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박인생-24화 (24/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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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 올리겠습니다."

"그래, 조금만 따르게. 내 몸이 그러니, 입에만 댈 터이니 양해하시게."

"별 말씀을."

'어서 드시게.'

"네!"

나의 술버릇은 어디가나 똑같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단숨에 술잔을 비워냈다.

"아주 보기 좋군. 나도 자네와 같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잠시 비감한 생각이 드는지 코끝을 어루만지는 윤원형이었다.

"다 부질없는 생각이고. 내일은 아침 일찍 포청(捕廳)에 가보시게."

"죄 지은 것도 없는 데요?"

"가보면 알아."

나의 말을 딱 잘라 막고 천천히 술을 입에 대었다가, 금방 입술을 떼는 윤원형이었다.

내가 말이 없자 윤원형이 말했다.

"곧 혼례날짜 잡을 테니 그런지 알고."

"네!"

"이제부터 사위라고 불러도 되겠지."

"네!"

"어찌 대답이 그런가? 못마땅한가?"

"그게 아니고요. 배가 고픈데 자꾸 말씀을 시키시니까........"

나는 얼른 변명을 했다.

"하하하........!"

가가대소하던 그가 웃음 끝에 말했다.

"그 뜻이었어."

"네."

"그럼, 얼른 식사나 하자고."

"네!"

"차린 것은 없지만 많이 들라고."

젠장, 상다리가 부러질 정돈데 차린 게 없기는. 우리나라는 예나 지금이나 너무 허례가 많다. 나는 그때부터 열심히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윤원형의 집을 나오니 채 이경이 안됐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을 바라보며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일이 꼬이고 꼬여 어쩔 수 없이 윤 연을 첩으로 들일 생각을 하니, 부인이 걸려 마음이 괴로웠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윤원형의 말대로 포도청으로 가보았다.

생각지도 않은 거물이 아문(衙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포도대장 정순붕(鄭順朋)이 그였다.

윤원형을 도와 윤임 일파를 재거한 공로를 인정받아, 포도대장에 임명된 인물이었다.

"어서 오시게."

"아니 영감님께서 어찌........"

"잘 왔네. 오늘 부로 자네는 내부하가 되었네."

"네?"

"첩지(帖紙)가 내려왔어. 자네를 종 8품(從 八品) 봉사(奉事)에 봉하라고."

'젠장, 가왕 음서(蔭敍)로 등용하는 것 종팔품이 뭐야? 정팔품(正八品)도 아니고? 또 하필 그 많은 관위 중에서 봉사(奉事)가 뭐야, 봉사가? 이름도 재수 없는 봉사가.'

나는 내심 투덜거리며 허망한 생각이 들었다. 겨우 종팔품 벼슬을 받으려고 이 고생을 했나 싶었지만 지금 와서 어쩌겠는가.

이것으로 손자대가 기획한 '왕망지계(王莽之計)'는 성공리에 막을 내렸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내가 고생한 대가치고는 흡족한 결론은 아니었다. 정팔품만 되었어도........!

* * *

일단 여기서 이해를 돕기 위해 왕망지계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겠다. 그러자면 왕망(王莽)에 대해서 먼저 언급을 해야겠는데, 왕망은 중국 한(漢)나라의 중간에 '신(新)' 이라는 나라를 세워, 황제 위에 오른 인물이었다.

고조 유방이 세운 중국 한(漢)나라 왕조는 15대 약 200년 가까이 지속되다가, 어린 왕자 영(嬰) 대에 일단 단절되었다. 그 후 20년 가까운 공백 기간을 두었다가, 다시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의 손으로 재흥되었다. 이후 영제 대에 이르러 또 다시 어지러워지니, 조조, 유비, 손권 등이 출현하는 삼국대가 열리는 것이다.

아무튼 두 왕조를 구분하기 위해 전 왕조를 전한(前漢), 후 왕조를 후한(後漢)이라고 부르는데, 이 중간의 이음매 공백을 메우는 것이 신(新)이라는 왕조이며, 그 창시자가 왕망이었다. 고작 15년 만에 멸망했지만, 왕망이 황위에 오른 과정이 이 계교의 핵심이었다.

해서 그가 황위에 오른 과정을 더듬어 보면 이렇다. 그는 당시 황후였던 왕정군(王政君)의 먼 친척으로, 가세도 형편없었고 어렸을 때는 남의 눈에 띄지도 않는, 요새 시체 말로 하면 범생이였다.

그런 그가 당시 황후의 친동생으로 실세였던 대장군 왕봉(王奉)이 쓰러지자, 이 소식을 들은 즉시 그는 자식들도 외면하는 간호를 도맡아 했다. 종전에 윤 흥이 했던 대로 그야말로 지극정성에 날수구면의 태도였다.

이렇게 되어 결국 왕봉은 2개월 후에 죽지만, 죽기 전에 유언으로 누님인 황후에게 왕망의 등용을 부탁한다. 그래서 관직에 첫발을 내디딘 것이 황문랑(黃門郞이라는 시종직이었다. 직위는 결코 높다고 할 수 없었지만, 이후 왕망은 승승장구해 권세를 오로지 하는 것은 물론, 황위까지 찬탈하는 것이다.

결국 손자대는 왕망의 행적을 더듬어 윤원형을 고의로 병들게 하고, 나를 간호에 참여시킴으로서, 그의 신임을 얻어 음서로 관직에 진출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에 나는 이번 거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에게 많은 재물을 내려 보답을 하였다.

아무튼 이날부로 종팔품 윤 봉사가 된 나는 포도대장 정순붕의 배려로 마포나루를 관리하는 지금으로 말하면 순찰대장이 되었다. 이에 내 밑으로 정구품인 부봉사, 종구품의 참봉인 나졸들이 무수히 배정되니, 나는 육두방망이나 옆구리에 차고, 주로 내 여각에서 건들거리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외관상은 편하지만, 아직도 아내에게 운도 못 떼고 있는, 윤 연이라는 첩 문제를 거론하려니, 이래저래 수심에 잠기는 날이 많아진 요즈음의 나였다. 아무튼 이실직고를 하기는 해야겠는데,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곧 저들이 약정한 혼사 날이 코앞이었다.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견우와 직녀도 만난다는 칠월 칠석 날이 이제 칠일 앞으로 다가와 있었던 것이다. 이 고민으로 나는 대낮부터 나는 여각에서 술만 계속 마시고 있었다. 술에 장사 있나? 점심도 거른 채 계속된 술에 몸이 건드렁거릴 지경까지 되자, 나는 바로 밑의 쫄따구인 부봉사에게 오늘은 먼저 퇴근한다고 이르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니 어느덧 해거름이었다. 나의 때 이른 귀가에 하인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더니 소식을 들었는지 아내가 마중을 나왔다.

"아이고, 술 냄새야!"

코를 감싸 쥔 아내가 덧붙여 말했다.

"뭔 술을 대낮부터 이렇게 많이 드셨어요? 밖에서 무슨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었어요?"

"아니!"

내가 무표정으로 간단하게 고개를 흔들자 아내는 더욱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무슨 걱정이 있으면 저에게 얘기해보세요. 네? 서방님!"

"당신이 걱정해서 해결 될 일 같았으면, 벌써 얘기 했지."

"그래도 얘기라도 하고 나면 속이라도 후련하잖아요."

"그건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나는 새삼스럽게 아내를 바라보았다.

"이 이가 오늘따라 왜 이래?"

수상스럽다는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내였다.

"아니, 언제 봐도 예뻐!"

"참 내........!"

어이가 없어 말을 못하는 아내였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뽀뽀나 한 번 할까?"

"이 이가 정말........?"

달려들어 나를 밀치는 흉내를 내는 아내였다. 물론 장난이지만 말이다.

"그러지 말고 안으로 들어갑시다."

"아니, 오늘 따라 왜 이래요."

나는 아내의 손을 잡고 강제로 아내의 방으로 이끌고 들어갔다.

"오늘 정말 무슨 일 있었지요? 저한테 속 시원히 얘기 좀 해봐요. 죽고 사는 일만 아니라면, 뭐가 대수예요?"

아내가 이렇게 까지 말하자 내 마음이 조금은 열렸다.

"사실은 말이오."

"아무 걱정 말고 얘기해 보세요."

"윤원형 대감의 딸을 첩으로 들이게 되었소."

"뭐예요?"

아내가 펄쩍 뛰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럴 줄 알았기 때문에 내가 쉽사리 얘기를 못 꺼낸 건데........"

나의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아내는 계속해서 멍한 표정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니 괜히 측은한 생각이 드는 나였다. 그렇지만 어떻게 위로를 할 것인가? 나도 할 말을 잊은 채 잠시 멍하니 아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눈물을 훔친 아내가 한결 진정된 표정으로 말했다.

"혼인 날짜가 언제 예요?"

"앞으로 정확히 칠일 남았소."

"그럼, 칠석날 이예요?"

"그렇소."

"다 좋은데......... 어차피 저도 시집오기 전에 각오를 했거든요. 잘난 양반가에 시집을 가면 삼첩사첩을 보통이라고 생각하고, 절대 투기하지 않기로. 그런데 막상 닥치니 쉽지가 않네요."

"당신의 그 마음을 내가 왜 모르겠소?"

"그런 양반이........."

내게 눈을 흘기는 아내였다.

"어쩔 수 없었소."

"더 이상 변명 말고요. 어차피 윤 대감 댁이라면 당신 입장에서는 거절하기가 애초부터 쉽지 않았을 거예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여기서 잠시 망설이는 아내였다.

"말해보오."

나의 재촉에 아내가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서로 눈에 안 띄게 집이라도 따로 얻어 살면 안 되겠어요?"

"그건, 그렇게 할 수 있소."

"그럼, 됐고요. 어머니한테는 말씀 드렸어요?"

"아니!"

내가 고개를 흔들자 아내가 말했다.

"그렇게 중요한 걸, 진즉에 말씀드렸어야죠. 지금이라도 저와 같이 가서 말씀 드려요."

"그럽시다. 그리고 고맙소!"

"쳇.........!"

조금 밝아진 표정으로 쳇, 쳇 거리는 아내를 보니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나는 못이기는 체 아내의 손을 잡고 방바닥에서 일어났다. 어머니 방에 가는 동안에도 나는 아내의 손을 계속 잡고 있었다. 그러자 아내는 계속해서 내 손을 뿌리쳤다. 아래 것들 보는데 부끄럽기도 하고 첩을 얻었다는데 대한 벌이라고 딴에는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그런 실랑이 속에서 우리 부부는 어머니의 방 앞에 도착했다.

"어머니 계세요? 저희들 왔습니다."

"왔느냐? 어서 들어오너라."

어머니의 허락이 떨어지자 우리 둘은 나란히 어머니의 방으로 들어갔다.

"주무셨어요?"

아무래도 어머니의 안색이 부스스 한 게 이상해서 내가 물은 것이다.

"그래 잠시 눈 좀 붙였다. 요새는 왜 이렇게 피곤한지 모르겠다. 봄철도 아닌데. 그건 그렇고 무슨 특별한 볼일이라도 있는 게냐?"

"무슨 특별한 일이라기보다는........."

내가 주저주저하는데 아내가 나서서 말했다.

"이 이가 글쎄 첩을 들인다지 뭡니까?"

"그래?"

듣는 이 처음이라는 듯 눈을 크게 뜨시는 어머니였다.

하긴 오늘 처음 듣는 것이 맞기는 맞다.

"며늘아기 입장에서는 서운하게 들릴지 모라도 어미 되는 입장에서 보면 환영할 일이로구나."

어머니의 말에 아내가 어머니 몰래 입을 삐죽였다.

"들어봐라."

이렇게 서두를 꺼낸 어머니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내가 처음 시집와서 한동안 아이를 못 낳자, 네 애비가 첩을 들이는데, 얼마나 화가나고 서운하던지, 네 애비와는 한동안 잠자리를 안 한 것은 물론, 상면도 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니 이제는 그러려니 체념을 하게 되고........ 내 이 얘기를 하자는 게 아니라, 결론은 부모가 되니 또 입장이 바뀐단 말이다."

어머니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하나보다는 둘이라고. 많은 여식을 거느려 자손이 번성하기를 바라지. 그러니 환영할 수밖에. 이렇게 입장에 따라 사람의 마음이 간사하게 변하니 나도 알다가도 모르겠다."

"어머님 심정 이해해요."

아내의 말에 어머니가 아내의 손을 끌어다 덥석 잡으며 말했다.

"고맙다."

이를 외면하는 아내의 눈에는 어느새 한 줄기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갑자기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이를 타파하기 위함인지 어머니가 내게 물으셨다.

"어느 집이냐?"

"윤원형 대감집입니다."

"뭐라고?"

아내가 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와 같이 놀라 뒤로 물러나는 어머니셨다.

"안 된다!"

"네?"

"네 큰아버지는 물론 결과적으로 네 애비를 해친 게 누구더냐? 그 원수의 딸에게 장가를 들겠다니?"

"친딸은 아니고 수양딸입니다."

"수양딸이고 친딸이고 다 싫다."

어머니는 단단히 화가 나셨다.

"이미 날짜까지 잡아놓은 상태입니다."

"어찌 됐든 나는 싫다."

"어머니!"

내가 한 무릎 다가앉으며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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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

오늘도 즐겁고 유쾌한 날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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