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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인생-23화 (23/141)

<-- 음서 -->

3

이때 나무 그늘에서 한 사람이 나타났다. 허필량이었다.

그런데 그의 등 뒤에는 또 한 사람이 업혀있었다.

멀리서도 등 뒤에 업힌 자로부터 술 냄새가 진동을 했다.

이때쯤에는 나에 의해 윤 연의 속치마가 들쳐져 백옥 같은 허벅지까지 드러난 상태였다. 허필량은 나를 보고 싱긋 웃더니 업고 온 자를 짐짝 부리듯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래도 업혀온 자는 깨어날 줄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자 허필량은 그의 바지춤을 까내리더니 품속에서 죽통과 붓을 꺼냈다. 그리고 죽통의 마개를 열고 기울이자 닭의 생혈이 붓끝을 적셨다. 허필량은 이를 만취한 자의 성기 부분에 골고루 발랐다.

그리고 죽통과 붓을 치우고는 술 취한 자의 뺨을 사정없이 이쪽저쪽으로 때였다. 이내 그 자가가

'끙~!'

소리를 내며 깨어났다. 이때 나는 나무 그늘 속으로 숨어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깨어난 주방의 숙수가 사방을 두리번거리더니 혼자 중얼거렸다.

"그런데 왜 내가 여기 있지?"

그때였다. 그 자의 옆에서 벽력성이 떨어졌다.

"네, 이 놈........!"

난데없는 벼락 치는 호통에 화들짝 놀란 숙수가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허필량의 시선과 마주쳤다. 그가 순간적으로 납작 엎드렸다. 마치 뱀을 만난 개구리와 같았다.

그의 머리 위로 사정없는 일갈이 떨어졌다.

"네가 지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겠느냐?"

"네, 네.........?"

허필량의 호통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이윽고 그의 시선이 윤연의 하체에 멈췄다.

"어머나.........!"

놀라니 남자도 여자와 같은 비명을 토하는 것을 나는 처음 알았다.

화들짝 놀란 숙수가 무조건 대가리를 처박고 빌었다.

"소인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집사나리! 한번만 용서하여 주십시오."

"네놈의 흉물이나 보고나서 그런 얘기를 하라!"

허필량의 말에 반쯤 몸을 일으킨 그자가 자신의 피 묻은 성기를 보고는 대경해 어쩔 줄 몰라 했다. 너무 놀라니 바지춤 끌어올리는 것은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었다.

다만 자신과 윤 연을 번갈아 보던 그의 안색이 하얗게 탈색되며 납신 엎드려 빌었다.

"집사나리, 소인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한 번만 용서하여주십시오."

"네 앞에 있는 천금지체를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느냐?"

허필량의 말에 망연한 표정으로 넋이 나간 듯한 숙수였다.

그런 숙수를 향해 허집사가 달래듯 말했다.

"딱 한 가지 살길이 있다."

"무엇이옵니까? 그 길이. 소인 백번 죽는다 해도, 나으리의 명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요. 네, 네........!"

그의 말에 빙그레 웃던 허필량이 돌연 웃음을 멈추고 갑자기 잔혹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 약을 대감님의 국에 타라."

"네에.........?"

깜짝 놀라 상체를 반쯤 일으키는 숙수였다.

"안 받겠드냐?"

"소인 다른 일을 하면 안 되옵니까?"

"여러 소리 할 것 없다. 받아라!"

허필량의 냉혹한 말에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손을 내미는 숙수였다. 마침내 그의 손에 약봉지가 쥐어지고 그는 이를 들고 이제는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이에 만면에 인자한 미소를 머금고 숙수를 달래는 허필량이었다.

"요즘 대감님께서 원기가 허하신 데도, 보약을 권해도 듣지 않으시기에, 강제로라도 드리려는 것이니, 너무 겁먹을 것 없다."

"정말이옵니까? 집사나리!"

"이놈이, 속고만 살았나?"

허필량의 호통에 찔끔하는 숙수였다.

그러자 다시 그를 부드럽게 달래는 허필량이었다.

"어서 품에 넣어두어라."

주저주저 숙수가 약봉지를 챙기자, 다시 표정이 돌변한 허필량이 잔혹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내 명을 거역할 시에는 네가 어떻게 될 지는 네가 잘 알 것이다. 뿐만 아니라, 네 처는 물론 자식, 네 부모까지 하나 살아남지 못하리라."

참혹하게 일그러지는 숙수의 표정을 무시하고 허필량의 명은 계속해서 떨어졌다.

"빨리 사라져라!"

"네, 네!"

일단은 현장을 떠나야겠다는 듯 꽁지가 빠지도록 달아나는 숙수였다. 그러자 어느 나무 그늘에서 바삐 움직이는 그림자들이 있었다. 숙수를 감시하려는 자들의 기민한 행동이었다.

"이제는 나오셔도 좋소."

허필량의 말에 내가 천천히 나무 그늘에서 나가니, 힐긋 윤 연에게 시선을 주었던 허필량이 말했다.

"이제 이 천금을 처리하는 일만 남았구료I. 알아서 처신하구랴."

"수고하셨소. 이 소저는 내게 맡기고 들어가 일 보시죠."

"그럼........!"

간단하게 목례를 보낸 허필량이 휘적휘적 나무 그늘 속으로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자 나는 새삼 주위를 둘러보고는 신속하게 윤 연의 치마를 입혔다. 물론 그녀의 속치마를 단속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래도 그녀는 깨어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나는 품에서 다시 흰 가루약을 꺼내 강제로 그녀의 입을 벌리고 털어 넣었다. 그러나 의식이 없어 삼키지를 못했다. 할 수 없이 나는 그녀의 입을 열고, 내 혀와 침으로 강제로 그녀의 목구멍으로 넘겨주었다. 그리고는 그녀의 몸을 반쯤 일으켜 세워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러고 나서 일각이 지나자 그녀가 꼼지락거리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 잠시 누운 채 사방을 둘러보던 그녀가, 서 있는 내 시선과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 상체를 일으키며 부르짖었다.

"제가 왜 여기 누워있지요?"

"피곤하다더니 말 하던 도중 갑자기 수마에 빠지더이다. 너무 피곤한 것 같아, 잠시 지키고 있었소."

"역시 생원님은 군자시네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새삼 꼼꼼히 자신의 몸 주변을 둘러보는 그녀였다. 아무 이상이 없었으나 풀 하나가 치마에 묻어 있는 것이 전부였다. 그것을 떼어낸 그녀가 돌연 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생원님이 보시기에 제가 그렇게 매력이 없었나요?"

"네?"

나는 그녀의 말뜻을 이해하면서도 이해를 못한 척 물었다.

"제 몸이 너무 깨끗하잖아요."

"아, 그거야. 소저와 내가 혼인하기까지는 청백지신을 지켜주고 싶은 내 욕심 때문이었소."

"그러시다면 다행이고요."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녀의 입술에 미세하나마 흰 가루약이 묻어 있는 것이 보였다.

"소저, 잠깐만 이리와 보시오."

"왜요?"

윤 연이 방긋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뭐가 묻었소."

나는 말을 하며 손등으로 흔적을 지웠다.

"흉하게 침이 흘렀나요?"

"조금."

내가 빙긋 웃으며 말하자, 그녀가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어머, 이를 어째?"

"자다보면 누구나 다 그럴 수 있는 일을 가지고 너무 그러지 마오."

"호호호........! 생원님은 진짜 마음씨도 넓으시네요."

"소저, 밤이 깊은 듯하니 이만 들어갈까요?"

"네!"

나의 말에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리는 윤 연이었다.

나는 그녀를 다시 사랑채까지 바래다주고 말했다.

"정경부인 마님께는 밤이 깊어, 못 뵙고 떠났다고 전해주세요."

"심려마세요. 여장부 기질이 있는 어머니로서는 그런 일이 개의치 않으실 거예요."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오늘 너무 즐거웠어요. 생원님!"

"나도 즐거운 만남이었소."

간단하게 목례를 건넨 내가 등을 돌렸다. 집 밖에는 하인 두 놈들이 이제나 저제나 나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말고삐를 넘겨받는 대로 말 등에 올라 빠르게 달렸다. 긴장이 풀리자 그동안 참고 있던 수마가 몰려와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오후가 되자 갑자기 윤원형의 집안이 부산해졌다. 정무를 보던 윤원형이 갑자기 쓰러져 수레에 실려 왔기 때문이었다. 이 후 한양에서는 내노라하는 의자들 세 명이 연달아 불려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또한 그들은 하나 같이 하나같이 '풍(風)'이라는 처방을 내리며, 약을 제조하기 위해 물러났다. 그러나 그들은 곧 골목을 지키고 있던 운봉, 운정 사형제는 물론 이마에 먹물로 글씨가 새겨진 무뢰배들 두 명에게 끌려가, 온갖 협박을 당해야 했다.

그 결과 여러 차례 용하다는 의자들을 바꾸었지만, 윤원형의 병세는 차도를 보이기는커녕 점점 더 심해져갔다. 이렇게 되자 아들과 딸들도 부친의 병간을 위해 문턱이 닿도록 드나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열흘이 지나자 자식들의 발길이 뜸해지더니 돌연 어느 날부터는 아예 발길이 끊어졌다. 이때가 윤원형의 발병 후 보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제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 내가 하루는 이 집을 방문했다.

현재 윤원형은 서원부원군(瑞原府院君)에 우의정에 봉해진 상태였다. 그러나 이런 귀인도 풍으로 쓰러져 반쪽이 마비되고 발음마저 부정확하여 어버버에 가까우니, 상것과 하등 다름없는 추레한 몰골이었다.

이 시점에서 나는 본격적으로 그의 병간을 위해 그의 방에 붙어살다시피 하였다. 아니 붙어산 정도가 아니라, 그의 병상에 꼭 붙어서 열심히 간호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장장 두 달이나.

친히 약을 핥고 난수구면(亂首垢面:머리는 흐트러지고 얼굴도 씻지 않은 채)에, 허리띠를 두 달이나 풀지 않은 지극정성인 간호의 연속이었다. 이제는 자식도 다 내팽개친 불쌍한 노인을 간병하는 것이, 마치 부모 이상이라 모두 주변의 시선을 놀라게 하였다.

이때쯤에는 나의 천거로 어의출신 공진택마저 합류하여 그를 돌보기 시작했다. 내가 윤원형의 집으로 들어가고 나서 열흘 후쯤의 일이었다. 아무튼 그가 약재를 쓰기 시작한 후로는 아주 조금씩 조금씩이나마, 윤원형이 차도를 보여 그 역시 집안에 상주하는 몸이 되었다.

이렇게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그러니까 발병 후 1달 보름이 훌쩍 지난 시점이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어 부정확하나마 그와 대화가 가능한 시점이었다.

오늘도 나는 난수구면의 형태로 그에게 살갑게 물었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이제........ 마 많이, 조 좋아, 저 졌네. 곧, 쾌 쾌차, 할....... 거 것이야."

"다행입니다. 부원군 대감."

"다 이........ 이게, 자네의....... 은공이야!"

"저야 한 일이 뭐 있나요. 다만 대감께서 하루라도 빨리 쾌차하기를 기원 드린 것 밖에는."

"내......... 내 몸이 ........ 온전히........ 나아지면....... 자네의 은공을 ........ 잊지 않을 게야."

"그런 말씀 마시고 빨리 쾌차하기나 하세요."

"아, 알았네. 내 열심히........ 약도 먹고, 밥도 잘 먹어........ 하루라도 빨리....... 일어설 거야."

"그러셔야죠. 그런데 어디 특별히 불편하신 데는 없으십니까?"

"등이 좀 ........ 가려워."

"알겠습니다."

윤원형의 등 뒤로 돌아가 나는 그의 상의를 걷고 손톱 밑에 때가 끼거나 말거나, 그의 비쩍 마른 등을 사정없이 벅벅 긁었다. 내심으로는 욕지기가 아니라 구토가 올라왔지만, 이를 악물고 참으며 나는 그가 만족할 때까지 긁었다.

"어이........ 시원하다!"

윤원형의 말에 나는 등 긁는 것을 멈추고, 그를 바르게 눕혔다.

이렇게 흐른 세월이 어언 두 달이 지나자, 급속도로 몸을 회복하기 시작한 윤원형은 이제 말도 제대로 하고, 걷는 것이 약간 불편하기는 해도 정무를 보는 데는 하등 지장이 없을 정도로 회복이 되었다.

그러자 윤원형은 바로 궐로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자 나는 그의 집에서 물러나왔다. 그러나 공진택만은 여전히 그의 저택에 남아, 남은 잔병을 계속해서 다스렸다. 그러고 난 어느 날이었다.

윤원형이 정상적으로 출근한지 보름쯤 지난 시점이었다. 하루는 내가 정동 자택에 머물고 있는데 윤원형의 하인이 다녀갔다. 윤원형이 초경에 나를 자신의 집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저녁나절이 되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가 기거하는 사랑채에 내가 당도하니 큰 교자상에 상다리가 휠 정도의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황송하게(?)도 겸상을 하자는 것이었다. 아니 대작을 하자는 것이었다.

"내가 그럭저럭 사람 노릇을 할 수 있었던 게, 다 자네와 공의야(醫爺:의원을 높여 부르는 말) 덕분이야. 그동안 정말 고마웠네."

"족친으로서 당연히 할 도리를 한 것뿐입니다."

"아니 틀렸네. 족친이 아니라 내 사위로서 나는 정성을 받았네. 내 내자에게서 연아와의 혼담이 오갔다는 말도 들었네."

이렇게 나오니 나는 뻘쭘하여 아무 말도 못했다.

"왜 말이 없는가?"

"제게는 부인이 있다고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내자가 첩으로라도 준다고 하지 않던?"

"감당할 수 없습니다."

"너무 겸양 말게. 자네 같은 사람이면 연아가 좀 아깝긴 해도, 하녀로라도 주고 싶은 심정이야."

이렇게까지 윤원형이 적극적으로 나오자 나는 할 말을 잊었다.

"자, 내잔 한 잔 받으시게."

"감사합니다."

내가 잔을 들어 올리자 윤원형은 천천히 나의 잔에 이슬처럼 투명한 술을 따랐다. 잔을 받은 내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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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고맙습니다!

^^

오늘도 즐겁고 유쾌한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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