 의야가 급히 와서 더운지 번질거리는 이마로 나타났다.
"부르셨소이까? 윤 봉사님!"
"아내가 아프다는데 진찰 좀 해주시겠소?"
"그러지요."
나는 공 의야를 모시고 아내가 기거하는 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가기 전에 내가 헛기침을 좀 했더니 아내도 눈치를 재고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있었다.
"진맥 좀 받아봐."
아내에게 말하고 공의야에게 눈치를 주니 그가 좀 더 아내 앞으로 다가 앉으며 물었다.
"어디가 편찮으십니까?"
"배가 아픈데 어떻게 설명을 드릴 수가 없어요. 평소 체한 것과는 아무래도 다른 느낌 이예요."
"어디 좀 봅시다."
문진(問診)을 하더니, 잠시 아내의 안색을 살핀 공 의야는 이어 아내의 옷 위로 손목을 잡아갔다.
잠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심각한 안색으로 진맥을 하던 공 의야가 단정적으로 말했다.
"회임(懷妊) 하셨습니다. 헌데 문제가 좀 있습니다."
"네?"
아내가 임신을 했다는 기쁨도 잠시, 나는 공 의야의 문제가 있다는 말에 반사적으로 물었다. 아내 역시 희색(喜色)이 졸지에 흑 빛으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오늘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까?"
"네, 오늘 그럴 일이 좀 있었어요."
아내가 말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이자 내가 대신 대답을 했다.
"태아가 오늘의 충격으로 불안정 합니다. 처방을 해드릴 테니 다려드시고 안정을 취하세요."
"그러면 괜찮아 질까요?"
"안정만 취하신다면 큰일은 없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내가 아내 대신 사의를 표했다. 그리고 내가 물었다.
"얼마나 되었습니까?"
"이 개월째입니다."
나는 공의야의 말에 아내를 나도 모르게 째려보며 말했다.
"여자가 돼가지고 어떻게 임신 사실도 모를 수가 있어? 분명 달거리가 끊어졌을 것 아냐?"
"........."
아내가 얼굴만 붉히고 채 대답을 못하고 있는데, 공 의야가 대신 답변을 했다.
"첫 회임이시고 하니, 긴가민가하셨을 겁니다. 또 조심스럽다보니 제대로 의논도 못 드렸을 거고요."
아내의 심리를 정확히 맞췄는지 아내가 공 의야에게 고맙다는 눈빛을 보냈다.
아내의 감사의 눈빛에도 공 노인은 담담한 안색으로 말했다.
"제가 직접 약제를 조제해서 보내드리죠."
"네. 돈은 넉넉히 드릴 테니, 좋은 약재로 써주세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어느 분의 회임인데."
고아하게 웃으며 흰 수염을 쓰다듬는 명의 공 노인이었다.
그리고 삼일의 집중치료를 받은 아내는 '이제는 괜찮다'는 공 노인의 판정을 받았다. 말로는 약만 지어 보내고 자신을 안 올듯 하더니, 내가 생각 외로 많은 돈을 챙겨주자, 그는 아예 삼일 간을 우리 집에서 상주하면서 집중치료를 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생각보다 일찍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돈은 귀신도 부린다는 말이 나왔나 보다.
아무튼 이 기쁜 소식을 이제는 어머니에게 알려야겠다고 퇴근 후 나는 아내의 손을 잡고 어머니의 방으로 건너갔다.
"어머니, 소자입니다!"
"들어오너라!"
대답하시는 어머니의 음성에는 예전과 같은 따사로움이 없었다.
우리 내외가 저녁 문안 겸 절을 올리고 무릎을 꿇은 채 말씀드렸다.
"어머니 기뻐해주십시오. 아내가 회임을 했답니다."
"뭐라고?"
못 알아들어서가 아니라 너무 기쁜 나머지 어머니는 반사적으로 부르짖으셨다.
"아내가 회임을 했다고요!"
나 역시 왜 이를 모를까, 하지만 나 역시 이를 강조하기 위해 귀먹은 노인에게 말하듯 고함쳐 말했다.
"아가야, 정말 수고했다."
갑자기 달려들어 아내의 손을 덥석 잡으며 고생(?)을 치하하는 어머니셨다.
순진한 아내는 어머니에게 두 손이 잡혀 얼굴만 붉히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래, 몇 개월이라 하더냐?"
"이제 2개월 째 랍니다."
나의 답변에 어머니는 만족한 웃음을 머금고 말씀하셨다.
"그래, 지금이 제일 중요할 때고, 위험할 때야. 그러니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그냥 누워만 있거라."
내가 아는 상식으로는 이것은 위험한 발상이었다. 아무리 임신 중이라도 적절한 영양식과 운동은 오히려 태아에게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어머니, 그것은 오히려 안 좋습니다. 적당한 운동과 적절한 영양식이 태아나 산모의 건강에 더욱 좋습니다."
"그래, 똑똑한 애비니, 애비 말대로 하자."
"네, 어머님!"
비로소 처음으로 입을 열어 답을 하는 아내였다.
"그러나 저러나 안정이 필요한데........"
좌중에 갑자기 침묵이 감돌자 내가 혼자 중얼거리듯 말했다.
"무슨 소리냐?"
나의 물음에 덥석 미끼를 무는 어머니셨다.
"며칠 전에........."
이렇게 운을 뗀 나는 얼마 전의 일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의 자초지종을 상세히 말씀드렸다. 그리고 덧붙였다.
"안정을 취하려면 누가 돌보는 사람이 있어야 되는데, 내가 출근도 않고 아내 곁에 매달려 있을 수도 없고......."
"하녀들이 있잖느냐?"
"걔네들이야 어디 성의가 있습니까? 시키는 일만 대충하지? 온 마음으로 돌보지는 않을 것 아닙니까?"
"그래서 내가 필요하단 말이냐?"
"헤헤헤........! 그렇습니다요."
간사스럽게 웃으며 나는 간접적으로 어머니의 잔류를 요청했다.
"내가 볼 때는 말이야........"
"말씀하세요, 어머니!"
"안정을 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네 혼인부터 무를 수 있으면 무르는 게 제일 좋다. 우리 며늘아기가 그것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는 것 아니냐?"
어머니의 말이 맞는 말이긴 했지만, 만약 여기서 혼사가 깨지면 아이 하나가 유산이 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잘못하면 우리 집안이 풍비박산이 난다. 그래서 나는 농담 비슷하게 어머니께 말했다.
"에이, 또 그 말씀을........"
"뭐가 또 그 얘기야, 내 말이 틀리느냐, 어멈아?"
".........."
아내는 어머니의 말씀에도 고개만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이는 일종의 나를 배려한 행동이리라. 그래서 내가 말했다.
"어머니 말씀이 그르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무를 수 없으니까, 문제죠. 해서 어머니가 좀 양보를 하셔서 태아가 안정될 때까지만 이라도, 어머니가 곁에 계셔주셨으면 좋겠어요."
"대신 이 집에서는 혼례를 올릴 수도 없거니와, 나는 식장에도 안 간다."
"좋아요! 그건 어머니 뜻대로 하시고요. 대신 아내나 잘 보살펴주세요."
"알겠다."
어머니는 딱딱하게 대답하시고 우리에게 축객령을 내리셨다.
"그만, 나가 봐라!"
"네, 어머니!"
"네, 어머님!"
어머니는 일어나는 아내를 새삼 붙들어 주저앉히시고 새삼스럽게 다시 한 번 아내의 손을 토닥거리셨다. 나는 이를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며 내심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아이고, 발 저려!'
다른 때 같았으면 우리가 절을 올리고 나면
'편히 앉아라!'
하는 말씀이계셨는데, 오늘은 초장부터 너무 기쁜 소식을 전하는 바람에, 그럴 겨를이 없으셨다. 그 바람에 나는 일어나도 발이 저려서 한동안 움직이지를 못했다.
그래도 어머니가 계속해서 한양에 계신다니 기분은 좋았다. 그보다도 빨리 윤 연이 머물 집을 구하는 게 나로서는 급선무였다. 그래서 나는 저린 한쪽 발을 절뚝이며 어머니의 방을 얼른 물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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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감사하고요!
^^
늘 좋은 날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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